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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 개런드(M1 Garand) 반자동 소총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제식 반자동소총.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 나온 모든 반자동소총 중에서 가장 실용적이고 완성도가 높았다. 당시 참전국들의 대부분이 볼트액션 소총으로 무장했던 것과 달리 최초로 전군 주력 보병과 전투부대에게 표준 지급된 반자동소총으로 이 덕분에 미군은 보병의 개인 화력이 탄탄했다. 생산 물량이 어마어마해서 전세계에서 M1 카빈 다음으로 많이 만들어진 반자동소총이다. 덕분에 개발자 존 C. 개런드(John C. Garand)는 자택에 스케이트장을 만들 만큼 부유해졌다.
M1 개런드의 강력한 화력에 만족했던 미군은 다음 제식 소총으로 M1 개런드와 거의 유사한 특성을 가진 M14를 채용했었다. 다만 워낙 물량이 많았기에 M14로 다 대체하지 못하고 베트남 전쟁 초기까지도 M1 개런드가 쓰였다.
영화 등의 픽션에 있어서는 M1A1 톰슨 기관단총과 더불어 제2차 세계 대전 미군이 나오면 거의 반드시 등장하는 무기다. 8발의 탄약을 소진하고 나면 팅 하는 특유의 소리와 함께 튀어오르는 클립의 소리가 다른 총과 명확히 구별되는 특징이다. 6.25 전쟁에서도 사용된 만큼 그 당시의 대한민국 국군에 관한 영화에서도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1920년대 초반, 미 육군 병기부(Ordance Department)는 1차대전부터 줄곧 써왔던 볼트액션식 스프링필드 M1903을 대체하기 위해 반자동 소총 위원회(Semi-automatic Rifle Board)를 통해 새로운 반자동 소총 채택계획을 수립하였다. 사업 공고 직후 10개 회사의 치열한 각축전이 펼쳐졌다. 미국 내에서는 존 C. 개런드와 존 페더슨, 존 톰슨 등이 참여하였고 이어서 해외인 체코와 덴마크, 프랑스, 스위스(독일) 등 여러 국가가 참여하였다.
원래 미군의 계획에 따라 반자동 소총을 개발하기로 해 경쟁이 시작되었다. 개런드부터 페더슨 장비를 만든 페더슨, 톰슨, 이어 체코, 덴마크, 프랑스, 심지어 독일까지 여러 국가의 개발자들이 참가했고, 테스트 과정에서 톰슨 소총은 지나치게 긴 총몸과 생각보다 복잡한 내부구조 때문에 테스트에서 떨어졌으며 최종적으로 남은 것은 페더슨과 개런드였다.
페더슨 소총은 루거 P08과 같은 토글 액션에 지연 블로우백 방식을 합쳐 당시로는 단순하고 명중률도 높았지만, 탄피 배출 문제로 탄에 왁스 코팅을 해야했다. 반면 개런드는 초반 뇌관 작동식 블로우백이라는 현대에도 흔치않은 독특한 설계였다. 그런데 갑자기 미군이 소총의 작약을 변경하면서 탄의 압력이 변했고, 이게 뇌관 작동식에 치명타가 되었다. 뭔 짓을 해도 해결이 안되자 바로 지금의 가스 피스톤과 회전식 노리쇠를 쓰는 가스압 방식을 채택했다. 그러는 사이 군비 축소로 개발을 할 시간이 늘어났는데, 다행히 양쪽 다 아직 완성도가 낮은 편이어서 잘된 편이었다.
그러다 신형의 7x51mm .276 페더슨 탄을 사용하는 걸로 조건을 변경하면서 2 라운드가 시작됐다. 전과 마찬가지로 페더슨과 개런드의 이파전이 이어졌는데, 페더슨의 소총은 탄을 왁스 코팅 해야하는게 끝내 발목을 잡았다. 결국 개런드의 설계가 채용되고, 드디어 제식으로 생산을 하려 할때...더글러스 맥아더 장군(당시 소장)이 "아니 총알이 남아도는데 뭘 또 새로 만들어?"라며 반대하는 바람에 30-06 스프링필드 탄환을 사용하도록 변경되었다. 결과적으로 10발에서 8발짜리 클립으로 변경되며 장탄수가 줄어들었지만, 그 대신 보급의 편의가 확실해졌다. 탄약이 여러 가지일 때 겪는 난맥상은 당시 일본군이 잘 보여준다. 미군은 소총탄과 기관총탄이 동일했지만 일본군은 소총탄도 2종, 기관총탄도 최소는2종이었고 그나마 만족스럽지도 못했다.
