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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11일 화요일
[(홍)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바르나바 성인은 키프로스의 레위 지파 출신이다. 바르나바는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본디 이름은 요셉이며(사도 4,36 참조) 마르코 성인의 사촌(콜로 4,10 참조)이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사도 11,24)으로 칭송받는 바르나바 사도는 유다교에서 개종한 뒤 자신의 재산을 팔아 초대 교회 공동체에 바치고 다른 사도들과 함께 열성적으로 선교하였다. 전승에 따르면, 성인은 60년 무렵 키프로스의 살라미스에서 순교하였다.
말씀의 초대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는데, 성령께서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러 따로 세우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1,21ㄴ-26; 13,1-3
그 무렵 21 많은 수의 사람이 믿고 주님께 돌아섰다.
22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는 그들에 대한 소문을 듣고,
바르나바를 안티오키아로 가라고 보냈다.
23 그곳에 도착한 바르나바는 하느님의 은총이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며,
모두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계속 충실하라고 격려하였다.
24 사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
25 그 뒤에 바르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타르수스로 가서,
26 그를 만나 안티오키아로 데려왔다.
그들은 만 일 년 동안 그곳 교회 신자들을 만나며
수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13,1 안티오키아 교회에는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르나바, 니게르라고 하는 시메온, 키레네 사람 루키오스,
헤로데 영주의 어린 시절 친구 마나엔, 그리고 사울이었다.
2 그들이 주님께 예배를 드리며 단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이르셨다.
“내가 일을 맡기려고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렀으니,
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하게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
3 그래서 그들은 단식하며 기도한 뒤
그 두 사람에게 안수하고 나서 떠나보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7-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10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주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능력을 주시고 이어서 당부하십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제자들은 주님께 거저 받은 권한과 능력을 하느님 나라를 세우는 데 거저 사용하여야 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권한과 능력의 은사는, 그들이 완수하여야 할 직무적 사명과 긴밀히 연관됩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선포할 권한, 병자를 고쳐 주고 마귀를 쫓아내는 능력은 하느님 나라를 세우고 고통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주는 사명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주님께 거저 받은 선물이 있습니다. 저마다 지닌 은사(카리스마)와 재능(달란트)입니다.
이 모든 것이 사실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며 공동체를 위해서 맡겨 주신 것입니다. 이 은사와 재능은 그 사람의 사명과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받은 고유한 하느님의 선물로 서로 봉사하며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세웁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주신 모든 선물은 그 자체로 선하고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명이 되지만, 가끔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자신을 높이는 데 그것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선물은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며,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수단으로 쓰여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그래서 이 모든 선물을 사용하는 데에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은사에 생명을 주고 그 은사가 참됨을 증명할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이 모든 선물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1코린 13,1-13 참조).(최정훈 바오로 신부)
저는 정말이지 보잘 것 없는 존재입니다. 아무 것도 하는 게 없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주말마다 저희 피정 센터에 많은 형제자매님들이 오십니다. 한두 분이 아니라 70명, 80명입니다. 식사도 하시고 주무시고 가시니 할 일이 태산입니다. 이리 저리 뛰어다니다보면 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모릅니다. 도착하신지가 조금 전 같은데. 어느새 작별 인사를 할 시간입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떠나실 때는 대절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마을 입구까지 마중을 나갑니다. “피정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내 집이다 생각하시고, 다음에 꼭 오세요!” 하고 인사드립니다.
별것 아닌 노력이지만 형제자매들이 받은 감동이 큰 것 같습니다. 다들 하시는 말씀, “살다 살다 이렇게까지 환대받고 배웅까지 받은 적은 없습니다. 촌각의 순간이었지만 작은 천국 체험을 하고 갑니다. 신부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아무 것도 하는게 없습니다. 저희 훌륭한 형제들이 각자 자리에서 잘 도와주셔서 잘 돌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형제는 화장실 청소를, 어떤 형제는 침구 세탁소에서, 어떤 형제는 강의로, 다들 기여를 하고 계십니다. 피정이 잘 되었다면 그 이유는 바로 우리 형제들 덕분입니다.”
큰 족적을 남긴 걸출한 인물은 홀로 탄생하는 것이 절대 아니더군요. 무대의 뒤에서 묵묵히 도와준 조력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베드로 사도와 함께 초대 교회를 이끌었던 위대한 선교사 바오로 사도 뒤에도 위대한 조력자가 한명 계셨으니, 오늘 축일을 맞이하시는 바르나바 사도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단에 포함되지 않았으면서도 사도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부여받았습니다. 이는 그가 바오로 사도를 도와 초세기 교회 건설에 엄청난 기여를 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중심축으로 건설되는 것처럼 보이던 초세기 교회가 탄력을 받고 예루살렘 밖으로 퍼져나가게 되는데 있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이 바르나바 사도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의롭고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 바르나바 사도를 적임자로 선택하셨습니다.
