제갈공명의 호적수로 그 이름을 천하에 떨쳤던 사마의의 후손은 진나라를 세워서 삼국시대를 마감하고 중국 천하를 통일한 것은 잘 알고 있다. 그 진나라도 잠시후 골육의 난전(亂戰)인 8왕의 난을 겪으면서 약화되고 통제력을 잃자 결국 망하고 말았다. 중국 땅은 다시 난세로 돌입했는데 이 시대를 역사는 5호 16국 시대라고 한다. 이때 이미 망한 진나라의 후손들이 강남땅으로 쫓겨가서 세운 나라가 동진이라는 나라이다 이 동진이 양자강 이남에서 통치권을 행사하던 서기 350년경의 일이다.
동진의 무장 환온은 이웃에 위치한 한나라를 쳐서 멸하고 그의 위명을 천하에 떨치고 있었다. 이때 환온의 욱일승천(旭日昇天)하는 기세를 견제할 수 있는 인물로 각광을 받은 사람이 있다. 세상 사람들은 그가 옛 제갈공명쯤 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상 은호는 허명만 있을 뿐 실제로는 지극히 못나고 어리석으며 옹졸한 사람이었다. 그는 사사건건 남을 방해하고 모함하며 가소로운 일들만 찾아가며 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어찌 전쟁인들 잘하랴. 전쟁터에 임한 그는 한마디로 속수무책이었고 우유부단한 자신의 결점만 만 천하에 드러내면서 결국 스스로 파멸을 초래 하고 말았다. 이런 형편이니 환온은 자연히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는 동진의 최고 실력자로 부상하게 되었다.
한편, 평민으로 전락하여 앙앙불락하며 지내던 은호에게 어느 날 환온으로 부터 한장의 편지가 날아왔다.편지의 내용인즉 [그대 은호는 재능이 없는자가 아니요 일시 문제 처리방안을 잘못 선택한 것임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잘 알고 있소 따라서 나는 그대를 상서령(부총리급)에 추천할까 하는데 그대의 뜻은 어떠한지 알려주오] 라는 것이 아닌가? 그는 즉시 떨리는 마음으로 환온의 제의를 수락하고 그의 온정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어떤 경우에라도 당신의 손 발 노릇을 충실히 수행할 것을 하늘에 두고 맹세한다라는 내용의 답장을 적어서 봉함을 했다. 이제 그 편지를 부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그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이것이 얼마나 귀중한 편지인가? 혹 이것이 잘못되면 자신은 다시는 두번 다시 재기 불능의 사람이 될 것이다. 어쩌다 편지 알맹이를 빼고 봉함한 것이 아닌가? 자기를 모함하는 사람이 있어서 편지 내용은 바꿔치지는 않았는지,편지의 내용이 환온의 비위를 거스리는 것이 아닌지,의심은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이렇게 하여 그 편지는 붙혔다 다시 뜯고 다시 뜯어 확인하고 다시 봉함하고 하기를 무려 수십번을 반복하다가 결국 환온에게 부쳤는데. 잘 낳아보려고 벼르고 벼르던 자식 낳고 보니 언청이더란 말이 있듯이 은호는 결국 편지 내용은 빼고 겉봉만 보내고 말았다. 환온은 속이 빈 편지를 받고 은호가 자기의 제의를 거절하는 것이라고 단정하고 없었던 일로 처리하고 말았는데 은호는 이 일로 인하여 평생을 두고 한탄만 하다가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성경은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교훈하고 있다. 의심은 곧 불행과 직결된다.
당신이 어떤 일을 해 나갈때에 믿음으로 나아갑니까? 아니면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많으십니까?
약 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1. 이제 3월에 들어섰습니다. 움추렸던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문턱에 들어섰습니다. 코로나로 부터 벗어나 맞이하게 되는 봄입니다. 새로운 비젼속에 새 봄을 맞을 준비가 필요합니다.
