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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18일 목요일
[(녹)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평화를 베푸신다고 고백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은 모두 당신에게 오라고 하시며, 당신께서 안식을 주겠다고 하시고, 당신 멍에는 편하고 당신 짐은 가볍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먼지 속 주민들아, 깨어나 환호하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26,7-9.12.16-19
7 의인의 길은 올바릅니다. 당신께서 닦아 주신 의인의 행로는 올곧습니다.
8 당신의 판결에 따라 걷는 길에서도, 주님, 저희는 당신께 희망을 겁니다.
당신 이름 부르며 당신을 기억하는 것이 이 영혼의 소원입니다.
9 저의 영혼이 밤에 당신을 열망하며 저의 넋이 제 속에서 당신을 갈망합니다.
당신의 판결들이 이 땅에 미치면 누리의 주민들이 정의를 배우겠기 때문입니다.
12 주님, 당신께서는 저희에게 평화를 베푸십니다.
저희가 한 모든 일도 당신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신 것입니다.
16 주님, 사람들이 곤경 중에 당신을 찾고
당신의 징벌이 내렸을 때 그들은 기도를 쏟아 놓았습니다.
17 임신한 여인이 해산할 때가 닥쳐와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소리 지르듯
주님, 저희도 당신 앞에서 그러하였습니다.
18 저희가 임신하여 몸부림치며 해산하였지만 나온 것은 바람뿐.
저희는 이 땅에 구원을 이루지도 못하고
누리의 주민들을 출산하지도 못합니다.
19 당신의 죽은 이들이 살아나리이다. 그들의 주검이 일어서리이다.
먼지 속 주민들아, 깨어나 환호하여라.
당신의 이슬은 빛의 이슬이기에 땅은 그림자들을 다시 살려 출산하리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8-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 말씀에서 두 가지 표현이 두드러지게 눈에 들어옵니다.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예수님께 ‘와서(가서)’ 그분의 멍에를 메고 ‘배우는 삶’, 이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안식’을 얻는 방법입니다. ‘안식’을 뜻하는 그리스 말은 일차적으로 ‘쉬다’의 뜻도 있지만, ‘되살아나게 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안식은 단순히 ‘쉼’만이 아니라, 우리 영혼이 ‘다시 살아가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삶이 무겁고 힘들수록, 여러 이유로 신앙을 지키기 어려울수록, 예수님께 다가가는 신앙인이 됩시다. 그분과 함께하는 시간을 통하여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그분의 멍에를 메고 배우며, 우리가 다시 살아나도록 주님께서 마련하신 안식을 얻읍시다. 힘들고 어려워도 이러한 선택을 하지 않는 신앙인이 많습니다.
삶이 고단하고 믿음을 지키는 길이 매우 무겁게 느껴져도 예수님께 다가가지 않습니다. 일상을 멈추고, 평소에 하지 못하였던 것들을 실컷 하며, 그동안 ‘억눌린 욕구들을 채우는 시간’을 ‘안식’으로 착각하는 신앙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제1독서에서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당신의 판결에 따라 걷는 길에서도, 주님, 저희는 당신께 희망을 겁니다. 당신 이름 부르며 당신을 기억하는 것이, 이 영혼의 소원입니다.
저의 영혼이 밤에 당신을 열망하며, 저의 넋이 제 속에서 당신을 갈망합니다.” 참된 안식을 얻는 길은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신앙인이 참으로 위로받고 힘을 얻어야 할 곳은 바로 예수님께서 살아 계신 성체 앞입니다. 어디에서 또 누구에게 위로받습니까? 성체 앞에 머물며 주님께서 주시는 안식을 얻는 오늘 하루를 보내면 좋겠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아멘.(김재덕 베드로 신부)
갖은 시련 속에서도 하루 하루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비결!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우리가 이 한 세상 살아가면서 늘 쌩고생을 반복하고 무거운 삶의 무게에 허덕이는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묵상해봅니다.