바르나바 사도가 행한 일 가운데,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 탁월한 일 한 가지가 있었는데, 흙속의 진주를 찾아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바오로 사도를 찾아간 것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비범하고도 탁월한 능력을 눈여겨 본것입니다.
바르나바 사도의 원래 이름은 요셉이었습니다. 바르나바는 애칭이자 별명입니다. 바르나바란 이름이 지닌 의미는 ‘위로’ ‘격려’ ‘용기를 복돋는 전문가’입니다.
바르나바 사도는 키프로스 태생으로 레위계 사제였습니다. 대한민국으로 치면 서울 강남격인 예루살렘 시내에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던 금수저 출신에 수려한 외모까지 겸비하고 있었습니다.
이름에 걸맞게 바르나바 사도는 바오로 사도를 크게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 바르나바 사도는 그리스도교로 개종은 했었지만, 아직도 낯설기만한 그리스도교 공동체 신자들과의 관계 안에서 무척이나 위축되어 있고 의기소침해있던 바오로 사도를 찾아갑니다. 따뜻하게 위로하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용기를 북돋아주며 앞으로 나아가도록 자극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자신들을 박해하던데 앞장서던 바오로 사도가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회개를 하고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찾아왔을 때, 무척이나 당혹스럽고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쉽게 그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저러다가 또 언제 마음이 바뀌어서 우리를 위협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 입장에서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은 그리스도교 신자들 앞에서 꽤나 괴로웠을 것입니다.
이런 난감한 상황 속에서 성령과 지혜로 가득했던 바르나바 사도가 두팔을 걷어붙였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예루살렘에 왔을 때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했지만, 바르나바 사도는 그를 따뜻히 환대합니다. 다른 사도들에게 그를 소개해줍니다. 바르나바 사도의 배려와 협력에 힘입어 바오로 사도는 용기백배해서 그 위대한 선교 여정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선교 여행 초기에 ‘바르나바와 바오로’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여행에서 돌아올 때는 ‘바오로와 바르나바’로 표현합니다. 바르나바 사도는 때로 바오로 사도의 스승처럼 그를 지도했습니다. 때로 친구처럼 그를 동반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제자처럼 처신하며 그를 섬겼습니다.
바르나바 사도는 그리스도 교회를 이방인들에게 개방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 앞에서 바오로 사도의 편에 섰습니다. 적극적으로 그를 지지했습니다. 결국 예루살렘 회의는 이방인들에게 교회 문호를 활짝 여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교회가 다시 사람이 넘치게 할 유일한 길
전삼용 요셉 신부님
현재 수치상이나 느끼는 바로는 교회가 점점 비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 축일을 맞는 성 바르나바 사도가 그 변하지 않는 해법을 제공하고 있다고 봅니다. 바르나바 이름의 뜻은 ‘위로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성 바르나바의 성품과 그 열매가 잘 드러납니다. “사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
바오로 사도와 바르나바 사도는 선교의 두 기둥처럼 함께 다니며 큰일들을 많이 하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씨를 뿌리는 역할이었다면 바르나바 사도는 키우는 역할을 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착하고 신심 깊은 인물이었고 그 덕분에 많은 이들이 주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의 성품은 오늘 복음의 이 말씀과 같겠습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대전의 명물 ‘성심당’의 임영진 대표가 성 바르나바를 닮은 분 같습니다. 어쩌면 그분의 아버님인 고 임길순 창업주는 성 바오로를 닮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다 아는 바대로 흥남 철수 때 수많은 사람이 배를 타려고 하고 있었는데 오직 메러디스 빅토리아호만 남아 있었습니다. 임길순 씨는 묵주를 들고 “만약 이번에 살게 된다면 그건 하느님이 살려주신 것일 테니, 남은 평생은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살아가겠습니다.” 라고 약속을 드렸습니다.
