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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17일 목요일
[(홍)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이냐시오 성인은 시리아의 안티오키아(현재 튀르키예의 안타키아)에서 태어나 그곳의 주교가 되었다. 요한 사도의 제자였다고도 하는 그는 초대 교회에서 중요한 지역이었던 안티오키아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다가, 107년 로마에서 순교하였다. 그는 로마로 압송되는 도중에 들르는 곳마다 신자들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리스도와 교회의 구조 그리고 그리스도인 생활에 대하여 슬기롭고 심오하게 서술하였다. 그 편지들은 지금까지 보존되어 초대 교회의 신앙생활에 관한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말씀의 초대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은총을 베푸시며 만물을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신다고 바오로 사도는 말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한다며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불행을 선언하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시작입니다. 1,1-10
1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오로가
에페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사는 신자들에게 인사합니다.
2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6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8 하느님께서는 이 은총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베푸셨습니다.
당신의 지혜와 통찰력을 다하시어,
9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선의에 따라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 주셨습니다.
10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아벨의 피부터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예언자들의 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47-54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47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48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
49 그래서 하느님의 지혜도,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낼 터인데,
그들은 이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50 그러니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51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 간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52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53 예수님께서 그 집을 나오시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기 시작하였다.
54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렸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필리 3,17─4,1)와 복음(요한 12,24-26)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마침 오늘 복음이 예언자들과 사도들이 겪을 박해와 죽음에 대하여 말하고 있어서, 오늘 축일을 지내는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성인의 편지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가장 유명한 구절은 오늘의 영성체송인 “나는 그리스도의 밀알이다. 짐승들의 이빨에 가루가 되어 깨끗한 빵이 되리라.”라는 말씀입니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는 순교하러 로마로 가는 길에 일곱 교회에 편지를 썼습니다. 저기에서 그는 온 세상을 다스리는 것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하며, 죽음을 통하여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분과 결합하고자 하는 갈망을 표현합니다. 그는 죽음을 새로운 탄생으로 생각하여, 순교를 출산의 고통과 같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특히 그는 순교가 성찬과 밀접하게 연관된다고 보았습니다.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자신을 죽음에서 구하려고 애쓰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자신이 맹수의 먹이가 될 때 그로써 하느님을 만날 수 있으며, 하느님의 밀알로서 맹수의 이빨에 갈려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되리라고 말합니다. “깨끗한 빵”은 제물로 바쳐지는 빵을 가리킵니다. 그는 순교로써 그리스도의 수난을 본받고, 그리스도의 빵이 되어 하느님께 바쳐지는 희생 제물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갈망은 성체성사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성체성사로써 모든 이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주신 예수님과 일치되었기에, 그분의 수난과 죽음에도 동참하고 그 자신도 하느님께 바쳐지는 제물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받아 모신 성체와 하나 되어, 우리도 깨끗한 밀알이 됩시다.(안소근 실비아 수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내 삶의 뿌리를 살펴봅시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혹시 지금까지 이 세상 살아오시면서 혹시라도 누군가로부터 공개석상에서 이런 말을 들어보신 적인 있는가요?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야! 빨리 그 가면을 벗어라!” 라든지 “인생을 그따위로 살지 마라!” 라는 식의 충격적인 말.
이 세상 그 누구라도 그런 말을 듣게 되면 가슴이 부들부들 떨릴 것입니다. 복수심에 이를 갈 것입니다. 어떻게라도 반격하고 되갚아 주기 위해 골몰할 것입니다.
요즘 계속되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는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쌍날칼 같습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루카 11,52)
본격적인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 눈에 제일 먼저 포착된 볼썽 사나운 광경이 있었으니, 백성들은 안중에도 없는 거짓 목자들, 오직 자기 배, 자기 주머니 채우는데 혈안이 된 지도자들의 타락과 횡포였습니다.
