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나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 처음 시작할 때에는 기분좋게 시작한다. 그러나 좀 시간이 지나면 훈수꾼이 나타나고 약속이나 한 듯이 양쪽으로 갈리어 응원하게 된다. 당사자들마저 훈수꾼에 선동이 되어 부드러운 분위기는 사라지고 흥분까지 한다. 막바지에 몰입하게 되면 서로 반칙이라고 책임을 전가하고 내가 잘했다 억지를 쓰다 고집이 굳어 버리면 양보는 생각할 수도 없이 다툼으로 끝나 버리기도 한다. 운동경기에서도 때때로 추태를 보게 된다. 그래서 억지가 심하고 고집이 센 쪽이 사실과는 상관없이 이기기 마련이다. 그 다음부터는 친하던 사이도 멀어지곤 한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왜곡된 것을 진리라고 믿고 주장하다가 비진리임이 들어났음에도 계속 진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명성이 높은 사람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체면이라는 겉치레 때문이다. 이단 교주들이 그렇다. 자기의 주장에 미혹되어 따르던 무리들과 쌓아 올린 아성이 잘못된 것임을 알았다 해서 스스로 무너뜨릴 수 없기 때문이다. 무너뜨림이 정녕 사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교권과 명예와 경제적인 면 등에서 치명적인 결과를 두려워하여 계속 궤변과 거짓으로 위장하면서 고집을 꺾으려 하지 않는다. 결국 잠시 손실 때문에 밀고 나가다가 영원한 멸망에 빠져 큰 손실을 보게 되는 것이다. 잘못된 길을 멀리 걸어 갔다고 해서 그대로 갈 것이 아니라 깨닫는 순간 돌아오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하나님을 따르는 우리에게는 자아 중심적 고집을 꺾는 큰 고통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내 생각과 체험 위주가 아니라 철저한 말씀 중심이어야 한다.
당신에게 들어온 비 진리적 말씀이 있다면 지금 포기하십시오
벧후 2:1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1.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사역을 위한 필요한 것들이 채워질 수 있도록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진리와 견고함 본문 : 마16:18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반석 위의 견고한 성곽을 최고의 피난처요, 안전 지대로 생각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사막과 모래가 많아 대부분 땅의 지반이 약한 팔레스틴에서 반석 위의 성벽은 난공 불락의 요새요, 철옹성이었기 때문입니다. 견고한 진리 위에 굳건히 서 있는 우리 성도의 믿음도 이와 같습니다. 반석이신 그리스도의 말씀 위에 굳건히 서 있는 성도는 마치 반석위에 견고하게 세워진 요새와도 같습니다. 하지만 진리되신 주님을 떠나 유한하고 허망한 세상 것들을 부여잡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자들은 모래 위에 성곽을 세운 자와도 같습니다. 이제 본장에서는 진리 위에 견고하게 서 있는 성도의 삶이 어떤 것인지, 또한 얼마나 복된 것인지를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견고한 진리 위에 굳건히 서 있는 성도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1. 세상 유혹에 흔들리지 않음(마7:24)
1) 진리를 배워 익힘 파스칼은 인간을 가리켜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조변석개하고 조삼모사한 것이 유한한 인간들의 특징입니다. 진리 위에 굳건이 허 있지 않은 자들의 모습이 이러합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이 갈대처럼 흔들리지 않고 헛된 세상 유혹 가운데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선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옛날 호세아 선지자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하여 죄악 가운데 빠진 것도 결국은 참 진리를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진리를 모를 때 성도는 세상 유혹에 빠지고 죄를 범합니다. 우리는 참 진리되신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신앙 지식을 배움으로 진리 위에 굳건히 서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진리만 바라봄 사람은 누구든지 눈에 보이는 것을 마음속에 생각하고,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실행에 옮기게 됩니다. 야곱의 딸 디나는 여인들의 현란한 옷모양과 기이한 풍습을 보고 마음이 끌려 세겜 성에 놀러갔다 그만 세겜 성 추장의 아들에게 강간을 당했습니다(창34:1). 성도가 진리 위에 견고하게 서기 위해서는 결코 헛된 세상 풍속을 바라보아서는 안됩니다. 오직 진리되신 그리스도만을 바라볼 때 성도는 마음속에 주님만을 생각하게 되고, 또 진리를 행동으로 옮기게 됩니다(빌3:14)
2. 능히 사단의 궤계를 물리침(벧전5:8)
1) 진리 가운데 깨어 있음 견고한 성곽은 적군의 어떤 공격도 능히 물리칩니다. 하지만 성곽이 든든하다 해서 반드시 적의 공격을 물리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항상 깨어 경성하며 파숫군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성도는 진리 가운데 항상 깨어 경성할 때 진리를 잃어버리지 않고 지키게 됩니다. 사도 베드로는 사단을 가리켜,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돌아다니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집요하고 무서운 사단의 간교한 궤계를 물리치기 위해 성도는 결코 신앙의 깊은 잠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진리 가운데 깨어 경성하는 것, 바로 그것이 능히 사단의 궤계를 물리치는 비결입니다.
