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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8일 목요일
[(백)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도미니코 성인은 1170년 무렵 에스파냐 칼레루에가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성덕을 쌓는 데 몰두하던 그는 사제가 되어 하느님 말씀을 열정적으로 설교하여 사람들을 회개의 길로 이끌었다. 그는 1206년 설교와 종교 교육을 주로 담당하는 설교자회(도미니코 수도회)를 세우고, 청빈한 삶과 설교로 복음의 진리를 철저히 탐구하도록 독려하였다. 1221년에 선종한 그를 1234년 그레고리오 9세 교황이 시성하였다.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예레미야 예언자에게, 그날이 오면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겠다고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베드로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나는 새 계약을 맺고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31,31-34
31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겠다.
32 그것은 내가 그 조상들의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에
그들과 맺었던 계약과는 다르다.
그들은 내가 저희 남편인데도 내 계약을 깨뜨렸다.
주님의 말씀이다.
33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집안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34 그때에는 더 이상 아무도 자기 이웃에게, 아무도 자기 형제에게
“주님을 알아라.” 하고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모두 나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3-23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20 그런 다음 제자들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21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22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2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1코린 2,1-10ㄱ)와 복음(루카 9,57-62)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마태 16,17) 예수님을 알게 하여 주신 베드로가 부러웠습니다. 그분께서 누구이신지 알려고 애써 노력하여도 다 알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라고 고백한다고 하여도 그 말을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처지인데, 베드로는 하느님께서 비추어 주셨으니 복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사탄이라고 하시는 것을 보고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한편으로 생각하여 볼 때, 그것은 베드로의 나약함입니다. 하느님께서 비추어 주신 사람이라도, 인간적인 생각을 앞세울 때는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하늘 나라의 열쇠까지 받았다 하더라도, 내가 하느님 안에 있고 내 생각이 곧 하느님의 생각이라고 자만할 수는 없습니다. 늘 내 안에 들어와 계시는 하느님의 생각과 나의 인간적인 생각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것이 현세에서 겪는 삶이겠지요.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여기에서 베드로의 강인함이 드러납니다. 그는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16,23)라는 말씀을 듣고도 물러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칭찬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실 때만 그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라고 꾸짖으실 때도 그분께 매달리고 끈질기게 달라붙습니다. 예수님께 좋은 말씀만 들으려고 하지 않고, 지금 “사람의 일”(16,23)에 집착하여 하느님의 계획을 그르치고 있다는 것을 숨김없이 드러내 보여 주실 때도 그분을 피하여 도망가지 않는 것, 어쩌면 그래서 베드로가 반석이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가진 흠을 짚어 주실 때 그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 믿음, 그것으로써 베드로는 교회의 기초가 될 수 있었습니다.(안소근 실비아 수녀)
총애받던 수제자의 모습에서 초라한 사탄 한 마리로 급전락한 이유!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주님께서는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당신의 백성과 교회를 위해 당신의 자비와 권능을 드러내는 표시를 보여주십니다. 그 가장 대표적인 예가 그 시기에 딱 맞는 성인들의 출현입니다.
교회가 갈팡질팡하며 총체적 난국 속에 허덕이던 중세 시기, 주님께서는 방황하던 당신의 양들을 위해 착한 목자이자 명설교가 도미니코 사제를 선물로 보내주셨습니다. 그는 때로 논리정연하면서도 감동적인 설교, 때로 벼락이요 철퇴 같은 강렬한 말씀 선포로 이단들을 물리쳤고, 교우들을 구원과 생명의 길로 인도하였습니다.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이 시대는 또 다른 도미니코 사제와 같은 명설교가를 요청합니다. 사실 우리 사제들은 다들 모두 명강론을 하고 싶어합니다. 감동을 주고, 눈물을 흘리게 하고, 그 자리에서 회개를 하게 만드는 그런 강론을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그게 마음 같지 않습니다. 이 시대는 넘치는 자료들의 홍수 시대입니다.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유명 강사들의 명강의가 내 손안에서 펼쳐집니다. 고리타분한 강론 외에도 얼마나 많은 즐길 꺼리들로 넘쳐나는지 모릅니다.
