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나르 박사는 신앙이 성장한 기독교인을 쉽게 분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한 사람은 은혜 안에서 자란 만큼 주님을 높이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해 겸손해 하고 자신에 대한 평가를 점점 낮춘다는 것이다. 마치 떠오르는 태양 앞에서의 사라져가는 새벽별처럼…
미국의 유명한 웅변가요, 정치가인 다니엘 웹스터(Daniel Webster)는 워싱톤에 살면서도 교회는 촌 교회에 다녔다고 한다. 그가 그렇게 한 이유는 워싱톤에 있는 교회에서는 그가 출석할 때에 교역자들이 높여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촌 교회에 갔을 때에는, 설교자가 그를 모르기 때문에 죄를 책망하는 설교를 얼마든지 하여 주었다. 그는 그렇게 죄를 책망하는 설교를 듣기 위하여 촌 교회를 다녔다.
중국에 있던 유명한 선교사 밀레(Milne)박사가 처음에 영국 선교회에 선교사로 가기를 청했을 때, 선교회는 그를 보고 회답하기를, “당신은 선교사 자격이 없으니 선교사의 종으로 갈려면 가라”고 하였다. 그때 그는 선교사의 종노릇하기 위하여 중국에 왔으나 그는 필경 크게 성공하여 유명한 선교사가 되었다.
당신은 진정 하나님을 높이며 항상 자신을 낮추고 계십니까?
약 1:10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1.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사역을 위한 필요한 것들이 채워질 수 있도록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성경 본문: 빌 2:5-11
어떤 여인이 한번은 불이 난 자기 집에서 그녀의 그림들과 가장 애지중지하는 가구들을 바쁘게 끌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오랜 시간 동안 열심히 자신이 평소에 갖고 싶어했던 것들, 애써서 장만했던 것들을 귀중하다고 생각되는 것부터 밖으로 내어 날랐습니다. 그런데 어디에선가 고기타는 냄새가 납니다. 생각해 보았더니 사랑하는 아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여인은 아끼던 물건을 하나라도 더 건질려고 하다가 사랑하는 어린 아들의 생명을 구하지는 못했습니다. 갑자기 그녀의 머리에 자기 자녀 중 하나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그 아이를 불타는 집 속에 두고 나온 것입니다. 그 어머니가 황급히 다시 방안으로 돌진해 들어갔을 때 이미 그 방은 불이 활활타고 있었고 아이는 죽어 있었습니다. 그때 그 여인은 비통한 나머지 양손을 비틀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탄식하며 통곡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자기가 꺼낸 모든 가구들을 저주했습니다. 차라리 그것을 꺼내지 못했으면... 그 하잘것 없는 것들을 구하려다가 사랑하는 자식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하찮은 것을 얻기 위하여 귀중한 것은 잃어버리고 있는지 돌아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교만과 욕심과 세속적인 정욕 때문에 참된 것을 잃어버리는 때가 많습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관 때문입니다. 우리가 항상 품고 있는 생각, 우리의 마음에 항상 품고 있는 그 생각이 우리를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아메리카의 교육가 카네기(강철왕이 아님)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바 있습니다. "내가 배운 교육 중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훌륭한 교훈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생각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만일 그대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를 안다면 나는 또한 그대가 어떠한 사람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바가 우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심적 태도는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요소이다" 고 했습니다. 파스칼은 "인간의 존경을 받는 것도 그 생각속에 있고, 비열하게 되는 것도 그 생각 속에 있다. 위대한 것과 유치한 것이 더불어 사람의 생각 속에서 나온다" 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면 그 생각이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그 행동을 되풀이 하면 습관이 되고, 그것은 다시 성격이 됩니다. 그것은 더 나아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운명을 실로 우리의 생각에서 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하신 것은 성도들의 생각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본문에 나온 "마음"은 다른 곳에서는 "생각"이라고 사용된 곳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각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마음은 우리 인격의 좌소입니다. 생각이 건강하면 인격이 건강하고, 생각이 병이들면 인격이 병자가 됩니다. 생각이 주고자 하면 언제나 부유하고, 생각이 인색하면 돈 많아도 가난합니다. 생각이 깨끗하면 인격이 신사되고, 생각이 추잡하면 생활이 부패합니다. 생각이 예수이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생각이 부정적이면 한숨이 뒤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빌2:6-7)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 이셨습니다. 본체란 말씀의 헬라어 몰페(morphe)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성품이나 본질을 포함해서 모든 것에 있어서 하나님과 다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시면서도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낮아 지셨습니다. 종의 자리에 까지 낮아 지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종의 자리에 까지 낮아 지신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종이란 본래 섬기는 것이 직무입니다. 섬겨도 철저하게 섬깁니다. 주인의 말씀에 거역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섬기기 위해서 종의 자리에까지 낮아 지신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다면 먼저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드뭄니다. 