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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13일 수요일
[(녹)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티토에게,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셨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나병 환자 열 사람을 깨끗하게 해 주시고, 돌아와 감사드린 이방인에게, 그의 믿음이 그를 구원하였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우리는 그릇된 길에 빠졌으나 하느님께서 당신 자비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티토서 말씀입니다. 3,1-7
사랑하는 그대여, 1 신자들에게 상기시켜,
통치자들과 집권자들에게 복종하고 순종하며
모든 선행을 할 준비를 갖추게 하십시오.
2 남을 중상하지 말고 온순하고 관대한 사람이 되어
모든 이를 아주 온유하게 대하게 하십시오.
3 사실 우리도 한때 어리석고 순종할 줄 몰랐고 그릇된 길에 빠졌으며,
갖가지 욕망과 쾌락의 노예가 되었고,
악과 질투 속에 살았으며, 고약하게 굴고 서로 미워하였습니다.
4 그러나 우리 구원자이신 하느님의 호의와 인간애가 드러난 그때,
5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비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물로 씻어 구원하신 것입니다.
6 이 성령을 하느님께서는 우리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셨습니다.
7 그리하여 우리는 그분의 은총으로 의롭게 되어,
영원한 생명의 희망에 따라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11-19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믿음이 청원과 감사와 함께 커져 간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나병 환자 열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자비를 청하고, 주님 말씀대로 사제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그들은 모두 자신들이 청한 것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다시 돌아와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립니다.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 17,19).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주님의 업적임을 알고 돌아와 감사를 드린 이만 예수님께 믿음을 확인받습니다.
우리는 청원 기도와 감사 기도를 통하여 믿음을 키워 나갈 수 있습니다. 청원 기도를 하고 그 청원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루어진 체험을 한 뒤, 그것에 대한 감사 기도를 드릴 때 우리 믿음이 커지고 굳건해집니다. 필요할 때 애타게 청원 기도를 해도 그 청원이 어떤 방식으로 응답받았는지 알아보지 못한다면, 그래서 주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지 못하는 사람은 믿음이 깊어지지 못합니다. 삶의 중요한 시기와 고비 때에 절실하게 주님께 매달렸지만 그 시기를 넘긴 다음에 주님께 돌아오지 않은 많은 사람의 경우를 보면, 그들은 그때 참 열심히 기도드렸고 주님과 가까웠다고 추억하지만, 믿음이 크게 굳건해지지는 못하였던 듯합니다. 이처럼 청원 기도를 바치고 주님께 매달리는 것만으로는 굳은 믿음으로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청원에 응답하시는 주님을 깊이 체험하고 이에 감사하며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바칠 때, 믿음이 커지고 굳건해지며 그 믿음으로 우리는 주님과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갈 것입니다.(최정훈 바오로 신부)
이것이 빠진 묵상은 기도가 될 수 없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2014년 5월 15일에 방영된 EBS ‘리얼체험 땀: 링 위에서 세상을 배우다’는 이런 이야기입니다. 방황하던 한 고교생 영대(19)가 있습니다. 영대가 일정 시간 권투를 배우며 땀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영대는 ‘자신은 방황하는 중이고, 그런 자신을 붙잡아줄 강한 스승이 필요하다.’라고 말합니다.
영대의 스승은 박현성 관장(47)입니다. 과거 자기 모습과 꼭 닮은 모습인 영대를 보고 제자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합니다. 둘의 첫 만남은 긴장의 연속입니다. 영대는 박현성 관장 앞에서 의자까지 들며 위협합니다. 그러나 박 관장은 영대의 실력이 형편없음을 링 위에서 보여줍니다. 영대는 갈등합니다. 권투를 계속 배울지. 그리고 배우기로 합니다.
이제 헤어질 날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박 관장은 다시 마지막 권투 스파링하자고 합니다. 박 관장은 과거 권투 유망주였지만 올림픽 문턱에서 두 번이나 좌절한 후 폭력조직에 가담하고, 삶을 비관해 분신자살까지 시도하면서 인생에 기권을 선언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온몸에는 화상의 흔적이 있습니다. 박 관장은 자기 다리를 만지게 합니다. 딱딱하게 굳어 굽혀지지도 않는 몸으로 자신을 가르친 것입니다.
마지막 스파링에서는 영대가 자신을 한 번도 때리지 못하자 양손을 등 뒤로 하고 한 대 강하게 맞아줍니다. 방송 PD가 묻습니다.
“사부님은 왜 헤어지기 전에 대결하자고 하셨을까요?”
“점점 나아지는 내 모습을 보라고 그런 거 아닐까요? 저한테…. 느껴보라고. 딱 하나 정확한 게 하나 있어요. 생각하는 게 바뀌었어요.”
“어떻게요?”
“‘난 안 되겠다.’ 이런 생각 말고, 이젠 ‘내가 안 돼도, 한다.’라고 믿어보자. 이런 식으로. ‘할 수 있다고 믿어보자.’ 이런 식으로.”
