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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는 법문은, 지금부터 700년 전 중국에서 발간된『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란 책 속에 나온다.
다섯 명의 선사들이『금강경』에 주석을 달고 있는데 야부(冶父) 스님이 여기에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데 부처님이 어디에 계신단 말인가?(山是山 水是水 佛在何處)”라고 되묻고 있다.
야부스님은 이어 “모든 상(象)이 허망한 것이니, 만일 일체 모든 상이 허망해서 실(實)이 아님을 깨달으면 곧 여래의 무상한 진리를 본다”는 육조스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유(有)에 집착하고 무(無)에 집착하는 것은 모두 삿된 견해이니 유와 무에 집착하지 않아야 사물의 본질이 드러나게 된다.”고 덧붙이고 있다.
그런데 성철 스님이 그 중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앞의 구절만 인용하였기 때문에 이 문구가 더욱 어려워 그 뜻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고 본다.
성철 스님뿐만 아니라 역대 많은 선사들이 이 법문을 애용하여 왔지만, 이는 선문답이라기보다는 선공부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변화를 표현한 문구라고 본다.
산과 물에 대한 인식의 세계
산과 물에 대한 인식의 세계를 대체로 세 단계로 나누고 있는데, 그 첫 단계가 눈에 보이는 그대로 산을 산으로, 물을 물로 인식하는 세계이다.
이 단계에서의 산과 물은 분명하게 서로 다른 자연현상이요, 분별된 세계로 색(色)은 색(色)이고 공(空)은 공(空)이 되는 세계가 된다.
그러나 이를 보다 심층적으로 살펴보면, 산은 산이 아닐 수도 있고, 물은 물이 아닐 수도 있게 된다.
아름다움이 결코 아름다움만이 아니고, 선(善)이 결코 선함만이 아닌, 이를테면 기존 가치체계에 일대 전도현상이 일어나 미추(美醜)와 선악(善惡)이 근본적으로 다르게 나누어져 있거나 독립되어 있지 않고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인식의 세계에 이르게 된다.
그러다 마지막 단계에 와선, 산이 도로 산이 되고 물이 다시 물이 되는, 곧 본원으로 돌아오는 반본환원(返本還源)의 세계가 된다.
암자에 앉아 앞의 것을 보지 않아도, 물은 저절로 잔잔하고 꽃은 스스로 붉은 세계임을 알게 된다.
이때 주객이 텅 빈 공(空)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비치게 된다.
그리하여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 되어’ 만물을 비로소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참된 지혜의 세계가 된다.
그러나, 이것은 첫 번째 단계로의 회귀가 아니다.
첫 번째 단계의 산과 물이 단순한 감각적 인식 대상이라면, 이 마지막 단계에서의 산과 물은, 이 모든 것을 다 깨친 득도의 세계가 된다.
그리하여 우리의 눈앞에 드러난 모든 물상은 불성(佛性)을 반영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다.
그래서 그 형체와 대소(大小), 장단(長短), 미추(美醜)의 분별이 사라져 천지사방에서 부처님의 불법(佛法)을 듣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야보 스님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데 부처님이 어디에 따로 계신단 말인가?’라고 반문했고, 성철 스님은 그 앞 구절을 인용하여 법당 안에서만 부처님을 찾는 불자들의 어리석음을 꾸짖으신 것이 아닌가 한다.
이를 정반합(正反合)의 원리로 다시 요약해 보면, 1단계는 부분 긍정(正)의 세계 -산이 산으로만 보이고 물이 물로만 보이는 분별의 세계. 2단계는 부정(反)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결코 물만이 아닌 세계. 3단계는 전체 긍정(合) -다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 되는 세계다.
그러나 고정된 실체로서의 산과 물이 아니라 결국에는 모두 공성(空性)으로 되돌아 갈 임시적ㆍ가변적 존재로서 놓여 있는 산과 물인 셈이다.