뭔가 말 좀 해보려 시도를 하면, 즉시 눈을 감아버리고 딴전을 피우는 사람들 앞에서 강론을 계속한다는 것, 참 난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2차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르면 강론은 우리 사제가 교우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중에 하나입니다. 공의회는 강조합니다. 좋은 강론이 되기 위해서는 성경에서 출발해서 성경을 주제로, 성경으로 마무리되어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청중들 지루해 죽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처지를 고려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파악이 중요합니다. 그들이 매일 겪는 기쁨과 슬픔, 고통과 눈물과 동떨어진 강론은 백퍼센트 실패입니다.
너무나 강론하기 힘든 시대, 그러나 희망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교우들이 사제들의 강론을 간절히 고대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강론을 준비하기 힘든 이 시대, 얼마나 많은 사제들이 강론에 진심인지 모릅니다.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교우들에게 우리 사제들께서 시원한 청량 음료 같은 강론으로 그들을 위로하고 기쁨을 주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주는 그런 여름이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주님으로부터 반석 소리를 들으며 사도단의 에이스로서 천국의 열쇠까지 건네받았던 베드로 사도였습니다.
그런데 단 1분도 지나지 않아 주님으로부터 총애받던 수제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흉측하고 초라한 사탄 한 마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순식간에 주님 나라의 충신에서 역적으로 둔갑한 것입니다.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답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그가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성공과 영예, 박수갈채에만 몰두했지, 주님 나라에 입국하기 위한 희생과 헌신, 고통과 십자가 죽음을 철저히 외면했던 것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우리는 매 미사 중에 ‘거룩하시도다.’를 고백합니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온 누리의 주 하느님! 하늘과 땅에 가득 찬 그 영광! 높은 데서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 받으소서. 높은 데서 호산나!” 다른 것들은 다 이해할 수 있는데,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단어가 있습니다. ‘호산나’입니다. 호산나의 히브리어 어근을 시편 118:25, “아, 주님, 구원을 베푸소서. 아, 주님, 번영을 베푸소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 ‘야샤’(구원)와 ‘안나’(간청)가 합쳐져서 “호산나”라 번역되는 단어가 만들어졌습니다. 문자 그대로, 호산나는 “구원해주시기를 간청합니다!” 또는 “제발 구원해주세요!”라는 뜻입니다. 이 말이 희랍어로 번역되면서 ‘호산나’가 되었습니다. 이 호산나라는 말은 신약성서의 복음에도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길에 옷을 깔고, 손에 나뭇가지를 들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께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지극히 높은 곳에 호산나!” 호산나라는 말의 뜻은 ‘구원하소서.’입니다.
이렇게 ‘호산나’라고 외쳤던 이스라엘 백성은 5일 후에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메시아, 구세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이스라엘 백성은 구원의 대상이 달랐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현실에서의 구원을 생각했습니다.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줄 구원자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권세와 명예 그리고 재물을 주시는 구원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눈 먼 이를 뜨게 하고, 중풍병자를 걷게 하고,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고, 풍랑을 잠재우고,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의 구원자를 원했습니다. 그런 기대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다를 바 없었습니다. 요한과 야고보는 예수님께서 높은 자리에 오르면 요한은 왼쪽에 야고보는 오른쪽에 있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제자들도 비슷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놀라운 표징을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 성전을 정화하셨습니다. 대사제와 율법학자들에게 끌려가서 조롱과 멸시를 받았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이 원했던 ‘호산나’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모습은 제자들이 원했던 ‘호산나’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떤 의미에서 ‘호산나’였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죄인들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말씀하셨습니다. 잃어버린 동전, 잃어버린 양을 말씀하셨습니다. 죄로 인해서 상실된 하느님의 모상을 되찾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악으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시기, 질투, 분노, 원망, 욕심, 게으름, 욕정이라는 악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참된 평화와 행복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예수님께서는 죽었던 나자로를 살려 주셨습니다. 죽었던 소녀에게 ‘탈리타쿰’이라고 말하셨습니다. 소녀는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지만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권력과 명예 그리고 재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호산나가 아니셨습니다. 그것들은 우리를 죄와 악 그리고 죽음에서 결코 구원해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그렇습니다. 우리들 또한 베드로처럼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면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하셨던 말씀을 그대로 하실 것입니다. 미사에서 ‘호산나’라고 외치면서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행동한다면 주님은 우리에게 ‘호산나’가 되실 수 없습니다. 나를 죄와 악 그리고 죽음으로부터 구원해 주시는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면 우리는 진정한 ‘호산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모시는 것입니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나는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
<벗 하나 있으니>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베드로의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고백 이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십자가의 길을 밝히기 시작하셨다.]