한번 뿐인 소중한 인생이기에 매일 매순간을 축제 즐기듯, 수행여행 가듯 가슴 설레며 살아야 마땅한데, 어렵고 지루한 숙제처럼 여겨지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요?
그에 대한 명쾌한 정답이 오늘 복음에 잘 소개되고 있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을 가볍다.”(마태 11, 28-30)
우리가 이 좋은 세상, 이 좋은 시절을 힘겹게 살아가는 이유는 주님께로 나아가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시시각각 주님의 현존 안에 살면서도 그분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아서 그렇지 않을까요?
우리의 모든 것이신 주님께서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고, 내 인생 여정을 동반하시고, 내 인생 여정을 동반하신다는 진리를 잊지 않고 산다면, 그 어떤 수고나 고생, 시련과 상처에도 넉넉한 미소를 지으며 살아갈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바야흐로 100세 시대를 맞이하며 치매로 고생하는 어르신을 봉양하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늘 환하게 웃으며 열심히 기도만 하는 순한 치매도 있다지만, 그런 치매 환자는 백 만 명 중의 한명 꼴입니다.
현실은 어떻습니까? 수시로 의심하고, 공격하고, 다투고, 힘들게 합니다. 끊임없이 이리 저리 배회를 하고 가출을 시도합니다. 폭력과 욕설을 거듭하는 치매 환자도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케어하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의 노고가 만만치 않습니다. 하루하루가 지옥과도 같습니다. 대체 하느님 뭐하시나, 상태가 저 모양인데, 사람 노릇도 못하시는데, 빨리 데려가시지 않고, 이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런데 한 특별한 형제를 봤습니다. 어르신을 마치 사랑하는 아기 다루듯이 대하십니다. 동화책도 읽어드리고, 식사를 거부하시는 어르신을 살살 달래가며 법을 떠먹여 드립니다. 수시로 게임도 하고 퀴즈도 내며, 어르신과 함께 하는 하루를 놀이하듯 재미있고 기쁘게 지냅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 가족들, 또래 환자의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납니다. 두분 주변은 언제나 웃음꽃이 활짝 피어납니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것, 분명 무거운 짐이 확실합니다. 그들을 하루 온종이 케어한다는 것, 쌩고생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내 안에 주님께서 굳건히 현존하고 계시고, 그 어르신 안에도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믿는다면, 그 일을 기쁨이요 축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굳은 일, 힘든 일,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에도 큰 의미가 있음을 확신하고 기쁘고 행복한 얼굴로 임한다면, 그 일이 곧 복음화요 주님의 일이 될 것입니다.
결국 이런 고생 저런 시련 속에서도 하루 하루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은 우리가 매일 주님 앞으로 나아가며, 그분 현존 안에서 살아가며, 천진난만한 어린이처럼 주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겨드리는 것, 그것이 아닐까요?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마트에 가면 음식 시식코너가 있습니다. 과일을 주기도 하고, 떡갈비를 주기도 하고, 나물 비빔밥을 주기도 합니다. 물건을 사고 나오려는데 과일 시식 코너의 자매님이 제게 인사했습니다. 뉴저지에서 왔는데 아직까지 성당엘 못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사제복을 입었기에 저를 알아보았습니다. 저도 뉴욕에서 왔기에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자매님은 일이 정리되면 성당에 오겠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마트에서 일하는 교우들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모두 저를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성당에서 교우들을 만나는 것도 감사할 일이지만, 이렇게 삶의 현장에서 교우들을 만나는 것도 기쁨입니다. 댈러스 중앙일보 창간식에도 다녀왔습니다. 대표가 신자이기도 했고, 댈러스 오기 전에 저도 신문사에서 있었기 때문에 다녀왔습니다. 창간식에 온 분들 중에서 신자 분들은 제가 있는 테이블로 와서 인사했습니다. 타 지역에서 왔기에 저를 처음 보았지만, 제가 사제이기 때문에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마트와 신문사 창간식을 다녀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신자들이, 좋은 사제를 만들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좋은 사제들이 좋은 신자를 만들지 않을까?” 