수행, 空의 세계 깨닫는 과정
그러고 보면 수행이라고 하는 것도 결국에는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색(色)을 통해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는 공(空)의 세계를 깨달아 가는 과정이요, 현상에서 벗어나 본질을 꿰뚫어 가는 과정, 번뇌 망상의 무명(無明)에서 밝고 고요한 니르바나의 세계를 찾아가는 과정의 길이 아닌가 한다.
참으로 소중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는다.
그러나 밝은 마음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 그것들은 보이고 들린다.
수증기와 콩가루의 미립자는 보이지 않는 공(空)이지만, 수증기가 다시 하늘로 올라 구름이 되고 비가 되고 물이 되어 갖가지 형상(色)으로 우리의 눈앞에서 어른거리고 있다.
그러나 물과 수증기, 그리고 콩(色)과 콩가루(空)를 누가 다르다 하겠는가? 그래서 산이나 물이나 결국엔 일시적으로 서 있는 산이요 물일뿐이라는 의미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법문이 성립된 게 아닌가 한다.
未悟、初悟、徹悟
‘선시(禪詩)’가 일반 순수문학의 시가(詩歌)와는 다소 다른 점은 문자의 화려함이나 기술적 노련미에 달려있지 않고, 그 담겨진 내용(內蘊)의 진위성(眞僞性)에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시경(詩境)이‘깨달음’이라는 특수영역으로 진리의 본질인 불성(佛性)에 대한 철저한 앎(知)이 없이는 그 명칭을 얻기 힘들다. 때문에, 선시를 감상하려면 “본래면목”의 내함(內涵)에 대한 체험이나 탐토(探討)가 선행되어야 한다.
예컨대, 청원유신(靑原惟信)선사는 견산견수(見山見水)의 3단계」법문으로서, 실수(實修)를 통한 깨달음을 말하였는데
1) 이 늙은이가 30년 전 참선수행을 아직 시작치 않았을 때,‘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었을 뿐’이었으나,
2) 그 뒤에 이르러서 선지식을 친견하고 입처(入處)가 있었는데, ‘산은 산이 아니었고 물은 물이 아니었다.’
3) 하지만, 오늘 크게 쉬고 보니, 예같이 ‘산은 단지 산일뿐이고 물은 물일뿐이다.’(『五燈』卷 17「惟信」)
이 3단계의 게시揭示는“未悟、初悟、徹悟”로 “참선하기 전의 견해”, “참선을 시작한 뒤 얼마간의 깨달음이 있었을 때의 견해”와 “완전히 깨닫고 난 뒤의 견해”로 구별하여 말할 수 있다고 한다.
제1단계에서 유신선사는 산과 물을 분명하게 구분하였는데, 산은 물이 아니며 물은 산이 아닐 뿐만 아니라,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는 긍정성인 경계. 제2단계는 구별성도 없을 뿐만 아니라 긍정성도 없는 오직 부정성인 경계. 제 3단계는 구별성과 긍정성이 함께 있는 경계다.
제1단계 가운데는“주관과 객관의 이원성(二元性)이 존재한다. 산과 물 및, 우리들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사물과 구별관계가 있을 때, 자신은 사물과 구별을 시도한다. 이 가운데, ‘나(我)’는 구별을 낳는 문[基礎]으로,‘나’를 만물의 중심에 놓는다.” 이 때의‘나’란‘自我’로서, 깨침의 본질인‘眞我’가 아니다. 이 단계에서 비록‘眞我’는 체달치 못했지만,‘자아’에서‘無我’로의 비약과 동시에 제 2단계에 진입한다. 이 때,“어떠한 분별도、어떤 객체화작용도、어떤 긍정성과 주객체의 이원적 대립이 존재하지 않는‘皆空’이 된다.”하지만, 이“皆空”은 분별에 대한 부정인‘무분별’을 뜻하는 것으로, 전과 다름없이 일종의 차별 가운데 떨어져 있다. …… 여기서 분별의 부정성인 무분별의 관념을 다시 철저히 부정함으로서 제 3단계에 도달하게 된다. 끝으로 제 3단계에 이르렀을 때, 완전히 새로운 분별형식을 띠는데, 이는 끊임없는‘自我’부정을 통한 무분별의 층마저 극복된 ‘眞我’의 분별경계로,“산이란 산일뿐이며, 물은 물일 따름이다.” 이 3단계에서의 산과 물(見山只是山, 見水只是水)은 그 총체성과 개체성 상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어 보이는데, 이 때의‘산과 물’이란 우리들의 주관적 입장에서 보이는 객체가 더 이상 될 수 없다.