참으로
나를 아는
벗 하나 있으니
무딘 사람들
틈바구니
좁은 길
기쁘게 헤쳐 나가네
참으로
나를 믿는
벗 하나 있으니
날선 사람들
틈바구니
거친 길
당당하게 헤쳐 나가네
참으로
나를 바라는
벗 하나 있으니
어두운 사람들
틈바구니
마른 길
환하게 헤쳐 나가게
참으로
나를 사랑하는
벗 하나 있으니
차가운 사람들
틈바구니
언 길
뜨겁게 헤쳐 나가네
오늘의 성인
성 도미니코(Dominic)
신분 : 신부, 설립자, 설교가
활동연도 : 1170-1221년
같은이름 : 도미니꼬, 도미니꾸스, 도미니쿠스, 도미니크, 도미닉, 도밍고
펠릭스 데 구즈만(Felix de Guzman)과 아자(Aza)의 복녀 요안나(Joanna)의 아들인 성 도미니코(Dominicus)는 에스파냐 북부 부르고스(Burgos) 지방의 칼라루에가(Calaruega)에서 태어났고, 1184-1194년 사이에는 팔렌시아의 대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아마도 학업을 계속하는 중에 그곳에서 서품된 듯하다. 그는 1199년에 오스마(Osma)에서 주교좌성당 참사회원으로 임명되었다.
또 그는 1203년에 오스마의 복자 디에고 데 아제베도(Diego de Azevedo, 2월 6일) 주교를 수행하여 프랑스 남부 랑그도크(Languedoc)로 가서 알비파 이단을 상대로 설교하였고, 시토회의 개혁을 도왔다. 1206년에 그는 알비파(Albigenses) 지역인 프루이유(Prouille)에서 여자 수도회를 설립하였고, 수많은 수도자들에게 강론하였다.
1208년 교황대사 베드로 카스텔란이 알비파에 의해 피살되었을 때,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Innocentius III)는 그들을 상대할 십자군을 조직하고 그 대장으로 몽포르의 시몬 4세(Simon IV de Montfort) 백작을 임명하였다. 이때의 전투는 7년간이나 계속되었다. 성 도미니코는 이 군대를 따라다니며 이단자들에게 설교하였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다.
1214년 시몬 4세가 그에게 카세네일의 성을 주었는데, 이때 그는 여섯 명의 동료들과 함께 알비파의 회개를 위하여 활동할 수도회를 세웠다. 그리고 이 수도회는 그 다음 해에 툴루즈(Toulouse)의 주교로부터 교회법적으로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1215년 제4차 라테라노(Laterano) 공의회에서 자신의 설교자회가 승인받는 데는 실패했지만, 다음 해에 교황 호노리우스 3세(Honorius III)로부터 승인을 받고 도미니코 수도회 일명 설교자회가 설립되었다.