그러나 노예는 있습니다. 돈의 노예가 된 사람, 물질의 노예가 된 사람, 출세와 정욕의 노예가 된 사람 등 각가지의 현대적 노예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남을 멸시하거나 교만할 수는 있어도 남을 섬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종이 필요할 때입니다. 예수님 처럼 생각하는 참으로 낮아지는 종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낮아지신 것은 죽기 위함입니다. 주님은 (마20:28)"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더 좋은 자리에서 섬김을 받으려하고 더 높은 자리에서 잘살기 위하여 살아가지만 예수님은 섬기려 하고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 되어 자신의 목숨을 주려고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낮아지실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자신을 비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비얻다는 말은 자신이 받아야 할 영광을 포기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마음을 비우면 예전에 알지 못했던 마음의 평안을 맛보게 됩니다.얼마전 마음의 갈등을 심하게 겪었던 어떤 성도가 '목사님 마음을 비웠더니 이렇게 편안합니다.'라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그래야 겸손할 수 있습니다. 낮아질 수 있고, 남을 섬길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성도에게 있어야 진실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이기적인 사람이 됩니다.
(약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 고 합니다. 자신을 비운다는 것은 자신의 영광을 포기하고, 욕심을 버린다는 뜻도 있습니다. 가끔 성도들이나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하다보면 그들의 마음이 차돌보다 더 단단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 만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이기적인 생각과 교만이 가득합니다. 오직 자신의 욕구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작은 욕심이 나중에는 나를 멸망시키는 시초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을 비운사람은 오늘 말씀과 같은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빌2:9-11)"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의 낮아지심, 예수님의 겸손, 예수님의 자신을 비우심은 하나님께서 주님을 높이시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낮아지며, 자신을 비운 사람을 하나님께서 높이십니다. 이것이 성경의 비밀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얻는 축복입니다. 마태복음 20장에는 야고보의 형제들이 주님의 나라에서 높아지기를 원하여 예수님께 간청을 드렸습니다. 형제중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않게 해달라고 하자 주님은 제자들에게 (마20:26)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마20: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그러나 자신을 비운 사람은 참으로 겸손하며, 주님의 평안이 그에게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어떤 사람이라도 범죄를 저지를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다면, 후에 그는 거의 틀림없이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사람은 자신이 믿고 있는 것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십시요. 한마디로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얻고자 욕심에 가득차 있는지 모릅니다. 욕심을 버리면 오히려 더 많은 축복이 하나님께로부터 있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남을 섬기면 오히려 낮아질 것 같아도 높아집니다. 남을 많이 섬기면 오히려 더 많이 높아 집니다. 이것을 성경의 열설적 진리라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욕심을 내어 얻을려고 해도 얻지 못하고 가질려고 해도 소유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의 것 조차 포기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더 많은 것으로 채우십니다. 겸손해 지면 높아집니다. 그러나 교만하면 반드시 낮아집니다. 우리는 예수님 처럼 생각하고, 예수님 처럼 말하고, 예수님의 행동을 닮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인격이 예수님을 닮아가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이 부러워 할 만큼 흠이 없고, 학식이 있고 가문이 있는 배경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빌3:7절 이하에는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 되려 함이" 라고 합니다. 육신적이 좋은 배경을 배설물과 같이 여기는 것은 그가 육신적인 정욕을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고상한 지식을 얻기 위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무엇을 포기하며,빈 마음, 겸손한 마음을 가지기를 원하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높이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높이시며 생각이 바른 자를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십니다. 머리가 되게 하시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십니다.
|
첫댓글 아멘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충만한 가운데 주님의 영광과 복음과 선교와 설교와 목회와 치유와 상담과 성령의 도구로 쓰임받고 성령의 도구로 쓰임받고 제자양육의 도구로 쓰임받고 열매 맺게 하소서 아멘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주신 말씀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함께해 주신 고은빛 회원님, 예수 사랑 목사님, 평안 장로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