그래서 원안(元安. 834~898. 唐나라 때 스님)은 “고향집에서 어리석음만은 면할 수 있었네.”라고 “청원유신의 제 3단계”를 노래했다.
決志歸鄕去(결지귀향거), 고향에 꼭 돌아가겠다고 결심하고서,
乘船渡五湖(승선도오호). 배에 올라 방방곡곡을 다닌 것 같다.
擧篙星月隱(거고성월은), 삿대를 의지해 달빛 머리 위에 이고,
별빛을 받으면서 밤길을 재촉하다가,
停棹日輪孤(정도일륜고). 아! 홀로 떠오른 밝은 해를 보고서야
비로소 노 젓기를 멈추었다네.
解纜離邪岸(해람리사안), 닻줄 풀어 사견의 언덕을 벗어났고,
張帆出正途(장범출정도). 돛을 펼쳐 정견의 길로 나아갔다네.
到來家蕩盡(도래가탕진), 고향집엔 원래 무엇 하나 있지도 않았건만,
免作屋中愚(면작옥중우). 때마침 고향집에서 어리석음만은 벗을 수 있었네.
마음이 청정하면 세상도 청정해진다는 심청정 국토청정(心淸淨 國土淸淨)의 말씀은 반대로 마음이 어지러우면 자연과 생명도 오염된다는 말씀이다. 오늘날 환경, 생명 위기는 결국 인간 정신의 오염이 자연에 투영된 것이다. 돈만을 벌려고 하니, 비료, 농약, 제초제, 착색제, 발색제 등 온갖 첨가물과 유해한 화학약품으로 농산물과 식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생명과 자연, 환경을 실제 그 자체로 보지 않는 것이다.
건설업자들은 아름다운 산과 계곡을 보면 그냥 즐기는 것이 아니라 돈벌이를 위한 대상으로 보일 뿐이다. 사진출처 : PhotoMIX Company
건설업자들은 아름다운 산과 계곡을 보면 그냥 즐기는 것이 아니라 돈벌이를 위한 대상으로 보일 뿐이다.
도로와 다리, 터널을 많이 뚫어야 건설해야 돈을 버는 토건업자는 끊임없이 도로 건설과 개발의 논리를 만들도록 정치인과 학자, 언론인들을 매수한다. 건설업자들은 아름다운 산과 계곡을 보면 그냥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 어떻게 개발하여 리조트와 케이블카, 관광시설을 지어 돈을 벌까를 궁리한다. 강을 보면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수변개발과 4대강 토목건설을 통해 토건의 이익을 생각한다. 그들에겐 산이 그냥 산으로 보이지 않는다. 물을 그냥 물로 보이지 않는다. 산과 강은 돈벌이를 위한 대상으로 보일 뿐이다. 사람을 인격체로서의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내 이익의 대상으로만 생각한다. 집을 사람이 사는 집으로 보지 않고 투기의 대상으로 본다. 모든 것이 돈이고 상품이다. 산을 산으로 봐야 한다. 강을 강으로 봐야 하고 사람을 사람으로 봐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산은 산이 아니다. 물은 물이 아니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 보자, 산에는 흙과 바위뿐 아니라 수많은 나무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수십수억 마리의 풀벌레들도 살고 있으며 헤아릴 수 없는 짐승들과 새들이 살고 있는 터전이다. 산은 그냥 흙들의 집합이나 바윗덩어리가 아니다. 등산을 갈 때 산 위에 올라가 밑의 산맥들을 보라. 비가 내리면 수많은 풀과 나무들이 환희의 노래를 부르며 피어오르고 살아 꿈틀거리며 하루가 다르게 하늘로 자라며 새파란 입을 파랗게 물들이며 올라오는 장면을 보면 정말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산은 산이 아닌 것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또한 물은 물이 아닌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뿐 아니다. 산은 인간이 살아오면서 쌓인 수많은 문화와 역사가 있는 곳이다. 산은 역사 이래 수 많은 선사들의 깨달음을 이루었던 곳이며, 그 많은 사찰에서 스님들과 불자들이 수행했던 곳이다. 신라와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수탈과 탄압을 피하거나 맞서기 위해 민중들이 찾아든 곳이 산이었다.
