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와 가시나무
사람이 한세상을 살아가노라면 타인으로부터 상처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반면에 자신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비록 악의가 아닐지라도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는 경우가
인생살이에는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거듭난 그리스도인일지라도 우리안에는 여전히 쓴 뿌리가
존재할 수 있기에 자신안에 깊숙하게 뿌리 내린 가시로 인하여
누군가는 찔림을 받을 수 있는 상처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미주 장신대 총장이신 이상명 박사의 저서인“성서 인물에게서 듣다”를
도서관에서 발견하여 읽다가 인상적인 내용이 바로 가시와 가시나무입니다.
<성서는 가시라는 단어를 통해, 다른 이들 위에 군림하여 그들에게 폭거를
저지르는 무자비한 권력을 표현한다. 이럴 경우 단순한 가시가 아닌
가시나무로 형상화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이들을 위해 스스로 찔림의 대상이 되는
희생자와 대속자의 이미지와 짝을 이루기도 한다.
후자의 이미지는 인류의 구속을 위해 예수께서 쓰신 가시 면류관으로
형상화된다.(막15:17, 요19:2)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바울의 육체에 주신 사탄의 사자를 가르키는 가시도 있다.(고후12:7)
반면에 성경에 나오는 가시나무는(가시덤불) 늘 부정적 이미지다.(잠15;19)
주로 형벌, 무가치, 비생산적인 것을 강조하는데 쓰였다. >
백과사전은 가시나무를 설명하면서 흥미로운 해석을 합니다.
<가시나무라고 하면 으레 가시가 삐죽삐죽 나온 험상궂은 나무를 떠올린다.
우리가 흔히 쓰는 ‘가시나무’란 말은 특정 나무를 일컫는 말이 아니다.
가시가 달린 나무 모두에 포괄적으로 쓰인다.
그러나 수목 도감에서 찾아보면 실제로 가시나무가 있다.
그것도 가시가 전혀 달리지 않은 늘 푸른 잎의 참나무 종류다.>
한국인에게 가시나무의 이미지가 가시가 삐죽삐죽 나온 험상궂은 나무를
연상시키게 한 일등 공신은 아마도 아카시아 나무가 아닐까 싶습니다.
산림이나 사람에게 유익보다 해로운 영향이 더욱 많은 가시덤불 같이
인생을 살았던 성경 속의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아비멜렉이라는 사람입니다.
아비멜렉은 사사 기드온의 아들로서 첩의 소생입니다
그 부친이 죽은 후에 그가 자기의 형제 70인을 죽이고 왕이 되어
3년간 이스라엘을 치리하는중 형제 70인이 살해 당하는 중에서
모면한 요답이 비유로서 세겜 사람을 경고하는 내용은
그 유명한 나무 우화입니다.
하루는 나무들이 기름을 부어 자기들을 다스릴 왕을 세우려고
의결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감람나무(올리브)를 찾아가 왕이 되어 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러자 감람나무는 자신은 기름을 내는 일에 집중하겠노라며 거절합니다.
다음으로 무화과 나무에게 왕이 되어 주기를 요청합니다.
그러나 무화과나무 역시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일이 자신의 역할임을
내세우며 거절합니다. 나무들은 다음으로 포도나무를 찾아갔지만,
포도나무 역시 자신은 포도주를 내는 일을 감당할 것을 밝히며 거절합니다.
그렇게 해서 선택된 나무가 가시나무로서 그는 왕의 자리를 수락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만일 너희가 참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 위에 왕으로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사사기 9장 참조)
요담이 말한 가시나무는 아비멜렉을 빗댄 우화로서 결국 아비멜렉은
세겜인을 섬기는 군왕의 직임을 감당하기보다 군림하고 지배하는
전형적인 악한 왕의 야욕을 드러냅니다. 그는 3년 동안 통치하면서
동족 천명을 살상하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으킵니다.
나아가 그 자신도 한 여인이 던진 맷돌에 맞아 두개골이 깨지는
처참한 모습으로 인생의 막을 내리게 됩니다.
성경은 자신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향하여 사람을 살리며
생명을 살리는 지킴이로 살아가기를 요구합니다.
일컬어 의의 병기와 의의 일군이 되라 하십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로마서 6:13)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첫댓글 부지불식간에 내가 남에게 준 상처가 많을 텐데
그건 그냥 모르게 또 기억하지 못하고 지나갑니다.
그러나 내가 받은 상처는 꽁꽁 싸메두고
때를 따라 꺼내봅니다.
아픈 기억을 확대재생산 하기도 합니다.
죄로 인해 죽었던 죄인이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 받은 것은 감사하지 못하고....
오~,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