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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1일 월요일
[(녹) 연중 제13주간 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아모스 예언자는,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그들을 짓눌러 버리실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려는 이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그들은 힘없는 이들의 머리를 흙먼지 속에다 짓밟았다.>
▥ 아모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2,6-10.13-16
6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의 세 가지 죄 때문에,
네 가지 죄 때문에 나는 철회하지 않으리라.
그들이 빚돈을 빌미로 무죄한 이를 팔아넘기고
신 한 켤레를 빌미로 빈곤한 이를 팔아넘겼기 때문이다.
7 그들은 힘없는 이들의 머리를 흙먼지 속에다 짓밟고
가난한 이들의 살길을 막는다.
아들과 아비가 같은 처녀에게 드나들며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힌다.
8 제단마다 그 옆에 저당 잡은 옷들을
펴서 드러눕고 벌금으로 사들인
포도주를 저희 하느님의 집에서 마셔 댄다.
9 그런데 나는 그들 앞에서 아모리인들을 없애 주었다.
그 아모리인들은 향백나무처럼 키가 크고
참나무처럼 강하였지만 위로는 그 열매를,
아래로는 그 뿌리를 없애 주었다.
10 그리고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이끈 다음
아모리인들의 땅을 차지하게 하였다.
13 이제 나는 곡식 단으로 가득 차 짓눌리는 수레처럼
너희를 짓눌러 버리리라.
14 날랜 자도 달아날 길 없고 강한 자도 힘을
쓰지 못하며 용사도 제 목숨을 구하지 못하리라.
15 활을 든 자도 버틸 수 없고 발 빠른 자도 자신을
구하지 못하며 말 탄 자도 제 목숨을 구하지 못하리라.
16 용사들 가운데 심장이 강한 자도 그날에는 알몸으로 도망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나를 따라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8-22
그때에 18 예수님께서는 둘러선 군중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호수 건너편으로 가라고 명령하셨다.
19 그때에 한 율법 학자가 다가와 예수님께,
“스승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21 그분의 제자들 가운데 어떤 이가,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2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따라라.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두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너는 나를 따라라.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 예수님의 이 말씀이 어떻게 느껴지십니까? 아버지의 장례조차 허락하지 않으시고 당신을 따르라는 이 말씀이 너무하게 여겨지지는 않나요? 살아가다 보면, 누구에게나 절대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세워지기 마련입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일은 자녀에게 그 어떤 것과도 타협할 수 없는 절대 가치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앙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가치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이것을 말씀하고 싶어 하십니다.
많은 신앙인이 예수님을 따른다고 말하면서도, 믿음보다 자신들이 정해놓은 가치들을 좇으며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저마다 절대적으로 생각하는 가치와 예수님의 말씀이 서로 부딪치게 될 때,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기가 너무 어려운 말씀’이라고 하며 그분을 따르는 것을 포기하여 버리기도 합니다. 신앙보다 자식들에 대한 기대가, 정치적인 의견이, 물질에 대한 욕심이 더욱 앞섭니다. 체면과 자존심, 다른 이들의 평가가 더욱 앞섭니다. 과연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까?
신앙을 먼저 선택하고, 예수님을 따르기 힘들다고 느껴질 때마다 하느님 나라를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지켜야 하고, 무엇과 타협하면 안 되는지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는” 곳으로 우리를 이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에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함께 계시고, 그 길의 마지막은 하느님 나라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약속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의 이 약속이 모든 이에게 소중하면 좋겠습니다. 신앙이 가장 소중한 가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너는 나를 따라라.” 아멘.(김재덕 베드로 신부)
진정으로 살아 있는 존재는 몸도 살아 있지만 영혼도 살아 있는 존재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마태오 복음, 마지막 대목이 계속 제 마음 안에서 메아리 칩니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치르도록 내버려 두어라.”(마태 8,22)
처음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치르도록 내버려 두라니! 이런 얼토당토않은 궤변이 다 있나? 대체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건가? 죽은 이들은 더 이상 육체도 없는데 염은 누가 하고, 상여는 누가 들고? 조문객 접대는 누가 하고, 음식은 누가 만들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죽은 이 안에는 육체적으로 죽은 이도 있지만, 영적으로 죽은 이도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죽은 이도 있고 심리적으로 죽은 이도 있습니다.
따지고 보니 빛이요 진리이신 예수님,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요 구원의 보루로 오신 예수님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 역시 죽은 이들입니다. 생명과 구원의 길을 뒤로 하고 어둠과 죽음의 길을 선택한 이들 역시 죽은 이들입니다.