2010년 7월 대구지방법원 모 부장판사가 평소 판사 생활에 심한 회의를 느끼며 힘들어하며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결국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하여 생을 마감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판사는 막말로 얘기하면 세상 사람들이 토하거나 배설한 물건들을 치우는 쓰레기 청소부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자괴감을 드러낸 적이 있었습니다. “판사는 의심하는 직업이며, 심지어 아내와 부모님 말씀마저 의심하게 한다”라며 “참으로 한심하고 끔찍한 직업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글을 자신이 다니는 교회 사이트에 올렸습니다.
그도 분명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그의 기도에서 무엇이 빠져있었을까요? 지향입니다. 방향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열 명의 나병환자를 고쳐주십니다. 그 열 명 중에 유일한 이방인인 사마리아 사람만이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우리가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병을 치유해 주신 것이 곧 그 사람들의 구원을 의미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돌아와 감사와 영광과 찬미를 드렸을 때야 비로소 그 사람의 구원을 선포하십니다. 묵상기도가 감사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건 기도가 아닙니다.
영대는 자기를 위해 희생하는 스승을 묵상합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자신이 관장의 얼굴을 때릴 수 있을 수준으로 향상되었음을 알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하면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그는 감사하게 되고 새로운 삶으로의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태어날 때부터 소뇌를 다쳐 뇌성마비 장애를 얻었습니다. 여러 차례 반복되는 이사와 찢어지게 가난한 자신을 보면서 그녀는 늘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때 하느님은 ‘말하는 대로 써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녀는 왼손에 토막연필을 쥐고 받아 적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느님이~”
그녀는 너무 어처구니없는 말씀에 울며 소리쳤습니다.
“아니요! 못 쓰겠어요! 공평해 보이지 않아요! 내겐 아무것도 없어요!”
하느님은 ‘시키는 대로 공평하신 하느님이라 써라!’ 하셨고, 그녀와의 반복되는 공방전 속에 결국 하느님이 승리하셨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공평하신 하느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느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이렇게 ‘나’라는 시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 가사로 한국 복음성가 작사 대상을 수상하고 그녀의 책도 기독교 저서 최우수 서적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이 과정이 묵상입니다. 묵상에 십자가가 빠지고, 그 때문에 감사와 찬미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건 기도가 아닌 시간 낭비를 한 것입니다.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살고파>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루카 17,15-16)
살고파
죽음에 덫에 걸린
나에게서
참으로 살리시는
당신께로
살고파
참으로 살리시는
당신께로부터
살아있음을 판단하는
사람에게로
살고파
살아있음을 판단하는
사람에게서
참으로 살리시는
당신께로
그리하여
참으로 살리시는
당신과 갈림 없는
참으로 살아있는
나에게로
오늘의 성인
알칼라의 성 디에고(디다코)
신분 : 수사, 증거자
활동지역 : 알칼라(Alcala)
활동연도 : 1400-1463년
같은이름 : 디다꼬, 디다꾸스, 디다쿠스, 디에고,
성 디다쿠스(또는 디다코)는 1400년경 에스파냐 세비야(Sevilla) 근교의 산 니콜라스 델 프에르토(San Nicolás del Puerto)라는 작은 마을에서 가난하지만 신심 깊은 부모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젊은 시절 은수자로서 고적한 삶을 살다가 작은 형제회에 평수사로 입회하였다. 몇 년 후 그는 카나리아제도(Canary Islands)에 속한 란사로테(Lanzarote) 섬의 아레시페(Arrecife)에 있는 수도원으로 파견되어 문지기 수사의 소임을 받았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뛰어난 사랑으로 큰일을 이룩하여 성덕이 탁월하다는 소문이 자자하였다. 1445년 그는 푸에르테벤투라(Fuerteventura) 섬의 작은 형제회 공동체의 수호자로 선출되었다. 많이 배우지 못한 평수사에게 그런 직책을 맡기는 것이 평범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는 열정과 성실함 그리고 성덕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였다.
1450년 그는 교황 성 니콜라우스 5세(Nicolaus V)가 선포한 희년에 참여하고 같은 수도회 출신인 시에나(Siena)의 성 베르나르디누스(Bernardinus, 5월 20일)의 시성식에 참석하기 위해 로마에 갔다. 수많은 순례자가 각지에서 로마로 몰려오면서 예기치 않은 전염병이 발발했다. 아라 코엘리의 산타 마리아 대성당(Basilica Sanctae Mariae de Ara Coeli)에 딸린 수도원에서 머물던 성 디다쿠스는 3개월 동안 헌신적으로 병자들을 돌보았고, 그의 돌봄과 기도를 통해 많은 이들이 기적적인 치유를 경험했다고 한다. 그 후 에스파냐로 돌아온 그는 여러 수도원을 거쳐 1456년 마드리드(Madrid)에 속한 알칼라 데 에나레스(Alcalá de Henares)의 산타 마리아 데 헤수스(Santa María de Jesús) 수도원으로 파견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고적함 속에 참회와 관상 생활을 실천하며 여생을 보냈다. 늘 겸손하게 수도원 안에서 정원사와 짐꾼의 소임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 실천했던 그는 1463년 11월 12일 병환으로 선종하였다.
