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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9일 주일
[(자) 사순 제1주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이 주일에는 파스카 성야에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들을 받을 예비 신자들을 위한 ‘선발 예식’ 또는 ‘이름 등록 예식’을 거행한다. 이 예식에서는 고유 기도문을 사용한다.>
오늘은 사순 제1주일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 사막에서 부르짖는 교회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전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말씀의 빵으로 우리를 길러 주시고, 성령의 힘으로 감싸 주십니다. 우리가 절제와 기도로 끈질긴 악의 유혹을 이기게 해 주시기를 청합시다.
말씀의 초대
모세는 백성에게, 주님께서 주신 땅에서 주신 수확의 맏물을 바치며, 주 하느님께 경배드려야 한다고 말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광야로 가시어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신다(복음).
제1독서
<선택받은 백성의 신앙 고백>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26,4-10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4 “사제가 너희 손에서 광주리를 받아
그것을 주 너희 하느님의 제단 앞에 놓으면,
5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 앞에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저희 조상은 떠돌아다니는 아람인이었습니다.
그는 몇 안 되는 사람들과 이집트로 내려가 이방인으로 살다가,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수가 많은 민족이 되었습니다.
6 그러자 이집트인들이 저희를 학대하고 괴롭히며
저희에게 심한 노역을 시켰습니다.
7 그래서 저희가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께 부르짖자,
주님께서는 저희의 소리를 들으시고,
저희의 고통과 불행, 그리고 저희가 억압당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8 주님께서는 강한 손과 뻗은 팔로,
큰 공포와 표징과 기적으로 저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9 그리고 저희를 이곳으로 데리고 오시어 저희에게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습니다.
10 주님, 그래서 이제 저희가
주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땅에서 거둔 수확의 맏물을 가져왔습니다.’
그런 다음에 너희는 그것을 주 너희 하느님 앞에 놓고,
주 너희 하느님께 경배드려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그리스도 신자의 신앙 고백>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0,8-13
형제 여러분, 성경에서 8 의로움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 말씀은 너희에게 가까이 있다. 너희 입과 너희 마음에 있다.”
이것이 우리가 선포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9 그대가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1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12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유혹을 받으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1-13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가득 차 요르단 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2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 그 기간이 끝났을 때에 시장하셨다.
3 그런데 악마가 그분께,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5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가서
한순간에 세계의 모든 나라를 보여 주며, 6 그분께 말하였다.
“내가 저 나라들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
내가 받은 것이니 내가 원하는 이에게 주는 것이오.
7 당신이 내 앞에 경배하면 모두 당신 차지가 될 것이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9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에서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10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너를 보호하라고 명령하시리라.’
11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12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하신 말씀이
성경에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13 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십니다. 이끌려 갔다는 말은 의지 없이 움직였다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에는 예수님께서 단순히 수동적으로 끌려가신 것만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능동적으로 맡기셨다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한편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준비하시는 마지막 단계까지 유혹을 받으셨다는 사실도 특별히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 유혹에 넘어가시지 않자 악마는 “다음 기회를 노리며”(루카 4,13) 떠나갑니다. 이때 ‘다음 기회’로 옮긴 그리스 말 ‘카이로스’는 약속된 구체적인 순간들을 가리킵니다.
악마(사탄)들이 말한 ‘다음 기회’는 예수님께서 수난을 겪으시는 순간(22,3.53 참조)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모습에서 사순 시기를 지내는 지혜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유혹하였던 악마가 다시 돌아올 것임을 아시고 자주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하느님 앞에 머무셨습니다. 이러한 머무름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신다는 것을 온전히 신뢰하시고, 유혹에 적극 맞서신 것입니다. 사순 시기 동안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유혹들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하느님 앞에 머무는 시간이 더욱 필요합니다. 유혹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과 함께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자주 떠올리는 사순 시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한창현 모세 신부)
우리는 나약하지만, 아버지와 연결된 끈으로 인해 강건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젊은 시절, 심각한 스트레스성 위염으로 참다 참다, 이러다 죽겠구나 싶어,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꼬박 일주일간 링거주사에만 의지한 채 단식을 했습니다. 담당 간호사님은 매정하게도 제 침대 앞쪽에 ‘절대 금식’ 이란 팻말을 달아놓았습니다. 그리고 매서운 눈초리로 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이틀간은 그런대로 견딜 만했습니다만 사흘이 지나면서 정말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매끼 식사 시간은 제게 그야말로 지옥이었습니다. 옆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분이 병원 밥투정을 하면서 딱 한 숟가락만 뜬 식판을 물리며 ‘그냥 내어가라’ 할 때, 저도 모르게 제 입에서는 ‘저런 저런!’ 하는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배가 출출해지는 9시 뉴스 시간 때마다 통닭이다, 족발이다, 몰래 야식을 즐기는 날라리 환자들이 얼마나 얄미웠는지 모릅니다. 어찌 그리도 야속한 사람들이 다 있던지요. ‘절대 금식’이란 표시판 때문인지 한번 먹어보라 소리도 하지 않았습니다.