돌아보니 저도 한때 죽은 이처럼 살아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당시 숨은 쉬고 있었지만 거울을 들여다보면 영락없이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영혼 없는 얼굴, 총기가 사라진 눈동자, 아무런 희망도 기쁨도 느끼지 못하던 죽은 이의 나날이었습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은 붙어 있지만 죽은 이처럼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위안이 되는 것은 존경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기자단과의 인터뷰에서 당신도 죽은 이처럼 존재하던 순간이 있었노라고 고백하셨습니다.
“저에게도 대단히 황폐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저도 매우 황폐한 시기, 어둠의 때를 지낸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미 제가 죽었다고 믿었습니다. 당시 저는 고해 사제였습니다. 그러나 패배감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토록 견디기 쉽지 않았던 시기에 저는 계속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보상을 받았습니다. 기도는 출구를 일러줍니다.”
죽음 전문가셨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여사께서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씀을 우리에게 남기셨습니다.
“지금 이순간을 살아가십시오. 삶에서 가장 큰 상실은 죽음이 아닙니다. 가장 큰 상실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우리 안에서 어떤 것이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 그것을 지금 하십시오.”
그리 길지 않은 우리네 삶이기에 매일 되풀이해야 할 노력이 한 가지 있습니다. 우리 삶의 질에 대한 지속적 반성과 성찰입니다. 오늘 나는 참으로 살아 있었는가? 열심히 숨 쉬고 삼시 세끼 제때 밥 먹으며, 분명히 살아있었지만, 이미 내 안에서 어떤 것들이 죽어버린 것은 아닌지? 육체는 버젓이 살아있지만, 영혼이나 정신이 이미 소멸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그래서 더욱더 노력해야겠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들의 육체는 점점 노쇠해지고 소멸되겠지만, 우리들의 영혼과 정신은 더욱 견고해지고 강건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나를 둘러싼 주변 환경들이 아무리 열악하고 비호의적이라 할지라도, 또 일어서고 또 넘어서겠노라고.
진정으로 살아 있는 존재는 몸도 살아 있지만 정신도 살아 있는 존재입니다. 육체도 살아 있지만 영혼도 살아 있는 존재입니다. 결국 주님 안에, 그분의 성령 안에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말을 하는 게 좋은가, 하지 않는 게 좋은가?
전삼용 요셉 신부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겠다고 하는 이들을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한 사람에게는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라고 하십니다. 편안함이나 돈, 명예 따위를 보고 당신을 따라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아버지 장례를 먼저 치르게 해 달라는 다른 사람에게는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라고 하십니다. 세상 애착을 끊고 따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길이 절대 쉽지 않다고 미리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하기도 사실 쉽지는 않습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하느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말해야 하고 자기 자신을 죽여야 하며 십일조도 내야 한다고 예비자에게 미리 말을 하면 그들은 주저할 수도 있습니다. 차근차근 말해주는 게 좋을 것 같지만, 오늘 복음은 아예 처음부터 말해주는 게 낫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고정원 씨의 일가족이 유영철에게 몰살당한 후 고정원 씨는 아내가 다니던 성당에서 혼자 울고 있었습니다. 범인이 잡히면 자살하겠다는 그에게 예비자 교리를 받아서 세례를 받아야만 한다고 말해주는 게 쉬울까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있어서 고정원 씨는 교리를 받고 세례를 받고 유영철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체조 유망주였던 이승복 박사가 척추가 망가져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할 때 어떤 선교사가 와서 이것도 다 하느님의 계획 일부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움직일 수 있었으면 주먹이 날아갔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해주었습니다. 이승복 박사는 그 말을 믿고 운동을 포기하고 의사가 되기로 하여 유명한 재활의학과 의사가 되었습니다.
만약 이들에게 용기 있게 주님을 따르는 법을 알려준 은인들이 없었다면 그들이 자기 힘만으로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저도 어떤 이야기들은 주저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의 반대와 비판에 직면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더라도 결국엔 말을 합니다. 그때는 욕을 먹더라도 말하지 않는 것보다 말해주는 편이 더 후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백종원 씨가 진행하는 골목상권 살리기 프로그램을 보면 가끔 전문가로서는 말도 안 되는 수준의 가게들을 만나게 됩니다. 전문가들 처지에서는 100% 망할 수밖에 없는 가게들입니다. 그리고 백종원 씨는 욕먹을 각오를 하고 그렇게 할 거면 장사를 집어치우라고 합니다. 자신이 처음 장사를 할 때는 명확한 기본규정을 알려준 사람이 주위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 생각이 너무 강해서 그 규정들을 자기 마음대로 바꾸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백종원 대표는 그들에게서 자기 사진이나 이름을 지우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에게 자기 이미지가 그렇게 보이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전문가일수록 자신을 따를 것인지 아닌지를 명확히 합니다.
