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연중 제16주일입니다. 오늘 전례는 우리에게 주님의 봉사자들의 사목활동을 위하여, 예수님과 사도들의 목자로서의 삶을 제시합니다. 복음에서는 군중을 보시며 목자 없는 양떼와 같은 모습을 보시며 측은지심을 지니셨다고 전합니다.
성서에서는 목자와 양떼의 비유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등장합니다. 먼저 주 하느님은 목자요 이스라엘은 그 양떼로서 묘사됩니다. 모세도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에는 40년 동안이나 들에서 양치는 목자였고 부르심을 받은 후에도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던 백성의 목자였습니다.
나라의 왕들과 지도자들도 성서는 또 목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윗도 본래는 예루살렘의 촌뜨기 목동 출신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일약 나라의 왕이 되어 가장 위대한 목자로서 그 빛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대부분의 왕들은 목자로서의 사명에 충실치 못해서 번번이 하느님의 눈에서 벗어나곤 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마저 타락된 왕의 체제하에서 편하게 안주하고 있었습니다. 예언자들이 등장해서 그들 모두를 질책하고 경고한 것은 모두 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1독서에서 예레미야는 사악한 왕들과 썩은 종교 지도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나라가 망하고 백성이 흩어져 포로로 끌려가는 것은 순전히 목자들의 탓이라고 꾸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실망하신 하느님께서는 이제 다윗의 후손에게 정통 후손을 일으키시겠다는 언약을 하시면서 메시아를 예고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의 모든 기대는 새로운 목자를 기다림에 그 초점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양들의 운명은 전적으로 목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목자가 목자로서의 임무를 태만히 하고 제 이익과 편함만을 고집한다면 양들은 죽게 됩니다. 그리고 양들의 멸망은 곧 목자 자신의 사망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목자는 진정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목자답게 살 아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목자의 직책은 바로 거기에 하느님께로부터 불리움을 받은 의미가 있습니다.
목자는 실제로 그 직책 자체가 고달픕니다. 제 때에 밥을 먹지도 못하며 밤잠을 설치는 것이 다반삽니다. 이리나 맹수들로부터의 공격을 경계해야 하며 길 잃은 양이 있으면 찾아 나서야 하고 아픈 양이 있으면 손수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목자는 그래서 인정이 많은 자라야 합니다. 불쌍하면 연민의 정을 가지고 동정할 수 있는 자가 참된 목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참된 목자이십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시는 예수님은 실로 '참된 목자'로서 오신 분이며 구약에서 예고했던 다윗의 정통 왕손으로서 메시아로서 오신 분입니다. 그분은 실로 여느 왕과는 달랐으며 또한 기존의 종교 지도자들과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위에서 군림하며 자신만의 부귀영화를 누리는 썩은 목자가 아니라 오히려 밑에 내려가서 불쌍한 사람들과 고통을 나누는 가난한 목자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종교인들은 먼저 가난해야 합니다. 자신이 가난하지 않고는 절대로 가난한 자의 진정한 이웃이 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의 종교인들은 또한 땀 흘리고 수고하는 노력을 나날이 체험해야 합니다. 자신이 고생해 보지 않고 또한 자신이 땀 흘려 보지 않고는 절대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위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위에는 그런 진정한 목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시골의 많은 신부님들이 농민과 어부들과의 삶을 진정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가난한 본당과 공소를 돌아보기도 어려운데 도농간 직거래 운동으로 농산물을 차에 싣고 밤에 서울로 올라가서 새벽에 내려오기도 합니다. 식사를 제 때에 못하는 경우도 많으며 고생은 뼈 빠지게 해도 영육간의 소득은 또 극히 적어서 설움이 클 때도 있습니다.
도시에도 가난하게 살면서 고생하는 신부님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또 큰 도시에 의외로 많기도 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신부님은 부자 본당에 계신데도 지극히 가난하십니다. 당신의 물질적인 것은 다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시며 실제로 노동 현장, 빈민가에 뛰어들어 그들과의 삶을 진정으로 나누고 계십니다. 그런 걸 보면 세상은 그래도 여전히 밝고 환하다는 희망을 갖게 됩니다.
오늘의 희망은 종교인들에게 있습니다. 특히 이 시대에는 우리 가톨릭 성직자들의 거룩하고 밝은 삶에 그 미래가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떤 자매가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오늘의 시대에 독신 사제들이 존재한다는 그 자체가 기적입니다."라고. 사실 오늘의 이 시대야말로 그리스도의 참 모습이 필요한 때입니다. 세상은 지금 영적인 생수를 애타게 갈구하고 있습니다. 그 몫을 해결해 줘야 하는 임무가 바로 성직자들에게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위기를 슬기롭게 대처해서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힘도 성직자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망했다면 의인이야말로 세상을 건지는 도구요 에너지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성직자들을 위해 기도해 줘야 합니다. 그들도 실은 약합니다. 그들도 똑같은 인간입니다. 그래서 혼자 일어서고 혼자 걸어가기에는 힘이 벅찬 것이 사실입니다. 기도와 희생으로 그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의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강길웅신부 강론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