초창기에 채용된 개런드는 총구에 장착된 장치로 가스를 모아 피스톤을 미는 방식인 가스 트랩식을 사용했으나, 구조가 복잡하고 신뢰성이 떨어져 현재의 가스 작동식으로 변경되었다.
어쨌든 제식 소총 채용후 소소한 개량을 거치며 무사히 생산되던 중 갑자기 복병이 나타나는데, 해병대 병기장교 출신인 멜빈 존슨이 만든 M1941 존슨 소총이 등장한 것이다. 기존의 5발 클립을 두개 사용해 10발 장전이 된다는게 장점과 더불어 해병대 출신이 만들었다는 사실로 인해 미합중국 해병대에서는 이 총을 채용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테스트 결과 신뢰성 부분에서 압도적으로 차이가 났고 결국 존슨 소총의 제식 채용은 하늘나라로...이후 예산이 모자라다는 죄(?)로 인해 해병대는 2차대전 초반까지 스프링필드 M1903으로 버텨야했다. 따라서 해병들은 본토에서 도착한 육군 병력을 향해 매의 눈(?)을 번득이면서 틈만 나면 M1을 악착같이 긁어모았다고 한다. 전사자들의 총을 회수하는 건 기본이요, 태평양에서 해병대와 함께 작전하던 미 육군 병사들은 자기 총이 없어져서 벙쪄있는데 반대편에서는 해병들이 스프링필드가 아니라 M1을 쓰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심지어는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M1을 돚거해서 내빼는 해병들과 육군 간부들간의 추격전도 벌어졌다 한다.
미군의 대부분이 이 총 아니면 M1 카빈으로 무장한 덕에 주력 소총이 볼트액션식이었던 동맹국인 영국군이나 적국인 일본군과 독일군에 비해 꽤 유리했다. 미군 소총수들은 각자의 목표에 대해 화력우세를 점했으며, 근접전에서는 월등했다. 특히 일본군은 심심하면 미군 소총수의 화력에 압도당해 M1 개런드의 카피판이나 다름없는 4식 자동소총을 개발하였으나 대전 말기에 소량만 생산되었다. 독일군의 경우 분대마다 MG42나 MG34로 무장한 기관총 팀이 하나씩 붙어 BAR 뿐만 아니라 M1919 브라우닝 보다 기관총 화력에서는 우위였으나 소총 화력에서는 밀렸다. 널찍한 초원에서의 전투에서는 독일군의 우수한 기관총 덕분에 독일도 꿀릴게 없었으나 보병전술의 기본이였던 제압과 우회타격에서 독일군이 매우 밀렸다. 제압이야 사실 자동화기기만 하면 어느정도 가능한거기도 하고 애초에 MG42도 연사속도 문제로 인해 경기관총으로는 그렇게 우수한 총도 아니였다. 문제는 적의 화력조를 우회해서 타격하는 타격조인데 여기서 개런드의 압도적인 연사속도에 밀려버린것. 분대장의 눈에 들어올 우회타격로라는게 어차피 거기서 거기였기에 양군의 타격조가 마주칠 일이 매우 많았는데 기관단총조차 제대로 보급을 못해서 근접 화력이 영 좋질 못했는데 볼트액션 소총과 한자루의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타격조가 톰슨 기관단총은 물론이고 일반 소총수조차 반자동인 개런드와 카빈을 들고 총알을 퍼부어대니 근접화력이 뒤떨어지는 독일군 타격조는 개발살이 날 수밖에 없었던 것. 독일도 자동화기의 중요성을 깨닫고 개인용 자동화기의 배치를 서둘렀지만 그 시기쯤 되면 독일군의 문제는 반자동 소총이 아니라 하늘에서 퍼붓는 8정의 중기관총과 로켓과, 폭탄. 그리고 미군 보병을 어디라도 따라와주는 수많은 녹색 깡통 이였다
2차대전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우방 국가들에 제식 소총으로 배치된 전적이 있었다. 주로 대한민국과 일본, 서독이 그랬는데, 한국의 6.25 전쟁을 겪으면서 한국군과 자위대를 미군과 같은 보급체계 및 훈련체계로 맞추기 위해 도입된것이 그 시초였다. 결국, 나중에 미군이 M14로 갈아타자 일본은 그걸 재빨리 따라해서 64식 소총을 만들어 사용하면서 M1 개런드는 자위대의 손에서 떠나게 된다. 서독군은 빠른 재무장을 위해 미군의 무기를 제공받았고, M1 개런드는 FN FAL이 G1이란 이름으로 채용되기 전까지 서독군의 제식 화기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아직 총기 개발 인프라가 미미했던 한국은 M1 개런드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훗날 베트남 전쟁을 거쳐서야 M16 소총이 도입되면서 M16이 1970년대에 국내에서 면허생산되고 한국군에 대량 보급되자 그제야 한국군의 제식 소총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
이후 남은 M1 개런드 물량은 한동안 대한민국 예비군에 배치되어 있었고 1960년대~1980년대에도 사격 등 예비군 훈련은 물론, 고등학교 교련에서도 제식훈련이나 분열식, 실총 분해 훈련은 M1 개런드로 행해졌다. 2000년대 전후에 모두 M1 카빈으로 대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 M1 개런드의 애칭이 일본식 발음인 에무왕(...).
