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성 마카리우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세상에 대하여 죽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성자는 엉뚱하게도 그 사람을 데리고 공동 묘지로 가더니 무덤에다 대고 실컫 욕을 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또 잠시 후에는 실컷 칭찬을 해보라고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사람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실컷 욕을 하니까 시체들이 화를 냅니까? 또 당신이 칭찬을 한다고 그 시체들이 기뻐하던가요?” 그러자 그 사람은, “아니요, 그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지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성 마카리우스는 분명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세상에 대해 죽는다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이 당신을 비웃고 조롱한다고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또한 세상이 당신에게 온갖 칭찬과 쾌락을 베푼다고 현혹되어서도 안됩니다. 당신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에 대하여, 육체에 대하여 죽었기 때문입니다.
삶이 주는 작은 충격에도 쉽게 흔들리는 당신의 모습, 곧 세상에 대해 민감한 당신은 여전히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닌지...
요일 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요일 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1.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사역을 위한 필요한 것들이 채워질 수 있도록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7월 7일(주일)에 목포에 있는 주소망교회에서 총동원주일을 가지는데 제가 가서 사역으로 돕고자 합니다. 6일에는 지역에서 찬양하며 전도하고 7일 예배 때에 교회에서 찬양하고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우리는 육신의 정욕을 이겨야 함 본문 : 롬8:12,13
토트 티하메르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인생의 가장 큰 승리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얻은 승리다'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은 죄악과 불의에 맞서싸워야 하지만 그 싸움의 궁극적인 상대는 결국 자기 자신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죄와 불의 그리고 자신의 그릇된 욕망을 억제하고 하나님의 뜻을 택할 수만 있다면 신앙의 승리는 보장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신앙 승리는 자신의 정욕과의 싸움에 그 승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제 육신의 정욕과 그 죄악을 이기는 길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육신의 정욕의 의미(벧전2:11,12)
1)육체의 정욕 일반적으로 성경에 언급된 소욕을 '육체의 정욕'으로 이해합니다. 성욕, 식욕, 소유욕 등 인간의 기본적이며 동물적인 욕구는 사실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닙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이 주신 인간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욕구인 뿐입니다. 그 욕구들이 있기에 인간은 결혼을 하고, 식사를 하며, 편안하고 풍족한 환경을 마련키 위해 열심히 일하고 공부도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본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육체의 욕구를 죄로 여기고 극단적인 금욕주의를 주장하며, 육체를 학대하거나 천시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옳지 못한 것입니다(참조, 골2:20-23). 다만 성도들이 경계할 것은 육체의 욕구를 좇아 육신만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배가 고프다고 훔치고, 갖고 싶다고 불법으로 차지하고, 힘들다고 일을 하지 않는다면 곧 죄를 범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욕구는 지성과 양심과 신앙윤리 밑에 종속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인정하시는 한계 안에서 육체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신앙 인격을 갖춰야 합니다. 그것이 곧 성도의 도리요, 마땅한 본분입니다. 그 한계를 벗어나 본능적으로 사는 것은 곧 육체의 정욕에 패하는 것입니다(참조,엡4:19).
2)옛사람의 정욕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여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2:3). 성경이 말하는 육신의 정욕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의 '불신앙적인 본성과 그 내적 원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육신'이란 원어적 의미로 볼 때 '죄된 인간 본성'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정욕이란 거듭나지 못한 옛사람의 본성에서 나오는 정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를 일컬어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이라고도 표현합니다(엡4:22). 그러므로 '육신의 정욕'이란 영적이며 정신적인 의미를 지닌 말입니다. 단순히 육체의 욕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해 불신앙, 불순종하는 이 세상 사람들의 인본주의적인 마음과 정신에서 나오는 그릇된 욕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2. 육신의 정욕으로 인한 죄들(갈5:19-21)
1)자기중심성 육신의 정욕으로 인한 죄 중에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이 바로 '자기중심성'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세상 사람들의 본성은 '신앙'이 아닌 자신을 하나님처럼 여기는 자기중심주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는 불신앙과 불순종의 죄를 범하게 되고 이웃과는 분리, 분쟁으로 불화의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고전3:3). 결국 모든 세계의 중심과 최고의 자리에 하나님을 모시지 않고 '나'를 왕으로 삼는 것이 육신의 정욕대로 사는 사람들의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2)더러운 생활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막7:21-23). 죄로 인해 부패하고 타락한 인간 본성에서 나오는 정욕이 바로 육신의 정욕입니다. 그릇된 탐욕, 권세와 명예에 대한 허영심, 극단적 경쟁심, 추악한 정욕 등 하나님을 믿지 않으니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에 대해 극한 애착심과 탐심을 지니게 됩니다. 또한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그 욕심을 채우고자 합니다. 그 결과 온갖 더럽고 추한 죄의 열매들이 삶 속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불법, 배신, 어리석은, 방탕, 간교함 등이 그 삶의 내용을 이루게 됩니다(참조, 롬1:24-32). 그리고 그와 같은 죄악된 삶을 은폐하고 합리화시키기 위해 그것을 옹호하는 종교나 이단이나 논리들을 추앙하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신자들을 핍박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3. 육신의 정욕을 이기는 길(갈5:22-24)
1)성령을 따라 행함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4). 성도들에게도 옛사람의 본성이 남아 있습니다. 거듭나 새 사람을 입었으니 순간 순간마다 옛사람의 남은 본성의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세속적인 가치와 기준을 버리고 늘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을 표준으로 삼고 행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이요 정욕과 싸워 이기는 기초적인 방법입니다.
2)그리스도로 무장함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4). 우리가 매사에 '예수그리스도'라면 어떻게 하실까? 라는 생각으로 행동한다면 육신의 정욕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분신으로서 행하고자 할 때 그 거룩한 의지에 대하여 육신의 정욕은 실로 무가치한 죄악의 잔재로 인식될 것입니다.
3)사랑으로 행함 적극적으로 육신의 정욕을 이기는 최고의 방법이 사랑입니다. 사실 육신의 정욕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치 않고 나만을 위하는 욕심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는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 육신의 정욕을 제압하는 최선책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교만할 수 없으며,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욕심대로 행치 않습니다(참조, 롬13:8-10).
결론 육신의 정욕을 이기는 것은 금욕주의나 도피주의로는 불가능합니다. 타락한 인간 본성에서 기인되는 욕심은 오직 하나님의 복음의 진리 안에 거하는 성도들만이 극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을 좇아 그리스도로 옷입고 하나님의 사랑을 적극 행하는 것이 육신의 정욕을 이기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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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잠19:17
가난한자를 불쌍히 여기는것
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 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 리라 샬롬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주님의 영광과 복음과 선교와 설 교와 목회와 치유와 상담과 성령 의 도구로 쓰임받고 열매 맺게 하소서 아멘
죽은자는 말이없다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감사합니다
오늘도 귀한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신 예수 사랑 목사님, 평안 장로님, 존재 목사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