산과 물은 수많은 짐승과 물고기들의 생명의 터전이며, 인간들의 정신과 문화의 근원이다. 흙 한 줌 작은 돌맹이와 바위 하나 모두 수천 년의 역사 두께를 간직하고 있는 엄청난 것을 어찌 함부로 파헤치고 개발할 수 있겠는가.
항상 발우공양을 할 때 〈정식게〉 〈오관일적수 팔만사천충 약불염차주 여식중생육(吾觀一滴水八萬四千蟲 若不念此呪 如食衆生肉)〉를 염송한다. “물 한 방울을 살펴봐도 팔만 사천 마리의 벌레들이 살고 있구나. 내가 이 주문을 외지 않고 먹는다면 얼마나 많은 중생을 먹게 되는 것인가”란 뜻이다. 물과 밥 속에 들어있는 수많은 박테리아. 미생물, 세균 등의 생명까지 헤아리고 살피는 경지이다. 그래서 이들 생명인 공양물을 어쩔 수 없이 먹지만, 맛에 탐닉해서 먹는 게 아니라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약으로 먹으며, 악을 끊고 선을 행하여 부처를 이루겠다는 발원의 가르침은 정말 충격적인 감동이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물이 화학기호인 순수한 H2O만 되어 있을까? 과연 자연계의 물은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순수한 물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러한 물은 실험실에서 만든 물일 뿐이다. 자연계에는 아무리 깨끗한 물이라도 그 속에는 수많은 박테리아와 세균, 플랑크톤과 미생물과 미네랄 등, 각종 화학물질도 포함되어 있다. 좋은 물맛을 결정하고 몸에도 좋은 것이다. 계곡이나 냇물, 강물에는 당연히도 물만 있는 게 아니라 물고기와 물벌레, 물풀 등이 함께 살고 있는 생태계이다. 이들 물은 물 아닌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다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산은 수많은 산 아닌 것들의 연기적 관계 속에 만들어진 존재이며, 물도 물이 아닌 것들로 만들어진 존재이다. 따지고 보면 어느 존재 하나 그렇지 않은 것이 있던가? 나라는 존재 또한 나 아닌 것으로 구성되어있으며, 나라고 할 것이 없는 존재이다. 내 이름은 내 고유의 이름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위해 방편적으로 만들어진 명칭일 뿐이다. 의자는 의자라고 명칭을 붙였을 뿐 다른 곳에서는 체어(Chair)라거나, 이수(いす)라고 부르는 존재이다. 명칭은 그저 그것의 이름일 뿐 본질은 아닌 것이다. 본질은 결국 어떤 이름을 부르든 관계없이 거기 그렇게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산은 산 아닌 것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름하여 산이라고 부른 것이다. 설령 ‘바다’라고 부른다고 해도 실제는 변함없다. 그러나 우리는 명칭이라는 방편에 내둘린다. 산이라는 고정된 이미지, 바다라는 고정된 이미지에 갇혀 있게 되면서 어리석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산은 이름하여 그냥 ‘산’이라고 붙여도 물을 그냥 ‘물’이라고 이름을 붙여도 상관없지 않은가? 우리는 이름과 방편에 속고 끄달려 진실의 실제가 거기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국 방편에 매여 담마를 보지 못하고 어리석은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환경과 생명의 가르침은 바로 그 실체를 보는 안목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성철 스님의 저서로 인해 유명해진 깊고 명쾌한 말씀이다. 시중에서는 그 뜻도 잘 모르면서 좀 있어 보이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자주 인용하곤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지 그럼, 산이 물이고 물이 산이겠냐”며 “비싼 밥 먹고 하나마나한 별 실없는 소릴 한다”고 할 것이다.