5.18 민주화운동에서도 시민군에 의해 M1 카빈과 함께 사용 되었다.
그리고 2010년도부터는 전군의 K2/K1 무장이 거의 완료되어서 예비군의 무장이 M16으로 교체되면서, M1 개런드는 대한민국 어느 곳에서도 전혀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곧 예비군도 동원 예비군은 K2로 전원 무장하게 된다.
대한민국 해병대 의장대에서는 M16과 함께 아직도 제식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제식 소총인 K2를 쓰지 않고 이 무거운 구식 소총을 쓰는 이유는 이 총이 권총 손잡이와 돌출 탄창이 없어 총을 돌리고 던질 때 걸리지 않으며, 무게 중심이 균등하고, 길이가 길어 키가 큰 의장대 병사들 신장에 맞기 때문이다. 당장 K2소총을 쓰면 키가 180cm 정도 되는 병사는 바닥에 개머리판이 닿은 "세워 총" 자세에서 소염기에 손이 잘 닿지 않는다. 나무로 만든 클래식한 외모도 한몫하는 듯. 그리고 미군 의장대에서는 주로 M14를 쓰지만 미 해병 의장대는 M1을 쓰고 있다.
미국은 기본 설계가 좋고 고위력에 명중률이 좋은 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덕분에 현재도 민간에 의외로 많은 양이 돌아다닌다. 전시 생산분을 수리한 것과 현대에 재생산된 제품이 골고루 섞여 있는데, 상태 좋은 2차 대전 당시 오리지널은 1천 달러 넘는 골동품이 여럿 있다.
현대에 재생산되어 이리저리 손을 많이 탄 물건은 그렇게까지 비싸진 않고, 700~900달러 내외가 보통. 중고는 더욱 싼 경우도 자주 있으며, Civilian Marksmanship Program을 통해 군의 재고품을 구하는 경우 600달러 대에 구할 수도 있다. 단지 700~900달러선이던 시절 문제는 한국에서 들어온 M1 서플러스가 풀려서 일시적으로 가격이 내려간 경우고 2015년 현재는 재생산 제품 기준으로 하여 약 1100달러 선을 찍고 있다. 물론 골동품들의 경우 콜렉터 그레이드는 가격이 더 올라갔다. 단, 이건 개런드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체적으로 서플러스 총기들이 대부분의 재고를 소진해가는 추세이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가격이 1~200달러 정도 상승하는 폭이 있었기 때문이며 따라서 개런드라고 특별히 비싸지거나 한 것이 아닌 이쪽 마켓의 상황 자체가 그런 쪽으로 이해하는 쪽이 좋을 듯.
전용 탄창이 클립 장전식에선 보기 드문 더블스택 방식을 사용한다. 8발이 물린 상자형 엔블록식 클립을 통째로 장전하는 방식으로 8발을 모두 발사하면 빈 탄 클립이 자동으로 특유의 '팅' 소리를 내며 배출된다. 클립을 꺼내는 버튼이 총몸 왼쪽에 달려 있어 노리쇠를 당긴 후 이 버튼을 눌러서 간단하게 클립과 탄환을 빼낸 뒤 다시 새 클립을 장전할 수 있다. 또 몇 발만 쏜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로 노리쇠를 당겨 붙잡은 뒤 노출된 클립에 한 발씩 넣어서 재장전하는 게 가능하며, 장전된 클립이 없는 상황에서 빈 클립을 먼저 총에 끼우고 같은 방식으로 노리쇠를 당겨 낱개 탄약을 넣어서 클립에 끼워서 장전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삽입된 탄클립이 없을 경우엔 노리쇠 당겨서 약실에 한 발씩 넣고 쏘는 걸 반복해야 한다. 이런 재장전 방식들의 경우 노리쇠를 당기면서 일단 멀쩡한 실탄이 1발 배출되고, 8발이 완전히 장전되지 않은 클립을 배출할 경우엔 고정이 잘 되어있지 않아 클립에 들어있던 탄환이 흩어지는 문제가 있는데다 탄을 다 쏘면 클립이 자동배출되고 새 클립만 밀어넣기만 하면 되는 기본 재장전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리고 불편하므로 보통은 허공에라도 쏘고 클립째로 재장전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8발을 모두 발사하면 클립이 '팅' 소리를 꽤 크게 내며 자동으로 튕겨져 나와서 적에게 총알이 떨어졌다는 것을 자동으로 알려준다는 약점이 있다는 주장이 있...으나, 신빙성은 0에 가깝다. 택티컬 암즈라는 프로그램에서 사격 전문가 래리 빅커스와 캔 해커슨이 직접 실험해본 결과 마지막에 클립을 튕겨내는 소리는 적의 입장에서는 거의 들을 수 없었다. 되려 재장전하면서 노리쇠를 전진시키는 철컥 소리만 크게 들렸다고 한다. 팅 소리는 사수에게나 들리는 것이다. "콩볶는 소리"에 비교되는 전장의 아비규환에서 지포라이터 팅 하는 소리랑 별 다를바 없는 소리에 적들이 알아채고 돌격을 감행한다? 그럴 리가. 게다가 소총수가 한 명이면 모를까 적어도 1개 분대가 있는데, 그 중 한명이 재장전하는 틈을 노려 뛰어들어봤자 나머지 분대원들에게 벌집이 될 뿐이다.