에스파냐에서 디에고(Diego)로 불리는 그는 1588년 교황 식스투스 5세(Sixtus V)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는 작은 형제회 평수사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고, 미국 캘리포니아(California)의 샌디에이고(San Diego)라는 도시는 그의 이름을 딴 도시명이다. 일부 지역 교회에서는 다른 성인과의 중복을 피하고자 11월 13일에 전례 안에서 그의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문지기였던 이유로 열쇠를 들고 있거나 수도복 위에 장미꽃을 담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번번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수도원의 빵을 가져다주던 그를 누군가 질책하려 했을 때 빵이 장미꽃으로 변했다는 기적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성 니콜라오 1세 (Nicholas I)
활동년도 : +867년
신분 : 교황
지역 :
같은 이름 : 니고나오, 니꼴라오, 니꼴라우스, 니콜라스, 니콜라우스
로마(Roma)의 귀족 가문 출신인 성 니콜라우스(Nicolaus, 또는 니콜라오)는 로마의 사제로서 교황 세르기우스 2세(Sergius II)를 도와 성청에서 일하였고, 레오 4세(Leo IV)의 부제, 베네딕투스 3세(Benedictus III)의 고문관을 역임하였다.
그는 858년 4월 22일 선임 교황 베네딕투스를 계승하여 교황이 되었다. 그는 즉시 늘 문제시되어 왔던 결혼의 거룩함과 불가해소성을 역설하였고, 황제의 조카인 로테르 2세 국왕의 혼인이 불법이라 규탄하는 등 수많은 정치 문제에 말려들게 되었다. 또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좌의 오랜 분쟁, 라벤나(Ravenna)의 요한 대주교의 문제, 랭스(Reims)의 힌크마르의 야심 등으로 그의 재임기간은 상처투성이였다. 그러나 그는 매우 관대하고 지혜로운 사람이었으므로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고, 그의 정의감은 높은 존경을 받게 하였다. 성 니콜라우스는 ‘대’ 교황이란 칭호를 받는 3명의 교황 중 한 분이다.
성 브리시오 (Britius)
활동년도 : +444년
신분 : 주교
지역 : 투르(Tours)
같은 이름 : 브리시우스, 브리씨오, 브리씨우스, 브리티오, 브리티우스
성 브리티우스(또는 브리시오)는 프랑스 투르(Tours)의 성 마르티누스 성직회의 일원으로서 397년에 투르의 주교직을 승계한 분이다. 그는 원래 자만심이 강하고 야심이 가득한 성직자로서 성 마르티누스(Martinus, 11월 17일)를 큰 공경에 빠뜨린 적이 있었다. 성 브리티우스의 이런 태도에도 불구하고 성 마르티누스는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하였으므로, 그는 마침내 큰 회오의 감정을 품게 되었으며 자신의 무례한 행동에 대하여 성 마르티누스에게 용서를 청하였다.
397년에 그는 투르의 주교로 승품되었으나 예전의 나쁜 습관들이 되살아나서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하여, 수차례에 걸쳐 그의 부도덕성과 방종으로 고발되기도 하다가 결국에는 자신의 주교직에서 물러나야만 하였다. 그는 로마(Roma)로 가서 7년에 걸쳐 회개생활을 하였으며, 완전히 자신의 생활양식을 개선하여 아주 새 사람이 되었다. 그를 승계했던 투르의 주교가 운명하였을 때 그는 재차 투르의 주교가 되어 아주 겸손하고 거룩하게 교구를 다스렸다. 그래서 그의 임종 후부터 그는 위대한 성인으로 교구민들의 공경을 받았다.
성 호모보노 (Homobonus)
활동년도 : +1197년
신분 : 평신도, 자선가
지역 : 크레모나(Cremona)
같은 이름 : 호모보누스, 호모보니오, 호모보니우스
성 호모보누스(또는 호모보노)는 세례를 받을 때부터 ‘호모보누스’, 즉 ‘착한 사람’이란 예언적인 이름을 받았다. 그는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Lombardia)의 크레모나에서 어느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성공적으로 부친의 사업을 이끌어 더욱 번창하게 만들었다. 그는 사업에서 버는 이익 대부분을 빈민구제에 사용하고, 가족들에게는 꼭 필요한 것만을 제공하였다. 그러나 이런 일은 가족들로부터 적극적인 호응을 받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성당에 나갔고 정직하고 올바르게 살았다. 이 때문에 그의 사업은 더욱 번창하였고, 따라서 그의 자선사업이 날로 빛을 발하게 되어 유명해졌다.
그는 1197년 11월 13일 크레모나의 성 에지디우스(Aegidius, 또는 Giles) 성당에서 미사 참례하던 중에 운명하였고, 1199년 1월 12일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Innocentius 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는 양복공과 천 짜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