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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26일 금요일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요아킴 성인과 안나 성녀는 다윗 가문의 유다 지파에서 태어났다. 전승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 안나 성녀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었으나, 요아킴 성인이 광야에서 40일 동안 단식한 뒤 하느님의 섭리로 마리아가 탄생하였다고 한다. 안나 성녀에 대한 공경은 6세기부터 동방 교회에서 시작되어 10세기에는 서방 교회에 두루 퍼졌다. 요아킴 성인에 대한 공경은 훨씬 뒤에 시작되었다.
말씀의 초대
예레미야 예언자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주님의 옥좌’라 부르고, 모든 민족들이 주님의 이름을 찾아 예루살렘에 모일 날이 오리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설명하시며,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내가 너희에게 내 마음에 드는 목자들을 보내리니 모든 민족들이 예루살렘에 모일 것이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3,14-17
14 배반한 자식들아, 돌아오너라.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너희의 주인이다. 나는 너희를 이 성읍에서 하나,
저 가문에서 둘씩 끌어내어 시온으로 데려오겠다.
15 내가 너희에게 내 마음에 드는 목자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너희를 지식과 슬기로 돌볼 것이다.
16 너희가 그날 그 땅에서 불어나고 번성하게 될 때, ─ 주님의 말씀이다. ─
사람들은 더 이상 주님의 계약 궤에 대하여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마음에 떠올리거나 기억하거나 찾지 않을 것이며,
다시 만들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17 그때에 그들은 예루살렘을 ‘주님의 옥좌’라 부를 것이고,
모든 민족들이 주님의 이름을 찾아 예루살렘에 모일 것이다.
그러고는 더 이상 자신들의 악한 마음을 고집스럽게 따르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은 열매를 맺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8-2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8 “너희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새겨들어라.
19 누구든지 하늘 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길에 뿌려진 씨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20 돌밭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21 그러나 그 사람 안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그는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22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23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집회 44,1.10-15)와 복음(마태 13,16-17)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때때로 많은 신자가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 말씀이 삶에서 무엇을 포기하거나 바꾸도록 요구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만일 의사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요구한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살려면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것을 포기하여야 하고, 몸에 밴 습관을 바꾸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면 말입니다.
그때 의사의 말을 듣고 그저 가만히만 있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의사의 말을 곰곰이 되뇌며 생각과 삶의 태도를 바꾸도록 애쓰겠지요. 왜일까요? 바로 ‘살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그러면 영원한 생명과 하느님 나라를 준비시키는 하느님의 말씀은 여러분에게 어떤 힘을 일으키나요? 예수님의 비유를 살펴봅시다. 길, 돌밭, 가시덤불, 좋은 땅으로 비유된 것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모두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좋은 땅을 가진 사람은 들음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길, 돌밭, 가시덤불이 가지지 못한 아주 특별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깨달음입니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들음으로써 ‘깨달음’을 얻어, 생각과 삶이 변화되는 열매를 맺습니다. 과연 무엇에 대한 깨달음일까요? 바로 ‘하느님 나라’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우리의 삶은 이 세상의 삶으로 끝나지 않고, 하느님과 영원히 함께하는 하느님 나라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깨달음입니다. 말씀으로 자신의 ‘구원’을 바라보게 되고, ‘살고자’, ‘생명을 얻고자’ 아무리 어렵고 힘든 말씀도 기어코 열매로 맺어 냅니다. 마치 환자가 ‘생명을 얻고자’ 의사의 아무리 어려운 지시 사항도 모두 해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오늘 복음이 알려 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내용을 주의 깊게 살펴봅시다. “누구든지 하늘 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악마는 어떻게든 우리 마음에서 하느님 말씀을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악마에게 하느님 말씀을 빼앗긴 이들은 믿음으로 하느님 나라를 바라보지 못합니다.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전혀 떠올리지 않고 살아갑니다. 믿음은 오로지 현세적인 것만을 얻으려는 도구로 쓸 뿐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런 신앙인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1코린 15,19).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구원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여 보십시오. 그분의 말씀을 외면하며 살아도 영원한 생명을 얻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지, 하느님 말씀이 내 안에서 싹 사라져 버린 삶이 참으로 하느님 나라를 준비하고 있는 삶인지 성체 앞에 앉아 곰곰이 생각하여 보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깨달음’을 일으켜 말씀이 열매를 맺는 은총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아멘.(김재덕 베드로 신부)
누군가의 부모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행복인지?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혈육의 부모로 살지는 않았지만, 수도자들과 교우들의 영적 아버지 역할을 하면서 조금이나마 부모의 심정을 이해할수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부모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요 기쁨인지? 반대로 부모 역할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노고와 인내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자녀가 아플때 부모의 마음은 찢어집니다. 자녀가 방황할때 부모 역시 산란한 마음을 어찌할바 몰라 잠못 이룹니다. 자녀가 환하게 웃을때 부모도 덩달아 행복합니다.