정치와 종교가 함께 가던 유다 문화 안에서 지도자들의 부패와 타락은 고스란히 가난한 백성들의 고통으로 슬픔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종교의 권위를 등에 업은 지도자들의 횡포 앞에, 착취와 희생의 대상으로 전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디 한 군데 마음 둘 곳이 없었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저지른 가장 큰 죄가 있었으니, 자신들뿐만 아니라 아무 잘못 없는 백성들까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가로막은 죄입니다.
이런 비참한 현실 앞에 예수님께서는 큰 껄끄러움과 부담을 무릅쓰고 거짓 지도자들의 회심을 촉구하는 강력한 펀치를 날리고 계신 것입니다.
가끔씩 우리에게도 강력한 펀치가 날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은 신속한 회심을 촉구하는 주님 편의 신호라고 보면 거의 정답입니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강력한 한방이 날아올 때면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내 삶의 뿌리를 한번 돌아볼 일입니다. 무엇부터 잘못되었는지를 성찰해볼 일입니다.
결국 그 강력한 한방은 우리 각자를 향한 하느님 사랑의 마음, 어서 빨리 당신께로 돌아서라는 자비의 마음이 바탕에 깔려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인생(人生)은 무엇일까요? 고인이 되신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님은 강의 중에 ‘하숙생’을 불렀습니다. 하숙생의 가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말자 미련일랑 두지말자/ 인생은 나그네 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간다/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 강물이 흘러가듯 여울져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말자 미련일랑 두지말자/ 인생은 벌거숭이/ 강물이 흘러가듯/ 소리 없이 흘러서 간다’ 노래의 가사에 심오한 뜻이 있습니다. 나그네는 짐을 많이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나그네는 욕심을 낼 필요가 없습니다. 곧 떠나기 때문입니다. 나그네는 헤어짐에 슬퍼할 필요도 없고, 의견이 다르다고 화낼 필요도 없습니다. 어차피 곧 떠나기 때문입니다. 나그네는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피곤한 몸을 의탁할 쉼터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나그네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 수 있다면 마음을 비우고 겸손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도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대구로 가는 기차에서 이런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삶은 계란 있어요.’ 인생은 계란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계란은 둥글게 생겼습니다. ‘둥글게 둥글게’라는 동요가 있듯이 인생은 둥글게 사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남의 눈에 있는 작은 티를 보기 전에 먼저 자기 눈에 있는 들보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욱하는 성질 때문에 큰일을 망치는 경우를 봅니다. 조금만 참고, 조금만 기다리고, 조금만 양보하면 오해는 이해로 바뀌고, 원망은 용서로 바뀌기 마련입니다. 계란은 깨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소중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을 닮은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느님 앞에 자유인도, 노예도, 유대인도, 그리스인도 모두 하나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길가의 돌로도 아브라함에게 하신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소중한 생명을 귀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계란은 노른자가 있습니다. 인생에 노른자는 성공, 명예, 권력이 아닙니다. 인생의 노른자는 믿음, 희망, 사랑입니다.