이 말씀은 원래 옛 경서에 나오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에서 마지막 단계의 산과 물을 말씀한 것이다. 세 단계로 이뤄진 이 말씀은 진리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첫 단계는 깨달음이 일어나기 전, 일반 중생의 견해로 보는 세상의 모습이다. 세상 사람들 거의 다 이 수준에서 일생을 살다 간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며, 이것은 이것이고 저것은 저것이며, 너는 너고 나는 나며, 모든 것이 다 분리된 개별적 존재로 여기며 상대적인 세상만 보고 산다. 자기의 근원에 대해서는 의문도 관심도 노력도 없이 평생 가련하게 허상만을 위하다 간다. 위에서 별 실없는 소리라고 말했던 이들이 사는 전도몽상의 세상이다.
일체가 진리 아님이 없고
진리의 나타남 아님이 없으니
저 산도 물도 더할 나위 없이
온전하며 너 또한 그러하다.
깨달음이란 이런 일상적 인식, 세상만사를 육안으로만 보는 시각에 제동을 걸면서 시작된다. 어라, 산이 산이 아니고 물도 물이 아니며, 내가 알던 내가 진정한 내가 아니네! 이걸 확 깨닫는 것이 견성의 첫 단계다. 일체가 하나로 텅 비어 너와 나, 산과 물이 하나임이 훤해진다. 일체가 텅 빈 하나 자리, 우주 만물이 이름은 다르나 둘이 아닌 자리를 안다. 산이 공 하여 따로 분리된 산이 없고, 물 역시 공 하므로 따로 분리된 물이 없으며 일체만물이 또한 그러함을 꿰뚫은 상태다. 전 우주에 따로 분리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우주가 통으로 텅 빈 불생불멸한 진리를 본 단계다. 일체가 텅 빈 진공의 경지를 정확히 봐야 비로소 견성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성철 스님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인 경지는 진공이 드러내는 묘유의 모습, 정확하게 인과보응하는 세계를 말씀한 것이다. 이때의 산과 물은 진리를 떠나지 않은 채 온전히 드러나 있는 진리의 위대한 작용임을 본 것이다. 우주 만물이 작용하는 대로 정확히 드러나는 인과의 세계를 손바닥 안의 구슬같이 훤히 들여다본 경지다. 진리는 산과 물, 나와 너, 우주 만유를 통하여 무시광겁에 은현자재함을 깨친 단계다.
진리는 진공의 측면과 묘유의 측면이 같이 있음을 봐야 참 깨달음인데, 텅 빈자리만 관하다 공 자리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일체가 다 텅 비었으니 옳고 그른 것이 어딨냐며, 인과도 없고 아무렇게나 막 살아도 상관없다며 이걸 무애행이랍시고 행세하는 괴짜도 간혹 있다. 혹은 이 ‘나는 내가 아니며 텅 비었다’는 말만 듣고 내가 없어지면 허망해 어떡하냐며, 깨칠 생각은 않고 지레 겁부터 집어 먹어 도망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저러나 일단 한번 잡숴보고 말을 하시라. 알아야 면장을 한다고, 알아야 수행도 하고 성불도 하고 신앙도 하고 일체 괴로움을 벗어나 자유도 얻을 것 아닌가.
