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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30일 월요일
[(백)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예로니모 성인은 347년 무렵 달마티아의 스트리돈(현재 보스니아의 그라호보 근처)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부터 로마에서 라틴 말과 그리스 말을 공부한 다음 트리어에서 정부 관리로 일하였으나, 수덕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사막에서 오랫동안 은수 생활을 하며 히브리 말을 연구하는 데 몰두하였다. 379년 사제가 되어 382년 다마소 1세 교황의 비서로 일하면서 교황의 지시에 따라 성경을 라틴 말로 번역하였는데, ‘대중 라틴 말 성경’이라고 하는 『불가타』(Vulgata)가 그것이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긴 그는 성경 주해를 비롯하여 많은 저술을 남기고 420년 무렵 베들레헴에서 세상을 떠났다. 암브로시오 성인, 그레고리오 성인, 아우구스티노 성인과 함께 서방 교회의 4대 교부로 존경받고 있다.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 욥의 모든 소유를 치셨지만, 욥은 죄를 짓지 않고 하느님께 부당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논쟁을 벌이자,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 욥기의 말씀입니다. 1,6-22
6 하루는 하느님의 아들들이 모여 와 주님 앞에 섰다. 사탄도 그들과 함께 왔다.
7 주님께서 사탄에게 물으셨다. “너는 어디에서 오는 길이냐?”
사탄이 주님께 “땅을 여기저기 두루 돌아다니다가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8 주님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 욥을 눈여겨보았느냐?
그와 같이 흠 없고 올곧으며 하느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은 땅 위에 다시 없다.”
9 이에 사탄이 주님께 대답하였다. “욥이 까닭 없이 하느님을 경외하겠습니까?
10 당신께서 몸소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를
사방으로 울타리 쳐 주지 않으셨습니까?
그의 손이 하는 일에 복을 내리셔서, 그의 재산이 땅 위에 넘쳐 나지 않습니까?
11 그렇지만 당신께서 손을 펴시어 그의 모든 소유를 쳐 보십시오.
그는 틀림없이 당신을 눈앞에서 저주할 것입니다.”
12 그러자 주님께서 사탄에게 이르셨다.
“좋다, 그의 모든 소유를 네 손에 넘긴다. 다만 그에게는 손을 대지 마라.”
이에 사탄은 주님 앞에서 물러갔다.
13 하루는 욥의 아들딸들이 맏형 집에서 먹고 마시고 있었다.
14 그런데 심부름꾼 하나가 욥에게 와서 아뢰었다.
“소들은 밭을 갈고 암나귀들은 그 부근에서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15 그런데 스바인들이 들이닥쳐 그것들을 약탈하고 머슴들을 칼로 쳐 죽였습니다.
저 혼자만 살아남아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16 그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다른 이가 와서 아뢰었다.
“하느님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 양 떼와 머슴들을 불살라 버렸습니다.
저 혼자만 살아남아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17 그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또 다른 이가 와서 아뢰었다.
“칼데아인들이 세 무리를 지어 낙타들을 덮쳐 약탈하고
머슴들을 칼로 쳐 죽였습니다.
저 혼자만 살아남아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18 그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또 다른 이가 와서 아뢰었다.
“나리의 아드님들과 따님들이 큰아드님 댁에서 먹고 마시고 있었습니다.
19 그런데 사막 건너편에서 큰 바람이 불어와 그 집 네 모서리를 치자,
자제분들 위로 집이 무너져 내려 모두 죽었습니다.
저 혼자만 살아남아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20 그러자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를 깎았다.
그리고 땅에 엎드려 21 말하였다.
“알몸으로 어머니 배에서 나온 이 몸, 알몸으로 그리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22 이 모든 일을 당하고도 욥은 죄를 짓지 않고 하느님께 부당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46-50
그때에 46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그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
47 예수님께서는 그들 마음속의 생각을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신 다음, 48 그들에게 이르셨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49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와 함께 스승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5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막지 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2티모 3,14-17)와 복음(마태 13,47-52)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욥기에는 몇 가지 주제가 들어 있습니다. 무죄한 사람의 고통은 큰 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욥은 하느님께서도 인정하시는 “흠 없고 올곧으며 하느님을 경외하[는]”(욥 1,1)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고통을 겪게 된 것은 그의 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죄 탓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욥기가 던지는 큰 질문입니다. 이 문제는 욥기 마지막 부분에 가서 답을 만날 것입니다.