인간 생리 구조상 하루 세 끼 식사는 지극히 기본적인 것입니다. 단식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가장 기본적 욕구인 식욕에 통제를 가함으로써 목표하는 특정 의미를 추구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다이어트나 건강진단, 질병 치료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단식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단식은 하나의 목적성을 지닙니다. 사순시기 동안 그리스도 신자들은 작은 몸짓이지만 단식을 통해서 예수님 수난에 상징적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40일간 단식해 오신 예수님께서 악마로부터 유혹받으시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신성을 지니신 하느님이기도 하셨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와 똑같은 육체 조건을 지니셨던 인간이셨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고통과 배고픔을 똑같이 겪으셨던 참 인간이셨습니다.
휴가지에서 40일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겠지만, 단식하면서 보내는 40일은 정말 지옥 같은 나날입니다. 허기가 져서 거의 탈진상태에 도달한 예수님 앞에 악마가 나타납니다. 갖은 감언이설과 달콤한 유혹 거리를 미끼로 내세우며 예수님을 현혹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유혹들을 의연히 이겨내십니다. 허탈해진 악마는 힘을 잃고 떠나갑니다.
예수님께서 악마의 유혹 앞에 끝까지 굴하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 묵상해봅니다. 아버지께 대한 항구한 충실성과 철저한 순명, 아버지를 향한 지속적 신뢰와 끊임없는 자아 포기, 그 결과가 유혹의 극복이란 결실을 가져왔으리라 저는 믿습니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아버지와 연결된 끈을 끝까지 놓지 않음으로 인해 우리는 강합니다. 우리는 나약하지만 아버지 현존 안에 뿌리내림으로 인해 우리는 강합니다. 세상 유혹 앞에 설 때마다 예수께서도 유혹을 받으셨음을 기억합시다. 아버지께 대한 간절한 기도를 통해 그 모든 유혹들을 물리치셨음을 기억합시다.
우리가 막 걷기 시작한 사순절이라는 광야 여정 중에 악마로부터 받는 유혹도 많겠지만, 그 여정이 든든하신 우리 주님께서 언제나 동행하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는 3년간의 공생활이라는 큰일을 앞두고 홀로 광야로 들어가셔서 40일간의 긴 단식침묵 개인 피정을 실시하셨습니다. 피정기간동안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진정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어디 있는지 헤아리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예수님 당신을 통해 이루어지도록 간절히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빵과 권력과 재물이라는 악마의 유혹으로부터 용감히 맞서 싸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피정을 보면 우리의 사순절이 어떠해야 하는지 즉시 답이 나오는군요.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무질서한 애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광야는 ‘이것’ 하나 찾는 장소이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사순은 주님 앞에 서기 위해 우리 안에 합당하지 않은 무언가를 제거하는 시간입니다. 그 무언가가 무엇일까요? 헤라클레스 신화로 시작해보겠습니다.
헤라클레스는 올림포스의 주신 제우스와 뛰어난 미모와 지혜를 지닌 인간 여성알크메네 사이에서 태어난 반신반인의 영웅입니다. 제우스의 정실 아내 헤라는 제우스의 여러 외도로 태어난 자식들을 매우 싫어했는데, 헤라클레스의 경우에도 특별히 더 큰 분노를 보였습니다. 제우스는 헤라클레스를 신으로 만들기 위해 헤라에게 젖을 물렸습니다. 그런데 빠는 힘이 너무 세서 억지로 떼어내야 했습니다. 그때 분출한 젖이 은하수가 되었다고 합니다. 분노한 헤라는 헤라클레스를 인간 세상으로 보내어 인간으로 살게 만들어버립니다.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한 헤라는 헤라클레스에게 광기를 불어넣어, 그가 아내 메가라와 자녀들을 자기 손으로 죽이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사건은 헤라클레스 자신에게 지울 수 없는 죄책감을 안겼습니다. 그는 이에 대한 속죄를 결심하고, 델포이 신탁을 찾아가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지 물어보게 됩니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유명한 ‘12가지 과업(노역)’이었습니다. 이 열 두 가지 과업을 모두 완수함으로써 헤라클레스는 죄를 씻고 신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12가지 사명을 완수하는 중에 머리가 여러 개인 괴물 히드라도 쳐부숩니다. 헤라클레스는 조카인 이올라오스의 도움을 받아 히드라의 목을 자른 뒤 불로 지져 재생을 막는 전략으로 괴물을 무찔렀고, 히드라의 독을 얻어 화살에 바름으로써 강력한 무기를 확보했습니다.
