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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에서의 일이었다. 연말이 다가오자 어떤 사람이 장난으로 런던 시내에 있는 저명 인사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각각 띄웠다. “당신의 사생활이 모두 들통났습니다. 그 사진을 폭로하기 위해 신문 기자들이 귀하의 집을 방문할 것이니 이 해가 가기 전에 런던을 떠나십시오.” 그 후 편지를 띄운 저명 인사 집을 모두 찾아가 봤는데 집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이것은 사람들마다 자기의 감추어진 생활이 드러나는 것에 견딜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돌로 치겠다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고 말씀하시고 허리를 굽혀 땅 위에 손가락으로 쓰셨다. 그러자 나이 많은 사람으로부터 젊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한사람도 남김없이 모두 도망치고 그 여자만이 남았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부끄러운 생활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항상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성찰함으로써 부끄러움이 없는 생활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당신에게 타인에게 공개되어서는 안 되는 은밀한 것이 있지는 않으십니까? 롬 2:16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1.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사역을 위한 필요한 것들이 채워질 수 있도록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진실된 그리스도인 성경 : 롬 2: 17-29 사도행전에 보면 밥을 싸들고 다니면서 사도 바울이 가는 곳이면 그 곳이 어디든 쫓다와서 괴롭 게 하던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유대인이었습니다. 이들이 루스드라에서는 바울을 돌로 쳐서 처참하게 죽였습니다. 그들이 바울을 죽여서 성 밖으로 내 던졌습니다.(행14:19).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적으로 살려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둘러서서 보는 가운데 바울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몸에 흙을 툭툭 털고 다시 전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유대인들은 가는 곳마다 바울을 쫓아다니며 반대하다가 마침내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자 다시 예루살렘까지 따라왔습니다. 거기서 올무를 씌우어 기어코 바울 사도를 감옥에 넣고 말았 습니다. 찰거머리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자랑하는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자기들은 할례 받은 백성이라는 겁니다. 자기들은 율법을 가지고 있는 백성이라는 겁 니다. 이 자랑외에는 사람답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늘 자기의 기준으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할례 받지 않고 율법이 없다고 해서 이방인을 개나 돼지 같이 여겼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개나 돼지 같은 이방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선택을 이야 기하고 구원을 이야기하니 얼마나 분통이 터지는 일입니까? 그래서 바울이 가는 데마다 쫓아다니며 바울을 박해하고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들의 생리(生理)를 잘 압니다. 과거에는 자기도 그런 사람이었으니까요. 사실 남들에 게는 그처럼 혹독하면서도 자기 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 무리들이라는 겁니다. 껍질만 하나님의 백성이지 속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들을 향하여 혹독하게 책망합니다. "당신네들이 율법을 가지고 있으면 무엇합니까? 율법을 다 지키지도 못 하면서. 할례를 받았으면 뭐합니까? 할례 받은 백성 구실도 못하면서, 당신들이 내 세울게 무엇입 니까? 탈무드에 보면 바리새인들에게 7가지 유형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잠시 대기형'-항상 선한 기회가 왔을 때, "꼭 내가 이것을 해야 하나, 누군가 다 른 사람이 하겠지" 하고 기 다리는 형이라고 합니다. 이런 형은 자기는 인심만 쓰고 일을 다른 사람으로 하도록 하는 형입니 다. 둘째는 '눈을 감고 다니는 형'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자꾸 보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 아름다운 여자를 보니까 음욕을 품게 되 고, 물질을 보니까 소유욕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죄짓지 않으려면 눈을 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눈을 감고 다니다가 이마가 터지는 형입니다. 셋째는 '어깨 으쓱형'입니다. 기회가 오면 선한 일을 하기는 하는데, 꼭 나팔을 불고 하는 형입 니다. 또 한 일을 나팔을 불고 다닙니다. "내가 이 일을 합니다. 내가 이 일을 할 것입니다' '내가 그 일을 했습니다'고 나팔을 불고 다니는 형입니다. 넷째는 '곱사등형'이라고 합니다. 외식적으로 겸손을 가장하여 늘 굽실굽실하기 때문에 그만 허 리가 굽어져 버린 형입니다. 그러나 속에는 노략질 하는 이리가 들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다섯째는 '계산형'이 있다고 합니다. 만사를 더하기 빼기 식으로 계산하는 사람들입니다. 선한 일을 할 때에도 내게 돌아올 이 익이 어느 정도인가를 먼저 계산하고 수지가 맞으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하는 형입니다. 또 되 도록이면 사람들 많이 보는 데서 효과적으로 선행을 하는 사람입니다. 여섯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형'입니다. 십일조 안 바치면 내 사업에 손해가 올까봐서 바치고, 주일을 안 지키면 내 자식들 에게 해가 돌아올까 봐서 지키는 형입니다. 