김유신 장군은 18세 때 이미 삼국통일의 꿈을 꿉니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그 꿈을 퍼뜨립니다. 어머니는 기생집에 드나들며 무슨 통일을 이루겠느냐고 나무랍니다. 이에 김유신은 다시는 기생집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술을 마시고 말에서 잠을 자다가 깨어난 곳이 기생집이었을 때 김유신은 자기가 이끼는 말의 목을 칩니다.
‘중간 정도만 해도 도움이 되겠지’라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중간 정도는 해를 입힙니다. 명화에 일반인이 덧칠하면 명화를 망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아버지처럼 완전해질 결심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광야에서 인간적인 면을 완전히 죽일 각오를 해야 합니다.
우리도 신앙을 가지려는 이들에게 돈과 육욕과 교만을 끊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아예 미리 포기하라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어정쩡하고 이도 저도 아니고 미지근한 신자가 많이 생기는 것보다 적더라도 신자다운 신자들이 있는 교회가 건강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려면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고 완전한 그리스도가 되어야 함을 미리부터 알려주라고 권하고 계십니다.
<그래 쉼 없이 걷는 거야>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너는 나를 따라라.”(마태 8,22)
그곳에 이를 때까지
그래 쉼 없이 걷는 거야
비록 그 길의 끝 모르지만
지금여기 그 끝이 아니니
잠시 머물던 자리 훌훌 털어내고
힘차게 또 한 걸음 내딛는 거야
지금 함께 하는 벗들의 환호와
지금 누리는 모든 기쁨을
먼 길 쉼 없이 내딛어야 할
힘겨운 발걸음에 밑거름 삼아
모든 것 미련 없이 내려놓고
빈 몸 빈 마음으로 또 한 걸음
끝 모를 그 곳에 이를 때까지
그래 쉼 없이 걷는 거야
오늘의 성인
성녀 에스테르(Esther)
신분 : 왕비, 구약인물
활동연도 : +5세기경BC
같은이름 : 에스더, 에스데르, 에스델, 에스떼르, 에스터, 에스텔
구약성경 에스테르기에 등장하는 에스테르는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잡아 온 유다인 중 하나이다. 그녀는 벤야민 지파 출신 아비하일의 딸로 부모가 죽은 뒤 수사 성읍의 왕궁에서 봉직하는 삼촌 모르도카이의 양녀가 되었다. 에스테르는 모습이 아름답고 용모가 어여쁜 처녀였다.
당시는 인도에서 에티오피아까지 이르는 대제국을 다스리던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의 통치 시대였다. 크세르크세스 임금이 신하들을 위해 큰 잔치를 벌이는데 취흥이 돋자 와스티 왕비를 불렀다. 백성과 고관들에게 왕비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왕비는 임금의 분부를 거절하고 나오지 않았고, 이에 격분한 임금은 왕비를 폐위시켰다. 새로운 왕비를 찾던 임금은 에스테르를 사랑하게 되어 그녀를 자신의 왕비로 삼았다. 에스테르는 삼촌의 명대로 자신의 출신에 대해서는 함구하였다.
당시 궁궐 대문에서 근무하고 있던 모르도카이는 우연히 임금의 내시 둘이 불만을 품고 임금을 해치려 한다는 사실을 듣고 에스테르 왕비를 통해 임금에게 고하여 음모를 막았다. 그런데 하만이 재상이 되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모르도카이가 하만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하지 않자 그의 출신이 밝혀지고 하만은 왕국 전역에 있는 유다인들을 모두 몰살하기 위해 임금에게 거금을 약속하며 허락을 받아냈다. 그래서 지정된 날에 유다인들을 모두 절멸시키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라는 임금의 서신이 제국 내에 발송되었다.
곳곳에서 유다인들이 단식하고, 울고 탄식하며 크게 통곡하고 있을 때 에스테르는 모르도카이의 말을 전해 듣고 목숨을 걸고 임금 앞에 나아가 이 불행을 되돌리는데 성공하였다. 한편 하만은 더욱 기세등등해서 모르도카이를 매달 말뚝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모르도카이는 역적모의를 신고하고도 아무런 포상을 받지 못한 이야기를 들은 임금으로부터 최고의 영예를 받고, 하만은 오히려 자기가 마련해 놓은 말뚝에 매달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한 번 작성한 임금의 칙령은 취소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에스테르는 임금에게 청하여 반대 칙령을 내리게 하였다. 즉 유다인의 학살일로 정해진 그 날에 유다인들 스스로 목숨을 지키기 위해 봉기해 그들에게 대적하는 무리들을 제압하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도록 윤허를 받았다.