12가지 노역을 마친 뒤에도 헤라클레스는 신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다양한 영웅적 모험을 이어갔습니다. 아내 데이아네이라는 켄타우로스 네소스의 계략 때문에 헤라클레스를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네소스는 헤라클레스에 의해 죽어가면서 히드라의 피가 사랑을 영속시키는 ‘묘약’이라고 말해줍니다. 데이아네이라가 ‘사랑의 묘약’이라고 여겨 헤라클레스의 옷에 바른 독이 그의 살갗에 닿아 끔찍한 고통을 일으켰고 회복이 불가능하게 되자, 헤라클레스는 스스로 장작더미 위에 오릅니다. 떠밀리는 죽음이 아닌 산 채로 자신을 화장시키는 능동적 죽음을 택한 것입니다.
헤라클레스가 불길에 몸을 던지자, 제우스는 그의 영혼을 올림포스로 데려가 오랜 고통에서 해방했습니다. 이로써 헤라클레스는 신들 사이에 올라 불멸의 존재가 되었으며, 그를 괴롭히던 헤라 또한 그를 올림포스의 정당한 신으로 맞이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도의 삶을 상징하기도 하고 우리가 어떻게 신이 될 수 있는지도 알려줍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주신 ‘사명’을 수행함으로써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야곱이 에사우에게 다가서기 위해 자신이 평생 해 온 사명의 완수만으로 충분했을까요? 그렇지 못했습니다. ‘겸손’을 회복했어야 합니다. 그래서 천사와 밤새 씨름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자기 교만을 태우는 시간이었습니다.
결국 야곱은 발을 절뚝일 수밖에 없었고 에사우 앞에서 일곱 번이나 엎어져 “당신 얼굴을 보는 것이 하느님 얼굴을 뵙는 것과 같습니다.”라며 그를 경배합니다. 이에 선물 때문이 아닌 그의 겸손함을 보고 에사우는 야곱을 자신의 땅에 받아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사명을 수행하기 전에 광야에서 세 유혹과 싸우기 위해 단식하며 기도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느님의 자비를 얻기 위함입니다. 자신을 불 속에 던지는 것입니다. 성령의 불이 예수님을 인간성인 세속-육신-마귀를 태워버립니다. 결국 광야의 사순절은 우리가 기도-자선-단식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를 바라기 위해 겸손해지는 목적으로 행하는 인간이 신이 되는 과정입니다.
저도 신학교에서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라고 하실 때 단식하고 있었습니다. 단식을 하는 이유는 그것 자체가 좋아서가 아닙니다. 제가 6끼를 굶고 느낀 것은 ‘이틀 굶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제가 뭐 대단하다고 예수님께 무언가를 해드린다고 착각했을까요? 배불렀기 때문입니다.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나의 뜻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하게 되고 자선을 통해 나는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며 단식을 통해 하느님께서 양식을 주시지 않으면 나는 아무 존재도 될 수 없음을 아는 것입니다. 성령의 불속에서 유일하게 남는 이 ‘겸손’을 찾는 일이 사순의 의미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재의 수요일에 많은 분이 재의 예식에 참례하였습니다. 이마에 바른 십자 표시의 재를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는 ‘백신’ 같다는 생각입니다. 이마에 표시가 돼 있기에 악의 세력이 가까이 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약에 이런 비슷한 표시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집 앞에는 양의 피를 발랐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양의 피가 있는 집은 건너가셨습니다. 이마에 재가 있는 분들은 하느님께서 지켜 주시리라 믿습니다. 다른 하나는 전투에서 공을 많이 세운 사람들이 받는 ‘훈장’ 같다는 생각입니다. 이마에 재가 있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나라에서 인정받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년에는 더 많은 분이 재의 수요일에 이마에 재를 받아서 악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마에 재를 받아서 하느님 나라에서 인정받는 신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자’라는 말을 주로 하는 사람과 ‘왜’라는 말을 주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번 주일에 ‘인왕산에 갈까?’라고 물으면 ‘그러자’라고 대답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가 이번에는 ‘내려와서 칼국수 먹으러 갈까?’라고 물으면 ‘그러자’라고 대답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기에 상대방이 하는 말에 ‘그러자’라고 대답합니다. 이번 주일에 ‘미술관에 갈까?’라고 물으면 ‘왜’라고 대답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저녁에 중국집 갈까?’라고 물으면 ‘왜’라고 대답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친구입니다. ‘왜?’라는 말이 필요한 때도 있습니다. 과학, 문학, 예술은 ‘왜?’라는 질문이 필요합니다. ‘그러자’라는 말이 필요한 때도 있습니다. 지금 슬픔에 겨워하는 사람에게, 지금 고통 중에 있는 사람에게, 헤어짐의 아픔을 참고 있는 사람에게는 ‘왜?’라는 말보다는 ‘그러자’라는 위로가 필요합니다. ‘그러자’라는 ‘공감’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수난을 기억하고,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사순시기입니다. ‘왜?’