오늘 기념일을 맞이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요아킴과 안나의 마음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주님으로부터 총애를 받고 그 결과 동정 잉태라는 놀라운 초대를 받았을 때, 두분의 마음도 함께 설레고 뛰놀았을 것입니다.
동시에 피앗! 이라고 외침과 동시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의 생애 앞에 펼쳐진 통상적이지 않은 수많은 사건들을 바라보며 안나와 요아킴의 마음은 바짝바짝 타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주님 말씀에 충실했던 마리아의 부모답게 요아킴과 안나 역시 주님 말씀을 씹고 곱씹고, 묵상하고 또 묵상하면서 주님 말씀이 자신 안에 이루어지도록 열렬히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언제나 주님의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님 말씀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살았던 안나와 요아킴의 생애는 이 세상 어떤 밭보다 기름지고 풍요로웠던 토양이었습니다. 그 비옥한 토양 위에 성장한 한 그루 아름다운 나무가 바로 복되신 동정 성모 마리아였습니다.
무엇이든 끝까지 이루어내는 사람의 비밀.
전삼용 요셉 신부님
오늘 복음은 씨 뿌리는 농부 비유의 해설입니다. 예수님은 길은 말씀을 듣고도 깨달으려 하지 않는 교만한 마음, 그리고 돌밭은 육체적 기분에 따라 사는 사람, 가시밭은 돈에 대한 욕심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그들 안에서는 말씀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말씀을 듣고 많은 열매를 맺으려는 영웅적인 의지입니다.
영화 ‘박하사탕’은 세상에서 성공하고 싶었지만, 교만과 음란함, 그리고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게 된 사람의 일생을 담았습니다. 반면 세상에서 자수성가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도 모르게 이 세속-육신-마귀를 이깁니다. 이것을 이기지 않고 성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이 교만함을 어떻게 이길까요? 자기 처지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이깁니다. 1990년대 CIA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말단 직원 ‘카멘’이라는 여성은 매우 능력자였습니다. CIA에서 일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일의 효율이 오르지 않는 것에 대한 문제를 찾아냅니다. 그래서 하루 3시간 정도는 부처마다 실시간 정보 공유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물론 이 주장은 무시당하였습니다. 정보 유출 위험이 크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카멘이 그럼에도 계속 그러한 주장을 하자 친구들까지도 그녀를 멀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극소수의 사람들은 아직 때가 아니니 힘을 키우고 능력을 보여주며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는 위치에 먼저 서는 게 중요하다고 간언하였습니다.
3년이 지나자 인정받는 직위에 오르고 능력을 인정받은 다음 그녀는 다시 그러한 제안을 하였고 결국 사내 내부자용 ‘인텔리피디아’를 만들어냅니다.
자기 처지를 깨닫지 못하고 교만한 상황에서는 금방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처지를 깨닫고 나니 기다릴 줄 알게 되었고 그동안 자기 생각을 더 구체적으로 재정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자수성가하는 사람들이 저절로 겸손해지는 이유입니다.
그다음은 육체적 욕망에 따라 기뻤다가 슬펐다가 하는 스트레스를 줄이는 일이 필요합니다. 기러기는 혼자서는 40,000킬로미터를 날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함께라면 가능합니다.