그리고 모르도카이와 에스테르의 결정에 따라 하만이 유다인들을 절멸시키기 위해 주사위, 아카디아어로 ‘푸르’를 던져 정한 이날을 해마다 ‘푸림절’로 경축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해서 푸림절은 원수들로부터 평안을 되찾은 날이고, 근심이 기쁨으로, 애도가 경축으로 바뀐 날이 되었다. 유다인들은 이날을 기쁨의 날로 지내면서 서로 음식을 나누고 가난한 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축제로 지내게 되었다.
그 후 모르도카이는 왕국의 제2인자가 되어 동족인 유다인들의 평화를 지키고 그들로부터 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에스테르는 ‘별’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ㅗ
성 아론(Aaron)
신분 : 구약인물, 사제
활동연도 : +연대미상
성 아론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결정적으로 하느님을 체험했던 출애급 사건과 이어지는 광야 여정 중 모세와 함께 중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는 레위 지파의 첫 번째 사제이다. 성서에서는 아론을 모세의 형제이며 공동 지도자이자, 이스라엘의 합법적인 사제 계급의 시조라고 하였다.
성 아론은 레위 지파의 후손으로 아므람과 요게벳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모세가 그의 동생이고(출애 6,20), 미리암은 그들의 누이였다(민수 26,59). 암미나답의 딸이며 나흐손의 누이인 엘리세바와 결혼한 뒤 나답, 아비후, 엘르아잘, 이다말을 자녀로 둔(출애 6,23) 아론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구하려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모세와 함께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그의 나이 83세 때였다(출애 7,7). 그러나 그전에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언급은 성서 어디에도 없다.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을 위해 벌인 파라오와의 담판에서 그는 모세의 대변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또 출애급 이후 광야 여정에서도 모세와 함께 공동 지도자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으며, 갈증과 배고픔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탄원을 듣고(출애 16,2) 그들에게 메추라기와 만나를 통해 하느님께서 보여 주실 자비의 구원을 선포하였다(출애 16,6).
시나이 산에 이르러 그는 야훼가 명한 대로(출애 29,4-9) 성대한 임직식을 통해 사제로 축성되는데(레위 8장), 그의 사제직은 여러 징표들을 통해 확인된다(민수 16장; 17,16-28). 또 바란 광야에서는 모세와 더불어 가나안 땅을 정찰하고 돌아온 정찰대를 맞았으며(민수 13,25-29), 하느님을 신뢰하지 않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징벌을 선포하라는 하느님의 지시를 실행하기도 하였다(민수 14,26-38).
이처럼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을 대부분 함께하였던 아론은 에돔 땅 경계 부근의 호르 산에서 모세와 자신의 아들 엘르아잘이 지켜보는 가운데 므리바에서의 물 사건(민수 20,12) 때 하느님이 선언하였던 것처럼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선조들 곁으로 갔다(민수 20,22-29).
아론의 죽음에 관해서는 민수기 33장에서 보충되는데, 그가 죽은 날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한 지 40년 되던 해 다섯째 달 초하룻날이었고, 그의 나이는 123세였다(민수 33,38-39). 이스라엘의 온 집안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30일 동안 울었다고 한다(민수 21,29).
성 시메온 살로(Simeon Salus)
활동년도 : +6세기경
신분 : 은수자
지역
같은 이름 : 살로, 살루스, 시므온
성 시메온은 친구인 성 요한(Joannes, 7월 21일)과 함께 사해 근방의 사막으로 들어가서 29년 동안이나 회개생활을 하였다. 그는 실로 겸손 자체라 할 정도로 겸손의 덕을 닦았다. 그 후 그는 시리아의 에메사에서 잠시 동안 머무른 적이 있는데, 이때 '살로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말은 '미쳤다'는 뜻의 그리스어였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가 미치지 않았음을 알리려고 수많은 특은을 허락하셨다. 그의 사망 연대는 알 수 없지만 588년의 대지진 이후인 것만은 확실하다고 말한다
복자 주니페로 세라(Junipero Serra)
활동년도 : 1713년 ~ 1784년
신분 : 교수, 수도자, 선교사
이름의미: 하늼어 광대(= 주니페로)
1987년 9월 17일 요한 바오로 2세는 미국을 방문하는 동안 캘리포니아의 Carmel Mission을 들렀다. 이 때 교황은 Junipero Serra의 무덤에 헌화하였다. 1988년 9월 25일 교황은 이 프란치스칸 복음 선포자를 복자품에 올렸다.