라는 질문 대신 ‘그러자’라는 응답으로 주님의 수난에 함께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40일 동안 단식하시며 악마의 유혹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복음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떠나갔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깨달음을 줍니다. 유혹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언제든 다시 찾아올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유혹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지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유혹을 극복하면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유혹은 마치 숨어 있다가 기회를 엿보는 포식자처럼, 우리가 약해질 때 다시 다가옵니다. 우리는 돈, 권력, 명예, 쾌락 같은 다양한 유혹 앞에서 계속해서 시험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광야에서 악마의 세 가지 유혹을 물리치셨지만, 그 유혹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악마는 결국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가장 힘드실 때 다시 다가옵니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내려와 보라”는 조롱을 받으셨습니다.
유혹은 언제나 우리의 가장 약한 순간을 노립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유혹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첫째, 유혹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직면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유혹을 피하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악마와 맞서서 말씀으로 대응하셨습니다. 우리도 유혹을 외면하기보다,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주님의 말씀으로 답해야 합니다. 둘째, 자기 자신을 성찰해야 합니다. 유혹은 우리 약점을 파고듭니다. 어떤 순간에 내가 가장 흔들리는지, 어떤 상황에서 쉽게 넘어지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하느님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영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유혹은 우리의 의지력이 약할 때 더 쉽게 다가옵니다. 기도와 묵상을 통해 우리의 내면을 단단하게 만들면, 악마가 다음 기회를 노려도 쉽게 넘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유혹받을 때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고 생각한다면, 그분의 길을 따라간다면 악마가 우리를 흔들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유혹은 한 번 이겼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악마는 우리가 지쳐 있을 때, 외로울 때, 방심할 때 다시 찾아옵니다. 그러나 유혹이 반복된다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 순간은 우리가 더욱 강해질 기회입니다. 우리가 매 순간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를 통해 내면을 단단하게 다져 나간다면, 유혹은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더욱 단단한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는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는 우리의 신앙은 우리들의 삶을 통해서 완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사순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주님께 의지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우리 삶의 유혹을 이겨내고 주님의 충실한 자녀가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성인
성 도미니코 사비오(Dominic Savio)
신분 : 증거자
활동연도 : 1842-1857년
같은이름 : 도미니쿠스, 도미니꼬, 도미니꾸스, 도밍고, 도미닉, 도미니크, 사비오
성 도미니코 사비오는 1842년 4월 2일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 토리노 근처의 산 조반니 디 리바에서 가난한 대장장이인 아버지 카를로 사비오와 재봉사인 어머니 비르지타 사이의 10남매 가운데 하나로 태어났다.
그는 5살 때부터 매일미사의 복사를 하였으며, 7살 때에 예외적으로 첫영성체를 하였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사제가 되려는 소망을 불태워왔다. 성 요한 보스코가 청소년 교육을 위하여 준비를 시작할 때 토리노의 성직자들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을 위한 자신의 사업을 도와주도록 의뢰하였는데, 성 도미니코 사비오의 본당 신부가 그를 추천하였다. 면담에서 돈보스코 성인은 이 소년의 영혼 속에 은총이 충만한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12살 때에 토리노의 종합기숙학교인 성 프란치스코 드 살의 오라토리오에 입학하였다.
성 도미니코 사비오는 성인이 되려는 열망으로 여러 가지 특이한 고행을 원하였으나 요한 보스코의 지도에 따라 특이한 고행보다는 매일 매순간 자기가 하는 일을 하나하나 충실히 하는 데서 성화의 길을 찾았다. 그리고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회"를 결성하여 친구들과 더불어 성덕을 닦았다.
