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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20일 월요일
[(녹) 연중 제2주간 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홍] 성 파비아노 교황 순교자 또는
[홍] 성 세바스티아노 순교자
말씀의 초대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에게서 멜키체덱과 같은 대사제로 임명되셨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느냐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5,1-10
1 모든 대사제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뽑혀 사람들을 위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하도록 지정된 사람입니다.
곧 죄 때문에 예물과 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2 그는 자기도 약점을 짊어지고 있으므로,
무지하여 길을 벗어난 이들을 너그러이 대할 수 있습니다.
3 그리고 연약한 탓에 백성의 죄뿐만 아니라
자기의 죄 때문에도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4 이 영예는 어느 누구도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아론과 같이 하느님에게서 부르심을 받아 얻는 것입니다.
5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도 대사제가 되는 영광을 스스로 차지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께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하고
말씀하신 분께서 그렇게 해 주신 것입니다.
6 또 다른 곳에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7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8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며,
10 하느님에게서 멜키체덱과 같은 대사제로 임명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신랑이 혼인 잔치 손님들과 함께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8-22
그때에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21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22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의 복음은 어제의 복음과 내용이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포도주’이십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과방장을 감탄하게 하신 ‘좋은 포도주’이십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는 첫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의 1항에서 구약을 뛰어넘는 신약의 새로움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윤리적 선택이나 고결한 생각의 결과가 아니라, 삶에 새로운 시야와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한 사건, 한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한 사건’은 나와 온 우주를 뒤흔드는 그분과의 만남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신앙생활은 이제 우리네 인간의 노력이기보다는 자신이 만난 하느님의 놀라운 사랑에 대한 응답입니다. 이에 화답하듯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1항 첫 시작에서, 예수님과의 만남에서 어떤 일들이 이루어지는지를 분명히 밝혀 주셨습니다. “복음의 기쁨은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이의 마음과 삶을 가득 채워 줍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죄와 슬픔, 내적 공허와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기쁨이 끊임없이 새로 생겨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카나의 혼인 잔치를 다시 활기차게 하신 ‘차고 흘러넘치는’ 충만한 포도주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만난 우리는 모두 ‘사랑의 취객’입니다. 감사와 찬미를 그분께 바칩니다.(김동희 모세 신부)
지금 우리는 분명 의미있는 고통, 가치있는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젊은 시절, 어울려서 운동하기를 참 좋아했습니다. 휴일이면 오후 내내 운동하는 것도 부족해서, 밤늦게까지 축구를 하고 농구를 했습니다. 다른 수도회 형제들과 시합이라도 있으면 내기를 걸었습니다. 이기면 삼겹살 무한 리필, 지면 수도원 돌아가서 라면에 찬밥. 형제들은 목숨을 걸고 공을 찼습니다.
이기고 지고를 반복하던 라이벌 팀에 시원하게 대승을 거둔 저녁이었습니다. 배도 고프겠다, 고기 뷔페집에 들어가서 원 없이 삼겹살을 구워 먹었습니다. 어찌 그뿐이겠습니까? 소맥도 제조해 마시고, 거기다 마무리로 철판 볶음밥까지 만들어 먹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승합차 안에서 끝 기도도 바치고 묵주기도도 바치기로 했었는데, 죽었다 깨어나도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정신도 오락가락 혼미해지고, 우선 배가 너무 불러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한 가지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기도를 잘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결핍이 필요하다는 진리. 사실 제대로 된 단식은 인간을 기도로 안내합니다. 단식을 제대로 하게 되면 정신이 맑아집니다.
단식은 인간을 약하게도 만들지만 강하게도 만듭니다. 참된 단식을 통해 인간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들과 본능을 스스로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게 됩니다. 자연스레 인간의 마음과 영혼, 감각과 오감들이 하느님을 향하게 됩니다. 이렇게 단식을 통해 기도할 분위기가 자연스레 조성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문화 안에서 단식과 기도는 언제나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단식하는 날은 곧 기도하는 날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단식하고 있다면 ‘지금 기도하고 있구나!’ 생각하고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단식할 때가 있다면, 단식을 그쳐야 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활동하시던 그 순간을 혼인 잔치에 비유하셨습니다.
