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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군의 퇴각, 인신 제사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뜻)이 이루어진 것이다(왕하 3:21-27)
1. 오늘의 말씀 : 왕하 3:21-27
21 모압의 모든 사람은 왕들이 올라와서 자기를 치려 한다 함을 듣고 갑옷 입을 만한 자로부터 그 이상이 다 모여 그 경계에 서 있더라
22 아침에 모압 사람이 일찍이 일어나서 해가 물에 비치므로 맞은편 물이 붉어 피와 같음을 보고
23 이르되 이는 피라 틀림없이 저 왕들이 싸워 서로 죽인 것이로다 모압 사람들아 이제 노략하러 가자 하고
24 이스라엘 진에 이르니 이스라엘 사람이 일어나 모압 사람을 쳐서 그들 앞에서 도망하게 하고 그 지경에 들어가며 모압 사람을 치고
25 그 성읍들을 쳐서 헐고 각기 돌을 던져 모든 좋은 밭에 가득하게 하고 모든 샘을 메우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길하레셋의 돌들은 남기고 물매꾼이 두루 다니며 치니라
26 모압 왕이 전세가 극렬하여 당하기 어려움을 보고 칼찬 군사 칠백 명을 거느리고 돌파하여 지나서 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하되 가지 못하고
27 이에 자기 왕위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데려와 성 위에서 번제를 드린지라 이스라엘에게 크게 격노함이 임하매 그들이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더라
2. 시작 기도
아버지! 어제 일본 홋가이도에 무사히 도착하였습니다. 삿포로 공항에서 이토 선교사와 반갑게 재회하였습니다. 오늘부터 일주일간 있을 신학교 사역에 함께 하소서. 세상에서 아무 쓸모 없는 이방인 고자라도 하나님과 연합하면 존귀한 자가 됩니다(사 56:3).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안식일)을 지키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하고 그의 언약을 지키면 하나님의 아들딸보다 더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주십니다. 그들에게 영원한 이름을 주사 끊어지지 않게 하십니다(사 56:5). 그들은 하나님의 성산으로 인도함을 받으며 하나님의 집에서 기뻐할 것입니다. 사람의 가치는 세상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연합된 자가 얼마나 복된지요? 이 충만한 복을 당신이 택하신 일본의 신학생들에게 전합니다. 먼저 말씀 앞으로 가오니 내 영혼을 보혈로 정케 하소서. 진리의 영으로 말씀을 조명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본문 주해
이스라엘 왕 여호람은 모압 정벌에 나섰다. 그는 유다 왕 여호사밧과 에돔 왕과 동맹하여 의기양양하게 출전하였다. 그러나 출전한 지 7일 만에 군사들과 가축들에게 먹일 물이 바닥났다. 이스라엘 왕은 여호와께서 세 왕을 죽이기로 작정하셨다고 하며 탄식하였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여호와의 선지자를 찾았고, 엘리사는 이 전쟁에 대한 하나님의 신탁을 전하였다.
하나님의 신탁은, 계곡의 물이 가득할 것이고 하나님이 세 왕을 모압에 넘기는 것이 아니라. 모압을 그들에게 넘긴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에돔 쪽에서 물이 흘러와 계곡에 가득 찼다. 이에 세 왕이 모압이 정복하는 일만 남았다.
21-27절은 이스라엘과 동맹군이 모압을 정복하는 장면이다.
모든 모압 사람은 여러 왕이 자기들과 싸우려고 올라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군복을 입을 만한 사람, 곧 징집 연령이 된 사람을 모두 소집하여 국경에서 그 왕들과 대치하였다(21절). ‘갑옷 입을 만한 사람’(개역개정/ 히, 하고라 와마을라)은 문자적으로 ‘허리띠와 상의를 입을 수 있는 사람’이다.
원시 셈족 사람들은 수를 그대로 세기를 꺼렸기 때문에 나이를 적절한 특징이나 행동으로 표현하였다. 그들은 5세 미만의 소녀는 ‘집 대문에서 암탉을 쫓는’ 나이, 10-11살의 소녀는 ‘막대기를 모으고 물을 길어나르는’ 나이, 13-14세의 소녀는 ‘결혼할 수 있는’ 나이 등으로 표현하였다(그레이). 허리띠를 매는 나이는 대략 11-12세의 소년이었다. 그러므로 모압은 백성 중 어린 소년까지 총동원하여 방어선을 쳤다.
모압 사람들이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보니, 해가 물 위에 비쳐서 반대편 물이 온통 피와 같이 붉게 물든 것을 보았다(22절). 모압 군대는 수면 위로 떠오르는 해의 붉은 빛을 피로 착각하였다. 이들은 세 왕이 자중지란을 일으켜 많은 사람이 죽고 피를 흘렸다고 착각하였다(23절). 사람이 위기에 처하면 자기가 유리한 대로 주술적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리스도인이라도 말씀을 떠나면 얼마든지 자기에게 유리한 대로 육신의 생각을 하여 사망에 이른다.