Junipero Serra는 1713년 11월 24일 Majorca의 섬에서 태어났다. 그의 세례명은 Miguel Jose Serra였고, 그 가정은 겸손한 농부의 가정이었다. Miguel이 15세가 되던 해에 그는 Nuestra Senora de los Angeles 수도원에서 프란치스칸 수련착복을 하였다. 1713년 Miguel은 서원을 하였고 그 때 Junipero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1731년부터 1734년까지 Junipero는 San Francisco Palma 수도원에서 공부하고 사제로 서품되었다.
사제가 된 후 초기 몇 년간 그는 학생 프란치스칸들에게 철학을 가르치는 일을 하였다. 1742년 Junipero 형제는 Jajorca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이 전통있는 대학교에서 교수직을 맡게 되었다.
1749년 그가 25세 되던 해에 그는 새로운 세계를 복음화하라는 소명을 느끼게 되었다. 1749년 4월 13일 Francisco Palou와 함께 Junipero는 Marjoca를 떠나 멕시코를 향하였다. 10월 18일 그는 푸에르토리코의 San Juan에 도착하였다. 거기에서부터 그는 멕시코까지 여정을 계속하였다. 그때 그가 타고 가던 배가 태풍을 만났다. 다행히도 그는 Vera Cruz에 도착하여 거기서부터 멕시코시를 향해 갔다. 그는 멕시코시에 1750년 1월 1일 도착하여 마침 맞게 과달루페의 성모 발현지에서 미사를 봉헌하였다.
선교사로의 그의 첫 번째 체험을 했던 곳은 Pame 인디안들과 함께 한 Sierra Gorda에서였다(1750-1758).
그는 Jalpan에 파견되었고, 이 때 집중적으로 선교에 전력을 기울이고 나서 San Saba de la Santa Cruz (오늘날은 Texas의 Menard County임)에서의 새로운 선교 임무를 준비하기 위해 멕시코시의 선교학교로 돌아갔다.
이 여정은 어렵기도 했지만 위험스럽기도 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럭저럭 하는 동안 Junipero는 수련장직을 맡았기에 멕시코시에 머물러야 했다.
1767년 Junipero는 캘리포니아의 Loreto로 파견되었다.
캘리포니아에 대한 스페인의 식민지배 야욕 때문에 Junipero는 북쪽 San Diego로의 여정을 떠나 1769년에 도착하였다.
온갖 고초를 겪은 끝에 Junipero는 현재의 캘리포니아 주에 첫 번째 선교 거점을 세우는 데 성공하였다. 선교의 여정은 북쪽 Monterey쪽까지 계속되었다.
1771년 8월 24일 Junipero는 San Carlos Borromeo에 두 번째 선교 거점(이것을 Carmel mission이라 함)을 세웠다.
이 선교 본부는 캘리포니아에서 Junipero가 선교를 하는 데 있어서 본부로서의 역할을 해 주었다.
그 후에 San Antonio (1771), San Gabriel (1771) and San Luis Obispo (1772)에 다른 선교 거점들이 세워졌다.
1773년 Junipero는 멕시코로 돌아가 총독에게 새로운 선교를 위해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멕시코로 가는 길에 그는 몸이 많이 아팠다.
그가 멕시코시에 도착했을 때 그는 캘리포니아 선교에 관한 상세한 보고서를 총독에게 제출했을 뿐 아니라, "representacion"이라는 캘리포니아에 관한 최초의 법적인 문서의 초고를 썼다. 1774년 그는 Carmel Mission에 되돌아와서 계속해서 선교사로서 그곳에 번창하는 공동체를 건설하는 데 열심히 일하였다.
이 때 다시 새로운 선교 거점들이 세워졌다:
San Francisco (1776), San Juan Capistrano (1776), Santa Clara (1777), San Buenaventura (1782).
Junipero의 건강이 1784년에 많이 악화되었다.
그 해 여름 그는 결핵과 오래 누적된 과로로 고통을 겪었다.
그는 1784년 8월 28일 세상을 떠났다. 그 때 그의 나이는 70세였다.
그는 수천 킬로미터를 걸어서 여행하였기에 온 피로로 탈진 되었던 것이다.
그는 35년간 선교사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는 Carmel Mission의 성당 묘지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