성인이 조직한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회는 신심적인 목적 외에도 요한 보스코를 여러 가지 구체적인 면에서 도와주었으므로, 성 요한 보스코가 살레시오회의 모체가 되는 모임을 결성했을 때 그 모임의 회원 22명이 주요 회원이 되었다.
한 번은 학교 내에서 두 학생이 돌을 들고 싸울 때, 도미니코는 그들 사이에 작은 십자가를 들고 끼어들어서 이렇게 말하였다. “싸우기 전에 이 십자가를 먼저 보아라. 예수 그리스도는 무죄한 분이셨지만, 당신의 박해자들을 용서하시고 운명하셨다. 나는 죄인이다. 그리고 나는 앙심을 갖게 됨으로써 그분을 욕되게 한다. 자, 이제 싸워도 된다. 그러나 그 돌을 먼저 나에게 던져라.” 나이 어린 소년의 이 한 마디 말은 그의 인품과 성덕을 밝히는 중요한 말이다.
그는 학교의 규칙을 지키는데 지나칠 정도로 세심하였고, 그의 기도 정신은 당대의 어느 큰 성인 못지않았다. 가끔 돈보스코는 그의 과도한 열성을 탓하고 중지시킬 정도였다. 이럴 때마다 그는 “저는 큰일은 하지 못 합니다”고 하면서,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작은 일이라도 그것을 하렵니다.” 하며 대답하였다.
또 돈보스코가 그가 고행에 몰두하는 것을 다소 저지하였을 때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 “신심은 우리가 숨을 쉬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어느 추운 겨울밤 도미니코가 얇은 시트 한 장을 덮고 떨고 있는 것을 돈보스코가 발견하고, “왜, 이런 짓을 하느냐, 폐렴에 걸릴려고?” 하자, 그는 “우리 주님께서는 베들레헴의 구유에 누워계셔도 폐렴에 걸리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여 돈보스코를 놀라게 하였다.
또한 도미니코는 아침 미사 때부터 몇 시간 동안 기도에 빠져 있을 때가 종종 있었다. 그는 이런 내밀한 기도 시간을 ‘나의 기분 전환’이라고 불렀는데, 이때 그에게는 마치 하늘이 열리는 광경을 보는 듯 하다고 말하였다. 한 번은 그가 이런 기도 중에서 일종의 환시를 보았다. 황량한 들판에 수많은 군중들이 있고, 그곳으로 횃불을 들고 가는 어떤 사람을 보았다.
그는 이것을 돈보스코에게 이렇게 설명하였다. “이 횃불은 영국 국민들에게 전해야할 가톨릭 신앙입니다.” 돈보스코는 이 사실을 당시의 교황 비오 9세(Pius IX)께 알렸고, 교황은 이 말을 듣고 영국에 대한 큰 배려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건강은 날로 악화되고 폐렴까지 겹치자 건강 회복을 위해 1857년 3월 1일 집으로 보내졌다. 그는 예수님의 수난을 생각하며 수술의 고통을 견디어 냈지만, 3월 9일 아스티의 만도니오에서 15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말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하느님, 당신께 영원한 찬미를 드리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아! 나는 정말로 아름다운 것을 보고 있습니다"였다.
그의 시복은 1914년에 로마에서 거행할 예정이었으나, 몇 가지 반대에 부딪혀서 돈보스코의 시성 후인 1950년 3월 5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리고 1954년 6월 12일 같은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는데, 교회 역사상 가장 나이 어린 성인 가운데 한 명으로서 소년 성가대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성녀 프란치스카(Frances)
신분 : 설립자
활동지역 : 로마(Roma)
활동연도 : 1384-1440년
같은이름 : 로마나, 방지가, 프란체스까, 프란체스카, 프란치스까, 프랜시스
성녀 프란치스카 로마나(Francisca Romana, 또는 프란체스카)는 이탈리아의 부유한 귀족인 부소(Busso) 가문의 파올로(Paolo)와 자코벨라(Giacobella)의 딸로서 이탈리아 로마의 중심부인 트라스테베레(Trastevere)에서 출생하였다.
