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요리노부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 아들의 어린 시절에 오사카 진영에서 겨울 전투가 있었다. 어린 아들이었지만 무사의 아들이었던 그는 선봉에 배치되기를 진심으로 원했다. 그러나 후진에 배치되었다. 몹시 울며 분개하자 한 늙은 신하가 "오늘 전투에 참가하지는 못하지만 그리 서두를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전투는 많을테니까요"라고 위로했다. 그 말을 들은 요리노부는 분노에 찬 눈초리로 "저에게 열세 살 시절이 다시 올 수 있단 말입니까?"라고 했다.
13살밖에 되지 않은 아들이었지만 다시 돌아올 수 없는 13살 시절을 전투 없는 편안함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지금"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지금의 인생"을 우리는 어떻게 맞이하고 보내고 있는가.
전투에 가담하지 않는 것은 생명을 보전할 수 있는 행운이 아니다. 그 시절에 얻을 수 있는 전투의 명예를 놓쳐버리는 불행이다. 고통 없는 인생이 되기만을 목놓아 기다리는 것은 아름다운 축복의 인생만은 아니다. 다시 올 수 없는 기회를 상실하는 기회일 수도 있다. 안일함만 추구하는 인생, 좀더 편안해지고 싶은 욕구,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몸을 눕히고 싶은 느슨함의 욕망에 사로잡힌 우리에게 13살의 요리노부가 마음을 두드린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지금 아니면 어떠냐고 또 하루를 미루고, 내년이면 어떠냐고 한 해를 훌쩍 넘겨버리고 있지는 않는가. 세월이 아까운 줄 모르고 편안함으로 만족하지는 않는가. 지금 해야 할, 지금 끊어버려야 할, 지금 내 몸을 던져 헌신해야 할 일을 내일이어도 괜찮을 것이라고 덮어두고 있지는 않는가. 세월 아까운 줄 모르고 편안함에 물들어 만족하고 있지는 않는가.
소년 무사들조차 인생의 목표를 놓치지 않았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 고된 인생을 인내하는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때를 놓치지 않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소년 시절 얻은 명예는 세월을 따라 더 멋지게 성장해간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월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때를 아끼지 않으면 그 세월은 나의 인생에 악한 세월이 되고 만다. 지금을 놓쳐버리면 그 시간은 악하게 사용된 시간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광기와 우연의 역사'에서 슈테판 츠바이크는 이렇게 말했다. "그 순간은 역사상의 모든 것을 규정하고 결정하게 된다. 단 한 번의 긍정이나 단 한 번의 부정, 너무 빠르거나 혹은 너무 늦거나 하는 일이 이 순간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서 개인의 삶, 민족의 삶, 심지어는 인류 전체의 운명의 흐름에 결정적인 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 주를 위해 아껴보자! 하나님을 향한 삶의 여정에 기다려주지 않는 세월을 아껴보자. 지금 얻어야 할 영적 명예가 쌓이기를 기대한다.
당신은 오늘 주어진 일을 미루지 않고 최선을 다하 마치려는 각오가 있으십니까?
[느 4:17-18] 17: 성을 건축하는 자와 담부하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18: 건축하는 자는 각각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1. 2024년 새해도 벌써 한달이 다되어 갑니다. 이 한해 이루실 일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며 최선을 다해 헌신하며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 새해에도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사역을 위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시길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도전하라 본문 : 딤전6:12
영국 시인 죤 드라이든 어는 말하기를 '경건과 용기가 함께 이룩한 진지한 노력은 은총을 받기 마련이다'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삶도 그렇겠지만 특히 우리 기독교인의 삶에는 도전 정신이 필히 요구됩니다. 불의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써 살려면 도피하고 은둔하는 자세로는 승리로운 삶의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시31:24)라고 한 것처럼 주님의 진리로 무장하고 삶의 온 영역에 도전하는 자세를 지닌 성도가 되어야 주님께 받은 본분과 사명을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 졸업하는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무엇보다도 이와 같은 도전 정신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1. 진리 구현에는 장애물이 많음(고후10:4) 1)세상의 죄성이 장애물임 세상을 아무런 목적의식이 없이 그저 하루하루 즐기려고 사는 사람에게는 별 장애거리가 없습니다. 그저 돈과 건강만이 중요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목적과 뜻을 이루려고 사는 사람에게는 장애물이 참으로 많습니다. 가령, 흰 눈쌓인 거리를 데이트 하는 연인들에게 낭만까지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리를 청소하는 임무를 맡은 분들에게는 아름다운 흰눈이 큰 장애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어떤 목적의식을 지니고 사는 사람에게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진리와 의를 구현하려는 성도들에게 세상은 '적'으로 다가옵니다. 그 거룩한 뜻과 의지를 와해 시키고 무산시키려고 사단은 공격합니다. 또 세상 사람들의 본성 속에 자리잡은 타락한 본성들이 성도들의 뜻을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옛부터 졸업하는 후배들에게 선배들이 교훈하기를 '학교에서는 세상이 둥글다고 배우지만 실제 세상은 모가 났다'고 충고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훈련을 끝내고 적진으로 향하는 군인과 같은 처지입니다. 이리 떼를 향해 가는 양과 같다고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결연한 의지와 각오를 지니시기 바랍니다.
