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0일 토요일
[(홍)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라우렌시오 성인은 에스파냐 우에스카에서 태어났다. 로마 교회의 일곱 부제 가운데 수석 부제였던 그의 임무는 교회의 재산을 관리하고 빈민을 구제하는 일이었다. 258년 무렵 로마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박해자들이 교회의 보물을 바치라고 하자, 그는 교회의 재산을 아무도 모르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뒤 그들을 박해자들 앞에 데려가 “이들이 교회의 재산이다.” 하고 말하였다. 이에 분노한 박해자들이 그를 불태워 죽였다. 라우렌시오 성인은 가난한 이들이 바로 교회의 보물임을 일깨워 주었다.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많이 뿌리는 이는 많이 거두어들인다며,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신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9,6ㄴ-10
형제 여러분, 6적게 뿌리는 이는 적게 거두어들이고
많이 뿌리는 이는 많이 거두어들입니다.
7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해야지,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8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언제나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게 됩니다.
9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내주니
그의 의로움이 영원히 존속하리라.”
10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마련해 주시는 분께서
여러분에게도 씨앗을 마련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여러 곱절로 늘려 주시고,
또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24-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5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밀알은 죽지 않고 한 알 그대로 남아 있으면 실제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 밀알이 없어져야 싹이 트고 자라서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섬기려는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이 자기 목숨을 사랑하여 자기 자신에게 매달려 있으면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놓기가 쉽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어쩌면 인간이 참 어리석은지도 모르겠습니다. 밭에 뿌려진 씨앗은 죽을지 말지 생각을 하거나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연의 순리에 따라 씨앗은 죽고 다음 세대의 열매가 자랍니다. 또 그렇게 자라난 열매들은 누군가에게 먹히거나 아니면 다시 씨앗이 되어 그다음 세대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들은 본성에 따라 자연 질서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 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 뜻에 따라 선택을 할 수 있어서, 때로는 열매를 맺지 못할 길을 스스로 갑니다. “자기 목숨”(요한 12,25) 때문입니다. 눈앞에 있는 작은 언덕이 멀리 있는 큰 산보다 크게 보이는 법이지요. 그래서 잠시 누릴 수 있는 눈앞의 이익, 편안함, 방해받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나서지 못하고 밀알 한 알 그대로 남아 있으려 합니다.
더 큰 것을 위하여 작은 것을 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밀알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죽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은 하느님의 계획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명의 길이 아닙니다. “자기 목숨”을 택하는 것은 사실은 어리석음입니다. 밀알에게 배우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됩시다.(안소근 실비아 수녀)
고통을 건너뛰는 행복, 희생없는 성공을 경계합시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저희 피정 센터는 바야흐로 대목입니다. 이박삼일 일정으로 아이들이 나가고 들어오고, 적막하던 어촌 마을이 시끌벅적합니다. 목청껏 소리 지르면서 신나게 뛰놀고, 야무지게도 잘 먹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다들 흐뭇해합니다.
무대 위에 서서 마이크를 잡고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는 않지만 열심히 뒷바라지를 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동료 사제와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를 분리 수거하면서, “어머니가 이 모습을 보시면 얼마나 슬퍼하시겠냐?” “젊을 때 공부 열심히 안한 결과!”라는 둥 농담을 주고받으며 땀을 뻘뻘 흘렸습니다.
그러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하나! 뭐든 거저 되는 것은 없다는 것,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 행사가 성공리에 치러졌다면, 반드시 누군가의 묵묵한 희생과 헌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조용히 땅에 떨어져 썩고 죽는 밀알 영성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것!
아버지께서 부여하신 지상에서의 과제를 120퍼센트 완수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신 앞에 남아있는 마지막 관문인 수난과 죽음의 길을 떠나시면서, 우리에게 남기시는 말씀의 핵심 키워드 역시 ‘밀알 하나’였습니다.
내어놓음이나 희생, 변화나 쇄신, 결국 죽음을 거부하는 밀알은 언제까지나 그저 한 알 밀알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기꺼이 자아를 포기하고 길을 떠날 때,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의 성장과 변화, 열매와 발전을 희망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이비 교주들이나 이단자들이 크게 강조하는 바가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고통을 건너뛰는 행복입니다. 희생이나 헌신없는 성공입니다. 말도 안되는 기적의 연출입니다. 십자가 길 대신 꽃길 보장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영광의 길에 참여하기 위해 수난과 죽음은 필수라고 강조하십니다. 두렵고 떨렸지만 점점 다가오는 죽음을 용감하게 수용하십니다.
내적인 갈등이 커질 때마다 아버지를 생각하고, 아버지께 의탁하며, 언젠가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 드러날 아버지의 영광을 꿈꾸며, 얼마 남아있지 않은 당신의 여정을 힘차게 걸어가십니다.
제자인 우리들 역시, 스승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열심히 따라 걸어가야겠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한 배에 승선한 운명 공동체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운명은 곧 우리들의 운명입니다. 우리도 두려움을 떨치고 그분께서 선택하신 수난과 죽음의 길, 그러나 영광의 길을 기꺼이 선택해야겠습니다.