태평양 전선에서는 기존의 제식 소총이었던 스프링필드 M1903 소총처럼 위장하고 조용히 기다리는 전법도 등장했다. 이는 일본군은 미군이 총을 다 쏘도록 유인한 다음에 재장전을 하는 그 순간을 노리고 기습하거나 돌격해오는 전법을 구사했으므로 이를 역으로 친 것이다. 5발을 연사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한 발씩 5발을 쏘면 상대는 5연발 볼트액션인 1903인줄 착각하게 되고, 결국 속아 넘어가서 돌격해오는 일본군을 향해서 나머지 3발을 쏴주는 것이다.
어떤 베테랑 미군들은 일부러 빈 탄클립을 지니고 다니면서 활용하기도 했는데, 저격수와의 대결에서 몇 발을 발사한 뒤 빈 탄창을 자기 헬멧에 던진다. 이는 저격수가 속아서 위치를 노출하게 만들었고, 미군은 그대로 장전된 총을 가지고 공격을 가할 수 있었다.
그 외에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로 총알을 전부 발사하고 튀어나온 빈 탄클립에 적이 쏜 총알이 맞아서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과연 클립의 질량이 총알의 운동량을 받아내기에 충분할지 의문이긴 한데...탄도라는 것이 사실 굉장히 변수가 많다 보니 클립과 부딪힌 총알이 정말정말 운 좋게 비껴갔다거나 혹은 도비탄을 막아줬다는 식의 해석은 가능하겠다.
• 클립 장전식이기에 스코프를 총열 중심축에 맞춰서 설치하지 못하고 리시버 왼쪽에 장착해야 하는 결점이 있다.
• M1903 소총에 비해 명중률이 미세하게 떨어졌다. 때문에 저격수들은 M1903을 더 선호했다.
• 클립 장전식이기에 탄이 든 클립을 손가락으로 밀어서 장전하다 노리쇠가 닫혀 손가락이 다치는 일이 있었다. 속칭 Garand Thumb 또는 M1 Thumb. 이 문제는 후술.
• 같은 시기에 운용된 반자동소총 중 신뢰성이 가장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물질에 취약했다. 1950년에 있었던 테스트에서 총이 흙과 모래, 진흙을 얼마나 잘 견디나 시험했을 때, EM-2, FN FAL, M14 소총의 프로토타입인 T25에 비해 현저히 낮은 신뢰성을 보여줬다.
장전 문제
"그리고 또 하나, M1 엄지(M1 Thumb)라는 게 있는데, 장전하다가 실수로 엄지손가락이 씹히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요... 아우악! 진짜로 아픕니다. 농담 아니에요...
-히스토리 채널, 밀리터리 Q&A, 로널드 리 어메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부터 'M1에 장전하다가 실수하면 엄지 손가락이 잘린다'는 말이 널리 퍼졌다. 이를 Garand Thumb 또는 M1 Thumb이라고 불렀다. 물론 손가락이 완전히 잘려 나가는 정도는 아니고, 보통은 피부가 좀 찢기거나 멍이 드는 수준에 그친다. 물론 아픈 건 매한가지고 다급한 전투 중에 이런 걸로 버벅댄다면 매우 위험해진다.