다른 질문들 가운데 오늘 사탄이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욥이 까닭 없이 하느님을 경외하겠습니까?”(1,9) “까닭 없이”라는 표현은 히브리 말에서는 ‘거저, 공짜로’를 뜻하기도 하는 낱말입니다. 욥이 하느님을 경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탄은 하느님께, 먼저 하느님께서 욥에게 많은 은혜를 베푸시고 그를 부유하게 하셨기 때문에 욥이 하느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것을 확인하고자 욥이 모든 재산과 자녀, 그리고 건강을 잃게 만듭니다. 그럴 때도 인간이 하느님을 경외할 수 있을까요?
욥기의 사탄이 오늘 나를 이렇게 시험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내가 하느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모든 좋은 것을 거두어 가신다 하여도 하느님을 경외할 수 있습니까? 욥은 아들들과 딸들을 하루아침에 잃었습니다. 그래도 하느님을 경외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에게도,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경외가 순수한지를 시험하는 순간들은 계속 주어집니다. 그 시험들에 내가 어떻게 반응하였는지를 돌아보면서, 하느님에 대한 나의 경외심의 깊이를 헤아려 봅시다.(안소근 실비아 수녀)
걱정이나 근심, 유혹이 다가올때면 즉시 성경을!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언젠가 진심으로 성경에 매료되어 목숨 걸고 성경을 공부하던 한 형제를 만났습니다. 교구나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이런저런 성경 공부 과정을 빼놓지 않고 수료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지긋한 연세에도 불구하고 2년 과정의 가톨릭교리신학원까지 졸업했습니다.
제가 그분께 여쭈었습니다. “형제님, 평생토록 산업현장의 역군으로 죽기살기로 일하셨으니, 이제는 친구들과 여행도 다니시고, 운동도 나가시고, 좀 여유있게 지내시면 좋을텐데, 어찌 그리 성경을 파고드십니까?”
형제님 왈, “그동안 제 안에서 풀리지 않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 사방천지를 헤매다녔지만 찾지 못했는데, 성경 안에 답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걱정과 근심, 유혹과 갈등을 떨치는 데는 성경보다 더 좋은 약은 없습니다.”
오늘 축일을 맞이하시는 예로니모 사제 학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좀 놀았습니다. 이교에 빠지기도 하고, 세상의 유혹에도 빠졌습니다. 몸과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다 보니, 삶의 균형이 무너져 중병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어느 순간, 이게 아니지 하면서, 지난 삶을 반성하며 은둔 수도 생활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번 맛을 본 세속의 유혹은 수시로 떠올라 예로니모를 괴롭혔습니다.
그럴 때마다 예로니모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하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유혹이 다가올 때, 그는 유혹을 물리치는 방편으로 그 어려운 히브리어를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유혹은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집요하게 유혹은 예로니모를 흔들었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성경을 펴들었습니다. 본문을 읽고 또 읽고, 그리고 번역하고 연구하고, 그것이 그의 하루 일상이었습니다. 어떤 날 그는 하루 온 종일 성경 번역에 매달렸었는데, 잠깐의 휴식은 다름 아닌 성경 읽기였습니다.
탁월한 언어 감각을 지니고 있었던 예로니모는 라틴어뿐만 아니라 그리스어, 히브리어에 능통했습니다. 대단했던 어학 실력을 바탕으로 그는 가톨릭교회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대대적 성경 번역작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장장 20여 년 동안 심혈을 기울인 끝에 히브리어 성경을 라틴어로 깔끔하게 번역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대학자였던 예로니모였지만 늘 겸손했습니다. 지극히 겸손했던 그는 사제서품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너무도 사제직에 부당하다고 생각했던지 한동안 한사코 미사 봉헌을 거절했다고 전해집니다.
예로니모는 보다 정확한 성경 번역의 필요성을 느끼고, 다시금 신구약성경에 대한 번역작업에 들어갑니다. 이를 위해 새롭게 카르데아어를 배웠고, 또 다시 20여 년간의 세밀한 번역작업 끝에 그 유명한 불가타 성경 번역을 완성시킵니다.