혼인 잔치는 기쁨의 잔치요 축제의 잔치입니다. 예수님의 강생과 육화로 인해 시작된 공생활 기간은 일반 혼인 잔치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성대한 기쁨과 구원의 축제였습니다.
구원과 은총의 시기에 단식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 순간 필요한 것은 만끽하고 즐기는 것입니다. 잔칫상에 올라온 맛갈진 음식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배불리 먹는 것입니다. 갓 수확한 포도로 만들어 내온 새 포도주를 큰 잔에 콸콸 부어 서로 건배하고 즐기는 것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중요시한 것은 부정한 것에 대한 단호한 기피였습니다. 율법 규정을 목숨처럼 여기며 철저히 준수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랜 전통에 따라 그저 단식하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새 포도주로 오신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외적인 그 무엇이 아니라, 내적 태도, 영혼의 상태임을 강조하셨습니다. 구원의 때에 합당한 근본적인 회개와 삶의 변화를 중요시하셨습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새 포도주는 언제나 청춘이시며 영원한 새로움이신 예수님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새 포도주이신 예수님은 언제나 새롭게 해석되어야 하고, 오늘 우리 각자의 삶 안에서 늘 새롭게 탄생해야 마땅합니다.
새 포도주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 각자가 들고 있는 부대의 상태는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여기 저기 구멍나고 헤어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우리 백성은 사상 초유의 대혼란을 겪고 있고, 하루하루 안갯속같이 불투명한 길을 걷고 있지만, 분명 의미 있는 고통, 의미 있는 시련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성숙하고 더 건강한 새로운 시대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확신합니다.
새 포도주이신 예수님께서는 지금 겪고 있는 시련을 통해 우리 모두 새로운 존재로 거듭 태어나기를 바라신다고 생각합니다. 새 포도주이 신 예수님께서는 이 고통스러운 현실 안에도 분명 우리 가운데 항상 현존하시리가 굳게 믿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밥을 할 때 ‘뜸’을 들여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뜸’을 들여야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밀당’을 하기도 합니다.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흥정’을 합니다. 너무 싸게 사려하지 않으면 주인도, 손님도 적당한 가격으로 흥정합니다. ‘뜸, 밀당, 흥정’은 어쩌면 사람 사는 재미인지 모르겠습니다. 친한 사이에는 ‘농담’도 합니다. 가끔 농담을 진담으로 알아들어서 오해가 생기기도 하지만, 농담은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부부가 헤어지려고 이혼 법정으로 가면 판사가 이야기를 경청한 다음 판결 내리기 전에 ‘숙려기간’을 줍니다. 이제 헤어지면 남이 되기에 잠시 서로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시간을 줍니다. 이런 숙려기간을 통해서 서로 이해하고, 서로 용서하며 다시 부부의 인연을 이어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왜 단식하지 않느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마치 흥정하듯이, 밀고 당기듯이, 뜸을 들이듯이, 숙려기간을 주듯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명쾌하게 정리하십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피아노를 배우면서 왼손과 오른손의 역할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른손은 마치 숨을 쉬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오른손은 멜로디이기에 숨을 쉬듯이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합니다. 왼손은 머리와 같다고 했습니다. 리듬을 맞추면서 오른손이 가는 길을 밀어주고, 보듬어 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본당에는 두 개의 조직이 있습니다. 두 개의 조직이 본당 사제를 도와서 공동체를 위해 봉사합니다. 하나는 사목 평의회입니다. 다른 하나는 재정 평의회입니다. 사목 평의회는 마치 오른손과 같습니다. 각 분과는 1년 동안 해야 할 행사를 기획합니다. 본당의 행사는 전례의 주기에 맞추어서 진행됩니다. 멜로디와 같습니다. 한쪽에 치우쳐서도 안 되고, 너무 모자라서도 안 됩니다. 재정 평의회는 왼손과 같습니다. 본당의 행사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예산의 범위를 정합니다. 예산이 부족하면 행사를 줄이도록 요청하기도 합니다. 꼭 필요한 행사라면 필요한 재정을 충당할 수 있는 방법을 찾습니다. 사목자는 사목 평의회와 재정 평의회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도록 공동체를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삼위일체인 하느님께서 친교와 사랑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끄시듯이, 사목 평의회와 재정 평의회 그리고 사목자는 공동체에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합니다.
