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것이 있을까요? 아무리 아름다운 여성이라도 나이가 들면 얼굴에 주름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는 주님의 말씀 처럼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은 켤코 영원할 수 없고 참다운 아름다움이라 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내면에 보다 신경을써야 합니다. 여성의 아름다움이란 「부드러움」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내면의 충실함」 이라 할수 있습니다.
빈수래가 요란하다는 말처럼.. 겉모습만 그럴싸 한 사람은(치장하는 사람은) 대부분 내면에 부실함을 알수 있습니다. 화려한 옷을 입고, 비싼 구두를 신고, 얼굴에는 형채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화장을 하는 그런 여성에게서 우리가 아름다움을 느낄수 있을까요 ? 아마도 아름다움 이전에 혐오감을 느끼게 될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내면에 충실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잠언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이는 외적인 것보다는 내적인 것을 중시함을 일컫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풍부한 비료를 주어 내적으로 충실히 하도록 해야합니다. 겉보다도 속이 아름다운 사람. 이러한 사람이 참 아름다운 사람임을 깨닫고 속을 꽉 채우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당신의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기 위해서 매일 시간을 투자하고 계십니까?
잠 16: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1. 추석 명절 연휴가 끝나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 각자의 일들에 충실하며 열심을 내어 일들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새 힘을 주십사 하는 기도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2.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면서 영혼을 치유하고 구원하는 사역을 하나님의 은혜속에서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찬양사역의 장비를 싣고 다니는 제 차량이 노후되어 (뉴카렌스 2007년식, 28만키로) 계속 어려움이 있습니다. 많은 장비를 싣고 다니다 보니 차가 무리가 많이 가는 모양입니다. 중고차라도 말썽 없이 장비를 싣고 다닐 수 있는 자량을 후원해 주실 수 있는 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라 본문 : 빌2:5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성도는 과거 거듭나기 전 무엇으로 우리 삶의 근거와 가치로 삼고 살았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전에 우리의 탐심을 따라서 세속적인 허용과 물질을 삶의 우상으로 삼고 살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인 온유함과 겸손함, 의와 화평과 사랑과 소망과는 무관한 삶의 자세를 지니고 살았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삶은 바로 이 세상에서 죄악 권세로 왕 노릇하던 사탄의 종으로서의 삶입니다(엡2:1-3).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왕으로 섬기며 의에게 종노릇하는 삶으로 전향했기에(롬6:17,18) 불의의 세력과는 적대적인 관계가 된 것입니다. 이제 이와 같은 선한 싸움을 해야 하는 성도들이 어떻게 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수 있는가에 대하여 깊이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함(히4:12)
1)말씀에 대한 이해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말하기를 '성도의 삶은 보장되어 있지만 안정되어 있지는 못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성도의 삶은 귀족적인 삶이 아니라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나그네의 고달픈 구도의 삶이요 여리고를 정복해야 하는 전투적인 삶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성도들에게 결코 이 땅에서의 안녕과 행복을 언약해 주신 일이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히려 하나님 자녀의 삶은 고독과 고난과 투쟁의 삶임을 각오하라고 하셨습니다(요15:19). 그러므로 성도들은 언제나 영적 여행과 전투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즉 최고의 무기인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인 성경으로 무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무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 말씀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인간의 구원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므로써 행실을 삼가 범죄의 길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시119:9,11).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 행위의 표준이 되어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2)말씀의 성격과 능력 시편 기자는 말씀의 확실한 성격에 대해 말하기를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시19:9)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순결하여 흙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된 은처럼 인간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무지한 눈을 밝혀 줍니다(시12:6;시19:8). 뿐만 아니라 말씀은 의로우며, 분명한 진리이기 때문에 메이지 아니하며, 확실하고 정직하여 뉘게나 동일한 성격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시93:5;딤후2:9). 말씀의 능력에 대하여 히브리서의 기자는 증거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히4:12)라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말씀의 능력은 죄인으로 하여금 죄를 깨달아 회개케 하며 진리로 교육시키고 양육하여 주며, 구원의 역사를 이루고 악한 영을 대적하는 무기가 된다고 성경은 증거합니다(딤전4:6;살전2:12;히11:3). 이처럼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과 온갖 축복이 담겨진 보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고,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삼으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성경을 바로 알고 이해하며 실천함으로 믿음의 성장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말씀에 익숙한 자를 기뻐하실 것입니다.
