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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8일 금요일
[(녹) 연중 제31주간 금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구세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하며 하늘의 시민답게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으라고 권고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집사의 영리한 처사에 관한 비유를 드시며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고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우리는 구세주를 고대합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입니다. 3,17―4,1
17 형제 여러분, 다 함께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여러분이 우리를 본보기로 삼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다른 이들도 눈여겨보십시오.
18 내가 이미 여러분에게 자주 말하였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데,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19 그들의 끝은 멸망입니다. 그들은 자기네 배를 하느님으로,
자기네 수치를 영광으로 삼으며 이 세상 것만 생각합니다.
20 그러나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구세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합니다.
21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당신께 복종시키실 수도 있는 그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4,1 그러므로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형제 여러분,
나의 기쁨이며 화관인 여러분,
이렇게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으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8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집사를 두었는데, 이 집사가 자기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말을 듣고,
2 그를 불러 말하였다.
‘자네 소문이 들리는데 무슨 소린가? 집사 일을 청산하게.
자네는 더 이상 집사 노릇을 할 수 없네.’
3 그러자 집사는 속으로 말하였다.
‘주인이 내게서 집사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니 어떻게 하지?
땅을 파자니 힘에 부치고 빌어먹자니 창피한 노릇이다. 4 옳지, 이렇게 하자.
내가 집사 자리에서 밀려나면
사람들이 나를 저희 집으로 맞아들이게 해야지.’
5 그래서 그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 첫 사람에게 물었다.
‘내 주인에게 얼마를 빚졌소?’
6 그가 ‘기름 백 항아리요.’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으시오.
그리고 얼른 앉아 쉰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7 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당신은 얼마를 빚졌소?’ 하고 물었다.
그가 ‘밀 백 섬이오.’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아 여든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8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약은 집사의 비유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집사의 행위는 그 목적과 과정과 결과 모두 부당해 보이고, 이 부당한 행위에 대한 부자 주인의 칭찬에 우리는 당황스럽습니다. 그러나 재산 사용에 관한 가르침으로 다가가 본다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집사는 우리를 뜻합니다. 집사가 부자의 재산을 관리하듯이,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재산을 관리합니다.
우리가 가진 재산과 능력은 우리 것이 아니라, 모두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그것을 잘 관리하고 적절하게 써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산을 아무 계획 없이 그대로 두거나 자신만을 위하여 쓰는 것은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의 재산은 그분의 영광과 세상을 위하여 쓰여야 합니다. 집사는 처음에는 예수님의 재산을 가지고 자신을 위하여 쓰다가 쫓겨날 위기를 맞았지만, 나중에는 이웃을 위하여 쓰면서 칭찬을 받고 그 자리에 계속 남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약은 집사에게서 주님의 재산을 잘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곧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과 능력으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 섬겨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재산이 그렇게 쓰이기를 바라십니다. 집사에게 빚을 탕감받은 사람은 당장에는 집사에게 고마워하겠지만, 결국 그 재산의 원주인인 부자에게 더 고마워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은혜를 받은 이들은 은혜를 베푼 이에게 먼저 고마워하겠지만, 결국 은혜의 원천이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그분께 찬미를 드릴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선행으로 하느님의 자비와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야 합니다.(최정훈 바오로 신부)