오늘 독서는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시작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다 계획이 있으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계획을 따르고, 그리스도 예수를 믿으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로봇으로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계획에 따르는 것도, 하느님의 계획을 따르지 않는 것도 우리의 선택에 맡겨 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계획을 따르지 않고, 남도 따르지 못하게 막아버리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야단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파와 율법 학자들의 위선과 가식을 말씀하십니다. 겉은 화려하지만 내면은 비어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삼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행동합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파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기 시작하였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렸다.” 시기와 질투가 가득한 사람은 본인도 진리를 보지 못하지만, 남들도 진리를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그대 사람아 어디 있는가>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루카 10,47)
선이 스민다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악이 스민다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그대 사람아
어디 있는가
사랑이 흐른다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미움이 흐른다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그대 사람아
어디 있는가
축복이 깃든다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저주가 깃든다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그대 사람아
어디 있는가
살림이 넘친다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죽임이 넘친다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그대 사람아
어디 있는가
오늘의 성인
성 이냐시오(Ignatius)
신분 : 주교, 순교자, 교부
활동지역 : 안티오키아(Antiochia)
활동연도 : 35?-107년
같은이름 : 이그나티오, 이그나티우스, 이냐시우스
초창기의 교부이자 순교자로 일명 ‘테오포로스’(Theophoros, bearer of God)라고도 불리는 성 이냐시오의 생애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아마도 그는 시리아 출신인 듯하며, 사도 성 요한(Joannes, 12월 27일)의 제자였음이 분명하고 개종자이다. 그는 사도 베드로(Petrus)에 의하여 안티오키아 교회의 제2대 혹은 제3대 주교로 임명되어 축성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성 이냐시오는 40년 동안 교회를 다스리다가 트라야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에 체포되어 로마(Roma)로 이송되었다. 그를 호송하던 배는 소아시아 연안을 거쳐 그리스를 통과하여 마침내 로마에 당도하였다. 그의 배가 정박하는 곳마다 그리스도인들의 환영을 받았으나 호송 책임자는 그를 아주 잔인하게 대하였다고 한다. 그는 그 당시 어느 공식 경기의 마지막 날인 12월 20일 로마의 원형 극장에서 사자의 밥이 되어 장렬하게 순교하였다.
그는 로마로 끌려오는 동안에 여러 통의 편지를 썼고, 스미르나(Smyrna, 오늘날 터키의 이즈미르, Izmir)에 잠시 머무는 동안에서 성 폴리카르푸스(Polycarpus, 2월 23일)에게도 서한을 보내어 그리스도교 신앙을 보전하라고 권고하였다. 또 교회, 결혼, 삼위일체, 강생, 구속 그리고 성체성사에 관한 그의 교육적인 편지들은 초기 그리스도교 저서 가운데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역사적 문헌들이다.
성 리카르도 그윈(Richard Gwyn)
활동년도 : 1537-1584년
신분 : 순교자
지역 : 영국(UK)
같은 이름 : 리까르도, 리까르두스, 리차드, 리처드, 리카르두스
웨일스(Wales)의 란니들로에스 태생인 성 리카르두스 그윈(Richardus Gwyn, 또는 리카르도 그윈)는 프로테스탄트로 성장하였고, 옥스퍼드에서 잠시 공부한 뒤에 케임브리지의 성 요한 대학에서 공부하였다. 그는 1562년에 고향으로 돌아와서 오버톤에 학교를 세우고 결혼도 하여 6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가 우연히 가톨릭으로 개종하면서부터 오버톤을 떠났으나 1579년에 체포되었다. 다행히 그가 탈옥하였으나 재차 체포되어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엘리자베스 여왕 치하에서 순교한 첫 번째 성인이다. 그는 1970년 10월 25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잉글랜드(England)와 웨일스의 40명의 순교자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복자 발타사르 (Balthasar)
활동년도 : +1492년
신분 : 수사
지역 : 치아바리(Chiavari)
같은 이름 : 발타살
발타사르는 1420년경에 이탈리아 제노바(Genova)의 치아바리에서 태어났고,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여 서원하고 서품을 받았다. 그는 펠트르(Feltre)의 성 베르나르디누스(Bernardinus)와 친구이자 동료 설교자였다. 베르나르디누스와의 선교여행은 거의 항상 성공하였으나, 건강이 악화되어 오래 지속하지는 못하였다.
그가 걸을 수 없게 되었을 때에는 주로 고해신부로 일하였고, 열심히 미사를 봉헌하여 큰 감명을 주었다. 또한 그는 자주 숲 속으로 들어가서 오랫동안 명상에 잠기거나 독서에 열중하였으며, 종종 성모의 환시를 보았고, 폭설이 쏟아질 때 기적적으로 피난처를 구하기도 하였다고 전해온다. 발타사르는 1492년 10월 7일에 운명하였고, 1930년에 그에 대한 공경이 승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