예로니모의 탁월한 지적 능력, 성서에 대한 열정은 당대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교부라는 칭호를 붙이는데 조금도 의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대학자 예로니모였지만 그에게도 십자가는 있었습니다. 과거 영위했던 세속생활의 유혹들이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죄책감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쉼 없이 하느님의 도움을 청했던 노력, 어려울 때마다 인간적인 위로를 찾기보다 하느님의 보화가 담겨있는 성경에로 끊임없이 돌아가고자 했던 그 노력으로 인해 그는 끝까지 자신의 성소를 지켜나갈 수 있었습니다.
예로니모는 사자 같은 용기로 교회를 위해 투쟁하였습니다. 강인함으로 자신을 잘 다스렸습니다. 자신을 극기했었고, 자신의 결점이나 악습 같은 가시들을 제거하기 위해 부단히 투쟁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성경에 대한 예로니모의 열정과 사랑이 얼마나 극진했으면, 그는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성경을 파고드십시오.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입니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하느님의 권능도 그분의 지혜로 모르는 것입니다.”
말씀을 대하는 자세가 하늘 나라의 자리를 결정한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오늘 복음에서 누가 높으냐는 것으로 제자들이 다툽니다. 예수님은 어린이처럼 겸손하라고 하십니다. 겸손은 곧 포용력입니다.
사람을 품으려면 자기만 크고 옳다는 식이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으니 상대를 판단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린이들은 모든 동물과 사람들을 정말 잘 받아들입니다. 물릴지도 모르지만, 일단 받아들이고 봅니다. 사람도 그렇게 받아들이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지만, 예수님은 어린이처럼 그렇게 받아들여야 하늘에서 큰 사람이 된다고 하십니다.
요한이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고 말렸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반대만 하지 않는다면 그냥 내버려 두라고 대답하십니다. 웬만하면 판단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만약 틀리면 어떻게 하라고 무작정 다 내버려 두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어린이들에게는 그들의 선택의 잘못을 바로잡아줄 해답지인 부모가 있기 때문인 것과 같습니다.
일본에서 67세의 나이로 숨진 미야우찌라는 거지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의 다락방에는 5천만 원이 예금 된 통장과 1억 7천만 원 가량의 주식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일생 헐벗고 굶주리며 모은 돈이었으며, 이를 모으기 위해 어쩌다가 현미 쌀을 사다 먹고 남이 주는 채소 부스러기나 날로 먹고 어쩌다가 끓일 것이 생기면 방안까지 들고 들어와 풍로에다가 주워온 나뭇조각을 때서 끓여 먹었고 목욕은 기껏해야 일 년에 한두 번만 하였습니다.
결국 그 노인은 돈을 아끼기 위하여 값싼 음식을 먹은 결과 영양실조와 동맥 경화증으로 사망했습니다. 그는 왜 그렇게 고생하며 사느냐고, 자신을 위해 돈 좀 쓰면서 살라고 말하는 이들이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200살까지 살 것이기 때문에 돈을 아껴둬야 할 필요가 있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내가 옳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내가 정답지인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정답지는 부모입니다. 이것이 포용력의 차이, 곧 하늘나라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느냐의 차이를 만듭니다.
인간은 성장할수록 교만해지기에 십상입니다. 특별히 성공한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나폴레옹이 망하게 된 전쟁이 있습니다. 바로 러시아와의 전쟁입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러시아의 혹독한 겨울과 긴 보급선이 재앙적인 상황을 초래할 것이라는 고문과 장군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1812년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를 침공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군대가 무적이라고 믿으며 완고하게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이는 그동안의 성공으로 나폴레옹이 얼마나 교만해졌는지를 상기시킵니다. 나폴레옹의 오만함과 전략 조정 거부는 그의 군대를 궤멸시켰습니다. 60만 명이 넘는 초기 병력 중에서 약 10만 명만이 캠페인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이 재난으로 그의 제국은 심각하게 약화됐고 결국 그의 몰락이 시작되었습니다.
