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주먹을 쥐면 자신의 힘을 과시하게 된다. 힘이 센 사람의 주먹일수록 손아귀의 힘은 대단하게 나타난다. 그 손에 붙잡히기라도 한다면 헤어 나오기가 어려울 것이다. 어릴 때 부모님의 손을 붙잡고 시장이나 공원에 따라다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어린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부모님의 곁을 떠나려고 발 버둥쳐 보지만, 부모님의 강한 손은 어린 우리를 절대로 내버려 두시지 않았던 것이다. 부모님들은 어린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붙잡고 인도하면서 데리고 다니셨다. 어린 우리의 가까이에 부모님께서 계셨기에 오늘날까지 우리가 무사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주께서 부모님들보다 나에게 더 가까이, 아니 내가 내 자신에게 가까이 있는 것보다 더 가까이 그리고 은밀하게 계신다는 사실이다. 주님은 내 곁에서 나와 가장 가깝게 계신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범위까지도 말이다. 그리고 그분은 내가 그분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기를 원하신다.
당신과 가장 가까와지고 싶어하시는 주님의 사랑의 마음을 느끼고 계십니까?
시 63:8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1.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사역을 위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시길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하나님 사랑의 재발견 본문 : 요 3:16
착한 사람을 사랑하기는 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해를 끼치지 않을뿐더러 모두에게 기쁨과 유익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악을 행하는 사람은 모두가 피할 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나 환대를 받을 수 없습니다. 행악에 의한 피해를 받으면서도 인내하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위대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구원의 사랑(엡2:8,9)
1) 화해를 요청함 죄를 지은 편이 인간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단절을 가져온 것입니다. 따라서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것은 인간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용서를 구할 줄도 몰랐고 파멸을 향하여 계속 죄악에 거했습니다. 죄악의 끝은 죽음입니다. 이러한 상태를 그저 보고 계실 수 없으셨던 하나님은 죄인인 인류에게 화해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1:18)고 선언하십니다. 그러므로 인류는 화해를 요청하신 하나님께 나아가야만 합니다. 화해 요청의 거부는 심판과 죽음입니다. 자신의 죄를 겸손히 고하고 하나님의 화해의 요청을 받아들임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독생자를 보내 주심 하나님은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선한 자도 사랑하시고 악한 자도 사랑하셨습니다. 선하다고 또는 악하다고 사랑에 차별을 두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위하여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화목제로 보내신 것입니다(요일4:10). 하나님의 사랑은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조차도 화목을 위한 제물로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인류에게 있어 구속의 사랑이요 구원의 복된 메시지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7,8)고 했습니다. 의인이 아닌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신의 아들까지 보내 주신 행동 이외의 더 이상의 증거가 필요치 않습니다.
2. 불변의 사랑(렘31:3)
1) 변함이 없음 인간은 사랑은 아무리 철석 같은 약조를 했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변하면 생각과 행동을 바꾸기 마련입니다. 상대방이 생각과 행동을 바꿀지라도 변함없는 사랑을 언제까지나 지속하며 상대방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경우는 없습니다. 더 확실히 이야기하면 사람들의 사랑은 때와 장소, 시간에 따라서 변질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은 때와 장소, 시간이 변해도 변함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무리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긍휼히 여기시고 끝까지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롬11:29)고 말했습니다. 실로 하나님의 변함이 없는 사랑 때문에 우리들은 언제든지 하나님을 찾으며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2) 영원하심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변합니다. 변하지 않을 수 없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한 존재가 변하지 않고 본질 그대로 영원토록 존재한다는 것은 더구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합니다. 아무리 세월이 가도 예전에 믿음의 조상들에게 언약하신 일을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들에게만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에게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합니다(사55:3). 다윗은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케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삼하23:5)고 했습니다.
3. 희생적 사랑(요일4:10)
1) 절대적인 사랑 하나님은 우리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베푸십니다. 그 사랑은 자식의 잘 잘못을 가리지 않으시고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같이"(잠3:12) 우리들을 사랑으로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자신의 유익이나 기쁨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자식의 미래와 기쁨을 위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우리를 위하여 절대적인 사랑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거짓과 술수가 있을 수 없으며 우리가 잘못되는 일은 더구나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은 양보와 희생을 동반한 사랑인 것입니다.
2) 헤아릴 수 없음 하나님의 사랑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평가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사고에 갇히지도 않으시며 그럴 분도 아니십니다. 또한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하나님을 제대로 이해하고 바른 신앙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하나님의 생각과 합치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은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통하여 우리는 구원의 복음, 구속의 은총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시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셨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놀라운 사랑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랑은 아들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고 고통을 겪게 한 희생의 사랑인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모든 자들과 화목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골1:19,20). 우리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에 느끼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삶의 원동력이 되며 기쁨과 희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은 희미하나 주님을 뵐 때는 온전하게 이해할 것입니다(고전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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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 하는자는 새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것이요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하지 아니 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 하리로다 샬롬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주님의 영광과 복음과 선교와 설교와 목회와 치유와 상담과 지혜와 능력과 성령의 도구로 쓰임받고 열매 맺게 하소서 샬롬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감사합니다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함게해 주신 예수 사랑 목사님, 평안 장로님, 존재 목사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