우리에게 맡겨진 양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초기 교회 이방인들의 사도요 최고 목자였던 바오로 사도의 삶과 신앙이 얼마나 열정적이고 충실했으며, 모범적이었는지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특별히 첫 번째 독서 필리피서는 그런 바오로 사도의 위대함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회심 이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예수님의 제자가 된 그는 매사에 다른 제자들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목숨을 내걸며 복음 선포에 매진했지만, 자신의 의식주는 스스로 일을 해서 해결했습니다. 천막 짜는 일로 생계를 꾸려가면서 동시에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목자로서 교우들에게 조금도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그의 섬세한 배려심과 당당함이 돋보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설교가 힘이 있고 설득력이 있었던 이유는 그가 선포하는 말씀과 그의 구체적인 삶의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인 생활은 조금도 따르지 않으면서 말만 번지르르했다면, 설교를 듣는 청중들이 콧방귀를 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철저하게도 언행일치되는 그의 강론에 사람들은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의 서한 한 구절 구절에는 당당함이 잘 묻어나고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다 함께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여러분이 우리를 본보기로 삼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다른 이들도 눈여겨보십시오.”(필리 3,17)
사실 바오로 사도의 말씀,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라는 구절을 묵상해봅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는 구체적인 삶이 그랬기 때문에, 그리도 당당히 선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디 당당함 뿐인가요? 바오로 사도가 초세기 이방 교회의 지도자로서 얼마나 교우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배려했는지도 눈여겨봐야 할 것입니다. 교우들을 대하는 사목자로서의 자세가 세상에 둘도 없이 자상한 친 아버지 그 이상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형제 여러분, 나의 기쁨이며 화관인 여러분, 이렇게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으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필리 4,1)
보십시오. 바오로 사도는 자신에게 맡겨진 양들을 존재 자신의 기쁨이요 화관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 표현을 들은 초세기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진심과 사랑이 가득 담긴 그런 표현들은 힘겨웠던 초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오늘 나는 내게 맡겨진 양들을 어떤 마음,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진지하게 성찰해보는 하루가 되길 청합니다.
사제가 박해 당하면 우리 신자들은 나를 숨겨줄까?
전삼용 요셉 신부님
오늘 복음은 약삭빠른 집사에 관한 내용입니다. 집사는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재산은 ‘성령’입니다. 하느님은 청하는 이들을 당신 집사로 삼으십니다. 우리는 모두 성령을 청하는 신앙인들입니다. 성령으로 이뤄지는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받는 곳에 교회입니다. 교회 안에는 수많은 다양한 신앙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약삭빠른 집사처럼 된다면 하느님은 그들을 당신 집사로 계속 삼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기 전의 집사처럼 한다면 쫓겨나고 말 것입니다.
“어떤 부자가 집사를 두었는데, 이 집사가 자기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말을 듣고, 그를 불러 말하였다. ‘자네 소문이 들리는데 무슨 소린가? 집사 일을 청산하게. 자네는 더 이상 집사 노릇을 할 수 없네.’”
사제가 되어보니 신자 중에서도 성령의 은총을 약삭빠르게 잘 사용하는 집사가 있는가 하면 낭비해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자신이 이 일을 더 할 수 없을 때 드러납니다. 만약 제가 사제를 더는 하지 못하게 될 때 저를 맞아줄 신자들이 있을까요? 갑자기 자신이 없어집니다.
