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0월 2일 수요일
[(백) 수호천사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수호천사는 사람을 선으로 이끌며 악에서 보호하는 천사다. 교회 전승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나 수호천사를 정하여 주시어 그를 지키며 돕게 하신다. “그분께서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어,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시편 91[90],11). “저를 모든 불행에서 구해 주신 천사께서는 이 아이들에게 복을 내려 주소서”(창세 48,16).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 18,10). 수호천사에 관한 성경의 이러한 표현은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낸다.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천사를 보내시어, 곁에서 그들을 지키고 주님께서 마련하신 곳으로 데려가게 하겠다고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나의 천사가 앞장설 것이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23,20-23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20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천사를 보내어,
길에서 너희를 지키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너희를 데려가게 하겠다.
21 너희는 그 앞에서 조심하고 그의 말을 들어라.
그가 너희 죄를 용서하지 않으리니, 그를 거역하지 마라.
그는 내 이름을 지니고 있다.
22 너희가 그의 말을 잘 들어 내가 일러 준 것을 모두 실행하면,
나는 너희 원수들을 나의 원수로 삼고,
너희의 적들을 나의 적으로 삼겠다.
23 나의 천사가 앞장서서
너희를 아모리족, 히타이트족, 프리즈족,
가나안족, 히위족, 여부스족이 사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나는 그들을 멸종시키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1-5.10
1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5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10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작은 이들을 업신여기지 말라고 하시면서,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 18,10)라고 말씀하십니다. 말하자면 그들 곁에 천사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의문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작은 이들, 그들을 그 자체로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곁에 있는 천사들과 하느님 때문에 소홀히 여기지 말아야 할까요? 사실 그리스도교에서 인간을 이해하려 할 때는 언제나 그를 하느님과 맺는 관계 안에서 바라봅니다. 우리 눈앞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에게 존엄성을 부여합니다.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계명의 근거를 말할 때도 마찬가지로 그 근거는 하느님께 있습니다. 사형 폐지 문제로 가면 더 분명해집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관계없이, 어떤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의 생명을 존중하여야 하는 것은 그의 ‘뒤에’ 하느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시 오늘 복음의 작은 이들에게 돌아와 봅시다. 그 작은 이들이 어린이들이나 겸손한 이들만이 아니라 사회의 많은 사람이 죽여야 한다고 외치는 흉악범이라고 생각하여 보십시오. 또는 나와 반대되는 주장을 하는 이들, 나와 맞서 있는 이들이라고 생각하여 보십시오. 그들에게도 그들을 돌보는 천사가 있습니다. 저런 인간을 왜 천사들이 돌보느냐고 투덜거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 천사들의 돌봄에 감사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천사들에게 이끌려 하느님께 돌아오도록 기도합시다.(안소근 실비아 수녀)
혹시 그런 사람 있으신가요?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사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혹시 그런 사람 있으신가요?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사람 말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나를 지지해주고, 나를 걱정해주고,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 나를 위해 대신 죽을 수도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것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사극(史劇)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호위무사(護衛武士)라는 직책이 있습니다. 왕의 신변의 안전을 위해 무예나 검술이 뛰어난 민첩한 사람을 호위무사에 임명합니다. 이 사람의 행동의 특징은 은밀함입니다. 언제나 왕 근처에 있지만 있는 듯 없는듯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의 시선과 온몸의 신경은 언제나 왕의 안전을 위해 깨어있습니다. 위기 상황이 오면 지체 없이 개입하거나, 최악의 상황에서는 온몸을 던져 왕을 대신해 칼을 맞습니다. 그의 존재 이유는 오로지 왕의 안전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의 안전과 영혼 구원을 위해 아주 충실하고 날렵한 호위무사(護衛武士)를 파견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명령을 받고 우리에게 파견된 그의 이름은 수호천사(守護天使)입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그만큼 우리 각자는 하느님께 소중한 존재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토록 우리를 끔찍히 생각해주시고 귀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를 위해 노심초사하시면서 돌보아주시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매일의 인생 여정 안에, 지근 거리에서 경호실장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수호천사들은, 하느님을 대신해서 인생의 세세한 부분까지 배려해주십니다. 얼마나 은혜롭고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수호천사의 존재는 우리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극진한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수호천사들은 하느님의 마음으로 우리 인생길을 동반하고 있습니다. 수호천사들은 하느님의 시선으로 매일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수호천사들은 매일 우리가 걷는 여행길의 방향을 올바른 쪽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과거와는 달리 천사에 대한 강조가 많이 약해진 것이 사실이지만, 성경 여러 곳에서 수호천사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서 아주 명백히 표현되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예수님께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 언급하신 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신자로서 수호천사의 현존에 대해 의심치 말고 믿어야 마땅합니다.