교우들이 최고경영자로서 사제를 맞이하려고 하면 사제는 성공과 긍정의 말씀을 선포할 것입니다. 그러나 교우들이 선포자로서 사제를 맞이하려고 하면 사제는 십자가와 겸손의 말씀을 선포할 것입니다. 밀알 하나로 남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 많은 열매를 맺는 밀알이 되는 말씀을 선포할 것입니다. 성공과 부흥의 말씀은 파장이 되어 잠시 머물겠지만, 십자가와 겸손의 말씀은 가슴에 남아 행동의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부주임 신부님이 토요일마다 청년 교리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1명이나 2명이 함께 했는데 요즘은 15명이 넘게 온다고 합니다. 미사 후에 친교를 나누는 모임도 시작했는데 그 모임도 청년들이 함께 한다고 합니다. 말씀과 친교를 함께 하니 청년들이 말씀에서 힘을 얻고, 친교를 통해서 우정을 나눈다고 합니다. 지치지 않고, 꾸준히 말씀을 나누니, 청년들이 그에 호응하였습니다. 친교는 빠질지라도, 교리는 빠지지 않는 청년들이 늘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좋은 사제 곁에는 좋은 신자들이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님, 사람들이 곤경 중에 당신을 찾고, 당신의 징벌이 내렸을 때 그들은 기도를 쏟아 놓았습니다. 임신한 여인이 해산할 때가 닥쳐와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소리 지르듯, 주님, 저희도 당신 앞에서 그러하였습니다. 의인의 길은 올바릅니다. 당신께서 닦아 주신 의인의 행로는 올곧습니다. 당신의 판결에 따라 걷는 길에서도, 주님, 저희는 당신께 희망을 겁니다. 당신 이름 부르며 당신을 기억하는 것이 이 영혼의 소원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배를 떠났을 때 활동하던 예언자입니다. 강대한 나라의 침략으로 나라를 빼앗기고,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유배를 떠나는 유대인들은 절망과 허탈감이 가득했습니다. 자신들의 잘못 때문에 하느님께서 징벌을 내리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예언자는 백성들에게 희망을 이야기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잊지 않고 있다고 말을 합니다. 언젠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 갈 수 있고, 흩어졌던 백성들이 함께 모여서 행복하게 살날이 올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우리 속담에 ‘밑 빠진 독에 물 붇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도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하루 24시간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하고, 가족들과 대화를 하고, 책을 읽고,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 피정을 하면서 시간을 사용합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본인만을 위해서, 욕망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누군가를 시기하고 험담하면서, 음주와 도박을 하면서 시간을 사용합니다. 처음은 별로 표시가 나지 않겠지만 한쪽은 안전한 곳간에 재물을 쌓은 사람과 같고 다른 한 쪽은 깨진 독에 물을 부은 것과 같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가장 안전한 곳간을 말해 주고 계십니다. 어떤 폭풍우가 몰아쳐도, 고난과 고통이 찾아와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안전한 곳을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재물은 함께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친구들은 빈소에 와서 울어 주기는 할 것입니다. 가족들은 장지에 와서 우리를 묻어 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끝까지 함께 하시는 분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뿐이십니다. 그러기에 오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사람이라는 멍에와 짐>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30)
사람이
있습니다
나를 믿고
나를 바라고
나를 사랑하시는
나의 님께서
내게 메어주신
멍에입니다
작으니
편합니다
사람이
있습니다
나를 믿고
나를 바라고
나를 사랑하시는
나의 님께서
내게 지워주신
짐입니다
보잘것없으니
가볍습니다
오늘의 성인
성 브루노(Bruno)
신분 : 주교
활동지역 : 세니(Segni)
활동연도 : 1049-1123년
이탈리아 피에몬테(Piemonte) 지방의 귀족 가문 태생으로 솔레로에서 출생한 성 브루노는 볼로냐(Bologna)에서 수학하였고, 로마 회의에서 베렌가리오를 상대로 하여 성체성사에 관한 교회의 교리를 옹호하였다.