2) 진리로 훈련함 옛날 바울 당시 아테네에는 4년에 한번 올림픽 경기가 열렸습니다. 이와 유사한 경기로 고린도에는 3년에 한번씩 이스트미안(Isthmian athletic games)이란 운동 경기가 개최되었습니다. 선수들은 3년 혹은 4년에 한번 열리는 이 경기에서 승리하여 월계관을 머리에 쓰기 위해 불철주야 훈련에 임했습니다. 그래서 선수들은 합숙하며 훈련하였고, 음주와 부부간의 성생활도 자제하였습니다. 이런 훈련은 군사들도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 있을지 모를 전쟁에 대비하여 군인들을 평시에는 끊임없이 훈련을 받습니다. 이 모두가 단 한번 있을 전쟁에서 적군을 이기기 위함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도 사단의 궤계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항상 진리 가운데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 읽기, 기도하기 등 끊임없이 경건의 훈련을 쌓을 때 성도는 사단의 궤계를 물리치고 능히 진리 위에 견고하게 설 수 있습니다.
3. 진리의 칼로 선한 싸움을 싸움(딤전1:18)
1) 복음의 진리를 선포함 이스라엘의 현대 전술 개념은 선제 공격입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주변의 시리아나 이집트 등 적국이 공격할 기미만 보이면 공격을 받지 않았어도 선제 공격하여 기선을 제압한다는 전쟁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적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이런 적극적 방법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신앙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차피 성도는 사단과 영적 전쟁을 치루어야 할 필연적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기에 굳건한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성도가 먼저 사단의 영역을 공격하여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방법은 바로 진리의 복음을 전파하여 주의 진리를 점점 넓게 확장시키는 것입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사단이 세력을 물러나고 주의 진리는 더욱 굳건하게 자리잡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합시다.
2) 주의 진리를 실천함 야고보 선생은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가리켜 죽은 믿음이라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진리의 복음을 전파한다 하더라도 실제로 삶 가운데서 주의 진리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정녕 복음이 전파된 곳에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쳐나고, 연약한 자가 보호를 받으며, 무고한 자에 대한 압제가 사라져야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그 사회에는 주님의 진리가 굳건히 서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복음은 만연한데 여전히 하나님의 공의가 서지 않는다면 이는 궁극적으로 사단의 지배를 받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말과 혀로만 진리를 외칠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진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들은 진리를 굳건히 세워 나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결론 그리스도의 진리 위에 굳건하게 서 있는 자는 결코 세상 헛된 유혹에 넘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자는 또한 사단의 간교한 궤계도 능히 물리칩니다. 뿐만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복음의 진리를 선포함으로써 사단의 영역을 제압하고 진리의 영역을 넓혀 나갑니다. 우리의 삶이 이런 삶이 되도록 노력하며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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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충만한 가운데 성령의 도움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부모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민족을 구원하는 구원사역의 도구로 쓰임받고 성령의 도구로 쓰임받고 제자양육의 도구로 쓰임받고 열매 맺게 하소서 아멘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오늘도 깊이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신 예수 사랑 목사님, 평안 장로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