국가의 기능도 3개의 헌법기관이 있습니다. 사법부, 행정부, 입법부입니다. 사법부는 법과 원직에 따라서 공정하고 정의롭게 판단해야 합니다. 군사 독재 시절에 사법부가 행정부의 시녀처럼 판단했던 오욕의 역사가 있습니다. 억울한 사람이 법의 이름으로 감옥으로 갔고, 죽었습니다. 양심수가 생겼습니다. 행정부는 공정하게 법을 집행해야 합니다. 부정과 부패가 만연한 나라는 행정부가 소수의 이익을 대변합니다. 빈부의 격차가 심해집니다. 국가의 질서가 무너져 내립니다. 부실 공사로 아파트가 붕괴하기도 하고, 멀쩡하게 보이는 다리가 무너지기도 합니다.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인사말이 되기도 합니다. 입법부는 국민을 위한 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당리당략에 의해서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뒤로하는 법을 제정해서는 안 됩니다. 입법부는 토론과 대화를 충분히 거쳐야 합니다. 민주주의 사회는 다당제를 받아들입니다. 1당의 입법부는 소수의 이익을 대변하는 법을 만들 수 있습니다. 2025년 대한민국은 ‘뜸, 밀당, 흥정, 숙려기간’을 겪고 있습니다. 그 시작은 행정부에서 선포한 ‘비상계엄’입니다. 집단 지성이 발휘 되어서 헌정질서가 회복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국가와 국민을 위한 대한민국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영신수련’에서 신앙인들은 3가지 유형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깃발아래 있어야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생활태도는 하나도 변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가치와 세상의 즐거움이 가득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일은 먼 훗날의 일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깃발 아래 왔다가, 금세 달콤한 유혹에 빠져서 세상의 것들에 빠져드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께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기준에 맞추어서 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가난과 겸손이 주는 기쁨을 알고, 세상의 가치보다 훨씬 소중한 주님을 따르는 즐거움을 알기에 언제나 주님의 깃발 아래 서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을 따르는 것이 힘들었기에 오늘 우리는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한 구원자가 되신 것은 고난을 겪으신 다음이라고 말합니다. 2025년 새해에는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겸손, 가난, 나눔, 봉사의 삶을 살아가도록 해야겠습니다.
<새로움>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르 2,22)
기쁨은 늘
앞선 것과 다른
처음 만나는 기쁨
그리하여 새로운 기쁨
기뻐하며
나날이 조금씩
나는 늘 한껏 오르네
슬픔은 늘
앞선 것과 다른
처음 만나는 슬픔
그리하여 새로운 슬픔
슬퍼하며
나날이 조금씩
나는 늘 깊이 여무네
희망은 늘
앞선 것과 다른
처음 만나는 희망
그리하여 새로운 희망
희망하며
나날이 조금씩
나는 늘 차지게 영그네
절망은 늘
앞선 것과 다른
처음 만나는 절망
그리하여 새로운 절망
절망하며
나날이 조금씩
나는 늘 낮춰 솟아나네
만남은 늘
앞선 것과 다른
처음 만나는 만남
그리하여 새로운 만남
만나며
나날이 조금씩
나는 늘 넓게 열리네
헤어짐은 늘
앞선 것과 다른
처음 만나는 헤어짐
그리하여 새로운 헤어짐
헤어지며
나날이 조금씩
나는 늘 애틋이 이어지네
당신은 늘
앞선 당신과 다른
처음 만나는 당신
그리하여 새로운 당신
당신과 함께
나날이 조금씩
나는 늘 당신의 참된 벗이네
나는 늘
앞선 나와 다른
처음 만나는 나
그리하여 새로운 나
나와 함께
나날이 조금씩
나는 늘 오롯이 나로 사네
오늘의 성인
성 세바스티아노(Sebastian)
신분 : 군인, 순교자
활동지역 : 로마(Roma)
활동연도 : +288년경
같은이름 : 세바스띠아노, 세바스띠아누스, 세바스찬, 세바스챤, 세바스티아누스, 쎄바스띠아노, 쎄바스띠아누스
프랑스 남부 나르본(Narbonne) 태생인 성 세바스티아누스(Sebastianus, 또는 세바스티아노)는 283년경에 로마에서 군인이 되었고, 성 마르첼리아누스(Marcellianus, 6월 18일)와 성 마르쿠스(Marcus, 6월 18일) 부제를 격려하여 죽음으로써 신앙을 지키도록 했던 열렬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는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는데, 그들 중에는 재판장인 성 니코스트라투스(Nicostratus, 7월 7일)가 있었고, 그의 아내 성녀 조아(Zoa, 7월 5일)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성녀 조아는 벙어리였으나 그의 기도로 완쾌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간수 성 클라우디우스(Claudius, 7월 7일), 로마의 집정관 크로마티우스(Chromatius)와 그의 아들 티부르티우스(Tiburtius) 등이 있다.