그때 묵주를 들고 있는 모습을 미군이 보았고 선장에게 알렸습니다. 선장은 ‘레너드 라루’로 후에 수도원에 들어가 현재는 시복 추진 중인 열렬한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선장은 어째서인지 무기와 차량 등 무게가 나가는 것들을 바다에 버리라고 하고 사람을 태울 수 있는 만큼 태우라고 명령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다 아는 바대로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임길순 창업주는 대전에서 성당에서 받은 밀가루 두 포대로 찐빵을 만들어 팔며 그날 안 팔린 것은 다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보내기로 합니다. 먹고살 것도 없는 형편에서 아내는 “너희 아버지만 천당에 가고 나는 지옥에 갈 거다!”라며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자녀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버지는 자녀들의 신앙을 위해 가게를 성당 가까운 곳으로 옮겼고 매일 새벽 미사를 다녔습니다. 그때 자녀들은 종교가 싫었지만, 지금은 손주들까지 모두 할아버지의 신앙을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임길순 창업주는 아들 임영진 대표가 빵집을 잘 운영하는 것을 보고는 당신은 연령회와 같은 봉사만 하며 노년을 보냈습니다.
임영진 대표가 “주면 반드시 받게 된다.”라는 아버지의 신념이 열매를 본 것은 철거반이 왔을 때입니다. 당시 성심당은 위반건축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철거반장은 왔다가 그냥 돌아가 버렸습니다. 임 대표가 말합니다.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철거반장이 어렸을 적에 그분 아버지가 돌아가셨나 봐요. 그때 저희 아버지가 그분 염부터 입관까지 장례를 치러주는 봉사를 했다는 사실을요. 철거반장이 그런 우리 아버지를 기억해내고는 그냥 돌아간 거죠.”
임 대표는 지금도 매달 3,000만 원어치의 빵을 기부하고, 회사 수익의 15%는 무조건 인센티브로 직원들에게 돌려주는 정책을 폅니다. 그러다 어려움이 닥쳤습니다. 2005년에 빵 공장에 불이 난 것입니다. 이미 동생의 사업 실패로 집안은 빚더미에 앉아있었습니다. 미사를 마치고 나왔을 때 임 대표의 아내 김미진 이사는 어차피 불을 끄러 가봐야 너무 늦은 상태기 때문에 그냥 성당에 돌아와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그동안 빵을 많이 팔게 해 준 것에 감사하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가족회의를 하는데 큰딸 임선은 피식 웃으며 “전, 학교 휴학할래요.”라고 했고 아들은 “전 어차피 입대하려고 했잖아요. 날짜를 앞당겨볼게요.” 라고 했습니다. 다들 착한 가족입니다. 임 대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동안 최선을 다했고 열심히 살았으니 다들 그런 큰일을 겪고도 그렇게 침착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안타깝지만 이것이 하늘의 뜻이라면 어쩔 수 없다고, 이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임 대표는 가게를 부동산에 내어놓았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불만이 많던 직원들은 다 나가버렸고 착한 직원들이 모여 “잿더미 속 우리 회사 우리가 일으켜 세우자.”라고 하며 공장을 1월 추운 날씨 속에서 6일 만에 어느 정도 정상화한 것입니다.
이들이 하나로 일궈낸 성심당에서 나오는 빵은 왠지 더 맛있었습니다. 임 대표는 말합니다. “우리는 화재를 겪으면서 삶에서 가장 중요한 답이 무엇인지 한 번 봤어요. 답안지를 본 사람은 고민할 필요가 없죠. 위기가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르죠. 그렇지만 우리는 적어도 똑같은 방황을 되풀이하진 않을 거예요.”
이 회사는 인사고과에 사랑에 대한 평가가 40%입니다. 둘이 싸우다가 서로 화해했다면 진급 대상자가 됩니다.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직원들은 이렇게 선서한다고 합니다.
“하나,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 하나, 우리는 사랑의 문화를 이룬다. 하나, 우리는 가치 있는 기업이 된다.” 이들은 포콜라레 정신에 의거하여 수입의 3분의 1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3분의 1은 재투자로, 3분의 1은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사용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보다 수천 배나 매장이 많은 커다란 프렌차이즈 빵집들보다 수익이 많이 납니다.
저도 본당에 와서 재정의 10%를 가난한 사람에게 내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올 가을부터는 소공동체 시스템 변화를 통해 최대한 가난한 이들에게 자동으로 재정이 흘러가게 할 예정입니다. 그러면 돈도 사람도 부족해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것이 창업주의 정신입니다.