혼자 성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 뜻을 함께 이뤄줄 공동체를 찾습니다. 그 공동체에 있으면 혼자서는 포기하고 싶어도 그들을 보아서라도 포기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인간의 나약함을 안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끝까지 가게 만들 시스템에 자신을 몰아넣습니다. 이는 마치 열쇠공이 잠긴 문을 여는 과정과 같습니다. 수많은 열쇠를 꽂지만 지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것 하나는 맞을 거란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이 있는 공동체와 함께라면 지치는 일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는 탐욕이라는 가시밭을 벗어나야 합니다.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일한다면 오래가지 못합니다. 실패했을 때의 고통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잠깐만 게임을 못 하게 하거나 한 끼만 굶겨도 죽을 듯이 고통스러워합니다. 자기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기적인 사람들은 충분히 이겨나갈 고통도 못 살겠다며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만약 세상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큰 꿈이 있다면 어떨까요? 나의 손해는 큰 것이 아니게 됩니다. 그래서 참아나갈 수 있습니다. 아이보다 부모가 더 잘 참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나 자신만의 생존을 위한 삶이 아닌 자녀를 키워내야 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공한 모든 사람은 다 세상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모든 실패를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신앙에서 적용되는 법칙이 이 세상의 성공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결국 마귀-육신-세속의 욕망을 이겨내지 못하면 이 세상에서도 성공하지 못하고 천국에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깨닫고 이 세상에서도 원하는 것을 이뤄내고 천국에도 들어가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이스라엘이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 중에 ‘아이언 돔(Iron Dome)'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국을 향해서 날아오는 로켓포와 미사일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아이언 돔을 개발하였습니다. 실전에 배치된 아이언 돔은 이스라엘을 향해 날아오는 로켓포와 미사일을 요격하는 성능을 보여주었습니다. 2023년 10월에 하마스는 수천발의 로켓포를 이스라엘 영공을 향해 발사했고, 아이언 돔은 모두 막아내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언 돔을 개발하는 것보다, 가자지구에 평화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아이언 돔에서 발사되는 미사일 하나의 가격은 일억 원이 넘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이사야2, 4)” 우리는 남과 북에서도 슬픈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남한의 탈북단체들은 북한이 싫어하는 전단을 만들어 풍선으로 날려 보내고 있습니다. 북한은 그에 대한 대응으로 오물을 담은 풍선을 남쪽으로 날려 보내고 있습니다. 인터넷과 검색의 시대에 웃지 못 할 슬픈 자화상입니다. 전단과 오물을 날려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남한의 기술을 북으로 보내고, 북한의 인력을 남으로 보내면 좋겠습니다. 개성 공단을 재개하고, 금강산 관광도 다시 열면 좋겠습니다. 남과 북을 연결하는 도로와 철도가 개통하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전단과 오물을 보내는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현대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암입니다. 암은 암을 유발하는 물질이 우리의 몸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아이언 돔처럼 우리의 몸에 들어온 암세포를 막아내는 방어 시스템이 있습니다. 그것은 면역체계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몸에 들어온 독성 물질을 막아내고 있습니다. CT와 MRI로 찾아낼 수 있는 암세포의 크기는 한계가 있다고 합니다. 아주 작은 암세포는 그런 검사로 찾아내지 못한다고 합니다.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암세포를 찾아서 막아낸다면 우리는 암세포가 있다고 할지라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면역체계는 유전적으로 물려받는 선천적인 요소와 환경적인 요소가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선천적으로 좋은 면역체계를 물려받았다고 해도, 후천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합니다. 반면에 선천적인 면역체계는 부족할지라도 후천적으로 노력하면 건강한 몸을 유지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긍정적인 생각과 이웃에 대한 헌신은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을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도파민은 우리의 면역체계에 큰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적당한 운동과 균형 잡힌 식사는 우리의 면역체계에 큰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한국인에게 발생 빈도가 높아지는 암 중에 ‘대장암’이 있다고 합니다. 육류위주의 식사 대신에 우리의 전통적인 식사를 하기만 해도 대장암 발병률을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콩을 사용한 단백질 섭취와 나물과 해초를 곁들인 식단이 좋다고 합니다.
