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는 그가 돕기 위해 찾았던 자기 민족에 의해 거부되어, 사막의 뒷뜰에서 40년을 보냈다. 모세는 하나님의 사람들 중에서 아주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실수를 범했었다. 그는 주가 먼저 “오라”고 부르시기 전에 결코 “가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제자들을 선택해야 하는 날에 그는 12명을 선택하여 그의 제자들로 부르셨다. 선택하기 전, 예수님은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다. 우리들에게도 또한, 우리들이 결정하기 전에 하나님의 안내가 필요하다. 전지하신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결코 틀리는 글을 쓰지 않으시고, 결코 실수하시는 손으로 역사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새로운 날(Day)을 맞았다. 우리들은 오늘의 앞에 무엇이 놓였을지를 모른다. 오늘이 무엇을 산출할지? 이것은 단지 하나님만이 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분께 우리의 삶을 의뢰하고 인도함을 받아야 한다.
당신은 어떤 일을 결정하며 나가기 전에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묻고 나아가는가 ?
행 13: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1.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사역을 위한 필요한 것들이 채워질 수 있도록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하나님을 붙잡는 비결 성경 : 사 64:5-7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이 에돔의 위협과 속박 속에서 풍전등화의 위기를 당하고 있는 때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하여 민중을 보고 외치는 이사야 선지자의 호소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선민임에도 불구하고 주를 붙잡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탄식하는 것이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이사야 시대뿐 아니라 오늘날도 여호와를 의지하고 여호와를 붙잡는 자에게 함께 하시고 그를 존귀하게 하여 주신다.
성경은 속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뵈옵기만 해도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다. 출 19: 21에 보면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 시내산에 강림하신 후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려가서 백성을 신칙하라. 백성이 돌파하고 나 여호와께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 고 했다.
이렇게 하나님을 보기만 해도 죽임을 당하는데,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을 붙잡을 수가 있겠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영이시며, 초월자가 되신다. 만 왕의 왕이요, 우리의 생사화복과 만주의 주가 되시는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붙잡는 방법은 바로 그의 말씀을 붙잡는 것이다. 절대자요, 거룩하신 하나님과 우리 인간이 접촉할 수 있는 고리(채널)는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히 4:12-13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주를 붙잡는 손이요, 접착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부여잡고 그 말씀대로 준행하여 승리하는 성도가 되기 바란다. 둘째, 기도로 하나님을 붙잡아야 한다.
속되고 가증스러운 우리 인간들이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을 붙잡는 비결은 기도뿐이다. 창 32: 24-31에 보면 어려움에 직면한 야곱이 하나님을 붙잡고 밤새도록 씨름하는 내용이 나온다. 야곱은 환도뼈가 위골이 되어도 붙잡고 놓지 않았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말하며 간절하게 매어 달렸다.
마침내 야곱은 「내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는 말씀을 들으며 거기서 축복을 받았다.
이렇게 기도라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붙잡는 지름길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 나 자신이 붙들리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열심히 기도하여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 성도가 되기 바란다. 셋째, 믿음으로 하나님을 붙잡아야 한다. 믿음으로 여호와를 바라보는 것이 곧 하나님을 붙잡는 것이다. 사 40: 31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라고 했다.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붙잡고 바라보는 자에게 여호와는 새로운 힘을 주시어 승리하게 하시는 것이다. 본문 7절에 보면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라고 했는데, 이 말씀은 「쓰러져 있던 자, 죄악에 눌려 더러운 옷과 시든 잎사귀 같은 인생이 분발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붙잡는 것」을 말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붙잡을 것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 그 분만이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도와주신다. 믿음은 영혼의 발과도 같기 때문에 주님의 명하신 길을 걸어갈 수가 있다. 사람은 발걸음을 빠르게 옮기지만, 믿음은 영혼을 운반하는 발이다.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열열한 경건의 수레를 원할하게 운전하는 기름과도 같다. 믿음이 없으면 바퀴 빠진 차와 같이 가지 못하지만 믿음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주님을 위해 일하고 싶은 의욕이 나지 않는다.
여호와 하나님을 붙잡는 생활의 비결은「말씀을 따르는 생활이요, 기도에 힘쓰는 일이요, 주님만 의지하고 바라보는 믿음의 생활」이다. 지금부터 영원토록 여러분의 앞날에 하나님을 붙드시므로 영육 간에 만사 형통하는 축복이 늘 함께 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기쁨과 슬픔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스탠리 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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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잠15:17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것이 살진소 를 먹으며 서로 미워 하는것보다 나으니라 아멘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충만한 가운데 성령의 도움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부모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민족을 구원하는 구원사역의 도구로 쓰임받고 성경의 도구로 쓰임받고 성령의 도구로 쓰임받고 제자양육의 도구로 쓰임받고 감사하는 도구로 쓰임받고 풍성하게 열매 맺게 하소서 아멘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감사합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신 예수 사랑 목사님, 평안 장로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