그녀는 13세 때에 인근의 부유한 영주인 폰치아노(Ponziano)의 라우렌티우스(Laurentius)와 결혼하여 40여 년 동안 이상적인 결혼생활의 모범처럼 살았다. 그들은 자녀 일곱을 두었으나 둘은 어린 나이에 사망하였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금욕적인 기질이 강하였고,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대하여 깊은 애정을 표현하곤 하였다. 그래서 흑사병과 내란으로 인하여 사회가 혼란할 때, 그녀는 자선활동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그녀는 시누이인 반노차(Vannozza)와 함께 로마의 걸인들을 위하여 조직적인 봉사활동을 전개하여 높은 성덕을 쌓아 나갔다. 그녀는 성 알렉시우스(Alexius)의 환시를 본 뒤로 앓고 있던 중병에서 회복되었고,
1400년 그녀의 아들인 요한 바티스타(Giovanni Battista)가 태어날 때까지 산토 스피리투(Sancto Spiritu)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하였다. 또 다시 흑사병과 기근이 로마에 들이닥쳤을 때, 그녀는 이 재앙의 희생자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돕기 위하여 자신의 보석까지 팔았다.
그러나 그녀의 집안에 재앙이 닥쳐왔다. 1408년에 대립교황의 편이었던 나폴리(Napoli)의 왕 라디슬라오(Ladislao)가 로마를 점령했을 때, 여자들은 남아 있었으나 교황의 편에 서 있던 남편 라우렌티우스는 피신해야만 했다. 게다가 폰치아니(Ponziani) 성이 약탈당하고 캄파니아(Campania)의 집도 불에 타버렸다.
그리고 1413년의 또 다른 흑사병 때문에 아들 에반젤리스타(Evangelista)가 희생되자 그녀는 자기 집을 아예 병원으로 개조하였다. 불행은 계속 이어져 2년 후에는 그녀의 딸 아녜스(Agnes)마저 사망하였다.
1414년경에 비로소 평화가 찾아왔고, 남편의 추방령도 해제되어 돌아오고 재산도 되찾았지만 남편의 건강은 아주 나빴다. 성녀 프란치스카는 남편을 간호하는 한편 그녀의 모범을 따르는 귀족 부인 등과 함께 자선활동을 계속하면서 봉쇄생활을 하지 않고 세상 안에서 자선을 실천하는 새로운 형태의 수도 공동체를 이루어 살기로 결정하였다.
1433년 3월 25일, 처음에는 마리아의 오블라티회(Oblate di S. Maria)로 알려졌지만 후에 캄피돌리오(Campidoglio) 근처에 있는 '스페키의 탑'(Tor de' Specchi) 근처에 있다고 하여 토르 데 스페키의 오블라티회로 알려졌고, 다시 현재의 성 프란치스카 로마나의 오블라티회로 명칭이 바뀌었다. 1436년에 남편이 죽자 그녀는 수녀원에 입회하였다.
성녀 프란치스카는 수녀원에 입회한 후 원장이 되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남은 4년 동안 엄격한 생활과 더불어 자선 사업에 전념하였다. 또한 그녀는 수차례나 환시를 보았고, 탈혼에 빠졌으며, 치유의 기적을 행하였고, 예언의 은혜도 받았다.
그녀는 대이교의 종말을 예언하였다. 그녀는 1608년 5월 9일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에 의해 시성되었고, 교황 비오 11세(Pius XI)는 성녀가 밤낮으로 어려운 이웃을 보살피는데 수호천사의 특별한 보호를 받았으며, 칠흑 같은 로마의 밤거리를 다니는 동안 수호천사가 동행하며 등불로 길을 비춰주었다는 전설에 근거해 1925년에 그녀를 자동차 운전자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그녀는 또한 이탈리아 가정주부와 미망인의 모범으로서 큰 공경을 받고 있다.
성 그레고리오(Gregory)
신분 : 주교, 교부, 신학자
활동지역 : 니사(Nyssa)
활동연도 : 335?-395년?
같은이름 : 그레고리, 그레고리우스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또는 그레고리오)는 성 바실리우스(Basilius, 5월 30일)와 성녀 엠밀리아(Emmilia, 5월 30일)의 아들로서,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카이사레아(Caesarea)에서 태어나 그의 형인 성 대 바실리우스
(1월 2일)와 누나인 성녀 마크리나(Macrina, 7월 19일)의 영향을 받고 성장하였다.
성 그레고리우스는 훌륭한 교육을 받았기에 수사학자가 되어 테오세베이아(Theosebeia)와 결혼하였다. 그는 수사학 교수가 되었으나 나지안주스(Nazianzus)의 성 그레고리우스(1월 2일)의 영향으로 수도생활을 시작한 후 사제품을 받았다.
그 후 그는 아르메니아(Armenia)의 니사 교구의 주교가 되었으나, 아리우스파(Arianism)의 끊임없는 공격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폰투스(Pontus)의 집정관으로부터 교회 재산을 남용했다는 무고를 받고 투옥되었다.