수호천사는 굴곡지고 사연 많은 우리네 인생길을 지켜줍니다.(시편 91,11) 수호천사는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합니다.(탈출 23,20) 뿐만 아니라 수호천사는 우리의 시중까지 들어줍니다.(히브 1,14) 하느님을 대신해 인간에게 복을 내려줍니다.(창세 48,16)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서서 우리의 기도를 하느님께 전달해 줍니다.(토빗 12,12) 투옥되어 큰 곤경 중에 빠져있던 베드로 사도는 여러 차례 수호천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사도 12,7)
베르나르도 성인의 권고에 따라,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순수하고 어린이다운 마음을 회복해야겠습니다. 수호천사에 대한 신심을 좀 더 키워야겠습니다. 하느님을 대신해서 우리를 수호하는 그들의 존재에 감사하는 마음을 지녀야겠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천사를 보내어, 길에서 너희를 지키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너희를 데려가게 하겠다.”(탈출 23,20)
먼저 자기를 멸시하지 않고는 타인을 멸시할 수 없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오늘은 수호천사 기념일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라고 하십니다. 작은 이들을 멸시하지 않아야 하는 이들이 그들이 수호천사를 통해 하느님 아버지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란 뜻입니다.
여기에 타인을 멸시하는 이들은 반드시 자기 자신부터 멸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위 ‘땅콩 회항’과 같이 나의 위치로 타인을 멸시하는 행위는 이미 자신이 자기를 멸시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사랑받는 사람이라면 사랑받는다는 증거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그 가장 큰 증거가 수호천사입니다. 수호천사와 가까웠던 비오 신부님은 항상 영적 자녀들에게 수호천사를 공경하고, 그들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수호천사에 대해 열심히 가르치셨던 비오 신부님은 때때로 밤새도록 수호천사들이 메시지를 전하는 바람에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밤, 비오 신부님과 함께 산 조반니 로톤도에 있는 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미 밤 11시가 되었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누군가가 성스러운 수호천사를 비오 신부님께 보내어 축복받자고 제안했습니다. 모두 무릎을 꿇고 그렇게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비오 신부님이 고아원으로 가시던 길에 그들 앞을 지나가시며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어젯밤 11시에 다섯 명의 수호천사가 한꺼번에 들이닥쳤었소.”
어느 날 한 부부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이가 열이 나고 있었습니다. 약이 있긴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자정 무렵, 남편이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아이와 함께 여기에서 잠을 자고, 나는 옆 방에서 자겠소.”
그러고 나서 남편은 잠들기 전에 자신의 수호천사를 비오 신부님께 보냈습니다. 정확히 1시 5분 전이었습니다. 새벽 3시에 남편이 깨어나 아이를 생각하고 가 보니, 아이의 열이 내리고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습니다. 남편은 기뻐서 아내를 깨웠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말했습니다. “나도 그것을 알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내 수호천사를 비오 신부님께 보냈어요.” 그러자 남편도 자기가 그렇게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몇 주 후, 남편은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 비오 신부님을 찾아갔습니다. 성당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고, 비오 신부님은 남편을 향해 가리키며 농담을 하셨습니다. “당신 집에서는 밤에도 쉴 시간이 없어요!” 남편이 미안하다고 말하자, 비오 신부님은 밝게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미안해할 일이 아니오. 밤에도 수호천사들이 찾아오는 것은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이오.”
남편이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하려고 하자, 비오 신부님은 그 감사를 사양하셨습니다. “먼저 감실로 가요 아니면 성모님께 가든지.”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보고 있는 것을 안 남편은 겸연쩍게 물었습니다. “비오 신부님, 하나 여쭤볼까요? 어느 쪽 수호천사가 먼저 왔지요? 제 아내의 수호천사였습니까, 저의 수호천사였습니까?” 이에 비오 신부님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셨습니다.
“당신 수호천사가 먼저 왔소. 1시 5분 전에 당신의 수호천사가 왔고, 조금 뒤에 아내의 수호천사가 왔소.”
비오 신부님은, 미사에 참석하지 못할 상황이 생기면 자신의 거룩한 수호천사에게 미사 중의 뜻을 하느님께 전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사랑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수호천사를 통해 은총을 받는 존재임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타인을 멸시할 수 없습니다. 타인도 그러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남을 무시하는 사람은 나도 무시당하는 사람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미움이 사라지려면 우리 곁에 수호천사를 많이 두어야 합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형제들]에서 드미트리 카라마조프의 변신은 극적으로 전개됩니다. 아버지를 죽인 누명을 쓰고 감옥에 있는 동안 그의 자각이 깊어지고 사랑과 구원의 본질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지 못해 그를 공개적으로 죽이고 싶다고 말해왔지만, 정작 아버지를 죽인 사람은 사생아였던 스메르쟈코프였습니다.