그 후 성 도미니코는 수도회의 조직을 위해 여생을 보내면서 이탈리아, 에스파냐 그리고 프랑스 등지를 다니며 순회 설교를 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많은 회원이 새로 입회하면서 수도회도 정착 단계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 새로운 수도회는 지성적인 생활과 대중들의 요구를 잘 조화시켜 회개운동을 꾸준히 전개하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1220년에 볼로냐(Bologna)에서 수도회의 첫 번째 총회를 소집하였고, 그 이듬해 8월 6일 그곳에서 운명하였다. 그는 헝가리 순회 선교에서 얻은 병으로 인해 일생을 마감한 것이었다. 그는 1234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Gregorius IX)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천문학자의 수호성인이다.
성 알트만 (Altman)
활동년도 : 1020-1091년
신분 : 주교
지역 : 파사우(Passau)
같은 이름 : 앨트먼, 올트먼
독일 베스트팔렌(Westfalen) 파더보른(Paderborn)에서 태어난 성 알트만은 파리(Paris)에서 수학한 후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파더보른 주교좌 학교의 학장이 되었다. 그 후에는 아헨(Aachen)의 의회 의장 그리고 하인리히 3세의 전속 사제가 되었다. 1064년 성지를 순례하던 그는 팔레스타인의 사라센인들에 의하여 수많은 다른 동료 순례자들과 함께 포로가 되었다가, 우정 깊게 사귀던 어떤 족장의 중재로 석방되어 예루살렘으로 귀향하였다. 그 당시의 순례자들은 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순례 길에 나섰다. 그 태반이 병이나 어려움 때문에 숨지거나 혹은 사라센인들의 공격으로 되돌아오지 못하던 때였다.
그는 1065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파사우의 주교로 임명된 후 교구를 개혁하고 교육을 개선하며 가난한 이를 구제하는 사업을 착수하였다. 또 그는 괴트바이그에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을 세웠으며, 다른 수많은 수도원을 재건하였다. 성직매매와 성직자 결혼을 금하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Gregorius VII)의 쇄신 칙서를 강력히 시행하고자 했을 때 그는 대부분의 성직자들로부터 큰 반대를 받았고, 그들은 끝내 순종하지 않았다.
그 다음 해 평신도 성직수여를 금하는 그레고리우스의 칙서에 대한 그의 지지는 자기 적들의 명단에 하인리히 왕을 추가하는 결과가 되어 주교직에서 해임되었다. 그는 로마(Roma)로 가서 교황으로부터 독일의 교황청 사절이 되었으나, 1081년 로마로 돌아왔을 때에는 그 자신이 재차 해임되어 있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괴트바이그 수도원에서 여생을 지냈다. 교황 레오 13세가 그의 공경을 확인하였다.
성 치리아코 (Cyriacus)
활동년도 : +303년
신분 : 부제, 순교자
지역 : 로마(Roma)
같은 이름 : 치리아꼬, 치리아꾸스, 치리아쿠스, 키리아코, 키리아쿠스
이탈리아 로마의 귀족 가문 출신인 성 키리아쿠스(또는 치리아코)는 어른이 되어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부제가 된 그는 로마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욕실 건립에 참여한 그리스도인 노예들을 돌보는데 힘썼다. 전설에 의하면 성 키리아쿠스는 마귀에 들린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딸을 치유해주었는데,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인 성녀 세레나(Serena, 8월 16일)를 따라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었다. 또한 그는 페르시아(Persia)의 사푸르 왕의 딸도 마귀로부터 구해주었고 왕실 가족들의 개종을 이끌었다고 한다.
결국 성 키리아쿠스는 체포되어 성 라르구스(Largus, 8월 8일), 성 스마락두스(Smaragdus, 8월 8일)와 다른 12명의 동료들과 함께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박해 동안에 고문을 받고 순교하였다. 로마의 살라리아노(Salariano) 가도에서 사람의 피부를 벗겨내는 고문을 받고 참수된 그는 그 근방에 묻혔다가 후에 라타(Lata) 가도에 있는 성녀 마리아(Maria) 성당으로 이장되었다. 그리고 다시 프랑스 알자스(Alsace)에 있는 성 키리아쿠스 수도원으로 옮겨 모셔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