이유는 M1 개런드 특유의 엔블록 클립 장전 방식 때문이다. 본래 개런드는 장전된 탄약을 모두 소모하면 노리쇠가 후퇴고정되어 약실이 개방되고, 클립이 자동으로 배출된다. 이 때 사용자가 재장전을 위해 클립을 약실 끝까지 삽입한 후 손을 떼면, 즉 압력이 사라지면 노리쇠의 고정이 풀리며 전진하고 초탄이 장전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 야전에서는 기능고장으로 인해 노리쇠가 제대로 후퇴 고정되지 않는 상황이 다발했다. 본래는 노리쇠가 딱 걸려서 완전히 고정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고 도로 전진하다가 끝까지 올라온 '탄밀대(Follower)'에 걸쳐지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노리쇠가 후퇴 고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클립을 밀어넣는 등의 동작으로 탄밀대를 살짝만 건드려도 노리쇠가 전진해버리게 된다.
본래 이는 사용자의 편의를 위한 설계였다. 조작하는 과정 하나가 줄어드므로 장전 속도 상 이득이라는 판단이다. 일리가 있지만, 왜 다른 총들이 노리쇠 멈치를 일부러 외부로 돌출시키는지만 생각해봐도 이건 실책이다. 험악한 전장에서는 총이든 탄약이든 혹사당하며, 전시 생산으로 품질이 더욱 떨어지기 딱 좋다. 약실의 상태는 이상이 없는지, 클립을 제대로 밀어넣었는지 등을 육안으로 확인해봐야 할 필요가 많이 발생한다. 앞서 말했듯이 긴급한 상황에서 손가락 씹어먹기 딱 좋은 사태를 만든 것은 현대의 시점에서는 중대한 설계 결함이다. 물론 익숙해지면 사고의 위험성이 줄어들지만, 제식 소총은 조작에 익숙하지 않은 신병도 사고 없이 사용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또한 M1 개런드는 다른 총과는 달리 클립까지 통째로 총 안에 밀어넣는 방식이라 정상적인 상자형 탄창을 사용하거나 일반적인 밀어넣기식 클립을 쓰는 방식보다 손가락을 안전한 곳에 놓을 수 없으므로 문제가 더욱 커진다.
물론 해결책도 있다. 첫째 방법은 노리쇠가 제대로 고정되었는지를 확인하고 클립을 넣는 것이다. 개방된 약실을 들여다보고 노리쇠가 어디에 걸려있는가를 보면 된다. 하지만 실전에서 약실 검사를 할 여유가 있을 리가 만무하기에, 병사들은 아예 두 번째 방법, 즉 장전손잡이를 붙잡고 클립을 넣는 방법을 택했다. 이렇게 하면 설령 노리쇠가 제대로 고정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제멋대로 전진해서 손가락을 씹어버리는 불상사는 막을 수 있었다. 총을 다루며 수없이 손가락을 씹히던 고참병들의 경험이 만들어낸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여담으로 미국 인터넷에는 "M1 Thumb? 그거 도시전설임. 내가 쏴봤는데 바보나 당함." 이런 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안전한 훈련장이나 사격장에서 실수하면 바보랄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전쟁터는 전혀 상황이 다르다는 점. 총알이 빗발치고 적이 앞으로 돌격해 오는데 총알이 떨어져서 재장전해야 한다면 누구라도 다급한 마음에 실수할 수 있고, 그러다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이 때문에 2차대전 참전용사의 수기에서도 M1 Thumb에 대해 기록된 사례가 꽤 많이 남았다.
영화 포화 속으로에서도 이것이 묘사된 바 있다. 한 학도병이 급한 마음에 서둘러 재장전을 하다가 이런 식으로 손가락이 씹힌다. 그 직후 인민군의 총에 맞아 전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학도병은 갓 배치된 후임 학도병들에게 재장전 잘못하면 손가락이 씹히니 주의하라고 교육시키던 학도병이었다.
이런 단점 때문에 이 소총을 개량한 M14에서는 외부에 노리쇠 멈치를 따로 옮겼다.
한편 일부 게임에서는 밸런싱을 위해서인지 클립을 한 번 집어넣으면 다 쏠 때까지 재장전이 불가능하게 묘사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고증 오류로, 상식적으로 한 번 탄이 들어가면 꺼낼 수 없는 소총이라면 비전투 상황에서는 한 번 장전하고 나면 총을 안전한 상태로 만들 방법이 없다, 물론 노리쇠를 수동으로 왕복시켜서 한 발씩 빼낼 수야 있겠지만 총알이 이리저리 날아가게 된다.
