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그나 시니강의 "시"는 신맛을 의미합니다. 알고 보면 시시그의 원래 의미는 "신맛이 나는 음식을 먹다"입니다.
시시그(Sisig)는 원래 샐러드였다??
지글지글 철판 소리부터 아름다운 시시그, 그런데 이 시시그가 원래는 초록초록한 샐러드였다니요...!!
시시그(Sisig) : 돼지의 각종 부위를 잘게 다져 양파와 마늘을 넣고 볶은 필리핀 전통요리. 시시그라고 적었지만, 실제로는 좀 빠르게 '시-씩'이라고 발음됩니다. |
▲ 필리핀 사람들의 깊은 사랑을 받는 음식으로 밥반찬으로도 좋지만, 시원한 맥주를 곁들이면 천국으로 직진하실 수 있습니다. 잔치 음식으로도 많이 쓰입니다.
필리핀인의 소울푸드, 시시그(Sisig)
마부하이! 안녕하세요~ 필리핀 관광부입니다.
필리핀 전통음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이 시시그(시식)입니다. 바비큐와 같은 음식은 참 맛있기는 해도 대체 누가 언제부터 만들어 먹기 시작했는지 불분명해서 시작점이나 음식의 유래를 말씀드리기가 어렵지만, 시시그만큼은 그 기록이 비교적 명확하여 최소 280년도 전부터 필리핀 사람들이 만들어 먹던 음식이라는 것을 알려드릴 수 있는데요, 무려 1732년에 제작된 사전에 시시그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 디에고 베르가모(Diego Bergaño) 수사가 만든 사전. (이미지 출처 : openlibrary.org )
오래 쳐다보면 시력이 나빠질 것 같은 이 사전은 아우구스티누스회(Augustinian) 소속의 수사로 팜팡가(Pampanga) 지역에서 교구 사제로 봉사했었다는 디에고 베르가모(Diego Bergaño)라는 분이 만들었다는 사전인데요, 1725년부터 1731년까지 팜팡가에서 머물렀던 경험을 바탕으로 라는 이름의 팜팡가어 사전을 만들어내셨다고 합니다.
스페인어로 쓰인 무려 359장이나 되는 이 사전을 230페이지 정도 넘겨보면 디에고 베르가모 수사가 시시그를 "그린 파파야와 그린 구아바를 포함한 샐러드(salad, including green papaya, or green guava eaten with a dressing of salt, pepper, garlic and vinegar)"라고 정의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시그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돼지고기인 분에게는 좀 생소한 이야기지만, 이 기록에 의하면 시시그의 태생은 원래 고기 없이 소금과 후추, 갈릭, 식초가 드레싱으로 사용된 새콤한 맛의 샐러드였다는 것이죠! 우리 시시그가 돼지고기라고는 한 조각도 없이 만들어진 샐러드였다니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 그러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시시그는 그 모습을 달리했습니다. 마당에서 따온 파파야며 구아바를 이용하여 만들던 심플한 샐러드에서 메인 요리로 발전한 것인데요, 이렇게 시시그가 그 모습을 완전히 바꾸게 되기까지의 이야기에는 '필리핀 시시그의 여왕'인 루시아 쿠나난(Lucia Cunanan) 여사가 등장합니다.
▲ 루시아 쿠나난(Lucia Cunanan) 여사 기념 우표
새콤매콤짭짤한 철판 시시그의 시작
시시그는 맥주 안주로 최고이지만, 혹 타임머신을 타고 1970년대 초반에 필리핀에 가게 되어서 맥주를 한잔하려고 한다면 시시그를 주문하면 안 됩니다. 루시아 쿠나난 여사가 아직 식당 문을 열지 않았기 때문에 지글지글 뜨거운 철판 시시그 대신 차가운 파파야 샐러드를 받게 되실 터이니깐요. 소리와 냄새만으로도 입안 가득 군침이 돌게 하는 맛있는 시시그는 어디 가고 초록초록한 샐러드이냐 하시겠지만, 여러분이 시시그하면 떠올리는 그런 음식은 197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생겨났습니다.
1976년의 일이었다고 해요. 필리핀 딸락에서 태어났지만 결혼한 뒤 팜팡가로 이사를 한 루시아 쿠나난 여사가 앙헬레스(Angeles City)의 샌 니콜라스 퍼블릭 마켓에서 아바탄강 가는 길목에 알링 루싱(Aling Lucing)이라는 간판을 달고 새로 식당을 열었는데, 뭔가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신메뉴를 개발하고자 하셨데요. 그런데 루시아 여사는 역시 고기가 최고라는 것을 아시는 배운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비싼 고기를 사서는 동네 사람들을 위한 저렴한 서민용 음식을 만들어 내기 어려웠으니, 대체 어떻게 할까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고 해요. 그런데 말입니다, 루시아 여사가 눈여겨본 것이 있었으니, 당시 클락 공군 기지에서 버려지던 돼지 부속 고기였습니다. 루시아 여사는 미군들이 먹지 않은 돼지머리며 부속 고기를 공짜나 다름없는 헐값에 사다가 삶고 구워서 다져낸 뒤 양파며 칼라만씨를 섞어서 요즘과 같은 형태의 고기 냄새 가득한 시시그를 만들기에 도전하였는데, 이게 대박 아이템이 된 것이죠!
