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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6일 토요일
[(녹)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홍] 성녀 마리아 고레티 동정 순교자 또는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말씀의 초대
아모스 예언자는, 주님께서 그날에 당신 백성 이스라엘의 운명을 되돌리시리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며,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오면 단식할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나는 내 백성의 운명을 되돌려 그들을 저희 땅에 심어 주리라.>
▥ 아모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9,11-15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1 “그날에 나는 무너진 다윗의 초막을 일으키리라.
벌어진 곳은 메우고 허물어진 곳은 일으켜서
그것을 옛날처럼 다시 세우리라.
12 그리하여 그들은 에돔의 남은 자들과
내 이름으로 불린 모든 민족들을 차지하리라.
─ 이 일을 하실 주님의 말씀이다. ─
13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밭 가는 이를 거두는 이가 따르고
포도 밟는 이를 씨 뿌리는 이가 따르리라.
산에서 새 포도주가 흘러내리고
모든 언덕에서 새 포도주가 흘러넘치리라.
14 나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운명을 되돌리리니
그들은 허물어진 성읍들을 다시 세워 그곳에 살면서
포도밭을 가꾸어 포도주를 마시고
과수원을 만들어 과일을 먹으리라.
15 내가 그들을 저희 땅에 심어 주리니
그들은 내가 준 이 땅에서 다시는 뽑히지 않으리라.”
─ 주 너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4-17
14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16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지기 때문이다.
17 또한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오늘의 묵상
“헌 옷”과 “헌 가죽 부대”의 공통점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변화도 새로움도 없이 언제나 그 상태로 머물러 있는 신앙생활은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길로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오히려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구원의 길이 감당할 수 없는 부담으로 느껴지게 합니다. 우리는 내가 가진 것을 ‘가장 작은 이’와 나누라는 말씀, 용서하여야 한다는 말씀,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씀, 구원을 얻으려면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말씀 앞에서 때때로 주저앉아 버립니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구원으로 이끄시는 하느님 말씀은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말씀이 “새 포도주”가 되어 “헌 가죽 부대”인 내 삶을 터뜨려 버린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다음에요. 예수님, 이 말씀은 저에게 너무 어렵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결코 실천할 수 없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하느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이런 마음이 자주 든다면, 그 믿음은 이미 “헌 옷”과 “헌 가죽 부대”가 되어 버렸을 수 있습니다. 또한 신앙생활을 되돌아볼 때, 어느새 기도하는 삶이 사라져 버렸을 수 있습니다. 우리 영혼을 새롭게 만들어 주는 고해성사를 한 지 한참 지났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갈라 3,27).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하느님께서는 세례 때 예수님을 새 옷으로 우리 모두에게 입혀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미 입고 있는 예수님이라는 옷이 다시 빛날 수 있도록, 우리의 믿음이 새 부대가 되어 하느님의 구원을 담아낼 수 있도록, 고해성사를 준비하며 기도하는 삶을 다시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아멘.(김재덕 베드로 신부)
비록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한 아이의 출생이 과거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었는데, 저출산 시대인 요즘은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마을 주민 전체가 축하의 인사를 건네고, 다들 아이 얼굴 구경하러 가고, 마을 입구에는 축하 플래카드까지 내걸립니다. 사실 이게 정상인데, 그동안 우리는 비정상이 정상이 시대를 살아온 것 같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결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청춘 남녀들이 결혼은 아예 꿈도 꾸지 못하는 시대를 살다 보니, 결혼식이 거행되고, 주님 안에 한 커플이 탄생하는 것이 엄청난 일로 여겨집니다.
요즘 우리 모두 새삼스럽게 확인하고 있습니다. 결혼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것인지. 혼인이란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나고, 두 가문이 만나고, 두 가치관과 두 세상이 만나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혼자 살아왔는데, 이제는 함께 걸어줄 동반자가 생긴 것입니다. 생사고락을 함께 할 평생 동지가 생겼으니 이 얼마나 큰 축복이요 기쁨인지 모릅니다.
이토록 기쁨 충만한 혼인 잔칫날에 어두운 표정으로 인상 쓰고 있다면 예의에 크게 어긋나는 일일 것입니다. 잘 차려진 축하연에 단식한다며 숟가락조차 들지 않고 우울하게 앉아있다면 그것보다 더 꼴불견은 다시 또 없을 것입니다.