그는 또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로부터 친위대 대장으로 임명되었는데, 황제는 그가 그리스도인인줄 몰랐다고 한다. 성 세바스티아누스가 신자임이 드러난 것은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는 즉시 처형될 입장이 되었다. 그는 화살을 맞고 쓰러졌으나 성 카스툴루스(Castulus, 3월 26일)의 미망인인 성녀 이레네(Irene)가 그의 시신을 찾으러 가서 보니 아직 살아있음을 보고 극진히 간호하여 회복시켰다. 그 후 성 세바스티아누스는 황제에게 정면으로 도전하여 그리스도인에 대한 그의 잔인성을 고발하자 황제는 화가 나서 그를 몽둥이로 때려죽이도록 한 다음 로마의 하수구인 '클로아카 막시마'(Cloaca Maxima)에 던져 버렸다. 그의 죽음과 용기는 신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한편 순교한 후에 성 세바스티아누스는 로마에 사는 루치나(Lucina)라는 부인의 꿈에 나타나 하수구에서 자신의 시신을 찾아서 지금의 성 세바스티아누스 성당이 있는 자리 근처의 지하 묘지에 매장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의 시신은 루치나 부인에 의해 아피아(Appia) 가도에 있는 지하묘지에 묻혔다. 그는 군인, 운동선수 그리고 궁술가의 수호성인이자 전염병의 수호성인으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가 전염병의 수호성인이 된 것은 680년 로마에 페스트가 발병했을 때 로마인들이 페스트가 멈추기를 기원하며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유해를 모시고 장엄한 행렬을 거행하자 그 뒤로 페스트가 사라졌다고 한다. 또 1575년에 밀라노(Milano), 1599년에는 리스본(Lisbon)에 전염병이 돌았을 때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보호를 기원하는 예식이 거행되었었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점차 성 세바스티아누스를 전염병 희생자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하게 되었다.
성 파비아노 (Fabian)
신분: 교황, 순교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250년
같은이름: 빠비아노, 빠비아누스, 파비아누스, 파비안
로마의 평신도이던 성 파비아노는 236년 1월 10일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는데, 선거를 실시하는 동안 비둘기 한 마리가 그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그러자 신자들은 그 모습이 예수님이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나타났던 모습(마태 3,16)과 유사하다고 생각하였고, 이를 교황 선출에 관한 하느님의 의지가 드러난 것이라 여겨 그 자리에서 안수를 통해 성 파비아노를 교황으로 선출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그러나 그의 재임 기간의 업적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이단 문제로 인하여 누미디아(Numidia, 오늘날 북아프리카 지역의 고대 지명)의 람베시스의 주교인 프리바투스(Privatus)를 단죄하였고, 로마의 칼리스투스 카타콤바 내에 주교들을 위한 묘역을 건설하였다.
데키우스 황제 치하의 박해로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하였는데, 성 파비아노 교황도 이때 순교하였다. 교황의 시신은 칼리스투스 카타콤바에 안장되었다가 후에 성 세바스티아누스 대성전으로 옮겨졌으며, 1915년에 그의 이름이 적힌 무덤이 발견되었다
성녀 에우스토키아 스메랄도 칼라파토(Eustochia Smeraldo Calafato)
신분 : 수녀, 설립자
활동지역 : 메시나(Messina)
활동연도 : 1434-1485년
같은이름 : 깔라파또, 스메랄다, 에우스또끼아, 에우스토끼아, 에우스토치움, 에우스토키움
시칠리아(Sicilia) 섬 지르젠티(Girgenti, 오늘날의 아그리젠토)의 마태오(Matthaeus, 2월 3일)가 메시나에서 설교할 때 칼라파토(Calafato)의 젊은 백작 부인인 마틸다(Matilda)가 그의 지도를 받게 되었다.
