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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의 물이 생명의 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세례로 새 생명을 살다(왕하 2:15-25)
1. 오늘의 말씀 : 왕하 2:15-25
15 맞은편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그를 보며 말하기를 엘리야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엘리사 위에 머물렀다 하고 가서 그에게로 나아가 땅에 엎드려 그에게 경배하고
16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에게 용감한 사람 오십 명이 있으니 청하건대 그들이 가서 당신의 주인을 찾게 하소서 염려하건대 여호와의 성령이 그를 들고 가다가 어느 산에나 어느 골짜기에 던지셨을까 하나이다 하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보내지 말라 하나
17 무리가 그로 부끄러워하도록 강청하매 보내라 한지라 그들이 오십 명을 보냈더니 사흘 동안을 찾되 발견하지 못하고
18 엘리사가 여리고에 머무는 중에 무리가 그에게 돌아오니 엘리사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가지 말라고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였느냐 하였더라
19 그 성읍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우리 주인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20 엘리사가 이르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21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에 던지며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22 그 물이 엘리사가 한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에 이르렀더라
23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그가 길에서 올라갈 때에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그를 조롱하여 이르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24 엘리사가 뒤로 돌이켜 그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의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
25 엘리사가 거기서부터 갈멜 산으로 가고 거기서 사마리아로 돌아왔더라
2. 시작 기도
아버지! 어제는 한국에 방문한 세네갈 정선교사와 교제하였습니다. 그는 아프리카의 많은 선교사가 본질적인 복음 사역보다 필요 사역에 치우쳐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여 그는 앞으로의 사역을 복음, 생명, 선교로 방향으로 정하고 흔들림 없이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친히 하신 일이요, 그의 사도들에게 맡기신 일입니다. 내년 2월 현지에서 있을 목회자 세미나를 의논하고 기도했습니다. 주의 선하신 뜻대로 인도하소서. 오늘도 내 눈을 열어 주의 말씀의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 땅에서 나그네로 사는 자, 주의 말씀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시 119:19). 어찌하면 시인처럼 마음이 상할 정도로 주의 말씀을 항상 사모하리까?(시 119:20). 오직 주의 말씀에 붙잡힌 바 되어 비방과 멸시가 나에게 떠나가게 하소서(시 119:22). 주의 행동하심은 언제나 인자하시고 신실하십니다. 내 영혼을 주께 의탁하며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게 하소서. 말씀 앞에 엎드리오니 주의 종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주소서. 오염된 영혼을 보혈로 정케 하소서. 진리의 영이시여, 말씀을 조명하사 우둔한 자로 깨닫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본문 주해
하나님의 현현의 상징인 불수레와 불말이 나타나 엘리야와 엘리야를 분리시켰다. 그리고 엘리야는 회오리바람으로 승천하였다. 엘리사는 선생이자 주인인 엘리야의 떠남을 애곡하고 그가 남긴 외투로 요단강 물을 가르고 다시 여리고 쪽으로 왔다.
왕하 2:15-18은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승천한 엘리야를 찾는 장면이다.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야에게 임했던 성령의 역사가 엘리사에게 임한 것을 보고 그에게 땅에 엎드려 경의를 표하였다(15절). 곧이어 그들은 용감한 자 50명을 동원하여 엘리사의 주인 엘리야를 찾겠다고 나섰다.
“보십시오, 여기에 선생님의 제자들이 쉰 명이나 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힘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들을 보내셔서, 선생님의 스승을 찾아보도록 하십시오. 주님의 영이 그를 들어다가, 산 위에나 계곡에 내던졌을까 염려됩니다”(16절).
엘리사는 엘리야를 찾기 위해 제자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하도 성가시게 간청하자, 엘리사는 사람을 보내어 엘리야를 찾아보라고 하였다. 그들이 사람 50명을 보내어 사흘 동안이나 찾아보았으나 엘리야를 발견하지 못하고, 여리고에 머무는 엘리사에게로 돌아왔다(17절). 엘리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너희들에게 가지 말라고 하지 않더냐?”(18절).