드미트리는 자기 애인인 그루센카도 아버지가 빼앗으려는 것을 알고는 아버지와 형제들, 애인에게까지 분노합니다. 그러나 스메르쟈가 자신의 살인이 들통날까 봐 자살하자, 형의 약혼녀인 카테리나와 바람을 비운 동생 이반까지도 형의 편을 들어 그를 석방시키려 합니다.
알료샤는 수도사가 되어 하느님께서 사랑하심을 매일 방문하여 끊임없이 설득하고 그루센카는 자신과 함께 벌을 받자며 20년 동안 드미트리를 기다리겠다고 말합니다.
이에 지금까지 자신이 아버지와 형제들과 애인까지도 멸시하며 살아온 것에 20년 형도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아버지를 통한 모든 이들도 자신처럼 사랑받는 존재임을 알고는 모두를 존중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받는 소중한 존재임을 일깨우는 이들이 수호천사들입니다. 하느님은 그 사랑을 의심하지 말라고 우리 각자에게 수호천사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수호 천사를 믿지 않으면 자기를 멸시하는 사람이고 그 멸시는 이웃에게 이어집니다.
1948년 10월 3일, 요한 23세 교황은 자신의 여동생 안젤라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한 23세 교황은 매일 최소 다섯 번은 천사에게 기도하고, 마음속에서 자주 천사와 대화한다고 고백했습니다.
“네 수호천사와 친해지고, 당신이 알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수호천사와도 가까워져라. 이 하늘의 파수꾼들, 그 신비로운 증인들과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유는 몇 가지 있습니다. 잘못된 길에서 얻는 쾌감이 크기 때문입니다. 흡연, 음주, 도박, 마약과 같이 중독성이 있는 것은 웬만한 결단으로는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도 있습니다. 특히 집단적인 선택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로마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명분으로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벌였습니다. 처음 전투에서 15,000명이 사망했습니다. 이때라도 정치인들이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인정하고, 평화협정을 맺었으면 더 큰 피해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고, 이탈리아는 12번의 전투를 더 벌였고, 700,000명의 군인이 사망하고 나서야 전쟁을 끝냈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시청사 건물을 4000만 파운드를 들여 2년 안에 건축하기로 했습니다. 건설사는 비용이 더 든다는 이유로 예산을 청구했고, 시간도 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스코틀랜드 정부가 건설사를 잘못 선택했다는 사실을 인정했으면 더 큰 손실은 없었을 것입니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고, 수렁에 빠져들 듯이 예산을 쏟아 부었고, 4억 파운드를 들여 5년이 지나 완공할 수 있었습니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걸, 가래로도 막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2년 전에 이태원 참사가 있었습니다. 1년 전에 해병 순직 사고가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이 있습니다. 응급실에 의사가 부족해서 군의관과 공공 보건의가 파견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손이 잘못하면 손을 버려야 한다. 두 손으로 불타는 지옥으로 가는 것 보다는 한 손 만으로도 천국으로 가는 것이 좋다. 발이 잘못하면 발을 버려야 한다. 두 발로 불타는 지옥으로 가는 것 보다는 한 발만으로도 천국으로 가는 것이 좋다. 눈이 잘못하면 눈을 버려야 한다. 두 눈으로 불타는 지옥으로 가는 것 보다는 한 눈만으로도 천국으로 가는 것이 좋다.” 가장 현명한 방법은 책임자를 문책하고, 진실을 파악하고, 잘못된 것에 대한 사과가 있는 것입니다. 국회는 야대여소로 구성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야당의 협조 없이는 국정을 이끌어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도 인정해야 합니다. 행정부는 이런 현실을 인식하고 쌓여 있는 국가의 현안을 풀어가야 합니다.
김구 선생님이 꿈꾸던 나라가 되면 좋겠습니다. 김구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어느 민족도 일찍이 그러한 일을 한 이가 없으니 그것은 공상이라고 하지 마라. 일찍이 아무도 한 자가 없기에 우리가 하자는 것이다. 이 큰일은 하늘이 우리를 위하여 남겨 놓으신 것임을 깨달을 때에 우리 민족은 비로소 제 길을 찾고 제 일을 알아본 것이다.” 오늘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천사를 보내어, 길에서 너희를 지키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너희를 데려가게 하겠다. 너희는 그 앞에서 조심하고 그의 말을 들어라. 그분이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어, 네가 가는 모든 길을 지켜 주시리라.” 누가 천사일까요? 아첨과 아부로 눈과 귀를 가리는 사람은 결코 천사가 아닙니다. 책임을 회피하려고 권력의 동아줄에 의지하려는 사람도 결코 천사가 압니다. 법과 원칙을 무시하고, 자신의 이권만 챙기려는 사람도 결코 천사가 아닙니다.