2)자신의 세속성이 장애물임 졸업하고 사회에서 생활을 조금이라도 해본 선배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 때 공부하던 시절이 제일 좋았어. 그 시절이 가장 자신이 순수했었던 것 같아'라는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학창시절 의롭던 뜻과 마음이 사회 생활하며 변질되고 속되 간다는 증거 아닙니까? 우리 안에는 옛 사람의 죄된 속성이 찌꺼기처럼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는 신앙 생활에 힘써야 세상과 타협치 않고 변질되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성도에게 가장 큰 장애물이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내부에 일어나는 욕심과 안일함에 도전하는 성도만이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2. 진리 구현은 적극적인 자세만이 가능함(딤전6:12)
1)진리의 확신을 지닌자의 자세이기 때문임 요시다 쇼오인이라는 일본의 성서 학자는 '의는 용으로써 행해지며 용은 의에 의해서 성장한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진리를 알고 의를 알지라도 그것을 실현할 용기가 없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또 실현할 용기가 없다는 사실은 진리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증표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 권능을 믿고 그 사랑에 확신을 지닌 성도, 그리스도의 복음진리가 진정 인생을 구원하는 구원 진리임을 확신하는 성도는 어떤 어려운 상황에 있을지라도 세상에 도전장을 내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 하노라'(행20:23,24)고 바울이 외친 것을 본받게 됩니다.
2)진리는 거짓을 이기는 힘이 있기 때문임 적극적으로 도전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는 거짓과 비진리는 결코 진리를 이길 수 없다는 만고불변의 원리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으나 결국 부활로써 승리하신 것처럼 진리의 도전에 버틸 악의 세력은 없습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고 성경은 약속합니다.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성도들은 이처럼 하나님의 승리의 권세를 기반으로 심은 존재들이기에 도전하면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은 도전하는 정신을 귀히 여기심(신3:22)
1)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기 때문임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잠28:1)고 했습니다. 도전하는 담대한 자세, 이것이 의인의 용기요 하나님 자녀들의 정신입니다. 이와 같은 도전 자세의 모범자로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거룩하신 하나님으로서 죄악 세상에 인간으로 오셨다는 사실 자체가 그 얼마나 한없는 용기요 도전입니까? 그리스도의 성육신 정신은 바로 도전 정신이 그 본질입니다. 하나님 뜻을 실천하고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자 이 땅에 뛰어 드신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도전 정신을 바로 졸업을 하는 여러분들의 정신의 지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2)신앙위인들의 신앙 정신이기 때문임 도전의 정신은 곧 참된 신앙의 본질입니다. 믿음은 결국 이성으로 세상의 경험과 기준으로 판명되지 않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선조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가나안 땅으로 가라는 명령에 순종한 것은 큰 도전의 몸짓이었습니다. 모세를 생각해 보십시오. 시내산 떨기나무 불꽃 중에서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 하나만을 의지하고 대 제국 이집트의 바로에게 도전한 그가 아닙니까? 그 외에 신약의 바울 사도 역시 유대교의 한 종파로만 알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 세계를 상대로 도전하며 기독교를 세계 최대의 종교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결론 학문의 활용, 진리의 구현, 거룩한 뜻의 실현은 오직 도전하는 자에게 열매로 주어집니다. 이제 여러분 앞에는 수많은 난관과 장애가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전진하십시오! 도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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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요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아멘
오늘은 금요일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주님의 영광과 복음과 선교와 설교와 목회와 치유와 상담과 성령과 맡은바
사명에 충성하는 도구로 쓰임받고 열매 맺게 하소서 샬롬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오늘도 넉넉한 용기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아멘 샬롬
함께해 주신 예수 사랑 목사님, 평안 장로님, 만경강 목사님, 좀땡이 회원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