제자들은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으로 승천한 것을 의심하였다. 그래서 엘리사를 설득하여 직접 엘리야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사흘간 찾았어도 무위로 돌아갔다. 엘리야의 승천을 직접 목격한 엘리사는 처음부터 소용없는 일이라고 만류하였다. 엘리사의 증언을 믿는 자, 곧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
19-22절, 여리고 우물을 정화한 기적이다. 이 기적은 엘리사가 독자적으로 행한 첫 번째 기적이다. 엘리사가 요단강을 가르게 한 기적은 엘리야의 외투를 사용했기 때문에 독자적인 기적으로 볼 수 없다.
여리고 성읍의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나와 말하였다. “보십시오, 선생님께서도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는 좋지만, 물이 좋지 않아서, 이 땅에서는 사람들이 아이를 유산합니다”(19절).
여리고는 지구에서 가장 낮은 곳인 해저 250m에 있는 사해 입구에 자리 잡은 천혜의 도시이다. 이스라엘의 열대성 기후를 감안하면 여리고의 기후는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이 시원하고 쾌적하다. 그래서 헤롯 대왕을 비롯한 여러 왕의 겨울 궁전이 이곳에 있었다.
여리고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성읍은 좋은데 물이 나빠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진다고 말하였다. 여리고에 있는 물 근원에서 많은 물이 나왔다. 이 물 근원(샘)은 신석기 시대부터 철기 시대 말까지 외부인에게 점령되었다(그레이). 영국의 위임 통치가 끝난 뒤에 이루어진 팔레스틴의 분열 이래, 이 샘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이용하여 여리고 오아시스의 규모가 대폭 커졌다.
주석가 ‘블레이크’는 이 지역의 일부 샘들이 방사능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며, 이러한 방사능은 불임의 원인이 된다고 하였다. ‘토산이 익지 못하다’(히, 웨하아레츠 무솨칼레트)라는 문자적으로 ‘그 땅은 생산하지 못하다’이다. 이것을 의역하면 ‘아이를 유산하다’이다(새번역성경). 즉 물의 오염으로 발생하는 결과는 단순히 농작물의 피해가 아니라, 아이가 낙태되거나 출생하지 못하게 한 죽음을 가져왔다.
이렇듯 여리고가 죽음의 성읍이 된 것은, 여리고 성을 재건축한 자에게 임한 저주로 해석된다(수 6:26). 즉 여리고의 저주는 아합 왕이 다스리던 때 성을 재건한 일과 관련하여 발효된 것이다(왕상 16:34). 엘리사의 기적은 이 저주를 푸는 의식으로도 해석된다(그레이).
엘리사는 새 대접에 소금을 조금 담아 가지고 오라고 하였다(20절). 사람들이 그것을 가져오자 엘리사는 물의 근원이 있는 곳으로 가서 소금을 그곳에 뿌렸다. ‘새 대접에 소금을 담으라’라는 엘리야의 말은 분리 의식의 한 요소로 파악된다. 이스라엘 전쟁사에서 어떤 성읍을 파괴할 때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을 상징하기 위하여 소금을 뿌렸다(삿 9:45). 이와 유사한 풍습으로 부정한 자들의 영역에서 예물을 옮겨올 때는 그 예물에 소금을 치는 의식을 거행하였다(레 2:13; 민 18:19; 겔 43:24).
현대 아랍 사회에서는, 고대와 마찬가지로(겔 16:4) 새로 태어난 아이를 소금으로 문지름으로써 그 아이가 ‘부정한’ 상태에서 벗어나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 갖추어야 할 정상적인 지위를 획득하였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그레이). 그러므로 새 대접에 소금을 담는 것은 저주에 묶여 사용할 수 없는 물 근원을 부정한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는 의식의 일부였다.
대접을 ‘새것’으로 정한 것은, 의식의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 어떤 힘에도 속하지 않은 새 물건을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삼손 이야기의 새 밧줄(삿 16:11), 하나님의 궤를 실을 새 수레(삼상 6:7; 삼하 6:3), 예언하기 위해 아히야가 입은 새 옷(왕상 11:29) 등도 같은 의미였다.
그런데 새 대접에 담긴 소금 자체가 효력을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죽음의 물이 치유되어 생명의 물이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엘리사는 새 대접에 담긴 소금을 물 근원에 뿌리고 여호와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내가 이 물을 맑게 고쳐 놓았으니, 다시는 이곳에서 사람들이 물 때문에 죽거나 유산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21절). 여호와의 말씀이 죽음의 물을 고쳤다. 다시는 이 물 때문에 죽거나 유산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죽음의 물이 변하여 생명의 물이 되었다.