묻고 틀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맞히는 즐거움을 즐기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해답지가 있어야 합니다. 대본을 들고 연기하는 주인공은 자신의 기억과 행동, 대사가 맞는지 끊임없이 대본과 자신을 맞춰갑니다. 그러면 맞추는 즐거움에 틀리는 아픔을 잊을 수 있습니다. 오로지 그리스도를 ‘진리’로 믿는 이들만이 이러한 겸손을 가지고 두려움 없이,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해답지가 부모인 것처럼, 우리에겐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그분을 해답지로 여기면 틀리는 게 두렵지 않고, 오히려 나를 성장 시키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사람들에 대한 포용력이 향상됩니다.
그러니 주님을 진리로 받아들입시다. 그런 사람은 묻기를 좋아합니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묻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묻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말씀을 읽지 않습니다. 내가 틀릴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매일 말씀을 읽고 나의 삶을 바로잡으려는 사람은 포용력도 향상됩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느덧 9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9월에 있었던 일을 돌아봅니다. 3일에는 ‘김수환 추기경배 골프대회’가 있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중에도 150명이 함께 했습니다. 점수를 계산하는데 약간의 오류가 있었습니다. 순위가 바뀌는 실수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연락을 드리고, 상패를 전달했습니다. 일은 잘못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잘못된 것을 인정하고, 바로잡는 것입니다. 상패를 받은 분들도 이해해 주었고, 기뻐하였습니다. 10일에는 장례미사가 있었습니다. 그날은 4년 전에 하느님의 품으로 가신 어머니의 기일이었습니다. 4년 전에 어머니의 장례미사에 갈 수 없었습니다. 그날도 저는 뉴욕에서 세상을 떠난 형제님의 장례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내 형제요, 어머니인가?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실천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어머니이다.” 장례미사를 봉헌하면서 어머니의 기일을 기억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22일에는 ‘본당의 날’ 잔치가 있었습니다. 2012년에 본당을 떠났습니다. 그 뒤로 성소국에 있었고, 신문사에 있었습니다. 12년 만에 본당의 날 잔치에 함께 했습니다. 시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좋기도 좋을시고, 아기자기 한지고, 형제들이 오순도순 함께 모여 사는 것, 오직하나 하느님께 빌어 얻고자 하는 것은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산다는 그것” 본당의 날 주제는 “수고하고 짐 진 자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교우들은 아버지의 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잔치를 위해서 수고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29일은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이었습니다. 미카엘은 사탄을 물리치는 천사입니다.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천사입니다. 라파엘은 아픈 사람을 치유하는 천사입니다. 사탄과 맞서 용감하게 싸우고, 하느님의 뜻을 전하며, 아픈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모두 천사입니다. 저의 축일을 축하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순교자성월인 9월의 마지막 날을 지내면서 순교자 영성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순교자 영성의 시작은 ‘부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잡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 그들에게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마르타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토마사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덧없고 여러분 자신은 아직도 여러분이 지은 죄 안에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 우리는 또 하느님의 거짓 증인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덧없고 여러분 자신은 아직도 여러분이 지은 죄 안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통해서 믿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닙니다. 모든 죄를 용서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이 아니기 때문에, 죽음이 더 이상 우리를 가둘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죄의 결과” 곧 죄에 대한 벌이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의 죽으심도 이를 통한 죄의 용서도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믿기 이전의 삶에서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 것입니다. 부활이 없으면 우리에게 더 이상 하느님 나라의 희망이 없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이들도 멸망하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부활은 믿는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부활이 없다면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는 길이 막히는 것이며, 우리의 희망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하늘에 있습니다. 따라서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저희의 마음을 북돋아 주시어 거룩한 가르침을 깨닫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여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오늘의 성인
성 예로니모(Jerome)
신분 : 신부, 교회학자, 성서학자
활동연도 : 347-419년
같은이름 : 예로니무스, 제로니모, 제롬, 지롤라모, 히에로니모, 히에로니무스
달마티아(Dalmatia)의 아퀼레이아(Aquileia) 근처 스트리도니아(Stridonia)의 부유한 가정에서 출생한 성 히에로니무스 소프로니우스(Hieronymus Sophronius, 또는 예로니모)는 12세 때 로마(Roma)에서 당시의 저명한 문법학자인 도나투스(Aelius Donatus)의 문하생으로 수사학과 라틴어 문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라틴어와 그리스어 지식은 물론 고대 학자들에 대한 뛰어난 지식과 연구 업적으로 명성을 날리다가 19세 때 교황 리베리우스(Liberius)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그는 프랑스 지방을 여행하다가 트리어(Trier)에 정착하여 정부 관리로 일하였는데, 이때 수도생활에 관심을 갖고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였다. 그는 370년경 고향인 아퀼레이아로 돌아와 발레리아누스 주교의 지도하에 같은 뜻을 갖고 있던 몇몇 친구들과 함께 복음적 공동생활을 시작하였다. 373년에 예루살렘을 순례한 후 안티오키아(Antiochia)에 머물면서 라오디케아(Laodicea)의 아폴리나리우스(Apollinarius) 주교로부터 성서 주석 방법과 그리스어를 공부하였으며 그리스도의 환시를 보기도 했다.