프랑스 혁명 당시는 신자들이 대부분 성직자를 죽이기 위해 찾았습니다. 그만큼 은총의 관리를 잘하지 못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이렇게 교회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 이유는 중세 교회 때의 습관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때의 모습이 잘 드러나는 소설이 있습니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형제들』 중에 ‘종교 재판관’ 부분입니다. ‘대심문관’이라고도 불립니다. 대심문관은 당시 종교 재판으로 사람들을 화형에 처하는 엄청난 권력을 지닌 고위 성직자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이 세상으로 돌아오시다가 대심문관을 만나 갇혀서 재판받는 형식을 취합니다. 물론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마지막에 대심문관에게 마치 유다가 당신에게 그렇게 하셨듯이 입을 맞춥니다. 이 상징적 행위는 목매달아 죽은 유다처럼 종교가 죽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대심문관은 예수님의 죄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당신은 인간의 자유를 빼앗기는커녕 그것을 더 늘렸고, 인류의 영적 왕국에 영원히 고통을 안겨 주었습니다. 당신은 사람의 자유로운 사랑을 바라시어, 사람이 자유롭게 당신을 따르며 당신에게 유혹당하고 포로가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청지기가 바로 예수님처럼 해야 했습니다. 자유가 빼앗겼기 때문이 아니라 고마워서 자유롭게 자신을 받아들일 친구를 사귀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대심문관은 종교는 그런 식으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종교는 인간에게 자유를 주어서는 안 되고 통제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인간이 가장 힘들어하는 게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빵에 대한 유혹을 이긴 것을 비난하면서 중세 교회의 부유함을 통해 인류를 교회가 배를 불리게 만드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그들은 그들의 자유를 우리 발 앞에 놓고 우리에게 ‘우리를 너희의 노예로 삼아 먹이라.’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 충분한 자유와 빵이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또 자비는 행사되어서는 안 되며 종교 재판처럼 종교가 강한 힘으로 그들의 자유를 빼앗아 줄 때 그들은 신비로운 평화를 누릴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자신들이 쫓겨났을 때 자신들을 자유롭게 맞아줄 사람들을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닌 자신들에게 완벽히 통제되는 사람들로 만들려는 시도이고, 예수님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시작하여 지금도 일부 성직자가 그러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은총을 관리하는 집사는 자신이 사제라면, 만약 사제 옷을 벗었을 때 자신을 맞아줄 사람들을 만드는 사람과도 같아야 합니다. 만약 자유를 빼앗는 존재였다면, 그들이 그를 맞아들여야 하는 자유를 갖게 되었을 때 자신들을 통제하지 못하는 그를 받아줄 리가 없습니다. 프랑스 혁명 때는 성직자들이 얼마나 신자들에게 못되게 굴었는지 오히려 그들을 찾아내어 신자들이 죽이려 하였습니다.
주문모 신부를 생각해 봅시다. 박해 받는 땅에 처음으로 들어와 미사와 고해성사를 해 주었습니다. 그를 보호하기 위한 우리 신자들의 노력은 대단했습니다. 평신도 최인길은 주문모 신부가 피할 시간을 벌기 위해 자신이 사제복을 입고 대신 체포되어 무수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쫓기는 주문모 신부를 목숨을 다해 보호한 강완숙 골롬바도 있습니다. 그가 체포령이 발효된 주문모 신부를 숨겨주고 있다는 사실이 발각되면 수많은 가족이 다 위험할 수 있어도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주문모 신부는 목숨을 걸고 은총을 신자들에게 베풀었습니다. 그러니 신자들도 주문모 신부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평신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신도들도 은총을 받으니 은총의 관리자입니다. 박해 시대가 되었을 때 자신을 숨겨줄 친구를 그 은총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청지기만이 끝까지 주인이 칭찬해주며 자신의 집에 살게 할 것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현대인들과 고대인들은 ‘역사(歷史)’에 대한 인식이 달랐다고 합니다. 현대인들에게 역사는 사건(Fact)에 대한 기록입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도 역사를 배울 때, 연도와 사건을 주로 배웠습니다. 조선의 건국, 한글 창제, 임진왜란, 국권피탈과 같은 사건을 연도와 함께 외웠습니다. 그 뒤로는 숫자를 먼저 외우곤 했습니다. 삼일절 만세, 팔일오 광복, 사삼 제주 항쟁, 육이오 전쟁, 사일구 혁명, 오일륙 군사 쿠데타, 오일팔 민주화 운동, 육십 시민 항쟁, 육이구 선언과 같은 사건과 날짜를 외우곤 했습니다. 이처럼 현대인들에게 역사는 사실에 대한 기록입니다. 교회의 전례도 사실에 근거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12월 25)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춘분 이후 첫 보름달 다음 일요일)을 축으로 전례가 이루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전에 4주 동안 주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대림시기를 지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할 전에 40일 동안 주님의 수난을 기억하며 회개하는 사순시기를 지냅니다.