23-25절, 엘리사를 놀리던 아이들 42명이 암곰 두 마리에 의해 찢겨 죽임당한다.
엘리사가 그곳을 떠나 벧엘로 올라갔다. 그가 벧엘로 올라가는 길에 어린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그를 보고 “대머리야, 꺼져라. 대머리야, 꺼져라” 하고 놀려 댔다(23절). 엘리사는 돌아서서 그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였다. 그러자 곧 두 마리의 곰이 숲에서 나와서 42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찢어 죽였다(24절).
엘리사가 자기를 놀렸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고, 그들이 곰에 물려 죽었다. 이 이야기는 어느 모로 보나 유치한 이야기이다. 이 같은 억설(臆說)은 엘리사의 명예를 훼손하고 동시에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에 가깝다(그레이). 학자들은 이 이야기가 엘리사의 벧엘 방문에 때맞추어 우연히 발생한 불행한 사건을 두고, 그 지역 선지자 공동체가 아이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각색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 이야기가 엄정한 역사 기록이라기보다는 선지자적 무용담(saga)의 일부라는 사실은 ‘42’라는 숫자에서 엿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42라는 수의 성격은 예후의 손에 죽은 사람의 숫자(10:14)와 요한계시록(13:5)에서 짐승이 힘을 쓸 수 있는 달수(42개월)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들 경우에 2라는 숫자는 숫자가 정확하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무한수에 해당하는 40에 추가된 듯하다.
엘리사는 벧엘을 떠나 갈멜산으로 갔다가, 거기에서 다시 사마리아로 돌아갔다(25절). 엘리사의 이동 경로 중 갈멜산과 사마리아를 언급한 것은, 엘리사가 두 지역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엘리사는 수넴 여인이 간청할 때 갈멜산에 있었고(4:25), 나아만 장군의 방문을 받았을 때와 아람 군대가 그곳을 포위하였을 때(6장) 사마리아에 있었다.
여리고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혜의 땅이다. 그러나 그 땅의 물은 사망을 가져오는 죽음의 물이다. 땅은 문제가 없다. 땅은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더럽혀진다. “너희보다 앞서 그 땅에서 살던 사람들은, 이 역겨운 모든 짓을 하여, 그 땅을 더럽히고 말았다”(레 18:27). “땅이 사람 때문에 더럽혀진다. 사람이 율법을 어기고 법령을 거슬러서,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이다”(사 24:5).
죽음의 물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명의 물로 바뀐다. 이사야 선지자는 모든 목마른 자들에게 ‘물’로 나오라고 초청한다(사 55: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이 물로 나오라”).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고 배부르게 못 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는 인생들을 물로 초대한다. 하나님이 목마른 자에게 주시는 물은 하나님께 듣고 또 듣는 말씀이다(사 55:2, “너희는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하나님께 듣고 또 듣는 자마다 그의 영혼이 살아난다. 곧 하나님이 그들을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을 것이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다(사 55:3). 다윗에게 허락한 은혜는 다윗의 씨로 오실 그리스도를 예시한다(삼하 7:12).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에서 나셨다(롬 1:3). 그는 목마른 자에게 하늘로부터 오는 생수를 주신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데, 그것은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솟아나는 샘물이다(요 4:14).
요한복음 4장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생수는 6장에서는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썩지 아니할 양식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될 것이다”(요 4:14).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지 말고, 영생에 이르도록 남아 있을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여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줄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자를 인정하셨기 때문이다”(요 6:27).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물과 양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이다. 곧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그의 십자가 죽음을 뜻한다.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음 안에 거하면(연합하면) 옛사람이 죽고 새 생명을 얻는다(요 3:14-15). 하나님의 저주 아래에 있던 인생이(갈 3:10) 끝나고, 새 생명으로 태어난다. 이것은 마치 엘리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전의 저주를 끝내고 물을 고친 것과 같다.
베드로 사도는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는 표라고 하였다. 이 표는 곧 세례이다! 세례는 소극적으로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는 것이며, 적극적으로 생명을 얻어 하나님을 향한 삶을 살게 한다. “그 물은 지금 여러분을 구원하는 세례를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세례는 육체의 더러움을 씻어 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힘입어서 선한 양심이 하나님께 응답하는 것입니다”(벧전 3:21).