2. 속죄의 기쁨으로 살아야 함(엡1:4-6)
1)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 누가복음 2장 11절에 보면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이심을 간결하게 표현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죄를 인하여 우리의 허물을 인하여 고통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으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는 죄사함의 용서를 받게 되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죄 아래 있을 때는 사망이 왕 노릇하게 되며, 그 어두움의 권세와 형벌의 고통이 극심한 괴로움이 됩니다. 죄 짓고는 살 수 없다는 말처럼 죄 아래의 삶은 고통과 두려움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는 속죄의 기쁨이 선포되었습니다. 죄악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는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값진 것입니다. 이 해방과 자유의 큰 기쁨이 우리의 생활 속에 항상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2)구원받은 자의 기쁨 선지자 하박국은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라고 노래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성도됨의 내적 증거는 기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기쁨은 정신적 즐거움과 육적 쾌락과는 차원이 다른 본질적인 것이며, 소멸될 수 없고 소멸시켜서도 아니될 성도의 삶에 기초가 되는 영적 생활의 활력소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구원받은 자로서의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빌4:1). 인생의 승리자로서의 기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히10:34). 사도 야고보는 말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1:2).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 삶에 역경과 시련과 환난이 닥쳐와도 기뻐하라는 의미입니다. 성도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해야 하는 것은 고난과 징계 후에 있게 될 온전한 기쁨, 풍성한 그리스도의 성품이 열매 맺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바로 이같은 기쁨의 생활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영생의 소망으로 살아야 함(딛1:1-3)
1)영생의 소망 전도서의 기자는 사람이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반드시 있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시간이 가면 늙어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같은 사실은 사람에게 기쁨과 행복보다는 더 많은 슬픔과 불행을 가져다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옛날부터 인생의 무상함을 한탄하여 왔고 동시에 영원을 갈구하게 되었습니다. 삶의 유한성에서 오는 절망감을 극복하기 위하여 오래 전부터 철학과 종교에서는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하기도 하였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시간의 윤회설도 바로 이 연구의 결과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생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이 영생의 소망이야말로 유한한 삶에서 오는 불안과 절망을 말끔히 씻어주는 고귀한 것이라 할 것입니다. 영생의 소망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유한한 인생이지만 감사하며 성실하고 값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영생은 개인이 죽음으로부터 또는 죽음에 이르는 어떤 영향으로부터도 예속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승리로 말미암아 영생을 약속받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영생의 소망을 안고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2)성도에게 주어진 영생 사람은 본래 죽지 않을 존재로 지음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죽어야 할 존재도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죽음의 결정은 아직 유보된 상태였던 것입니다. 아담에게는 두 가지 길이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기대되는 죽지 않는 영생이었고, 다른 하나는 죄로 인한 죽음이라는 형벌이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처음 사람 아담은 생명대신 죽음을 선택하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죽음은 우리 인간을 지배하고 왕 노릇해 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심으로 우리에게 다시금 영생을 얻도록 해주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죽음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에게 왕 노릇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두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함으로써 영생을 얻는 길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므로 영원한 죽음의 심판을 당하는 길입니다. 아담의 선택은 인간의 생명과 죽음을 좌우했지만 우리 각자의 선택은 영생과 영벌로 나누게 될 것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소망하는 성도는 모든 죄와 슬픔과 고통이나 죽음으로부터 의를 이루신 그리스도와 같이 될 것입니다. 영생의 소망은 성도에게 새 힘을 공급하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결론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주의 성령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까지 우리는 구원받은 성도의 삶의 자세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같은 삶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은 자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그 말씀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속죄의 기쁨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영생의 소망 가운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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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주님의 영광과 복음과 선교와 설교와 목회와 치유와 상담과 지혜와 사랑과 성령의 도구로 쓰임받고 열매 맺게 하소서 샬롬
감사합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신 평안 장로님, 예수 사랑 목사님, 존재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