고대인들에게 어떤 사건에 대한 역사적 사실(fact)보다 그 사건에 포함된 진실(truth)이 중요했습니다. 여기에서 사실이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하였는가“의 육하원칙에 따라서 정확하게 진술하거나 기록하는 것을 말하며, 진실이란 사건의 의미와 그 파급 효과를 말합니다. 고대인들에게 역사 기록은 정치나 종교의 목적에 이바지하는 것이어야 했고, 따라서 과거에 대한 편견 없는 공정한 평가란 그들의 역사에서 기대할 수 없습니다. 구약성경의 역사 기록은 성경의 다른 기록들처럼 저자의 신학 사상과 메시지를 선포하고 전달하는데 이용됩니다. 구약성서의 역사는 일정한 패턴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사랑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깁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벌하기 위해 이민족들의 손에 넘깁니다. 어느 정도 벌이 충족되거나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면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를 보내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고 백성은 다시 평화를 찾습니다. 지도자가 죽으면 백성은 또다시 우상 숭배에 빠져들어 똑같은 역사를 반복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우리 신앙인들은 현실의 짧은 삶이 아니라, 천상에서의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아주 작은 것들을 충실하게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이 있을까요? 첫째, 기도입니다. 아침기도, 저녁기도, 묵주기도를 자주 하면 기도의 힘으로 우리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차를 타면 간단하게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것도 안전 운전에 큰 도움이 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외롭지 않습니다. 둘째, 선행입니다. ‘선행을 베푸는 집에는 반드시 경사가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여러분이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시오.’라고 하셨습니다. 보답할 수 있는 사람에게 하는 선행도 좋지만, 보답을 할 수 없는 사람에게 하는 선행을 하느님께서는 더 좋아하십니다. 셋째, 성사 생활입니다. 자주 미사에 참례하고 주님의 성체를 받아 모시는 사람은 말씀의 양식과 성체를 함께 받게 됩니다. 혼인성사로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은 하느님의 커다란 축복입니다. 내 마음에 쌓인 죄와 분노, 미움과 시기들은 고백성사를 통해서 버려야 합니다.
기도와 선행 그리고 성사 생활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아무나 못 하므로 하느님께로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 속에서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만큼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나의 신앙도 키워나가도록 해야겠습니다.
오늘의 성인
성 빌레하도 (Willehad)
활동년도 : +789년
신분 : 주교
지역 : 브레멘(Bremen)
같은 이름 : 빌레하두스, 빌레하드, 윌레하드, 윌리하드
영국의 노섬브리아(Northumbria) 태생인 성 빌레하두스(Willehardus, 또는 빌레하도)는 요크(York)에서 공부하고 사제로 서품되었는데, 복자 알퀴노(Alcuin)와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766년경 그는 네덜란드 북부 프리슬란트(Friesland)로 가서 도쿰(Dokkum)과 오베리셀(Overyssel)에서 선교하던 중 자신을 죽이려는 이교도들을 피하여 위트레흐트(Utrecht) 지방으로 왔다. 780년 샤를대제(Charlemagne)가 그를 색슨족의 선교사로 파견하였으나, 색슨족이 프랑크 정복자에게 봉기하자 빌레하두스는 프리슬란트로 피신하였다. 787년 그는 색슨의 주교로 축성되었으며, 브레멘 교구를 새로이 신설해 초대주교가 되었다.
성 가스토리오와 동료 순교자 ST
성 카스토리오(Castorius)
²성 클라우디오(Claudius)
³성니코스트라토(Nicostratus)
⁴성 심포리아노(Symphorian)
신분 : 순교자
활동지역 : 판노니아(Pannonia)
활동연도 : +306년
¹같은이름 : 가스토리오, 가스토리우스, 까스또리오, 까스또리우스, 카스토리우스
²같은이름 : 글라우디오, 글라우디우스, 끌라우디오, 끌라우디우스, 클라우디우스
³같은이름 : 니꼬스뜨라또, 니꼬스뜨라뚜스, 니꼬스트라또, 니꼬스트라뚜스, 니코스트라투스
⁴같은이름 : 심뽀리아노, 심뽀리아누스, 심포리아누스, 심포리안, 씸뽀리아노, 씸뽀리아누스
성 카스토리우스(또는 카스토리오), 클라우디우스(Claudius), 니코스트라투스(Nicostratus) 그리고 심포리아누스(Symphorianus)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헝가리의 판노니아에서 고문당하고 처형당한 '월계관을 쓴 네 명의 순교자들'(Quattuor Coronati)이라고 불린다.
전설에 따르면 그들은 시르미움(Sirmium, 오늘날 유고슬라비아의 미트로비카)에서 조각가로 고용되었는데, 그들의 작품이 황제에게 깊은 인상을 새겨주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많은 조각들과 함께 아이스쿨라피우스(Aesculapius, 또는 아스클레피오스)의 상을 조각하라고 명하자, 그리스도인들인 그들은 이를 거절하였다.