첫째에서 여섯째에 해당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주님께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 들이여(마23:13)'하고 책망하셨습니다. '아나데마 에스토'-천벌을 받으라는 말입니다. 구제 불능의 인간들 아! 하는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일곱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하나님께 봉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옳바른 바리새인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참 이스라엘이요,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 자손인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말한 유형 중에 어디에 속합니까? 신앙에 가장 무서운 적은 형식주의 내지 외식주의(外飾主義)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마디 로 말한다면 위선이라고 합니다 . 위선은 그런 것처럼 보이는 데 실상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말씀대로 사는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는 옳다고 전제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찾아다니기 바쁜 사람입니다. 존 더넌은 "위선자는 밖에서는 성인이요, 안에서는 악마"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이 받는 할례가 무엇입니까? 유대인들이 사내 아이가 난지 여드레만에 아이들 의 꼬추끝을 잘라주는 것인데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이 되었다는 표시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제부터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백성이 되었 다는 표시입니다. 그런데 할례만 받았지, 하나님의 말씀대로는 도저히 살지 않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과 교제가 이뤄지는 겁니까 ? 바울은 본문에서 말합니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할례없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 하나님이 더욱 기뻐하시는 것이다. 겉모양의 유대인이 귀한게 아니고, 겉모양으로 살에다가 할례를 받았다고 해서 할례가 아니다(2:28). 마음에 받은 할 례가 참 할례이다. 이런 사람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칭찬을 받습니다(29). 어느 목사님이 길을 가다가 그 근처에 사는 교인이 생각났습니다. 여기까지 왔으니 교인 가정을 심방하고 가리라고 마음먹었습 니다. 예고도 없이 온 심방이라 교인은 당황도 했지만 아주 반가웁게 목사님을 맞이했습니다. 목 사님은 자리에 앉자 말했습니다. "생각나는 성경구절이 있어서 한 말씀 드리고 가겠습니다. 성경책을 좀 가져오십시 오." 그 때 교인은 생각하기를 "이 때야말로 내가 얼마나 예수님을 잘 믿는지를 목사님에게 보여주어야지", 생각 하고, 자기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애, 너 안방에 가서 엄마가 가장 좋아하고 가장 사랑하는 책을 가져다주겠니?" 목사님 들으라고 큰 소리로 아이에게 말한 것입니다. 아이는 쏜살같이 달려가서 책 한 권을 가져 왔습니다. 그 책은 성경책이 아니라, 백화점 물품 구입 목록책이었습 니다. 신앙을 어떤 규범이나 형태에 제한시키려고 할 때 신앙이 타락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신앙을 어떤 도덕과 규범에 제한시켜 집어넣으려고 했기 때문에 위선적인 신앙으로 흘러가버린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는 하루에 몇 번을 공식적으로 해야 좋은 유대교인이고, 성경책에 줄이 많이 그어져서 책이 다 달아졌어야 좋은 신자이 고, 안식일에는 자동차에 시동이 걸려 있어도 기름이 다 달도록 시동을 끄지 아니해야 하고, 일주 일에 하루는 금식을 해야 한다. 이 공식에 맞춰지면 좋은 신자이고, 안 맞춰지면 좋은 신자가 아니라고 생각할 때부터 신앙이 잘못되는 것입니다. 이런 공식을 놓고 믿음생활하는 사람은 인간적인 규범이란 잣대로 사람을 재려고 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정 죄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이런 규범에 잡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에게 잡혀 사는 것이 참 신앙입니다. 예수님이 들려주신 탕자 비유 가운데 두 아들이 나옵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둘째 아들은 가장 악한 아들입니다. 거기에 비해 첫째 아들은 모범생이구요. 큰 아들은 아침마다 아버지에게 빠짐없이 문안드리는 자입니 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일터에 나가 정확하게 일하고 저녁이 되면 정확한 시간에 돌아와서 아버지께 인사하는 형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 가운데는 이 첫째 아들 이 그렇게 좋은 아들로 표현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이 비유의 중심은 아버집니다. 그러나 간접 적으로 비추는 대로 보면 도리어 탕자를 두든하는 느낌이 들고 큰 아들은 약간 책망하는 듯한 감을 줍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 까? 큰 아들의 마음속에는 실상은 아버지가 들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돌아온 탕자는 비록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한 자이지만 그의 마음엔 아버지가 절대적인 존재로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이었던 사울과 다윗을 비교하면 차이는 다른데 있는 게 아닙니다. 사울은 율 법주의자입니다. 하나님을 의식 하지 안하고 사람을 의식하던 자였습니다. 다윗은 반대로 사람을 의식하기 보다는 오직 하나님 을 의식하면 산자입니다. 하나님 을 사랑하고, 하나님만 두려워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입니까? 바울이 고린도에 있었을 때, 어떤 사람들이 바울에게 "당신이 사도라는 추천서를 보여주 시오" 하고 요구했습니다. 이런 관념에 잡혀서 사는 자들은 추천서가 없는 사람들을 다 거짓 교사로 생각했습니다. 