세례는 악의 세력을 막아낼 수 있는 신앙의 면역체계입니다. 세례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주어지는 선척적인 면역체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100% 악의 유혹을 물리치기 어렵습니다. 후천적인 우리의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 신앙의 면역체계를 증진시키는 커다란 힘입니다. 하느님의 말씀도 우리 신앙의 면역체계를 높이는 힘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할 수 있다면 우리 신앙의 면역체계는 악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기도, 말씀, 실천’은 어떠한 악의 유혹도 물리칠 수 있는 ‘Faith Dome'입니다. 이런 신앙의 면역체계를 가진 사람은 유혹에 약한 이웃을 도울 수 있습니다. 초 한 자루가 캄캄한 밤을 밝힐 수 있듯이, 신앙의 면역체계가 강한 사람은 공동체를 악의 유혹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오늘의 성인
성녀 안나 (Anne)축일
활동년도 : +1세기
신분 : 성모의 모친
지역
같은 이름 : 낸시, 니나, 애나, 애니, 앤
성 요아킴 (Joachim)
활동년도 : +1세기
신분 : 성모의 부친
지역 :
같은 이름 : 요아힘, 조아킴
성모 마리아(Maria)의 부모인 성 요아킴(Joachim)과 성녀 안나(Anna)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일체 언급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 이외의 전승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170-180년경에 쓰여진 “야고보 원복음서”(Protoevangelium Jacobi)는 비록 교회에서 위경(Apocrypha)으로 간주되지만, 마리아의 부모에 대해서 귀중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실제 이 책은 초대교회에 널리 퍼져 있었던 작품일 뿐만 아니라, 마리아의 어린 시절을 다루고 있어 마리아에 대한 공경에 한몫을 하였다. 물론 교회에서 위경으로 간주한 만큼 이 책에 실린 모든 내용이 역사적으로 실제 벌어졌던 일들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야고보 원복음서”에 따르면, 성 요아킴은 부유하고 이스라엘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성녀 안나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 이들에게 흠이라고는 결혼한 지 오래되었지만 아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에서 아이가 없다는 것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상태로 여겨지기 때문에, 요아킴은 시무룩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 문제로 하느님께 단식하며 기도드리기로 결심하고는 광야로 갔다. 그 동안 집에 홀로 남겨진 성녀 안나 또한 주님 앞에서 울며 탄식 기도를 바쳤다.
이 부부의 간절한 기도는 곧바로 응답을 받았다. 한 천사가 성녀 안나에게 나타나 그가 잉태하여 낳은 아이는 온 세상에 이름을 떨칠 것이라고 예고해 주었다. 이에 성녀 안나는 그 아이를 주님께 봉헌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광야에서 기도하던 중 이와 비슷한 환시를 본 성 요아킴 역시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는 딸을 낳았고, 안나는 아기에게 마리아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아이가 3세가 되었을 때,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는 하느님께 약속한 대로 마리아를 예루살렘 성전으로 데려가 그곳에서 양육받도록 맡겼다고 한다.
성모 마리아의 축일과 함께 마리아를 하느님께 봉헌한 어머니 안나와 아버지 요아킴의 축일도 생겨났다. 그리고 많은 교부들이 “야고보 원복음서”를 즐겨 인용하면서 이러한 경향이 고조되었다. 원래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를 기념하는 축일은 9월 9일이었다. 이를 기념하는 전례가 6세기 동방 교회를 거쳐 8세기 이후에 로마로 도입되었고, 14세기에는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6세기에 콘스탄티노플과 예루살렘에 성녀 안나를 기념하는 성당이 건축되었고, 중세 시대 유럽에 성녀 안나에게 봉헌되는 성당들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성모 마리아의 부모에 대한 공경을 확산시켰다. 그 결과 1584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Gregorius XIII)가 7월 26일을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의 기념 축일로 지정하였다.
이처럼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가 일반인들에게 특별한 공경을 받는 성인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 가정에서 발견할 수 없는 결혼 생활을 모범을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의 가정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예전에는 대가족 제도였기 때문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포함되지 않는 가정상이 낯설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마리아의 부모까지 포함시켜 성가정을 이루는 것이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교회 미술 작품에서 성녀 안나는 주로 영원하고 신적인 사랑을 상징하는 초록색 망토와 빨간 색 드레스를 입은 모습으로 표현되며, 책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반면, 성 요아킴의 상징은 성전에서 행하던 그의 경건한 제사와 관련되어 어린 양, 백합, 새장 속의 비둘기 등이다.
성녀 바르톨로메아 카피타니오 (Bartholomea Capitanio)
활동년도 : 1807-1833년
신분 : 설립자
지역 :
같은 이름 : 바르똘로메아, 카피타니오
성녀 바르톨로메아 카피타니오와 성녀 빈첸시아 제로사(Vincentia Gerosa, 6월 28일)는 이탈리아 롬바르디아(Lombardia)의 로베레(Lovere) 출신으로, 서로 힘을 합쳐서 고향 땅에 ‘로베레의 애덕회’를 설립하였다. 그들은 그토록 많은 주민들이 무지와 게으름 속에 사는 것에 대하여 큰 충격을 받고,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병자들을 간호하는 수녀회를 세웠다. 이 수녀회는 성 빈첸시오 데 바오로의 수도 규칙을 기초로 삼았다. 성녀 빈첸시아가 성녀 바르톨로메아를 알게 되었을 때의 나이가 40세였으나 성녀 바르톨로메아는 불과 26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만남은 놀라운 자제력과 이해력의 표상이 되었고, 그들이 세운 수녀회는 급속도로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