깨친 이들이 물 긷고 나무 운반하는 일체 육근 동작은 자성을 떠나지 않은 신통묘용의 수행이며, 일반인들의 노동과 겉보기엔 똑같아도 천양지차 불가사량이다. 일체가 진리 아님이 없고 진리의 나타남 아님이 없으니 저 산도 물도 더할 나위 없이 온전하며 너 또한 그러하다. 실상을 보지 못하고 머리로만 진리를 이해하는 이들이 어찌 감히 상상이나 할 경지겠는가!
“‘산은 산, 물은 물[山是山 水是水]’은 진공묘유(眞空妙有)를 일컬음이었고, 그 안에는 중도사상의 진수가 들어있었다. ‘산과 산, 물과 물이 각각 뚜렷하다는 것은, 깨끗한 거울 가운데 붉은 것이 있으면 붉은 것이 그대로 비치고 푸른 것이 있으면 푸른 것이 그대로 비치고, 산을 비추면 산이 그대로 비치고 물을 비추면 물이 그대로 비치어서 조금도 착오 없이 바로 비치는 것을 말합니다.’”
성철의 글이 생애 처음으로 신문(‘불교신문’ 12월 21일자 창간호, 12월 28일자 제2호)에 실렸다. ‘한국불교의 전통과 전망’이란 제목의 ‘불교중흥을 위한 제언’이었다. 직접 작성한 것은 아니고 조계종 기획위원들이 백련암을 찾아가 면담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었다. 위기의 한국 불교가 다시 살아날 길을 물었고, 이에 성철이 답한 것이었다. 10·27법난이 있은 지 거의 두 달 만이었다. 아마 종정이란 고깔을 쓰기로 하고 종단의 기획위원들과 만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철은 종단 혁신의 요체는 승려자질 향상을 위한 교육이라고 역설했다. ‘절집 지붕 기왓장을 팔아서라도 공부시켜야 한다’는 평소의 소신을 다시 피력했다. 승려가 중생을 교화하는 민중의 지도자가 되려면 전문적인 불교지식과 수행력을 겸비해야 했다. 이에 승려가 되는 문턱을 높여 교육과 수도를 엄격히 시키자고 제안했다. 성철은 종단의 안이 허약하니 밖에서 불교를 하찮게 본다며 중노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철저히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산중에서 또는 포교당에서 목탁이나 치고 앉아 잿밥 싸움이나 하는 식의 불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승가대학의 교육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철저한 신행 교육이 되도록 해야 한다. 철저한 신행교육이 없으면 속인이 되고 만다. 예를 들자면 일제강점기에 각 사찰에서 일본 유학을 200명 가량 시켰는데 졸업 후에는 모두 대처를 하고 말았다. 노스님들께서는 대학이 내 상좌 다 잡아먹었다고 대학이 원수다 하고 한탄하셨다 한다. 또 동국대 종비생교육도 비슷한 현상이라고 한다. 이것은 지식만 가르치고 중노릇(신행교육)을 철저히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흐트러진 승풍을 바로잡기 위해 성철은 지식보다 수행을 더 강조하고 있다. 또 승가대학 및 총림의 설립과 운영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도 이와 별도로 한국불교의 은사제도를 개선하라는 항목이 눈에 띈다. 글의 흐름에는 다소 동떨어졌음에도 이를 중간에 삽입하여 강조한 것은 파벌싸움으로 척박해진 종단의 현실을 직시했다고 보여진다.
“은사제도- 문중 파벌 등 폐습과 세속적인 정(情)에 매달리는 등 병폐가 많기 때문에 은사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좋으나 현실적으로 어려울 경우에는 상좌는 승가대학 졸업당시 전국적으로 은사될만한 스님의 명단을 작성하여 배정하는 식으로 한다.”