그 후 칼치스 사막에서 375-377년까지 은수생활을 하면서 그리스어를 익히고 어느 랍비로부터 히브리어를 새로 배웠으며, 사막의 은수자인 테베(Thebae, 나일 강 중류에 위치한 고대 이집트 신왕국시대의 수도로 오늘날의 룩소르 Luxor)의 "성 바오로(Paulus) 전기"를 썼다. 그런데 은수자들 사이에 아리우스(Arius) 이단 문제로 대립하자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379년 안티오키아로 갔을 때 일정한 사목직을 맡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바울리누스(Paulinus)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았다. 380년에는 콘스탄티노플에서 그곳의 총대주교인 나지안주스(Nazianzus)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1월 2일)의 강의를 듣고 오리게네스(Origenes)의 성경 주석 방법에 매료되었으며, 니사(Nyssa)의 그레고리우스(3월 9일) 주교와 교류를 가졌다. 이때부터 그는 오리게네스의 수많은 저서들을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하기 시작하였다.
성 히에로니무스는 382년에 로마로 왔는데, 교황 성 다마수스 1세(Damasus I, 12월 11일)는 그를 비서로 임명하고 신구약성경 모두를 라틴어로 새로이 번역하는 대업을 맡겼다. 서방 교회에서 이미 여러 개의 라틴어 성경 번역본이 있었지만, 교황은 히에로니무스에게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라틴어 성경본을 만들도록 위촉한 것이다.
그 당시 그는 헬비디우스(Helvidius)의 이론을 반박하는 “헬비디우스 논박, 복되신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성에 대하여”(383년)라는 글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는 헬비디우스가 마리아는 예수 외에도 여러 명의 자녀를 두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성 히에로니무스는 성녀 마르첼라(Marcella, 1월 31일)와 성녀 바울라(Paula, 1월 26일) 등이 주축인 상류층의 미망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수도생활의 이상에 대한 열정을 고취시켰다. 그런데 그의 후원자이던 성 다마수스 1세 교황이 선종하자 그의 재능을 시기한 일부 적대자들이 여자들의 집에 들락거리는 성 히에로니무스를 의심하고 비난하였고, 이로 인해 그는 로마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안티오키아로 가서 성녀 바울라와 그녀의 둘째 딸인 성녀 에우스토키움(Eustochium, 9월 28일) 및 일단의 로마 그룹과 합류하여 이집트로 갔다가, 386년 여름부터 베들레헴에 정착하여 본격적으로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자 귀족 부인 성녀 바울라가 따라와서 자신의 돈으로 세 개의 남자 수도원과 한 개의 여자 수도원을 세우는 데 경제적 뒷받침을 하였다. 그리고 성녀 바울라는 여자 수도원의 원장을, 성 히에로니무스는 남자 수도원의 원장을 맡았다. 성 히에로니무스는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를 짓고 수도자들을 위한 학교를 세워 직접 강의를 맡았다.
그 후 베들레헴 수도원에서 34년 동안 성경 번역 활동에 몰두하면서 당시 몇몇 이단적인 가르침을 반박하는 글을 발표하였다. 예를 들어 요비아누스(Jovianus)의 성모 마리아의 동정성 부인과 사제의 독신 그리고 성인들의 유해 공경 반대에 대해서 명확한 근거로 반박하였다. 그러나 성 히에로니무스의 가장 큰 논쟁은 자신의 옛 친구이자 오리게네스의 지지자이며 성경 번역에도 공이 있던 루피누스(Rufinus)와의 사건이었다.