초기 기독교에서 세례는 가장 중요한 성례전이었다. 이 세례는 두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폴 틸리히, <그리스도교 사상사>). 하나는 죄를 깨끗게 하는 소극적 기능과 다른 하나는 성령을 받아 생명을 얻은 적극적 기능이다. 그래서 세례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죄와 사망이 다스리는 세계와 단절한 것을 고백하였다. 그때 비로소 이전의 저주받은 삶이 끝나고, 새 생명의 삶, 곧 사랑의 삶이 시작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그의 죽으심과 연합함으로써 그와 함께 묻혔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안에서 살아가기 위함입니다”(롬 6:4)
4. 나의 묵상
인간의 목마름은 결핍을 표상한다. 목마른 인생이 물을 찾는다. 그러나 그것은 생수가 아니라 죽음으로 인도하는 물이다. 전도자(코헬렛)가 회고한 대로 해 아래 있는 인생은 무엇을 성취하여도 공허의 나락에 떨어진다. 인간은 모두 같은 운명을 타고났다. 이것이 바로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잘못된 일 가운데 하나다. 더욱이 사람들은 그 마음에 사악과 광기를 품고 살다가 결국에는 죽고 만다(전 9:3).
나의 인생 역시 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세상에서는 목마름과 허기짐으로 이것저것을 탐닉하였다. 교회 안에서도 생수를 맛보지 못하니 야곱의 우물에서 종교 행위에 몰두하였다. 목마름은 더욱 심해졌고, 답이 없는 신앙생활로 고통을 받았다. 인간은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고 눈을 뜨게 하지 아니하면 영원히 어둠 속에 처한다. 평생 그렇게 살다가 마지막에는 사망에 처해진다.
야곱의 우물을 전전하였으나 생명에 이르지 못하였다. 전통과 유산이 뒤섞인 야곱의 우물은 잠시 해갈을 주었으나 다시 목마르고 마는 물이었다(요 4:13). 그렇게라도 연명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주께서 말씀으로 오사 생수를 주셨다. 솟아나는 샘물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에 이르렀다. 썩을 양식을 먹으며 연명하던 자에게 썩지 아니할 양식으로 영생을 누리게 하셨다.
세례는 이전의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으로 진입하는 의식이다. 더 이상 죽음의 물을 갈하지 않는다. 날마다 영생을 누리는 생수를 사모한다. 육체를 위한 썩은 양식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다. 하물며 영생을 위한 썩지 아니할 양식이랴! 그래서 날마다 복음을 듣고 또 듣는다. 복음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 더 바랄 것도, 더 원하는 것도 없다. 내일 일본 사역을 위해 출국한다. 마지막까지 깨어 기도하여 주의 뜻을 받들기를 간구한다.
5. 묵상 기도
아버지... 인생은 목마릅니다. 저마다 물을 구합니다. 결핍을 채우고자 동분서주합니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죽음에 이르는 물입니다. 평생을 수고한 전도자의 말대로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입니까? 그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음의 자리로 갑니까? 주여, 사망에 이르는 물을 말씀으로 고치셨습니다. 죽음의 물이 생명의 물로 변했습니다. 이전의 저주가 끝나고 생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여... 저는 무엇에 그리 목이 말랐는지요? 죽음의 물이요 썩을 양식이었습니다.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는 탐욕의 인생이었습니다. 마셔도 마셔도 기갈이 계속되었습니다. 거의 죽게 되었을 때 주님이 생수로 오셨습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물로 영원한 생명에 이르렀습니다. 썩을 양식도 먹어야 삽니다. 하물며 영생에 이르는 양식이리요! 날마다 복음을 듣고 또 듣게 하소서. 그리하여 영생의 풍성함을 누리게 하소서.
아버지... 엘리사가 물을 고쳤습니다. 이로써 저주의 삶이 끝났습니다. 새 생명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물은 구원의 표입니다. 그것은 세례입니다. 세례를 통해 저주 아래에 있는 인생이 끝이 났습니다.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날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새 생명으로 살게 하소서. 어찌 개가 토한 것을 도로 먹듯 죄 가운데 살리이까? 이제 일본 신학교 사역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내 영혼을 거룩하게 단장하여 주의 통로로 쓰임 받게 하소서. 주께서 친히 뜻을 이루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힘입어서 선한 양심이 하나님께 응답하는 것입니다”(벧전 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