사실 한국불교의 가장 큰 병폐는 승려들이 같은 문(門) 아래 똘똘 뭉쳐 세력화함이었다. 스승은 법 위에 있었다. 자신들의 스승은 높임을 받아야 하고, 그래야 자신들도 높아진다고 여겼다. 결국 다툼의 뿌리에 문중이 있었다. 성철은 그런 폐단을 고쳐보려 했다. 성철이 자신의 제자들에게 큰절의 요직을 맡지 말라 이른 것도 이런 세력화를 경계했기 때문일 것이다.
성철은 또 투명하고도 공정한 ‘중앙 통제’의 재정 집행을 주장했다. 국가의 수입을 국고로 관리하듯, 또 가톨릭의 경우 성당의 전 수입을 중앙에서 관리하듯 불교도 모든 수입을 중앙에서 투명하게 거두어 나누자고 촉구했다. 도대체 중이 왜 돈을 관리해서 자신의 사찰에 근심덩어리를 쌓아놓느냐는 일갈이었다.
“돈 많은 절 주지 등 몇몇이 나누어 먹는 식으로 하면 불평불만이 생기고 서로 좋은 절의 주지를 하려는 암투가 없어지지 않는다. 공부하고 포교할 생각은 없고 주지 될 생각만 하게 된다. 결국 사찰재산과 수입의 개인적 분산 관리의 현 체제가 승려들의 비행, 부정, 암투의 원흉이요 원동력이다. 그러므로 승려의 비행을 근본적으로 막고 사찰수입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불교중흥을 이루도록 제도적 개혁을 해야 한다.”
성철은 그러면서 먼 앞날을 내다보고 사심 없이 일대혁신을 하자고 촉구했다. 적당히 현상유지나 한다면 결국 종단은 망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글을 맺었다. 그렇다면 그 후 문중 파벌싸움은 줄었는가? 재정의 중앙 통제는 투명하게 이뤄지고 있는가? 조계종단은 흥했는가, 망했는가? 10·27 법난을 지켜본 부처님들이, 산천초목들이 묻고 있다.
조계종 종정 성철은 백련암에서 취임 법어만을 내려 보냈다. 그 법어는 단번에 세상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원각(圓覺)이 보조(普照)하니 적(寂)과 멸(滅)이 둘이 아니라
보이는 만물은 관음(觀音)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妙音)이라
보고 듣는 이 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아,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알겠는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구절은 삽시간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알 듯 하면서도 모르겠고, 쉬운 듯 어려웠다. ‘산은 산 물은 물’은 여러 가지 의미로 확대 재생산되었다. 어찌 보면 쿠데타와 하극상으로 정권을 찬탈한 무리를 향해 던진 돌팔매처럼 보였다.
“불교의 심오한 진리를 말함과 동시에 당시 전두환 정권을 향해 ‘진실은 속일 수 없는 법이니 참회하고 반성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박경준 동국대 교수)
또 시대정신을 잃어버린 세태를 꼬집는 은유이고, 근본을 잃어버린 사회에 대한 조롱이기도 했다. 또 언젠가는 상식이 승리하는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사필귀정의 희망이기도 했다.
‘산은 산, 물은 물[山是山 水是水]’은 진공묘유(眞空妙有)를 일컬음이었고, 그 안에는 중도사상의 진수가 들어있었다.
“산과 산, 물과 물이 각각 뚜렷하다는 것은, 깨끗한 거울 가운데 붉은 것이 있으면 붉은 것이 그대로 비치고 푸른 것이 있으면 푸른 것이 그대로 비치고, 산을 비추면 산이 그대로 비치고 물을 비추면 물이 그대로 비치어서 조금도 착오 없이 바로 비치는 것을 말합니다.”