그는 1080년에 세니의 주교로 임명되었으며, 또한 뛰어난 성서학자이던 그는 성직매매와 평신도 서임권을 반박하고,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와 더불어 교회 개혁을 추진하였으며, 헨리쿠스 4세(Henricus IV) 황제의 추종자인 아이눌프 백작의 적의를 분쇄하였다.
1095년 그는 자신의 주교좌를 사임하고 몬테카시노(Monte Cassino)의 수도자가 되었으나, 세니 교구민들의 반대로 어쩔 수 없이 그의 사임을 철회하였으나 몬테카시노에서 그대로 생활하였다.
1183년에 시성되었다.
브루노는 '갑옷'이란 뜻이다.
삐에드몽의 귀족 가문 태생으로 솔레로에서 출생한 브누로는 볼로냐에서 수학하였고, 로마 회의에서 베렌가리오를 상대로 하여 성체성사에 관한 교회의 교리를 옹호하였다.
그는 1080년에 세니의 주교로 임명되었으며, 또한 뛰어난 성서학자이던 그는 성직매매와 평신도 서임권을 반박하고, 성 그레고리오와 더불어 교회 개혁을 추진하였으며, 헨리 4세 황제의 추종자인 아이눌프 백작의 적의를 분쇄하였다.
1095년, 그는 자신의 주교좌를 사임하고 몬떼 까시노의 수도자가 되었으나, 세니 교구민들의 반대로 어쩔 수 없이 그의 사임을 철회하였으나, 몬떼 까시노에 그대로 생활하였다.
1183년에 시성되었다.
ㅡ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ㅡ
성 시몬(Simon)
신분 : 신부, 설교가
활동지역 : 리프니카(Lipnica)
활동연도 : 1435/1440-1482년
같은이름 : 사이먼
성 시몬은 1435-1440년 사이에 폴란드 남부의 리프니카 무로바나(Lipnica Murowana)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인 그레고리우스(Gregorius)와 안나(Anna)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치를 반영한 좋은 교육을 어떻게 그에게 해줄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들은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시몬을 안전하게 돌보고 적절한 교양을 쌓을 수 있도록 했다. 시몬은 신앙심 깊고 책임감 있는 본성을 갖고 성장했고, 타고난 성품의 풍요로움은 기도 생활과 하느님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으로 기울도록 했다.
그는 1454년 유명한 야기엘로니아(Jagiellonia) 대학에 다니기 위해 고향에서 멀지 않은 크라쿠프(Krakow)로 갔다. 바로 그 해에 카피스트라노(Capistrano)의 성 요한(Joannes, 10월 23일)이 크라쿠프에 와서 성덕과 열정적인 설교로 시민들을 감동시켰고, 젊은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많은 이들을 작은 형제회의 성소자로 불러들였다. 1453년 9월 8일 카피스트라노의 성 요한은 3년 전에 시성된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누스(Bernardinus, 5월 20일)의 이름을 따서 크라쿠프에 첫 번째 엄률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수도원에 사는 작은 형제회 수사들을 ‘베르나르디니’(Bernardini)라고 불렀다.
1457년 젊은 청년 시몬은 작은 형제회의 이상에 매혹되어 복음서에서 언급된 가장 값진 진주를 얻기 위해 성공과 부유한 미래의 가능성을 뒤로하고 수도생활을 선택하였다. 그는 다른 10명의 동료 학생들과 함께 크라쿠프의 스타라돔(Stradom) 지구에 있는 성 베르나르디누스 수도원에 입회를 청했다. 가르침과 성덕에 있어서 높은 명성을 지닌 바레세(Varese)의 크리스토포루스(Christophorus) 수련장 수사의 현명한 지도하에 시몬은 작은 형제회의 겸손하고 가난한 삶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1460년경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시몬 수사신부는 폴란드 남동부 타르누프(Tarnuw)에서 첫 번째 사도직을 수행하였다. 그 후 그는 크라쿠프의 스트라돔 지구에서 명백한 말씀으로 설교하고 충만한 열정과 신앙과 지혜를 가지고 끊임없이 자신을 헌신하여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와 성경에 대한 오랜 연구를 통해 가능했다.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누스와 카피스트라노의 성 요한과 같이 시몬 형제는 ‘예수 성명’(Holy Name) 신심을 전파하는데 주력하여 셀 수 없이 많은 죄인들의 회개를 가져왔다. 그는 1463년에 작은 형제회에서는 처음으로 바벨(Wawel) 주교좌성당에서 설교할 수 있는 직분을 받았다. 복음을 설교하는 그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인해 옛 자료들은 그에게 ‘가장 열렬한 설교자’(praedicator ferventissimus)라는 칭호를 부여하였다.