루시아 여사가 만든 시시그의 그 절묘한 맛은 곧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게 되었지만 돼지고기 부속품으로 만든 시시그는 식으면 기름이 굳는다는 단점이 있었으니, 이 단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뜨거운 철판이 등장하게 됩니다. 요즘 먹는 현대적인 시시그 요리의 전설이 드디어 시작된 것이죠! 이제 시시그는 신맛 나는 샐러드가 아닌 잘게 썬 돼지고기 부속품으로 만든 고소한 밥반찬이 되었는데요, 고기 냄새 가득한 시시그는 페이스북이니 인스타그램 맛집 인증샷 하나 없이 주변 지역을 평정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는 고급 식당 대신 허름한 알링 루싱으로 몰려들었고, 루시아 여사는 앙헬레스 역사에 남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아참참, 이 일에 있어 하나 더 멋진 일은 루시아 여사의 성공이 주변 소상공인들에게 적은 자본을 가지고도 식당을 열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었다는 것인데요, 그럴싸한 건물이 없을지라도 자신의 집 뒷마당을 이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식당을 개업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아이디어가 퐁퐁퐁 샘솟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네요!
▲ 시시그(Pork Sisig)는 치킨과 비슷해서 집에서 요리하는 것보다 사서 드시는 쪽이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필리핀사람처럼 시시그 요리하기
앙헬레스 스타일의 시시그 요리법은 파기름 만드는 방법만큼이나 빠르게 필리핀 전역으로 퍼져나갔지만, 재미없게 그냥 같은 방법으로만 퍼지지는 않았습니다. 창의력 대장인 필리핀 사람들은 시시그 요리법을 자신에게 맞게 조금씩 변형하였고, 실로 다양한 맛과 모양의 시시그가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원조의 인기는 사라지지 않으리니! 지금도 사람들은 팜팡가(Pampanga) 식으로 돼지 부속 고기를 삶고 구운 뒤 다져서 볶는 방식으로 만든 시시그를 가장 선호하는데요, 이렇게 만들어 냅니다.
♥ 재료
▦ 주재료 : 돼지고기 - 돼지머리나 돼지 귀나 삼겹살 부위 등 가지고 있는 부위는 모두 사용 가능
시시그는 보통 돼지고기로 만들지만 꼭 돼지고기가 아니라도 요리할 수 있기는 합니다. 냉장고 사정에 맞추어 닭고기나 오징어, 심지어는 두부도 사용됩니다. 물론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은 돼지고기로 만든 철판 시시그이지만, 지글지글 뜨거운 철판 위에 올려진 먹음직스러운 모습은 어느 지역을 가도 비슷합니다.
▦ 닭 간, 양파, 생강, 마늘
▦ 양념 : 버터(또는 마가린이나 식용유), 간장, 후추, 마요네즈, 소금
▦ 고명 : 달걀, 파, 칼라만씨(또는 레몬), 라부요 고추
♥ 요리 방법
① 준비한 고기를 물에 넣고 부드러워질 때까지 1시간 이상 오래 삶아낸 뒤 물에서 꺼내어 물기를 말리고, 그릴에서 노릇노릇하게 굽습니다.
② 돼지 귀를 통째로 주면 먹기 힘드므로, 먹기 좋게 잘게 다져주세요.
③ 넓은 팬을 꺼내고, 버터를 녹입니다. 버터가 없으면 마가린이나 식용유도 괜찮습니다.
④ 버터에 양파를 넣고 볶은 뒤, 생강, 닭간을 넣고 익을 때까지 휘휘 저어줍니다.
⑤ 1번 단계에서 준비해둔 돼지고기를 넣고 맛있게 볶습니다. 고소한 맛을 원하시면 기름을 넉넉히 붓고 튀기듯이 볶으면 더욱더 좋습니다.
⑥ 간장과 마늘, 고추 등을 넣어 간을 합니다.
⑦ 마요네즈를 넣고 섞어 주세요 (마요네즈는 생략 가능합니다. 전통적인 시시그는 마요네즈가 들어가지 않지만, 요즘은 부드러운 감칠맛을 내기 위해 마요네즈를 쓰기도 합니다.)
⑧ 뜨거운 철판에 옮겨 담은 뒤 고명을 올립니다. 고명으로는 쫑쫑쫑 썰은 파와 날달걀, 칼라만씨, 레몬 등을 올라갑니다.
▲ 필리핀 역사 속에서 서민들과 함께한 전통음식 시시그. 삶기 굽기 볶기 이 세 가지 과정 중에 굽기는 생략될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구운 쪽의 식감이 훨~~씬 좋습니다.
네이버 사전에서는 '필리핀의 돼지 요리'라고 간단히 설명하고 있지만,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Sisig 를 검색하면, (in Filipino cuisine) a dish of chopped pork, onions, and chilli peppers seasoned with calamansi and topped with an egg, usually served on a hotplate. 라는 설명을 볼 수 있습니다.
▲ 루시아 쿠나난 여사 덕분에 앙헬레스는 '시시그의 수도(Sisig Capital of the Philippines)'라는 영광스러운 명칭을 얻었습니다. 앙헬레스에서는 지난 2017년에 포크 시시그(Sizzling Sisig Babi)를 앙헬레스의 무형 유산으로 선언하고, 시시그 고유의 맛을 보존하고 알리는 것에 힘쓰고 있습니다.
당신이 몰랐던 재미와 만나다, 필리핀
[출처] 필리핀인의 밥상 - 시시그(Sisig)는 원래 샐러드였다!|작성자 필리핀관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