혼인 잔치의 가장 기본적인 분위기는 축제입니다. 함께 어울려 춤추고 노래하며 축제를 즐기고 만끽하는 것은 혼인 당사자 입장에서 가장 기분 좋은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딱 마음에 드는 짝을 찾지 못해 안절부절하는 우리를 위해, 우리 교회 공동체를 위해 세상 멋진 신랑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육화강생은 그분과 이 세상, 그분과 그분의 신부인 교회, 그분과 우리 죄인의 혼인을 의미하는 대 사건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봉헌하는 매일의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는 주님과 매일 새롭게 결합되고 한 몸이 됩니다. 매일 우리는 성체성사를 통해 주님과 우리 사이의 혼인을 갱신하는 것입니다.
세례 성사를 통해 주님과 혼인한 우리는 매일의 성찬례를 통해 그 혼인을 갱신한다니, 이 보다 더 큰 은총과 축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따라서 주님과 함께 시작하는 하루 하루는 매일이 기쁨 충만한 축제여야 마땅합니다.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우리의 이 지상 순례 여정이 비록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매일 주님과 혼인하고, 그 혼인을 갱신하는 우리들이니, 얼굴을 활짝 펴고, 기쁨과 감사의 노래를 부르면서 축제를 만끽해야 하겠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저는 2019년 8월에 뉴욕으로 왔습니다. 매년 6월에 교구사제모임이 있습니다. 2020년 6월에는 과테말라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과테말라에서 선교하는 신부님이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당시에 코로나 팬데믹이 있었고, 교구사제모임은 취소되었습니다. 2021년에는 아직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지 않아서 교구사제모임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2022년에는 댈러스에서 교구사제모임이 있었습니다. 저보다 먼저 있던 신부님들은 대부분 한국으로 복귀했습니다. 워싱턴 DC에 있는 신부님만이 저보다 먼저 미국으로 왔습니다. 2023년에는 필라델피아에서 교구사제모임이 있었습니다. 2019년, 제가 미국에 왔을 때 있던 신부님들은 모두 한국으로 복귀했고, 저와 같이 2019년에 미국에 왔던 신부님이 한분 있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2024년에는 워싱턴 DC에서 교구사제모임이 있었습니다. 제가 뉴욕의 신문사 일을 마치고, 댈러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으로 옮겼기 때문에 저보다 먼저 온 신부님도, 저와 같이 왔던 신부님도 모두 한국으로 복귀했습니다. 이제 제가 제일 오래 되었고, 제일 연장자가 되었습니다. 생각하면 시간의 무상함도 느껴집니다. 너무 오래있었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도 생각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새 술을 낡은 부대에 담으면 부대도 찢어지고, 새 술도 쏟아진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새 술과 새 부대’의 의미는 무엇일가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낡은 부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저처럼 미국에 온지 오랜 된 사제가 낡은 부대라는 의미는 아닐 겁니다. 이제 막 미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한 사제가 새 부대라는 의미도 아닐 겁니다. 저처럼 33년 된 사제가 오래된 술은 아닐 겁니다. 이제 막 사제서품을 받은 신부님이 새 술은 아닐 겁니다. 그렇습니다. 새 술과 새 부대는 시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새 술과 새 부대는 ‘생각’의 문제입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낸다면 언제나 새 술과 새 부대입니다. 반대로 현실에 안주하고, 불평과 불만이 있다면 언제나 오래된 술과 낡은 부대입니다.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와 복음’이라는 새 술을 준비하였습니다. 현실에 안주하고, 기득권을 지키려 했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는 비록 많은 지식이 있고, 율법을 잘 지켰을지라도 낡은 부대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그물을 버리고, 배를 버리고 하느님 나라와 복음을 받아들였던 어부들은 새 부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술’의 조건을 말씀하셨습니다. 성공, 명예, 권력을 쫓아가는 사람은 결코 새 술이 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회칠한 무덤처럼 겉은 깨끗하지만 속은 썩어버린 사람도 결코 새 술이 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멍에를 남에게 씌우고 편한 길만 가는 사람도 결코 새 술이 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강도당한 사람을 외면했던 레위와 사제도 새 술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새 술이 될까요? 그렇습니다. 강도당한 사람을 치료해 주었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새 술입니다.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이웃에게 나눠주고, 빚진 것이 있다면 4배로 갚겠다고 했던 자캐오가 새 술입니다.