실제로는 클립을 꺼내는 버튼이 총몸 왼쪽에 달려 있어 노리쇠를 당긴 후 이 버튼을 눌러서 간단하게 클립과 탄환을 빼낸 뒤 다시 새 클립을 장전할 수 있다. 또 몇 발만 쏜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로 노리쇠를 당겨 붙잡은 뒤 노출된 클립에 한 발씩 넣어서 재장전 가능하며, 장전된 클립이 없는 상황에서 빈 클립을 먼저 총에 끼우고 같은 방식으로 노리쇠를 당겨 낱개 탄약을 넣어서 클립에 끼워서 장전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단 클립이 없을 경우엔 단발총이 되어버리는데 그냥 노리쇠 당겨서 약실에 한 발씩 넣고 쏘는 걸 반복해야 한다. 다만 이런 재장전 방식들의 경우 노리쇠를 당기면서 일단 멀쩡한 실탄이 1발 배출되고, 8발이 완전히 장전되지 않은 클립을 배출할 경우엔 고정이 잘 되어있지 않아 클립에 들어있던 탄환이 흩어지는 문제가 있는데다 탄을 다 쏘면 클립이 자동배출되고 새 클립만 밀어넣기만 하면 되는 기본 재장전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리고 불편하므로 보통은 허공에라도 쏘고 클립째로 재장전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고 한다.
1분 40초부터 진행되는 영상에는 잔탄이 남은 상황에서 추가로 장전하는 방법이, 4분 27초부터 진행되는 영상에는 잔탄이 있는 상황에서 클립을 배출하는 방법이, 4분 57초부터 진행되는 영상에선 클립을 먼저 삽입한 뒤 8발 미만의 탄환을 장전하는 방법이, 6분 37초에는 클립없이 단발만 장전하는 방법이 나와있다. 먼저, 추가로 탄환을 장전할 시엔 클립안에 자연스럽게 삽탄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8발 미만의 탄환을 장전하는 경우엔 클립이 고정되어있지 않은 상황이라 내부탄창에 의해 지속적으로 클립과 탄환이 윗부분으로 밀리긴 하나, 단발 장전과 같은 요령으로 삽탄하고 장전손잡이를 뒤로 살짝 밀어 노리쇠를 강제 전진시키면 장전이 끝난다.
물론 실전에서 장전된 총에 추가로 탄환을 넣는 경우는 드물었고, 영상에서도 클립 배출을 설명하며 말했듯 보통은 마저 두 발을 쏘거나 클립과 탄환을 배출해 잔탄을 보관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위에 언급된 8발 미만의 탄환을 장전하는것이 가능은 해도 그렇게까지 간단한 것은 아니기에 전투 중에 급하게 하긴 힘드므로, 잔탄을 남겨두어 8발들이 클립으로 만드는 편이 훨씬 간편했기 때문.
M1 개런드를 만든 존 개런드(John C. Garand) 본인이 개발한 20발 탄창의 자동소총. M1 개런드를 기본으로 하여 B.A.R. 기관총의 20발들이 탄창을 달고 반자동-자동 셀렉터를 추가했다.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존 개런드 본인이 재직 중인 스프링필드 조병창을 통해 제시한 것을 미군에서 채택하여 T20이란 이름으로 1945년에 약 10만정 가량의 납품 결정이 내려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이 항복하고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실제로는 미군에 100정만 납품되었다. 1948년에는 T20의 프로젝트 자체가 중단되었다. 이후 스프링필드 조병창에서는 이후로도 T20을 가지고 계속 테스트에 써먹거나 개량하고 있었다.
• 태평양 전선에서 참호에서 전우가 다 전사하고 혼자서 2~3자루의 M1으로 백명이 넘는 일본군을 상대로 버틴 사례가 히스토리 채널에서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진 적이 있다. 그 병사는 결국 M1이 모두 고장나고 나서 후방의 아군 참호로 돌아갔다고.
• 미국보다 총기 법률이 까다로운 캐나다에서는 탄창용량 5연발까지의 사냥총은 민수용으로 어렵지않게 입수할 수 있으나, 탄창 용량 5발이 넘어서면 라이선스 취득이 매우 어렵다. 그런데 특이하게 M1 개런드는 법률상에서 특별히 언급하면서 허용 케이스로 들어있다. 그래서 캐나다에서 좀 전투용으로 쓸 만한 총을 구하려면 M1 개런드가 좋은 선택.