불나방이 불 속에 뛰어들 듯 모압 사람들은 노략질하기 위해 이스라엘 진영으로 들어간다(24절). 그러자 이스라엘 군인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모압 군인들을 쳤다.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니 이스라엘 군인들은 모압 진 안에까지 쳐들어가서 그들을 무찔렀다(24절).
25절, 19절에서 주어졌던 하나님의 신탁이 그대로 이루어진다. 이스라엘 군대는 모압 성읍들을 파괴하고, 옥토에는 모두 돌을 던져 돌로 가득 채웠다. 물이 나는 샘을 모두 메우고, 좋은 나무를 모두 쓰러뜨려서 길하레셋의 돌담만 남겼다. 그곳도 무릿매꾼들이 포위하고 공격하였다. ‘길하레셋’은 모압의 수도 ‘키르 하레셋’으로 알려졌다(사 16:7, 11; 렘 48:31, 36). 19절의 신탁대로 모압 성읍의 수목이 베어지고 샘이 메꾸어지고 좋은 밭이 헐렸으나 수도는 보존되었다.
그제야 모압 왕은 전세가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칼 잘 쓰는 사람 700명을 뽑아 에돔 왕이 있는 쪽으로 돌파하여 나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일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26절). 모압 왕이 자기를 공격하는 에돔 왕에게 가려고 한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권위 있는 주석가는 에돔을 ‘아람’으로 읽는다(그레이).
아람 왕은 이스라엘과 적대적이었고 요단 동편의 라못 길르앗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압 왕이 그리로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런데 문자적으로 모압이 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했다면, 연합군 가운데 가장 약하게 보이는 에돔 진영을 돌파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정중호).
모압 왕은 사면초가의 위기 상황에서 세자를 인신 제사로 바친다. 그는 자기를 대신하여 왕이 될 장자를 죽여 성벽 위에서 번제로 드렸다. 이것을 본 동맹군들은 크게 당황하여, 그곳을 버리고 고국으로 돌아갔다(27절).
왕세자를 최고의 제물로 바친 것은 모압의 민족 신 그모스에 대한 진노를 풀기 위해서였다. 모압 왕 메사는 오므리와 아합 때 자기 백성이 이스라엘의 속국이 된 것이 그모스의 진노때문이라고 이해하였다. 모압인들이 재앙의 원인을 그모스 신의 노여움에서 찾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메사가 장자를 성 위에서 번제로 드린 것은, 그모스 신의 분노를 성 밖의 적들에게 돌리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다.
동맹군들이 보는 앞에서 행해진 인신 제사는 동맹군들을 크게 당황하게 하였다(새번역). 동맹군들은 세자를 제물로 받은 그모스 신이 능력을 발휘하여 복수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게 되었고, 그리하여 그들은 황급히 회군하여 각자 자기 땅으로 돌아갔다.
‘크게 진노가 임했다’(개역개정)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 이는 하나님의 분노나 그모스의 분노를 가리킨다. 만일 그모스의 분노이면 이방신의 능력을 인정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진노라면 여호와께서 인신 제사의 효력을 인정하는 셈이다. 성경은 그모스의 능력을 결코 인정하지 않으며, 이방 나라의 왕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릴 이유도 없다.
중요한 것은 이 제사를 목도한 동맹군 내부의 문제이다. 동맹군들은 모압 왕의 사생결단의 인신 제사와 그모스 신의 진노를 두려워하여 크게 당황하였고 퇴각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새번역 성경은 매우 적절하게 의역하였다. “이것을 본 이스라엘 사람들은 크게 당황하여, 그 곳을 버리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동맹군이 퇴각한 결정적인 이유는, 모압에 대한 하나님의 신탁이 이미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엘리사를 통해 주신 신탁(19절)은 동맹군에 의해 성취되었다(25절). 이로써 이 전쟁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은 동맹군들이 방자하여 그의 목적을 넘어서서 모압을 강탈하는 것을 용납하지 아니하셨다. 이는 이번 전쟁에서 하나님의 목적은 다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압 왕이 세자를 인신 제사로 바친 것은 전혀 무의미한 것으로 세자만 희생시킨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자기 뜻을 이루어가신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역사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예시하는 구원사이다. 하나님은 그의 결정적인 때(카이로스) 아들을 그리스도로 보내셨다. 때가 차매 여자의 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나신 것이다(갈 4:4).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철저히 하나님의 목적(뜻)에 합치된 삶을 사셨다.
하나님의 아들은 창조주이며 전능자이시다(요 1:3). 그러나 그에게 할 수 없는 것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요 5:19).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셔서 그가 하시는 일을 다 보여주신다(요 5:20).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여 그에게 보여주신 일은 죽은 자를 일으켜 살리는 것이다(요 5:21). 그러므로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신다.