성철은 ‘백일법문’에서 “체(體)에서 볼 때는 ‘볼 수 없다’고 하는 것이며 용(用)에서 볼 때는 ‘분명하고 밝게 볼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니, 전자는 정(定)을 말하며 쌍차(雙遮)를 가리킨 것이고 후자는 혜(慧)를 말하며 쌍조(雙照)를 가리킨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그러니 곧 한번 크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大死却活] 바로 비치는 것을 분명하고 밝게 보자는 말이었다. 눈을 뜨고 보면 자기가 천지개벽 전부터 이미 성불했으니 결국 자신의 본성을 보라는 것이었다. 마음의 눈을 바로 뜨고 그 실상을 바로 보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었다. 진리의 혜안을 지닌 자만이 사물의 핵심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으니 마음을 깨쳐 세상을 바로 보면 만물이 관음이었다. 우리의 실상을 바로 보면 우리 사는 지상이 곧 극락이니 행복을 다른 데서 구할 일이 아니었다. 결국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바로 보라는 가르침이었다. 이는 한국 불교계에는 경종이었고, 사바대중에게는 희망이었다.
세간의 이목이 백련암에 집중됐다. 장좌불와와 10년 동구불출 이야기가 퍼지고 성철의 행적이 신비롭게 포장되어 더러는 부풀려진 채 유통되었다.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하지만 그런 취재요청에 응할 성철이 아니었다. 그러자 성철을 만나지도 않은 채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언론사 사이에 일대 취재경쟁이 벌어졌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온갖 연을 동원했다. 성철을 친견한 인터뷰는 어느 특종 못지않게 시선을 끌었다.
기자들의 성화에 제자들만 죽을 지경이었다. 저마다 말씀 한 마디만 듣겠다고 지극정성이었다. 무작정 기자들을 따돌리기도 미안했다. 원택과 원영은 한 가지 꾀를 냈다. 묘책은 아니지만 궁여지책으로는 그럴듯했다.
“법문집을 만들기 위해 정리해둔 원고 중에서 일부를 발췌해 주자.”
한 시간 분량의 법문 원고를 기자에게 내줬다. 그리고 그 원고는 주간지에 ‘성철 종정 최초 법문 공개’라는 제목으로 크게 보도됐다. 그러자 절집에 일대 회오리가 일었다. 전국 사찰에서 주지들의 항의 전화가 해인사로, 백련암으로 빗발쳤다. 요지는 성철의 법문이 승려들의 밥통을 깨버렸고 나아가 승려들의 위상을 실추시켰다는 것이다. 종정이면 종정답게 승려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해야지 당신만 잘났다고 하면 어찌 되냐고 대들었다. 성철의 제자들도 욕을 먹어야 했다. 법문은 이렇다.
“어떤 도적놈이 나의 가사장삼을 빌어 입고 부처님을 팔아 자꾸 여러 가지 죄만 짓는가? 누구든지 머리 깎고 가사와 장삼을 빌어 입고 승려의 탈을 쓰고 부처님을 팔아서 먹고사는 사람을 부처님께서는 모두 도적놈이라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승려가 되어 가사와 장삼을 입고 도를 닦아 도를 깨쳐서 중생을 제도하지는 않고 부처님을 팔아 자기의 생계 수단으로 삼는 사람은 부처님의 제자도 아니요, 승려도 아니요, 다 도적놈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승려가 되어 절에서 살면서 부처님의 말씀 그대로를 실행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부처님 가까이는 가봐야 할 것입니다. 설사 그렇게 못 한다 하더라도 부처님 말씀의 정반대 방향으로는 가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나는 자주 ‘사람 몸 얻기 어렵고, 불법 만나기 어렵다[人身難得 佛法難逢]’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다행히 사람 몸 받고 승려까지 되었으니 여기서 불법을 성취하여 중생 제도는 못할지언정 도적놈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만약 부처님을 팔아서 먹고사는 그 사람을 도적이라 한다면 그런 사람이 사는 처소는 무엇이라 해야겠습니까. 그것은 절이 아니라 도적의 소굴, 적굴(賊窟)입니다. 그러면 부처님이 도적에게 팔려있으니 도적의 앞잡이가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