시몬 형제는 자신의 설교에 영감을 주었던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누스를 존경하는 열망으로 몇몇 폴란드 동료들과 함께 1472년 5월 17일 성인의 이름으로 설립된 새 성당에 성인의 유해를 장엄하게 이장하는 행렬에 참가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아퀼라(Aquila)를 방문했다. 그리고 1478년에 파비아(Pavia)에서 열린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이탈리아를 찾았다. 회의를 마친 다음 그는 로마(Roma)로 가서 사도들의 무덤을 방문함으로써 자신의 가장 깊은 열망을 만족시킬 수 있었고, 이어서 예루살렘 성지로 자신의 순례를 연장하였다. 시몬 형제는 만약 하느님께서 기뻐하신다면 영혼 구원을 위해 자신의 피를 흘리고 싶다는 열망을 간직한 채 참회의 정신과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진정한 사랑으로 순례에 나섰다. 그는 성지에 대한 사랑에 있어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를 본받고자 했다.
하느님의 백성에 대한 시몬 형제의 사랑은 그의 생애 마지막 해에 크라쿠프에 유행성 전염병이 발발했을 때 비범한 방법으로 분명히 드러났다. 크라쿠프는 1482년 7월부터 1483년 1월 6일까지 유행성 전염병의 대재난에 처했었다. 성 베르나르디누스 수도원의 작은 형제회 수사들은 진정한 위로의 천사로서 병자들을 돌보기 위해 쉼 없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시몬 형제는 애덕을 실천하고 봉헌된 삶을 완성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을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어느 곳이든 찾아가서 병자들을 위로하고 구호하며 성사를 집전하고 죽어가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위로의 말씀을 전하였다. 결국 그 역시 전염병에 감염되고 말았다. 그는 놀라운 인내로써 질병의 고통을 견디어냈고, 마지막에 임박해서는 모든 이들이 자신을 밟고 지나갈 수 있도록 성당 문지방 아래 묻어달라는 소망을 표현하였다. 1482년 7월 18일, 전염병에 감염된 지 6일째 되던 날 그는 죽음의 두려움도 없이 자신의 눈을 십자고상에 고정한 채 하느님께 자신의 영혼을 돌려드렸다.
시몬 형제에 대한 공적인 공경은 1685년 2월 24일 교황 복자 인노켄티우스 11세(Innocentius XI)에 의해 승인되었고, 공식적인 시성 절차는 1948년 6월 25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 때 시작되었다. 그의 영웅적인 덕행과 전구를 통해 1943년 크라쿠프에서 일어났던 기적적인 치유가 사실로 드러나자 2005년 12월 19일과 2006년 12월 16일에 교황 베네딕투스 16세(Benedictus XVI)는 이를 공식적으로 확인하였다. 그리고 2007년 6월 3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다른 세 명의 복자들과 함께 시성식을 갖고 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성녀 마리나 (Marina)
활동년도 : +연대미상
신분 : 동정 순교자
지역 : 오렌세(Orense)
같은 이름 :
비록 모든 기록이 사라졌으나 로마 순교록이 기록하기를 성녀 마리나는 에스파냐 갈리시아(Galicia) 지방의 오렌세에서 순교하였다고 한다. 그녀의 이름은 바로니우스(Baronius)에 의한 순교록의 두 번째 개정에서 추가되었다. 교회 미술에서 성녀 마리나는 요람에 있는 아기와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녀는 특히 갈리시아 지방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