죽은 자를 일으켜 살리는 아버지의 일은 허물과 죄로 죽은 자를 아들 안에서 일으켜 생명을 주는 것이다. 아들이 진실로 진실로 말씀하신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는데 곧 이때다. 듣는 자는 살아난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는데,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그리고 그 음성을 듣는 사람들은 살 것이다”(요 5:25).
아들에게 주신 아버지의 명령은 영생이다(요 12:50). 아들의 음성은 영생의 말씀이다.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다. 아들의 음성(말)은 영이요 생명이다(요 6:63). 아들의 음성(말)을 듣고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간다(요 5:24).
모든 시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보낸 이들은 아들이 하시는 일을 그대로 한다. 그 일은 아들이 하신 일, 곧 그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생명을 주는 일이다. 주의 종이요, 주가 보내신 사도를 자청하나 죽은 자를 일으켜 생명을 주는 일 외에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직권 남용이다. 그런 자는 불가불 주의 이름으로 다른 일을 행한다. 그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아 불법을 저지른 자이다(마 7:21-23).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서는 날 그런 자는 엄중한 심판을 받는다.
마틴 하이데거는 세속성에 빠진 비본래적 인간이 죽음을 앞질러 경험할 때 본래적 인간이 된다고 하였다. 죽음 앞질러 경험할 때 비로소 결단하고 책임지는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 역시 마찬가지이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는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앞질러 경험할 때 우리는 화들짝 깨어난다. 그때 비로소 생명으로 살며 생명을 전하는 삶이 그를 강권한다. 아들이 하셨던 아버지의 일, 죽은 자를 일으켜 살리는 생명을 전한다.
4. 나의 묵상
나는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니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사역은 천방지축식이었다. 하나님의 일인 생명을 살리는 것보다 이미 십자가에서 죽은 옛사람을 대상으로 사람의 일을 하는 데 매진하였다. 한 번도 성경 앞에 단독자로 서서 내가 무슨 일로 부름 받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사역자들을 따라 행하고 모방하였다. 특히 사람을 끌어모으는 일이라면 더욱 그러하였다. 사실 사람 끌어모으는 재주는 이단 사이비 종교를 따라가지 못하는데 말이다.
소경 마을에서는 다들 소경이 되어야 눈치 안 보고 산다. 소경 마을에서는 눈뜬 자가 이상히 여김받는다. 하나님의 은혜로 눈을 뜨고 비로소 하나님의 목적에 합치된 생명을 전하는 자가 되었다. 여전히 생명을 전하는 일이 아닌, 곁가지의 일들이 하나님의 일로 포장되는 현실이다. 심히 자격 없는 자이나, 주께서 보내시는 곳에서 생명의 복음을 전한다. 나는 입이 되고 많은 동역자가 발이 되어 함께 한다.
오늘부터 일주일간 홋가이도 CFNJ 성서학원에서 복음생명세미나를 인도한다. 지난 15년간 이 사역을 해오면서 자주 들었던 말이 신학교에서 이런 복음을 전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신학생들을 복음으로 섬기는 일이 감개무량하고 동시에 두렵다. 이들이 복음생명의 말씀을 영으로 잘 깨닫고 생명을 전하는 사역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5. 묵상 기도
아버지... 이스라엘 왕이 모압을 정벌하러 유다와 에돔 왕과 함께 출전합니다. 그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선지자 엘리사가 여호와의 신탁을 받습니다. 전쟁은 그 신탁대로 모압이 정벌되며 끝났습니다. 하나님이 이 전쟁을 향한 목적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동맹군들은 퇴각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때 궁지에 몰린 모압 왕이 세자를 번제로 드려 그모스 신의 진노를 면하고자 합니다. 동맹군들은 그것을 보고 당황하여 퇴각합니다. 모압 왕이 세자를 번제로 드린 것은 아무 쓸모없는 어리석은 죽음입니다.
아버지여... 하나님은 범사에 목적을 두고 행하십니다. 아들은 모든 것이 가능하나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어떤 일도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일은 죽은 자를 일으켜 살리는 것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인생들에게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아들은 이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제 그를 믿는 자마다 옛사람이 죽고 새 생명을 얻습니다. 모든 시대 주의 종들은 아들이 행하신 생명을 주는 일로 부름받았습니다.
아버지... 저는 주의 종이라 일컬었습니다. 그러나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교회에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사람의 일을 하는 것을 목회로 알았습니다. 공의로 심판하시고 무덤에 던지셨습니다. 심판을 앞질러 경험하며 비로소 보내신 목적인 복음을 전하여 생명을 얻게 하는 일을 알았습니다. 오늘부터 5일간 일본의 신학생들에게 복음생명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들을 주의 종으로 부르셨으니 이들이 복음을 바르게 알고 생명을 전하는 사역자로 세워지게 하소서. 매시간 진리의 영으로 역사하소서. 통역하는 이토 선교사에게 동일한 성령으로 역사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