죽음은 오늘 제자들인 우리에게 다양한 형태로 다가옵니다. 고통이 극심할 때, 포기하고 싶어질 때는 ‘죽을 각오’로, 더 열심히 이 세상을 살아가야겠습니다. 미운 감정이 폭발할 때는 순교자의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고 용서해야겠습니다.
예수님 한분의 희생과 죽음으로 온 세상과 인류에게 구원이 다가왔듯이, 오늘 내 작은 희생과 헌신, 작은 죽음을 통해 작게나마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짐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오늘 이 작은 나의 희생과 봉사, 작은 죽음이 절대로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스승님의 십자가 길에 깊이 동참하는 사랑의 길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3번 말씀하셨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에게 끌려가 조롱과 멸시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죽겠지만 다시 살아날 것이다.” 처음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을 때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옷을 붙잡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선생님!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의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 베드로는 수난과 죽음만 생각하였지, 부활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없었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죽음을 넘어 부활한다는 확신이 없는 신앙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부활에 대한 확신이 없는데 어떻게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습니까? 부활에 대한 확신이 없는데 어떻게 박해와 고통을 참아낼 수 있습니까? 부활에 대한 확신이 없는데 어떻게 가진 것을 기꺼이 내어 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을 때입니다. 제자들은 모두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제자들이 원한 것은 수난과 죽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표징을 원했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셨던 표징을 원했습니다. 풍랑을 잠재우고, 물위를 걸으셨던 표징을 원했습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던, 중풍병자를 걷게 하셨던 표징을 원했습니다. 예수님의 표징으로 새로운 왕국이 세워지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 명예와 권력 그리고 재물이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수난과 죽음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두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을 때입니다. 이번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수난과 죽음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예수님에게 이렇게 청하였습니다. “주님! 영광의 자리에 오르시면 제 아들들을 하나는 예수님의 오른편에,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왼편에 앉도록 해 주십시오.” 그렇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수난과 죽음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명예와 권력 그리고 재물을 원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둥지를 버리지 못하면 결코 하늘 높이 나는 독수리가 될 수 없습니다. 밀알은 어쩌면 우리가 머물고 싶어 하는 둥지일 수 있습니다. 그 둥지에는 ‘성공, 명예, 권력’이라는 달콤한 먹이가 있습니다. 그 먹이에 취해서 우리가 둥지를 벗어나지 못하면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멀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둥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제자들을 다그쳤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로 이끌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축일로 지내는 라우렌시오 부제는 재물이라는 둥지를 벗어났습니다. 모든 재물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진정한 보화는 가난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 본기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복된 라우렌시오는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하며 신자들을 충실히 섬기고 순교의 영광을 받았으니 저희도 그를 본받아 사랑을 실천하고 그의 가르침을 따라 형제들을 섬기게 하소서.”
우리가 둥지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어쩌면 우리를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신앙은 끊임없이 둥지를 벗어나서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때로 시련의 바람이 불고, 고통의 암초가 다가올지라도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믿으며 힘차게 날아야 합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적게 뿌리는 이는 적게 거두어들이고 많이 뿌리는 이는 많이 거두어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언제나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게 됩니다.”
<나의 목숨>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요한 12,25)
너를 믿는
나의 목숨
잃을수록 간직하다
너를 바라는
나의 목숨
잃을수록 간직하다
너를 사랑하는
나의 목숨
잃을수록 간직하다
너를 품는
나의 목숨
잃을수록 간직하다
너를 돌보는
나의 목숨
잃을수록 간직하다
너를 섬기는
나의 목숨
잃을수록 간직하다
너를 살리는
나의 목숨
잃을수록 간직하다
오늘의 성인
성 라우렌시오(Lawrence)
신분 : 부제, 순교자
활동연도 : +258년
같은이름 : 라우렌시우스, 라우렌티오, 라우렌티우스, 로렌스, 로렌조
로마(Roma)의 일곱 부제(차부제 포함) 중 한 명인 성 라우렌티우스(Laurentius, 또는 라우렌시오)는 에스파냐의 우에스카(Huesca) 출신이며,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에 로마에서 순교하였다.
그는 교황 성 식스투스 2세(Sixtus II, 8월 7일)의 부제였고, 식스투스 교황이 사형을 받게 되자 슬픔을 억누르지 못했다고 한다. 이때 교황은 그 역시 3일 안으로 자신을 따라 오리라고 예언하자, 라우렌티우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 교회의 소유물들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로마의 집정관이 그의 이런 행위를 알고는 교회의 보물들을 모두 황제에게 바치라고 엄명을 내렸다. 이때 그는 모든 보물을 모으려면 3일 정도가 소요된다는 말을 하고 돌아와서는 모든 보물들을 맹인과 절름발이, 고아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에 분개한 집정관은 그를 체포하여 온갖 고문으로 괴롭히다가 석쇠 위에 눕히고는 구워 죽였다. 시인 프루덴티우스(Prudentius)에 의하면 그의 죽음과 표양이 로마의 회개를 가져왔고, 로마에서 이교의 종말을 고하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문장은 석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