이게 얼 마나 모순이냐는 겁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주민등록증을 잘 가지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또 주민등록 번호를 외우지를 못했 습니다. 그러다가 한번은 밤에 춘 천 쪽에서 오다가 검문에 걸렸습니다. "주민 등록증 좀 봅시다." "없는데 요." 그러면 주민 등록번호를 외 우고 있습니까?" "무슨 그런 것을 다 외우고 다닙니까?" "그러 면 아저씨, 내려오세요." 제가 간첩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랬지요. "여보시오, 순경나리, 어느 간첩이 주민등 록증 없이 이 땅을 돌아다닙니까? 떳떳하니까 주민등록증도 없이 다니는 것이지," 그랬드니 고개를 까우둥 하드니 가래 요.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람은 다 간첩이라고 하면 이게 얼마나 모순입니까? 추천서를 보여달라고 말하는 이들을 향하여 바울이 대답했습니다. "내 추천서는 종이에 쓴 것이 아니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내 육의 심비에 쓴 것입니다.(고후 3:1-3) . 바울은 말한 것입니다. 바리새인들 같이, 거짓 교사들처럼 종이 추천서를 가지고 다니는 내가 아니요. 나는 내 속에 예수님을 만난 신비를 담고 있소. 그리고 내게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흔적이 있단 말이요. 바울은 어떤 도덕론자가 아니었습니다. 어떤 형식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가 그리스도 인이란 것을 말할 때 , 어떤 형식적인 것을 들어 설명한 적이 없습니다. 나는 주일을 잘 지킵니다. 나는 십일조를 합니 다. 나는 기도를 하루에 세번 합니다. 나는 성경을 읽지 않고는 하루 일을 시작하지 않습니다는 말로 자기가 그리스도인 인 것 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자신을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나타내는 말이 딱 한가지 있습니다. "내 안에는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대표적인 말씀이 갈라디아 2장 20절 말씀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는 내가 산 것이 아니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 는 믿음 안에 사는 것이라." 진짜 유대인은 외적인 표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요, 그 안에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란 말입 니다. 그 말을 바울 사도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 계십니다. 율법의 주인이 계신다는 말보다 더 확실한 말이 있습니까?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 계신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나는 하나님의 율법을 외 우거나 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공 부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 나는 내 영혼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겼고, 언제든지 그 말씀을 따 라 살려고 한다는 말입니다. 나의 행동원리는 오직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살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여러분, 신자가 정말 주일을 꼭 지켜야 하나요? 꼭 십일조를 내야 합니까? 전도는 꼭 해야 하 는 겁니까? 성경공부를 꼭해야 하나요? 성경에 그런 말이 있습니까 하고 성경을 따지며 묻는 정도라면 그 사람은 아직 온전한 신앙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누가 어려분에게 "당신, 그리스도인이요?" 하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 까? "나는 주일 예배에 꼭 참석 하는 신자입니다. 나는 봉사도 잘하는 신자입니다. 나는 성경을 열심히 읽습니다. 적어도 나는 십 일조를 바치고 사는 신자이니다 "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이런 것들을 잘 지키기 때문에 나는 좋은 신자라는 관념과 내 안 에 그리스도가 살아계시기 때문에 나는 이런 일을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라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계십 니다."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고, 주님 을 위하여 일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내 안에 살아계신 사람이 진짜 그리스도인입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율법이나, 어떤 형식에 메이지 않습니다. 모든 행동의 원리를 주님에게 둡니다 . "주님이 내 안에 계시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모든 행동에 대하여 주님은 뭐라고 하실 까?" '지금 내가 믿음생활하 고 있는 모습을 주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이것을 믿음생활의 기본 원리로 삼고 살아 가야 합니다. 여러분, 주님이 어려분 안에 살아계십니까? 그렇게 살 때 사람들에게서는 칭찬을 받지 못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반드시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
첫댓글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 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그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샬롬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충만한 가운데 성령의 도움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부모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민족을 구원하는 구원사역의 도구로 쓰임받고 성경의 도구로 쓰임받고 성령의 도구로 쓰임받고 감사하는 도구로 쓰임받고 제자양육의 도구로 쓰임받고 풍성하게 열매 맺게 하소서 아멘
~감사합니다 ~샬롬~!!~ㅎㅇ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