주변을 보면 아름다운 나눔을 실천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연말연시에는 사랑의 나눔이 있었습니다. 어린아이가 돼지 저금통을 가져오기도 하고, 군인들도, 기업체를 운영하는 분들도 이웃을 위한 나눔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나눔이 더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치를 해도 함께 나누고, 잔치가 있으면 이웃을 초대하였습니다. 누군가 돌아가시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신 분의 장례를 위해 함께 수고하였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예전에 농경시대에 있었던 방식의 나눔이 계속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바쁘고 분주한 현대사회에 살면서도 나눔의 아름다운 모습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바로 수호천사입니다. 오늘 내가 전하는 따뜻한 말과 친절은 고통 중에 있는 이웃에게, 절망 중에 있는 친구에게 위로와 힘을 줄 것입니다. 수호천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지만, 우리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기도 할 수 있고,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런 우리들의 모습이 수호천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이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천사를 보내어, 길에서 너희를 지키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너희를 데려가게 하겠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오늘의 성인
천사 안젤라, 안젤로(Angelo Custode)
활동년도:
신분:수호천사
수호 천사 기념일
하느님은 우리가 날때부터 각 사람에게 천사들을 보내시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안전하고 바른 길로 가도록 비춰주시고 보호해주신다.
각 사람을 보호해주는 천사를 수호천사라고 한다.
*
수호천사께 드리는 기도
*
저를 비춰주시는 수호천사여,
인자하신 주님께서
저를 당신께 맡기셨으니
오늘 저를 비추시고
지켜주시며 인도하시고
다스리소서.
아멘
성 레오데가리오(Leodegarius)
신분 : 주교, 순교자
활동지역 : 오툉(Autun)
활동연도 : 616-679년
같은이름 : 레오데가리우스, 레제르
성 레오데가리우스(또는 레오데가리오)는 클로테르 2세(Clotaire II)의 궁정에서 자랐고, 그의 삼촌인 푸아티
에(Poitiers)의 디돈(Didon) 주교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그는 디돈 주교에 의해 부제품과 사제품을 받은 후 651-653년경에 막센티우스(Maxentius) 수도원의 원장이 되어 그 수도원에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의 수도규칙을 도입하였다.
이 시기에 성 레오데가리우스는 겸손한 영혼을 가진 사제로서 생활하였다. 그가 궁정에 자발적으로 갔는지 소집되어 갔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655년 프랑크의 왕 클로비스 2세(Clovis II)가 사망하고 훗날 클로테르 3세가 될 아들이 아직 어려 왕비인 성녀 바틸다(Bathildis, 1월 30일)가 섭정을 할 때 성 레오데가리우스는 왕비를 보좌하였다. 663년에 오툉의 주교로 임명된 후에도 그는 여왕을 계속 도왔다.
당시 오툉 교구는 완벽한 무질서 상태였다. 2년 동안 주교가 없었고 그 전에는 두 명이 주교좌를 놓고 서로 다투기까지 하였다. 그 중 한 명은 살해당했고 다른 한 명은 권력의 남용으로 귀양살이를 해야 했다. 그래서 성 레오데가리우스는 마을의 성곽과 주교좌성당을 재건하는 것부터 시작하였다.
“설교를 통해 평화와 화합으로 이끌지 못하는 이는 정의와 두려움을 통해서 평화에로 이끈다.”라는 속담이 있었다. 성 레오데가리우스는 매우 엄격한 주교라는 평을 듣곤 했지만 교구를 분열시켰던 파벌싸움을 화해시키고, 개혁 정책을 도입하여 모든 수도원에 성 베네딕투스의 수도규칙을 도입하였으며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으로 유명해졌다.