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지만 닭이 울자 통회의 눈물을 흘렸던 베드로가 새 술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던 키레네 사람 시몬이 새 술입니다. 예수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닦아 드렸던 베로니카가 새 술입니다.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려왔던 착한 이웃이 새 술입니다. 겸손한 사람,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가는 사람,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꺼이 희생하는 사람은 새 술입니다. 그렇습니다. 새 술이 되는데 나이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새 술이 되는데 능력도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새 술이 되는데 직책도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실천하는 사람은 모두가 새 술입니다. 그렇습니다. 생각을 바꿀 수 있다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늘 감사 할 수 있다면 저도 새 술과 새 부대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아서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죄로 인해 병들었던 우리의 몸과 마음은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로 깨끗하게 되었고,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몸은 하느님의 창조질서로 인해서 매일 새로운 세포들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도 우리들의 신앙생활로 거듭나야 합니다. 농부가 씨를 뿌린 밭에는 농부가 원하지 않는 잡초가 함께 자라나듯이 우리의 마음에도 우리가 원하지 않는 악한 것들이 자리 잡곤 합니다. 그것은 교회에서 말하는 일곱 가지 악한 세력들입니다. ‘탐욕, 분노, 질투, 게으름, 미색, 교만, 과식’입니다. 이것들은 암세포와 같아서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면 좀처럼 나가지 않습니다. 이것들을 없애는 것은 새로운 것들을 우리의 마음에 담는 것입니다. ‘기도, 희생, 봉사, 나눔, 사랑’입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우리의 마음에 있을 때 우리는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참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새로움>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태 9,17)
늘
더욱
밝아오니
새 날
늘
더욱
굳건해지니
새 믿음
늘
더욱
솟아나니
새 희망
늘
더욱
타오르니
새 사랑
늘
더욱
뜨거워지니
새 열정
늘
더욱
여물어가니
새 나
늘
더욱
이루어가니
새 삶
오늘의 성인
성녀 마리아 고레티(Mary Goretti)
신분 : 동정 순교자
활동연도 : 1890-1902년
같은이름 : 고레띠, 고레티, 메리, 미리암
성녀 마리아 고레티(Maria Goretti)는 이탈리아 안코나(Ancona)의 코리날도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났는데 6남매 중의 맏이였다. 1896년 그녀의 집안은 갈리아노 교외의 콜레 지안투르코로, 그 다음에는 페리에레 디 콘카로 이사하였다.
이곳에 정착한 직후에 부친은 말라리아에 걸려 운명하니, 남은 식구들은 생계를 위하여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마리아는 상냥하고 침착하였고 또 예의바른 아이였고, 하느님의 크신 사랑과 기도, 순명 및 죄악에 대한 예민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 12살이 되지 않은 나이였으나 꽤 성숙한 편이었다.
1902년 5월 29일 그녀는 첫 영성체를 하였으며 그해 7월 어느 날 오후, 그날도 그녀는 집안 설거지를 하고 있었는데 이웃에 사는 알렉산데르란 청년이 자기 셔츠를 기워달라는 부탁을 하여, 그것을 손질하면서 베란다에 앉아 있었다.
이때 18세 된 알렉산데르가 올라와서 계획대로 문을 잠그고, 미리 준비한 수건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 그녀를 끌고 침실로 가려고 하였다. 그녀는 소리치며 완강히 버티었다. 그녀가 끝까지 항거하자 그는 이성을 잃고 마리아의 가슴을 마구 찔렀다.
그녀의 몸에는 14군데의 깊은 상처가 생겼고, 병원으로 옮겼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약 24시간 후에 운명하였다.
마지막으로 사제가 성체를 영해주면서 알렉산데르를 용서하겠느냐고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저 역시 그를 용서할 것이며, 그를 위하여 천국에서 기도할 것입니다.
저는 십자가 옆에 있던 강도처럼 그를 천국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 마디로 그녀는 정결을 지키기 위하여 순교한 것이다. 그녀는 1950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녀 고델리바 (Godeliva)
활동년도 : 1045-1070년
신분 : 순교자
지역 :
같은 이름 : 고델레바, 고들레바
성녀 고델리바는 아무런 죄 없이 고난 받는 자의 상징이자, 플랑드르(Flandre) 지방에서는 순교자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녀는 18세 때에 플랑드르의 귀족인 베르툴푸스(Bertulfus)와 결혼하였는데, 남편은 별다른 이유 없이 그녀를 멀리하고, 터무니없는 모욕을 주곤 하였다. 그녀의 부친과 그 지방 주교의 압력에 굴복한 남편이 아내에게 돌아왔으나 태도는 전과 같았다. 한번은 남편이 출타하면서 다른 이를 시켜 아내를 살해하고는 자연사를 가장하라는 음모를 꾸몄다. 그러나 남편은 유죄판결을 모면하였다. 그녀의 사후, 남편은 양심의 가책을 크게 느끼고 베르쥬-생-위녹 수도원에서 여생을 눈물로 지내다 죽었다.