“주어라, 받을 것이다!” “우리 곁에 불행한 사람을 둔 채로 혼자서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언론사와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제가 신문사에 있었기 때문에 인터뷰 부탁을 자주 했었습니다. 인터뷰는 ‘약속 대련’처럼 미리 질문지를 보내기 마련입니다. 일정이 빠듯하게 잡혀서인지 질문지를 미처 받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확인하니 이 메일로 보냈는데 제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1시간 남짓 인터뷰는 잘 끝냈습니다. 기자는 익숙하게 핸드폰을 녹음으로 해놓고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인터뷰의 내용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기자는 먼저 제 소개를 부탁했습니다. 저는 저의 호적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세례명인 ‘가브리엘’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가브리엘은 천사입니다.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마리아는 가브리엘의 말을 듣고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응답했습니다. 가브리엘의 방문과 마리아의 응답으로 구세주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저는 가브리엘 천사처럼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뉴욕에서는 신문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전하였다면, 이곳 댈러스에서는 말씀과 성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전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기자는 ‘성당과 교회’의 차이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가톨릭과 개신교회의 차이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일부 개신교회에서는 가톨릭에 대해서 비방과 비난을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가톨릭은 큰 집, 개신교회는 작은 집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울 터인즉, 그 무엇도 이 교회를 무너트리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교회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셨고, 교회는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에 의해서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가톨릭교회에서 작은 집인 개신교회가 나왔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종교개혁을 주장했던 마르틴 루터는 가톨릭 성직자였습니다. 큰 집과 작은 집은 서로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가톨릭의 장점은 ‘질서’이고 개신교회의 장점은 ‘자유’라고 하였습니다. 가톨릭은 성경과 성전을 통해서 발전하였습니다. 가톨릭은 교계제도를 통해서 발전하였습니다. 바티칸에 있는 교황청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가진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안에 질서가 있습니다. 반면에 개신교회는 오직 ‘성경’이라는 모토로 발전하였습니다. 가톨릭에 비해서 개신교회는 그 조직이 자유롭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고속도로에는 ‘휴게소’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즐겨 찾는 휴게소는 어떤 휴게소일까요? 직원들이 친절하고, 음식이 맛있고, 간단한 쇼핑도 할 수 있고,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도 있고, 샤워 시설도 있고, 주유소의 기름값이 저렴한 곳입니다. 그런 휴게소는 사람들의 입소문이 나서 문전성시를 이룰 것입니다. 사람들이 외면하는 휴게소는 어떤 휴게소일까요? 직원들이 불친절하고, 음식도 맛이 없고, 아무런 편의시설이 없는 곳입니다. 게다가 물건값이 비싼 곳입니다. 그런 휴게소는 입소문이 나서 파리만 날릴 것입니다. 휴게소가 아무리 좋아도 그곳에서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잠시 충전의 시간을 가지면 미련 없이 목적지를 향해서 출발합니다. 종교는 깨달음을 향한, 영원한 생명을 향한 휴게소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언제 종교를 찾을까요? 종교가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 줄 때입니다. 종교가 지친 삶에 위로와 용기를 줄 때입니다. 종교가 불의한 세상에 희망을 줄 때입니다. 종교가 가난하고 약한 이들에게 손을 내밀 때입니다. 종교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와 행복을 줄 때입니다. 사람들이 언제 종교를 외면할까요? 종교가 속 빈 강정일 때입니다. 종교가 권력에 야합할 때입니다. 종교가 자본의 논리를 따라갈 때입니다. 종교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역할을 외면할 때입니다. 천주교와 개신교라는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걸 포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기자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을 청하였습니다. 아직 오지도 않은 근심 때문에 지금의 기쁨을 놓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보다는 해야 할 일을 먼저 하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의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언제나 기도하십시오. 항상 감사하십시오, 늘 기뻐하십시오.” 오늘 복음은 제가 이곳 댈러스에서 해야 할 소명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오늘의 성인
성 바르나바(Barnabas)
신분 : 사도, 순교자
활동연도 : +1세기
같은이름 : 바르나바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사도 11,24)으로 극찬을 받은 성 바르나바는 비록 그가 12사도에 들지는 않았으나 사도로서 인정을 받았다. 그는 원래 키프로스(Cyprus) 태생으로 요셉(Josephus)이라 하였는데,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뒤에 자기 재산을 팔아 사도들에게 봉헌하였다. 이때 사도들이 그에게 바르나바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초기 신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의 공동체에서 살았다. 그는 그곳의 공동체를 설득하여 바오로(Paulus)를 제자로 받아들이게 하였으며, 시리아의 안티오키아(Antiochia)로 파견되어 그곳의 공동체를 둘러보기도 하였다(사도 11,22 이하). 그리고 바오로를 타르수스(Tarsus)로부터 그곳으로 데려왔다. 그는 바오로와 함께 기근으로 어려움에 처한 예루살렘 공동체에 안티오키아의 기부금을 전달하였고, 그의 사촌 요한 마르코(Joannes Marcus)와 함께 안티오키아로 돌아왔다.