2.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이 하나님의 은혜속에 잘 이루어지고 지경을 넓혀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3. 진해 군항제 기간에 찬양하는 곳에 지방 토속 음식물 판매코너가 세워진다고 합니다. 2주간 사역을 하지 못하게 되는데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의심하는 믿음 본문 : 고후6:14
불신이란 믿음의 반대 용어입니다. 믿음은 신뢰하는 것이요, 복종하는 것이요, 순종하는 것이지만, 반대로 불신은 약속을 믿지 못하는 것이요, 거스리는 것이며,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즉, 원래 어떤 서로의 약속들에 대한 협정과 신임에 있어서 쌍방의 신실한 관계를 나타내는 용어로 그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불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불신은 성경의 주요 신학적 주제가 되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에서 다루어지는 중요한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뜻에서 하나님은 믿음을 원하시고, 순종을 원하십니다.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성경에서 말하는 불신의 유형(엡2:2)
불순종의 영은 곧 사단의 영입니다. 사단은 인류의 시조를 유혹하여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어기고 불신하도록 유도하였습니다. 아담의 범죄, 곧 인류의 범죄가 불순종이듯이 그것은 믿음을 저버리는 것이요, 신뢰를 파괴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죄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거스리지 아니하고(행26:19) 회개함으로써 이방인을 위한 주의 종이 되었고 부모에 대한 불순종(롬1:30;딤후3:2)은 여러 가지 악덕 가운데 하나라고 말하였습니다. 또 아들을 순종치 않는 자는 그 위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이며(요3:36;행14:2,19;엡5:6), 하나님의 복음을 왜곡하여 율법을 지키도록 강요하는 할례당은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딛1:16),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넘어지게 되고(벧전2:8), 노아의 날에 홍수로 멸망한 사람들도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벧전3:20)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맹세하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신 자들은 순종치 아니하던 자(히3:18;히4:6)들입니다. 사실 이방의 그리스도인들은 이전에 모두 불순종의 사람들(롬11:30)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던 이스라엘이 불순종하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 언약에 들어가게 된 사람들입니다.
2. 불신의 시초와 그리스도의 순종함으로 인한 인류 구원(롬5:19)
한 사람 아담의 불신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보여 주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표성의 원리에 의해서 아담은 인류의 시조이기 때문입니다. 시조의 불신으로 인하여 인류는 범죄 아래 놓이게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 스스로 하나님과의 약속을 위반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믿었다면, 하나님께서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고 말씀을 그대로 믿고 지켜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그 말씀을 전폭적으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회의가 생기고 사단의 유혹에 의해 불신이 자리를 잡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불신의 결과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에덴에서 쫓겨나 고통과 슬픔 가운데서 일생을 보내며, 참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으며, 결국에는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비참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 예수께서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구원이 세상에 임하고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입어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불신은 이처럼 무서운 저주를 수반합니다.
3. 믿음은 불신을 제거하는 가장 좋은 지름길임(계21:8)
빛이 비취면 자연히 어두움이 걷히는 것처럼, 믿음을 가지게 되면 자연히 불신이 쫓겨납니다. 그런데 최후의 심판 때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는 자는 바로 믿지 아니하는 자, 즉 불신하는 자입니다. 이처럼 불신은 사람을 파멸로 이끌고 맙니다. 복음을 믿으면 그 광명한 빛이 아무리 어둡고 캄캄한 불신의 마음이라도 밝게 빛나게 하며 하나님을 신뢰하게 만듭니다. 이제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는 일 가운데 하나가 불신인지를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모든 사람을 긍휼히 여기심에 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믿음의 사람과 불신의 사람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확연히 볼 수 있는데 불신의 사람들은 약속을 받고도 이에 참예하지 못했으며, 동일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칭이 되었음에도 믿음의 사람들이 누리는 특권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모세의 영도 아래 애굽을 떠난 제1세대가 소수를 제외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은 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모세를 불신했기에 하나님께서 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불신은 하나님과의 단절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므로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4. 듣고 행치 않는 자들의 특징(히4:2,3)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전제로 하는 것은 들은 대로 행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말씀을 많이 듣고 주의 깊게 들어 마음속에 새긴다 할 지락도 그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그 말씀은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을 줄 수가 없습니다. 차라리 듣지 않고 행하지 않는 것만 못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무지로 인한 불순종의 대가는 치르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듣고서 그것이 진리라고 할 때는 반드시 순종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것은 자기를 속이는 것이라고 성경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기만한다'는 헬라어의 뜻은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하여 궤변적으로 주장한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몸으로 실천하지 않고 입으로 말만 잘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하는 말에 대하여 전혀 행동이 따르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짊어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면서 남을 비판하는 일에는 앞장서는 이론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은 선행의 열매를 맺지 않으면서 선행을 강조하는 위선자들이며 자기 자신을 속이는 비열한 자들입니다.
결론 불신을 원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목적은 인간의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고 죄 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순종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순종은 믿음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합니다. 믿음이 없는 인간은 순종대신 세상의 거짓에 그의 영혼을 의탁하여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 된 인간이 멸망치 않고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이 원하심에 참여하기 이해서는 불신에서 신앙에로의 전격적인 옮김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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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주님의 영광과 복음과 선교와 설교와 목회와 치유와 사랑과 성령의 도구로 쓰임받게 하소서 샬롬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신 예수 사랑 목사님, 평안 장로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