그러나 다행히 도망쳤는데, 그라티아누스(Gratianus) 황제가 그를 다시 복직시켰다. 379년 그는 멜레티우스(Meletius) 이단을 단죄한 안티오키아(Antiochia) 공의회에 참석하였고, 이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팔레스티나
(Palestina)와 아라비아의 이단들을 척결하도록 파견되었다.
또한 그는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Constantinople) 공의회에도 참석하여 아리우스(Arius) 이단을 공격하고, 니케아(Nicaea) 선언문을 재확인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래서 그는 정통교회의 수호자로 칭송을 받았다.
그는 오리게네스(Origenes)와 플라톤(Platon)의 영향을 많이 받은 신학자로서 많은 논문을 남겼다. 제2차 니케아 공의회(680-681년)는 그를 '교부들 중의 교부'로 선포하였다.
성녀 가타리나 (Catherine)
신분 : 수녀원장
활동지역 : 볼로냐(Bologna)
활동연도 : 1413-1463년
같은이름 : 카타리나, 까따리나, 캐서린
성녀 콜레타가 프랑스에서 그의 덕망으로 유명하던 시대에 이탈리아에서도 성덕이 높은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바로 성녀 클라라의 뒤를 따르는 수녀로 볼로냐의 성녀 가타리나였다.
가타리나는 1413년 9월 8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탄 축일에 태어났다.
양친 둘 다 귀족 가문이었고 학식과 덕망을 고루 갖춘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가타리나가 일찍부터 재주의 비범함과 선행에 대해 강한 경향을 표시한 것도 아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9세 때 펠라라 후작의 요청에 따라 후작의 성(城)에 들어가 후작의 딸 엘리사벳과 같이 교육을 받았다.
두 소녀는 사이도 좋고 서로 잘 맞는 상대였지만 그중에도 가타리나의 신심면의 열심함과 지식에 대한 빠른 진보는 모든 사람들을 탄복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가타리나는 오래지 않아 라틴어를 유창히 배워 어려운 말들도 읽고 말하고 쓰는 데 아무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녀의 필적은 지금도 남아 있는 데 아주 아름다운 문체다.
그녀가 제일 애독한 서적은 교회의 학자들과 성인들의 저서였다.
가타리나는 수예에도 능숙하며 미술에도 재주가 있어 특히 회화 방면에 걸작품을 남기고 있다.
가타리나가 펠라라 성에 간 지 어언 3년이 되었다. 친구인 엘리사벳은 리미니 왕자와 약혼을 하고, 가타리나는 아버지를 여의어 어머니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어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되었다.
엘리사벳은 자기에게 다시 오라고 했지만 가타리나는 이를 거절했다.
그녀는 이미 일생을 하느님께 바치려는 굳은 결심을 했기 때문이다.
가타리나는 계속해 들어오는 혼담을 모조리 거절했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가타리나의 원의대로 하라고 해서 그녀는 자기의 소원을 아무 거리낌없이 추진해 나갈 수 있었다.
때마침 펠라라 읍에는 루치아 마스게로니라는 부인이 살고 있었는데 그녀는 세속 사람 몇명과 함께 수도자처럼 경건한 기도와 노동을 하며 읍내 사람들에게 좋은 감화를 많이 주었다.
가타리나도 그들의 덕을 사모하며 그 자매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그러나 이 행복도 오래 계속되지 못했다. 그것은 곧 여러 가지 시련이 닥쳐왔기 때문이다.
우선 가타리나는 고독에 대한 동경심이 날로 강해져 공동체 생활이 고통스러워졌다.
항상 동료들과 헤어질 생각만 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열심히 성령의 비추심을 구했고 그 결과 그곳에 머무르는 것이 제일 좋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제2의 시련은 악마의 심한 유혹이었다. 이따금 그것을 물리칠 용기조차 없었다.
이 유혹이 지나자 이번에는 다시 영육간의 고민이 일어나 마침내는 신앙을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그래도 가타리나는 하느님의 은총에 의지하고 모든 시련에 승리했다.
또한 자기 일생의 죄와 결점을 온전히 용서받았다는 것을 묵시받고 깊은 위로를 받았다.
그녀는 이러한 번민을 당하면서 많은 귀중한 경험을 체득했고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해 그 경험들을 참고로 소책자(小冊子)를 저술했다.