본래 오리게네스 신학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성 히에로니무스는 콘스탄티아의 에피파니우스와 예루살렘의 요한 사이에 벌어진 오리게네스 신학 논쟁에 휘말렸다. 이때 에피파니우스를 지지함으로써 요한을 지지했던 루피누스와 등지고 말았다. 그러면서 오리게네스주의와 반대 입장에 서게 되었다. 또한 394년부터 히포(Hippo)의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8월 28일)와 서신 연락을 하며 펠라기우스주의 이단을 몰아내는데도 힘을 보탰다.
성 히에로니무스의 가장 큰 업적은 391년부터 406년까지 계속된 성경의 라틴어 번역이었다. 391년부터 신약성경을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직접 번역하고, 구약성경의 경우에는 히브리어 원문에서 라틴어로 직접 번역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70인역"(Septuaginta)을 배척하는 유대인 랍비들과 토론을 벌이면서 새로이 번역했다.
406년까지 계속된 이 엄청난 작업으로 번역된 라틴어 성경에 '불가타'(Vulgata, 대중적이라는 뜻)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성 히에로니무스 당시가 아니라 13세기 때였다. 그 이유는 성 히에로니무스의 라틴어 성경본이 원문에 매우 충실하고 정확한 번역일 뿐만 아니라 대중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라틴어로 되어 있었으므로 로마 교회가 트렌토(Trento) 공의회에서 이를 공식적인 성경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406년부터 임종할 때까지 그는 수많은 성경 주석서를 남겼고, 그의 번역 사업에 대한 귀중한 자료들을 남겼다. 415년에 펠라기우스주의자(Pelagianos)를 반대하는 글을 썼다가 이듬해인 416년 펠라기우스주의자인 폭도들이 베들레헴 수도원을 불태우고 그를 해치려 하였으나 무사히 빠져나왔다.
그 후 성 히에로니무스는 419년 9월 30일 베들레헴의 수도원에서 72세의 나이로 선종하였다. 그는 아마도 라틴 교부들 가운데에서 가장 박학한 학자였고, 동 시대인들 중에서 라틴어와 그리스어, 히브리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는 서방 교회의 4대 교부 중 한 명으로, 신학교의 수호성인 또는 수덕생활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성 그레고리오 (Gregory)
활동년도 : 240-326년
신분 : 주교, 증거자
지역 : 아쉬티샷(Ashtishat)
같은 이름 : 그레고리, 그레고리우스
계몽주의자로 불리는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또는 그레고리오)는 정확하지는 않으나 아르메니아(Armenia)의 코스로프 1세(Khosrov I)를 제거했던 아나크(Anak)의 아들이라 한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그는 부친과 함께 카이사레아(Caesarea)로 피신하여 살았는데, 그는 여기서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다. 코스로프의 아들 티리다테스(Tiridates)가 즉위하면서 개종하고, 그리스도교가 아르메니아의 국교임을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아쉬티샷의 주교로 축성되면서부터 아르메니아 교회를 제도화시켰고, 이방인 성직자를 양성하여 복음화에 전력을 경주하였다. 그는 아르메니아의 사도요 수호성인으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성녀 소피아 (Sophia)
활동년도 : +2세기
신분 : 과부
지역 :
같은 이름 : 쏘피아
전설에 의하면 성녀 소피아는 동정 순교자 성녀 피데스(Fides)와 성녀 스페스(Spes) 그리고 성녀 카리타스(Caritas, 이상 8월 1일)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자신의 세 딸의 순교한 지 3일 후에 그들의 무덤에서 기도하던 중에 평화롭게 선종하였다. 지혜라는 의미를 지닌 성녀 소피아의 생애와 관련이 있는 전설적인 이야기는, 동방 지역에서 세 가지 신학적인 덕목들 즉 피데스(신덕), 스페스(망덕), 카리타스(애덕)의 원천인 신적인 지혜를 숭배하던 관례에서 비롯된 것으로, 마치 신학적인 덕목들을 의인화해서 우화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