성녀 고델리바가 죽으면서부터 남편 베르툴푸스(Bertulfus)는 회개하였는데, 그의 맹인 딸이 성녀 고델리바에게 기도하여 시력을 회복한 기적은 그 당시의 사회를 크게 감동시켰다. 1084년 그녀의 유해가 성당에 모셔지자마자 중요한 순례지가 되었는데, 순례자들은 그곳에 있는 그녀의 우물의 물을 먹으면 치유의 은혜를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성녀 고델리바가 순교자로 공경을 받는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성녀 도미니카 (Dominica)
활동년도 : +303년?
신분 : 동정순교자
지역 : 캄파니아(Campania)
같은 이름 : 도미니까, 치리아까, 치리아카, 키리아카
성녀 도미니카는 서방교회에 널리 알려진 성녀이지만 정확한 생애는 잘 모른다. 다만 로마 순교록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을 뿐이다. “캄파니아에는 동정 순교자인 성녀 도미니카가 있다. 도미니카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우상의 파괴자였다. 따라서 그녀는 맹수에게 던져지는 형을 받았다. 그런데 그녀는 전혀 상처를 입지 않았으므로, 결국은 참수되어 하느님의 품에 안겼다. 성녀의 유해는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Calabria)의 트로페아에서 큰 공경을 받고 있다.” 관리들의 기록에 의하면 그녀는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Campania)에서 태어났고,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고통을 당하였고, 그녀의 시신은 천사들에 의하여 트로페아로 옮겨졌다고 한다. 성녀 도미니카는 라틴어에서 같은 뜻을 가진 키리아카(Cyriaca, 또는 치리아카)로 부를 수도 있다.
성 이사야 (Isaiah)
활동년도 : +8세기BC
신분 : 구약인물, 예언자, 순교자
지역
같은 이름 : 이사이야
"야(훼님)는 구원"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성 이사야(Isaias)는 기원전 760년경 아모스라는 사라의 아들로 태어났다(이사 1,1). 이밖에 그의 가족이나 출신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다만 그가 사용하는 문체나 언어 기법, 도시인들이 즐겨 쓰는 은유, 또 예루살렘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 때문에 그를 이 도성 출신으로 추론할 수 있다. 임금이 궁궐 밖으로 시찰 나갔을 때 그가 어려움 없이 접근할 수 있었음으로 보아(7,3), 귀족이었다는 추측이 강하게 제기된다. 그렇지만 이 구절은 이사야가 귀족처럼 왕궁을 수시로 드나들 수 없었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다. 또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소명 환시를 근거로 이사야가 사제였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6장의 배경은 성전 안팎이 다 될 수 있다. 6장의 환시를 보기 위해서 이사야가 굳이 사제여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격조 높은 문체를 구사하고 강력한 웅변력을 발휘하는 이사야가 평범한 집안 이상의 출신으로 고급 교육까지 받았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기에 이사야가 임금이나 조정과 논쟁을 벌이고 그들의 종교, 정치, 사회 정책을 논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출신은 신학적으로 중요성을 지닌다. 이사야에게는 아모스나 호세아처럼 ‘광야 전통’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는 이집트 탈출 등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를 알지만 별다르게 언급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사실에서도 그가 시나이 계약과 함께 선택된 민족의 양 기둥을 이루는 다윗 계약(2사무 7장)을 강조하는 예루살렘에서, 그리고 왕실과 가까운 계층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리라고 짐작하는 것이다.
이사야의 사생활은 그의 사명 수행과 관련된 사항만 몇 가지 간략히 제시된다. 그는 ‘여예언자’와 혼인하는데 두 아들에게 모두 상징적 이름을 붙인다(7,3; 8,3). 자식들의 이름까지 동원하여 자기의 메시지를 가시적으로 선포하는 것이다(8,18). 이렇듯 이사야는 혼인과 가정 생활까지 통틀어 온몸으로 하느님 말씀 선포의 사명을 수행한다.
이사야 예언자는 “우찌야 왕이 죽던 해”(기원전 740년)에 소명을 받고(6,1) 그 뒤 세 임금의 치하에서 활동한다(1,1). 그에 대한 마지막 말을 듣게 되는 것은 아시리아의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위협하던 기원전 701년이다. 로마 순교록에는 이사야가 므나쎄 왕 시기(기원전 687-642)에 예루살렘에서 순교했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그를 순교자로 여기며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하지만 이사야 예언자가 순교했다는 전통은 성서에 언급된 것이 아니며 분명히 외경에 속한다(이사야의 승천; 에녹 11,37). 이사야서의 머리글(1,1)에 따르면 이사야가 박해자 므나쎄 왕 시기에는 살지 않았음이 확실하다. 그런데 므나쎄 왕은 온갖 외국 종교 관습을 끌어들였고, 야훼 신앙을 따르는 자들을 심하게 박해하였다. 바로 이 점에 근거하여 이사야가 순교했을 것이라고 여기지만 분명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