• 미군은 1936년에 M1 개런드를 제식 소총으로 채택했지만, 모든 육군과 해병대의 수요를 충족시킬 만큼 충분한 양이 생산된 것은 1943년 첫 분기에 이르러서이다. 사실 이것은 해외에 파병된 미군들의 경우이고...M1 개런드 소총은 해외에 파병되는 미군들에게 우선적으로 지급되었기 때문에, 미국 본토에선 1945년이 돼서도 스프링필드를 사용하는 부대가 많이 있었다. 미국이 2차대전에 참전하면서 미군 병력이 순식간에 최대 1600만 명 규모로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총기 생산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존에 생산된 스프링필드의 수량도 부족해졌고 이에 기존의 스프링필드 소총을 단순화한 M1903A3과 재생산된 M1903 소총을 후방및 일부 전투 지원, 근무 지원 부대에 지급했다. ㅡ 참고가 된 출처
• 이 때문에 과달카날 전투까지도 미 해병대의 주력 소총이 스프링필드였다. 미드 더 퍼시픽에서 작중묘사된 바로는 2화에서 해병 1사단이 호주에서 휴식과 재정비를 보내는 동안 M1 소총이 지급되고 훈련기동으로 기차로 이동 중 탑승한 해병들이 소총 대결을 펼치는 장면이 있다. 이후 다음 화에서 펼쳐진 1943년 후반기의 글로스터 곶 전투에선 스프링필드 총을 소지한 병사는 거의 볼 수가 없었다.그런데 과달카날 전투에서 후속 부대로 증원된 육군은 M1 개런드로 무장했는데, 그 직후부터 '어째서인지' 육군 병사들중 총을 잃어버린 경우가 늘어나고, 여기에 인원 손실이 생겨 총이 조금이라도 남으면 '어째서인지' 순식간에 사라졌고, '어째서인지' 해병대원들 중 상당수가 지급받지도 않은 개런드로 싸우고 있었다. 그야말로 미 해병대의 '빌리기' 능력이 대단한 것...더 퍼시픽에서도 과달카날 전역 편(2회)에서 해병대원들이 이렇게 육군의 M1 개런드를 '빌려가는' 모습이 묘사된다. 육군 장병들이 보급품을 나르다가 공습 경보가 떨어져서 황급히 대피하자, 그 틈에 해병대원들이 '빌려가는' 것.
• 우리나라에서는 M1 개런드의 형번인 'M1'에 관한 논란이 있어 잊혀졌지만, 애초에 외국에서는 이 무기의 별명인 '개런드'를 어찌 발음할 것인지가 더 큰 논란이다. 이 무기의 별명인 '개런드'의 유래는 전술되었듯 개발자 '존 C. 거랜드'의 성인 '거랜드'인데, 이 사람이 캐나다계 미국인이어서 그런지 '개런드'와 '거랜드'. 이 두 가지 발음으로 양분(?)되었다. 물론 실제적인 발음은 미국인이므로 미국을 기준으로 전술되었듯 '거랜드'이지만.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개런드'가 더 많이 쓰이므로 사실상 '개런드'가 옳다고 거의 확정되어 있는 상황이다.
• 사실 M14가 개런드를 탈착식 탄창 개량한 것에 가깝다. 하지만, BM59가 나오기 전에도 미군에서 실험적으로 만든 모델 중 T20E2라는 BAR 탄창을 먹게 마개조한 M1 개런드가 있었다. 실질 생산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총기의 천국 미국에는 여러 종류의 변태가 있는지라 M1A가 굴러다니는 요즘 시대에 M1 개런드에다 BAR 탄창을 끼우게 마개조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 멜빵을 거는 고리 외에도 총구 부근에 고리가 하나 더 있어서 "멜빵 고리가 셋이네?" 하고 어리둥절해하는 이들도 있다. 이는 멜빵 고리가 아니라 옛날 소총에는 대개 달려있던 스태킹 스위블(stacking swivel)이란 것으로, 소총을 세 정씩 모아서 텐트처럼 세워두는 데 쓰는 걸쇠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면 stacking swivel을 구글 이미지 검색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군대에서도 훈련소에서 정신교육이나 이론 교육을 받을 때 K2를 세 자루 이상 모아 원뿔 모양으로 세워놓는데 이걸 '사총'한다고 한다. 자대에 가서부턴 할 일이 없고 사총한번 안하는 훈련기수도 많기 때문에 모르는 군필자도 많다.
• 우리나라에서도 만져본 이들이 제법 있는 소총. 군경이 아니더라도 교련 세대 중에 실총 수입 시간에 개런드를 만져본 위키러가 있을 것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고등학교에 무기고가 있었고 M1 실총이 몇 정씩 비치되어 있었다. 전시에 남자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병력을 편성하는 경우 M1으로 무장시켜야 했기 때문에 교련 수업시간에 M1 분해조립을 배웠던 것이다.
• 의장대 출신이라면 개런드로 이런저런 재주(?)를 부려보았을 것이다. 현재 국방부 통합 의장대는 M16A1을 사용하고 있으나 해병대 사령부 의장대는 아직도 M1 개런드를 사용하고 있다.