그녀는 그 후 자신의 재산을 모두 포기하고 작은 형제회의 재속 3회원이 되었다.
얼마 동안 그녀에게는 자식이 없었으나 하느님께 열렬히 기도드린 응답인지 딸 아이 하나를 갖게 되었는데, 어떤 행인이 백작 부인을 만나서 그 아이는 구유에서 낳아야 한다고 일러 주었다. 그렇게 해서 아이 를 낳고 보니 너무나 귀엽고 아름다운지라 이름을 스메랄도(Smeraldo)로 짓고 세례를 주었다.
스메랄도는 에메랄드를 뜻하는 시칠리아 말이다.
어릴 때부터 열심이던 이 아이는 아버지 베르나르두스(Bernardus)가 적임자를 골라 결혼 서명 까지 하였으나 그녀 자신은 동정서원을 발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결혼 상대자는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사망하고 말았다. 그 후 부친이 사망하자 스메랄도는 오빠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바시코(Basico)에 있는 산타 마리아(Santa Maria)의 클라라회에 입회하여 수도복을 받고 수도명 을 에우스토키아(Eustochia)라고 하였다.
성녀 에우스토키아는 귀족 출신이면서도 가난 정신이 뛰어났고, 우리 주님의 수난에 대한 신심 과 통회 정신이 극히 열렬하여 전 수녀회의 귀감이 되었다고 한다.
바시코에서 11년을 살고난 뒤 그녀는 더욱 엄격한 규칙을 원하였는데, 교황 칼리스투스 3세(Callistus III)가 성 프란치스코 (Franciscus)의 규칙을 따르는 수도회 설립을 인가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메시나의 몬테 베르지 네(Monte Vergine)에 수도원을 세우고 회원을 모집하였으나 초창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성녀 에우스토키아는 1485년 1월 몬테 베르지네 수도원에서 선종하였다.
그녀는 1782년 9월 14일 교황 비오 6세(Pius V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88년 6월 1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Joannes Paulus II)에 의해 메시나에서 시성되었다.
그녀는 에우스토키움(Eustochium)으로도 불리며 메시나 사람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성 에우티미오(대) (Euthymius the Great)
활동년도 : 378-473년
신분 : 수도원장
지역 :
같은 이름 : 에우띠미오, 에우띠미우스, 에우티미우스
아르메니아(Armenia)의 밀리테네(Militene)에서 어느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성 대 에우티미우스(또는 에우티미오)는 그곳의 주교 밑에서 공부하고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 후 그는 교구 내의 수도원 책임자로 활동하다가 29세 되던 해에 자신도 예루살렘 교외의 파란(Pharan) 수도원에서 수도자가 되었다. 411년경에 그는 그곳을 떠나 동료들과 함께 예리코(Jericho) 근교의 어느 동굴에서 은수자 생활을 시작하였는데, 수많은 제자들이 몰려오므로 그는 이곳의 원장으로 테옥티스투스(Theoctistus)를 임명하고 자신은 더 한적한 곳으로 물러났다.
이곳에서도 많은 제자들이 생겼고 또 수많은 아랍인들이 포함된 개종자를 얻었다. 이리하여 예루살렘의 총대주교인 유베날리스(Juvenalis)는 그를 주교로 축성하여 아랍 개종자들을 사목토록 배려하였고,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가는 길목에 그를 위한 수도원을 세워주었다. 그는 수많은 군중들에게 설교하여 개종자를 얻었는데, 그들 중에는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의 미망인인 에우독시아(Eudoxia)도 포함되어 있다. 그녀는 에우티미우스의 권고를 듣고 아리우스파(Arianism)에서 물러나 459년에 정통 가톨릭으로 되돌아왔다. 그는 사막에서 66년을 살다가 운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