겸손한 가타리나는 스스로는 조금도 깨닫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녀의 경건함에 탄복해 존경을 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베르데 후작의 부인은 가타리나 및 그의 동료들을 칭찬한 나머지 성녀 클라라의 규칙에 의한 한 수도원을 세워 주었다.
가타리나는 분에 넘치는 행복감을 느끼며 아무리 천한 일도 하느님을 위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완수했다.
그들의 빛나는 신앙 생활, 그 중에도 가타리나의 성스러운 모범은 세상의 젊은 여성들을 감동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점점 수도원의 지원자가 많아져 가타리나는 순명으로 그들의 수련장이 되었고 그녀는 늘 읽어왔던 성서와 학자들의 저서를 토대로 수련자들을 잘 가르치고 자신의 훌륭한 모범으로 그들을 잘 인도 했다.
그녀는 하느님께 특별한 은총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
첫째는 구세주의 고통을, 영혼의 번뇌는 물론 육신의 고통까지 영, 육으로 느낀 점이고, 둘째는 1445년 성탄절 밤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나타나 거룩하신 아기 예수를 그녀의 팔에 안기게 하신 점이다.
1451년 수도원의 원장이 서거하자 자매들은 모두 가타리나가 그의 후계자가 되어 줄 것을 원했다.
겸손한 가타리나는 그 임무의 부당함을 강조하면서 모든 자매의 동의를 얻어 같은 클라라회에 속하는 만자 수도원에서 적당한 수녀를 추대해 원장으로 삼았다.
수도회는 날로 번성해 자매들의 수가 많아졌으므로 교황의 허락 아래 다른 곳에 수도원을 세우게 되었다.
볼로냐 수도원이 처음으로 건축되어 장상의 명령으로 이번에는 가타리나도 사양하지 않고 원장에 취임했다.
그 당시 볼로냐 시민은 2,3의 당파에 분열되어 서로 항쟁을 계속하고 있었으나 가타리나는 그들을 위해 기도해 마침내는 화해시킬 수 있었다.
그녀는 수도원을 ’성체의 가난한 클라라 수녀원’이라 이름짓고 가능한 한 성체 앞에서 기도하며 때로는 기도로 밤을 세우기도 예사였다.
그녀는 어머니가 친자식을 사랑하듯이 사랑으로 자매들을 대했고 특히 병자나 약한 자에 대해서는 극진히 돌보며 염려해주었다.
자매들 또한 규칙을 잘 지키면서 서로 화목하며 사랑하는 데 조심했다.
가타리나는 늘 수도원 안에 있었고 한 발자국도 문밖에 나간 일이 없었으나 그녀의 성덕과 기도의 힘으로 남을 위해, 그 중에도 죄인을 위해 헌신한 일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1463년 2월 25일, 죽음이 가까워 온 줄 안 가타리나는 자매들을 모아놓고 유언을 남겼다.
그 뒤 체력은 시시로 쇠약해져 3월 8일 천사와 같은 경건한 태도로 성체를 영하고 기운이 솟는 대로 거룩하신 예수의 이름을 세 번 거듭 부르고 평안히 세상을 떠났다.
그때 그녀는 50세였다. 1712년에 시성되었다.
(대구대교구홈에서)
아름다움
아름다움은 영원한 즐거움이어라.
그 아름다움은 점점 더 자라나서 결코 시들지 않을 것이며
우리에게 달콤한 꿈들로 가득 찬 안식과 건강을 주는 고른 숨결의 편안한 그늘이어라.(존 키이츠)
볼로냐의 성녀 가타리나는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감사했다.
그는 주변을 아름답게 꾸미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으며 예술가들의 수호 성인이 되었다.
예술 없이도 생존할 수는 있겠지만,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눈에 있다는 말이 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값비싼 예술품을 소장하기 위해 많은 돈을 쓸 필요가 없다.
무엇이든 자신이 발견한 아름다운 것들로 주변을 가꾸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조약돌이나 조개처럼 자연에서 얻은 것이라든지 사진이나 나무, 골동품 같은 것으로도 얼마든지 집안을 아름답게 꾸밀 수 있고, 그것들을 재료로 아이들과 장식품을 만들면서 사랑을 나눌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발견한 아름다운 물건들을 보거나 만들면서 기쁨과 충만함을 느끼는 것이다.
지금 주위를 둘러보라. 아름다운 것들이 많이 있는가?
만약 그런 것이 없다면 성녀 가타리나가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하도록 도와 줄 것이며, 당신에게 편안한 그늘을 선사할 것이다.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고,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 노력하는가?
영혼을 쉬게 하고 기쁨을 주는 것을 가까이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