황제가 그들의 신앙을 인정하긴 하였으나, 그들이 신전에서 희생 제사 바치기를 거부하자 투옥시켰다가 모진 고문을 한 뒤에 사형에 처하였다.
그들은 라비카나(Lavicana) 가도에 안장되었다가, 후일 교황 멜키아데(Melchiades, 또는 Miltiades)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교회 미술에서 그들은 석공의 도구를 든 네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조각가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복자 요한 둔스 스코투스
1224년 9월 10일 처음으로 작은 형제들이 도버 해협을 건넜다(Thomas Eccleston의 연대기 “De Adventu Fratrum Minorum in Angliam”-영국에서의 작은 형제들의 행적).
작은 형제들은 거기에서 바로 캔터베리와 캠브리지, 그리고 옥스퍼드로 퍼져갔는데, 그곳에서도 그들은 적절한 “학문 공동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 후 그들은 스코틀랜드에까지 가게 되었다.
1265년 요한 스코틀랜드의 Duns에서 태어났다.
그의 친 삼촌은 그 당시 스코틀랜드 감목구장이었던 Elias이다.
1278년 둔스의 요한은 Haddington에 있는 프란치스칸 학교에 입학하였고, Dumfries에서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더 높은 차원의 학문 공부를 위해 옥스퍼드와 파리로 보내졌다.
1291년 3월 17일 그는 Northampton에서 Lincoln의 주교였던 Oliver Sutton에 의해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캠브리지와 옥스퍼드에서 철학과 신학 교수로 일하였다.
파리 대학의 프란치스칸 학부에서도 가르쳤는데, 그 후 그는 보니파시오 3세 교황을 대항하여 프랑스 국왕 편에 서는 것을 거부하였기에 영국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이것은 1303년의 일이었다.
스코투스는 그 당시 총봉사자였던 Valboa의 Gonzalvus의 추천으로 1305년 파리 대학에 복직되었다.
그는 1307년 다시 파리를 떠나 쾰른에 있는 작은 형제들의 학교로 갔다.
그는 1308년 거기에서 세상을 떠났다.
둔스의 요한은 프란치스칸 학파의 신학자이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의 수호자로 유명하게 되었으며,또한 프란치스코 수도회서, 특히 쾰른과 이태리의 Nola에서 공경되기 시작하였다.
1991년 7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요한 둔스 스코투스를 복자품에 올렸고,1993년 3월 20일 그를 공경하는 전례를 거행하였다.
(프란치스칸 신학자들과 교회학자들 -작은형제회홈에서)
성 카스토리오 (St.Castorius)
순교자
성인의 활동지역 : 판노니아(Pannonia)
성인의 활동연도 : +306년 성인과
같은이름 : 가스토리오, 가스토리우스, 까스또리오, 까스또리우스, 카스토리우스 성 카스토리우스(또는 카스토리오), 클라우디우스(Claudius), 니코스트라투스 (Nicostratus)
그리고 심포리아누스(Symphorianus)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헝가리의 판노니아에서 고문당하고 처형당한 ‘왕위에 오른 4명의 순교자들’ (Quattuor Coronati)이라고 불린다.
전설에 따르면 그들은 시르미움(Sirmium, 오늘날 유고슬라비아의 미트로비카)에서 조각가로 고용되었는데, 그들의 작품이 황제에게 깊은 인상을 새겨주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많은 조각들과 함께 아이스쿨라피우스(Aesculapius, 또는 아스클레피오스)의 상을 조각하라고 명하자, 그리스도인들인 그들은 이를 거절하였다.
황제가 그들의 신앙을 인정하긴 하였으나, 그들이 신전에서 희생 제사 바치기를 거부하자 투옥시켰다가 모진 고문을 한 뒤에 사형에 처하였다.
그들은 라비카나(Lavicana) 가도에 안장되었다가, 후일 교황 멜키아데(Melchiades, 또는 Miltiades)에 의하여 시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