성녀 바틸다가 섭정에서 물러나고 클로테르 3세가 죽자 그는 궁정 대신이었던 에브로인(Ebroin)이 후원하는 티에리(Thierry)의 동생인 어린 칠데릭 2세(Childeric II)를 왕으로 지지하였다. 결국 칠데릭 2세가 왕위에 올랐고 에브로인은 뤽세이유(Luxeuil)로 귀양을 가서 그곳에서 삭발 수도사가 되었고, 칠데릭 왕의 조언자가 된 성 레오데가리우스의 신랄한 반대자가 되었다. 성 레오데가리우스는 많은 일들을 엄격하게 처리하면서 불화를 일으켰기 때문에 그의 높은 지위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칠데릭 왕이 그의 삼촌의 딸과 결혼하는 것을 비판하여 왕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어느 부활절에 성 레오데가리우스는 주교좌성당에서 거행되는 부활 대축일 미사에 칠데릭 왕을 초대했으나 왕은 이를 거부하였다. 그런데 잠시 후 왕은 술에 취한 상태로 와서 큰 소리로 무례하게 소리를 지르며 미사를 방해했지만 왕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제지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왕의 분노를 피해 도망가기로 결정했으나 오래지 않아 붙잡혀 궁정으로 소환되어 재판을 받고 675년에 뤽세이유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675년 칠데릭 왕이 살해당하자 그의 후계자인 테오도릭 3세(Theodoric III)는 성 레오데가리우스와 에브로인을 다시 궁정으로 불러들였다. 그런데 에브로인이 오툉을 공격하였을 때 성 레오데가리우스는 마을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항복하였다. 결국 그는 에브로인에 의해 눈이 두 눈이 뽑히는 등 잔혹한 형벌을 당한 후 숲으로 쫓겨났다.
앞이 보이지 않는 그는 굶주림 속에서 죽어갔으나 그를 지키던 경비병이 불쌍하게 생각하여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치료하고 돌보아주었다. 그러나 이에 만족하지 않은 에브로인은 몇 년 후 칠데릭 왕이 성 레오데가리우스와 그의 형 성 게리누스(Gerinus, 10월 2일)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왕에게 주장하였다. 결국 성 게리누스는 돌에 맞아 죽었고, 성 레오데가리우스는 고문을 당한 후 불구자가 되어 노르망디(Normandie)에 있는 페캉(Fecamp) 수도원에 감금되었다. 그가 자신의 형 성 게리누스의 죽음에 관해 어머니께 보낸 편지가 전해지고 있다.
2년 후 에브로인에 의해 궁정에 소환된 그는 주교좌에서 축출되었고, 그의 무죄 주장에도 불구하고 적대자들에 의해 아르투아(Artois) 부근의 숲에서 살해되었다. 로마 순교록은 그를 복자와 순교자로 호칭하고 있고, 성 레제르(Leger)로 널리 알려져 공경을 받고 있는데 어떻게 그에게 이러한 영예가 부여되었는지에 대해 학자들은 많은 의심을 갖고 있다. 예술 작품에서 그는 눈이 도려내어지고 송곳으로 뚫린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는 시각 장애인의 수호성인이다.
성 토마스 (Thomas)
활동년도 : 1218-1282년
신분 : 주교
지역 : 헤리퍼드(Hereford)
같은 이름 : 도마, 토머스
영국 잉글랜드(England)의 헤리퍼드의 주교이며 토마스 켄틀루프(Thomas Cantelupe)라고도 불리는 성 토마스는 노르만 귀족 가문의 후손으로서 헨리 3세의 무관인 바론 윌리엄 켄틀루프의 아들이다. 그는 잉글랜드 버킹엄셔(Buckinghamshire)에서 태어나 삼촌인 우스터(Worcester)의 월터(Walter) 주교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그 후 토마스는 부친과 함께 1245년의 리옹(Lyon) 공의회에 참석했는데, 아마도 그 이후에 사제로 서품된 듯하다. 그 후 그는 오를레앙(Orleans)과 파리(Paris)에서 법률을 공부하였고, 옥스퍼드(Oxford)에서는 교회법을 교수하였으며 1262년에 수상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정의와 융화를 바탕으로 직무를 수행하였으나 시몬 드 몽포르(Simon de Montfort)의 죽음을 계기로 파리로 은퇴하였다가 1274년에 헤리퍼드의 주교로 착좌하였다. 그는 교구의 개혁을 조심스럽게 단행하였고, 속권에 의해 유린된 교회의 권리를 회복시켰으며 참으로 지혜롭게 교구를 지도하였다. 그의 만년은 주로 캔터베리(Canterbury)의 대주교인 토마스 존 페크햄(Thomas John Peckham)과의 교회법적 논쟁으로 보냈는데, 1282년에는 그 대주교에 의하여 파문 처분을 당하였다. 토마스는 이 사건을 교황에게 상소하기 위하여 로마(Roma)로 가던 중 몬테 피아스코네(Monte Fiascone)에서 서거하였다. 그는 1320년에 교황 요한 22세(Joannes XXII)에 의하여 시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