• 디시인사이드 총기 갤러리의 총갤러들은 총갤 창설 이래로 첫날부터 애무왕이라고 부른다. 하악하악은 옵션. 이 명칭의 유래는 국군 창설기에 M1이 처음 들어올 때 일본식 발음을 그대로 써서 이렇게 읽히는 듯하며, 실제로 M16도 월남전 시절에 군대다녀온 사람들이 에무십육이라고 호칭한다. 참고로 카빈은 가빈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r을 ㄹ로 취급해서 칼빈 또는 칼빈총이라고 부른 경우가 제일 많고 일본식으로 발음해서 카루빙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일본 발음까지 갈 것 없이, 외래어를 평생 발음한 적 없는 사람에게 알파벳 발음을 알려주고 읽으라 하면 비슷하다.
한국 재고 M1의 역수출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군이 보유한 M1 소총의 미국 역수출을 추진했으나 2018년 현재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간의 경과는 다음과 같다.
2009년 9월 23일에 대한민국 국방부가 그동안 미군에게 증여받았던 군사물자들, 그 중에서도 특히 치장 물자로 보관중인 M1 개런드와 M1 카빈 일부를 미국 총기 시장에 판매할 계획임을 발표했다.
이전 문서에는 '진공 포장된 완전 신품'이라는 내용이 있었는데, 이것은 잘못된 설명이다. 링크된 기사 및 기타 관련 기사 어디에서도 미사용 신품 M1이라는 얘기는 없었으며, 애시당초 전시 치장 물자라는 것은 이미 현역 퇴역한 총기의 경우 기존에 사용하던 물건 중에서 상태 좋은것을 분해 소제한 후 보관하는 것이지 완전 신품이 아니다!!! 한마디로 현재 한국군 보유 물자중에 완전 미사용 신품 M1 개런드 같은 건 없다(...). M1 카빈, M16A1 치장물자도 마찬가지다.
M1 재고 소총을 경찰이나 예비군용으로 활용하려는 의견이 있었다는 설명도 이전 문서에 적혀 있었는데, 이 내용도 오류이다. 애시당초 대한민국 국방부는 M1 재고 소총을 경찰이나 예비군용으로 활용하려는 그 어떤 계획도 검토한 바가 없다. 경찰의 경우 이미 작전용 총기로 M16A1과 K2를 보유 운영하고 있으며 그마나 최근에는 거의 K2 소총으로 전환이 완료되고 있다. 지방 서 단위의 정기적인 사격 훈련도 K2로 진행하고 있다. 관련 기사 예비군 총기 운운은 더욱 근거가 없는 내용인데, 예비군용 M1 카빈도 한계수명 지난지가 오래여서 M16A1으로 거의 전환 완료한 마당에 M1을 예비군용으로 활용하자는 의견이 있었다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얘기이다.
이 소식이 알려진 후 M1을 갖고는 싶은데 비싸서 손만 빨던 미국 고전 총기 매니아들은 가격이 떨어져서 싸게 살수 있게 됐다고 매우 기뻐했다. 미국 정부가 이 총기들이 범죄조직으로 흘러들어갈 것을 염려하여 반대 입장을 밝혔으나, 결국 2011년 1월 18일 미국 정부의 역수출 허가를 받는데 성공했다.
2012년 4월 국방부는 입찰을 통해서 대미 수출대행 업체로 대우인터내셔널을 선정하였다. 대우인터내셔널은 총액 308억원에 M1 개런드 83,000정을 넘겨받는 대신에, 같은 액수 만큼의 K2 소총을 구매해서 육군 군수사령부에 납품하기로 계약하였다. K2 소총의 단가가 대략 82만원이므로 총 37000정 정도 될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사. 일단 국방부는 1정당 가격을 약 700$로 예상했는데 당시 중고 M1이 미국에서 1500$에 팔리는 현실에 한국에서 M1 개런드가 8만정 넘게 들어온다니 미국 총덕들이 군침을 흘리는 것도 이해가 간다. 다만 M1 카빈은 탄창이 있고, 자동소총으로 개조할 우려가 있어서 수출 불가 판정. 다만 카빈은 어차피 한국군도 2030년대건 2040년대건 도태될 때까지 쓸 예정이라 상관없는 상황이다.
덤이지만, M1의 미국 역수출 소식이 처음 들려왔을 당시 일부 네티즌들이 예비군용 총기의 낙서에 대한 농담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동원훈련 받으면서 심심해서 총에 낙서하거나 목재 개머리판에 뭔가 새기는 사람이 워낙 많으니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낙서를 보고 무슨 뜻이냐고 다른 한국인에게 묻지 않겠냐거나, 더 나아가 안 그래도 예비군용으로 굴려서 헐을대로 헐은 M1에 낙서까지 새겨져 있으니 한국전쟁때 쓰던 골동품인줄 알고 살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