세 사람이 키프로스와 베르게 그리고 비시디아의 안티오키아로 선교여행 길에 올랐을 때, 그들이 유대인들로부터 맹렬한 반대를 받게 되자 이방인들에게 설교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다음에 그들은 리가오니아의 이고니온과 리스트라로 갔으며, 여기서 그들은 신들로 인정받았으나 곧 돌 세례를 받게 되어 시리아의 안티오키아로 되돌아갔다. 유대인 예식 준수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을 때, 바오로와 바르나바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회의에 참석하고 그들의 활동 보고를 하였다. 안티오키아로 돌아오는 길에 바르나바는 요한 마르코를 데리고 다른 방문 길에 오르려 하였으나, 밤필리아에서 떨어져 나갔다는 이유로 요한 마르코를 반대하자 그들은 서로 갈라지게 되었다. 이후부터는 그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지 않으나, 바오로와는 화해한 것으로 보인다.
전승에 의하면 바르나바는 알렉산드리아와 로마(Roma)에서 전교하였고, 키프로스 교회의 설립자로 인정받으며, 61년경에 살라미스에서 돌을 맞고 순교하였다. 위경인 바르나바의 편지가 그에게 헌정되었으나, 현대의 학자들은 70년과 100년 사이 알렉산드리아의 신자들에게 보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바르나바의 복음서는 이탈리아의 어느 그리스도인이 기록한 듯하고, 바르나바의 행전은 요한 마르코의 업적일 것이다.
성녀 바울라 프라시네티(Paula Frassinetti)
활동년도 : 1809-1882년
신분 : 설립자
지역 :
같은 이름 : 바울라, 빠울라, 파울라
성녀 바울라 프라시네티는 이탈리아 제노바(Genova) 출신인데, 어릴 때에 건강이 썩 좋지 않아서 요양을 겸하여 오빠가 주임사제로 있는 귄토(Quinto) 본당으로 갔다. 여기서 그녀는 가난한 어린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연이어 수도성소를 강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녀 주위에는 뜻을 같이 하는 자매들이 많이 모였으므로 공동체를 세우려고 하였으나 너무나 많은 장애물들이 나타났다. 그녀는 기도로써 밤을 지새울 때가 많았는데 결국은 성공하였다.
이 수녀회는 ‘성 도로테아 수녀회’로 알려졌는데, 이탈리아 전역뿐만 아니라 포르투갈과 브라질로 많이 진출하였다. 1863년에 성좌로부터 승인을 받은 이 수녀회는 그리스도교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수도단체이다. 특히 설립자인 성녀 바울라는 사람들의 내면을 읽고 이해하는 초능력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1882년 6월 11일 선종하였고, 1930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으며, 1984년 3월 1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녀 바울라는 병든 이들의 수호성녀이다.
복녀 욜렌타 (Jolenta)
신분 : 과부, 수녀원장
활동지역 : 폴란드(Poland)
활동연도: 1235?-1298년
같은이름 : 욜렌따, 욜렌타, 졸렌따, 졸렌타, 헤레나, 헬레나, 헬렌
헝가리의 왕 벨라 4세(Bela IV)와 마리아 라스카리나(Maria Laskarina)의 딸인 욜렌타는 헝가리의 성녀 마르가리타(Margarita, 1월 18일)와 폴란드의 성녀 쿠네군다(Cunegundis, 7월 24일)와는 자매 사이이다. 어린 나이에 그녀는 폴란드의 볼레스와프 5세(Boleslaw V)와 결혼한 언니 성녀 쿠네군다(Cunegundis, 7월 24일)에게 보내져 그녀의 돌봄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그곳에서 욜렌타는 칼리시(Kalisz)의 공작 볼레스와프와 결혼하여 세 명의 딸을 두었다.
결혼 생활 중에 그녀는 나라 안의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헌신적으로 봉사했고, 수도원과 병원 등의 주요 후원자였다. 그녀의 남편 또한 그런 아내의 자선 활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함으로써 ‘신심 깊은 볼레스와프’(Boleslaw the Pious)라는 별칭을 얻었다. 1279년에 남편과 사별한 후 욜렌타는 클라라회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 후 그녀는 폴란드의 그니에즈노(Gniezno)에 새 수도원을 설립해 원장이 되었다. 그리고 여생을 수도 생활에 전념하다 그곳에서 선종하였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827년 교황 레오 12세(Leo XII)에 의해 승인되었다. 그녀의 축일은 지역에 따라 6월 12일 또는 15일에 기념하기도 한다. 그녀는 또한 폴란드의 성녀 헬레나(Helena) 또는 욜란다(Yolanda)로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