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헬살랄하스바스
세상에는 많고 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또한 이땅에는 여러 종교들이 있고 각 종교마다 경전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종교들의 경전은 인간이 이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인간 다움을 실현할 수 있는가를 다루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기독교의 경전이지만, 성경을 공부하면 할수록 참으로 독특한 책이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구약성경은 기본적으로 이스라엘의 역사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구약성경에는 유대 역사에 실존했던 이들의 실명이 등장합니다.
나아가 수많은 인명과 지명, 그리고 강과 산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음을 알수가 있습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유대인들의 고유 전통 중 하나인 자식 이름을 작명하는 풍습입니다. 대다수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식을 얻은 경우 그 이름속에 부모의 기대나 사랑 또는 축복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아 작명합니다.
그럼에도 구약성경에는 이러한 일반적 풍습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예들이 등장합니다.
가장 대표적 모습이 이사야 선지자입니다.
이사야는 여 선지자와 결혼하였고, 두 아들을 얻게 됩니다.
그중 둘째 아들을 낳은 후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에게 희안한 이름을 짓게 하십니다.
바로“마헬살랄하스바스”입니다. 이름의 뜻은“노략이 빠름, 급속한 약탈”입니다.
선지자의 아들이 채 말을 하기전 다메섹과 사마리아에 임하는 전쟁(심판)에 대한 예언의 성격이 담긴 이름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읽으며 아들 이름에 심판을 선언하는 내용을 담아야 했던 이사야 선지자의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비록 선지자(예언자)의 사명이 신탁(信託)인 것은 분명하지만 선지자 역시 불완전한 인간일진대 아들의 이름을 작명하고 그후 부를때마다 마음이 심란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야 했던 선지자의 소명과 순종을 대하며 소명자의 짐과 무게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자식의 이름속에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담게 되는 호세자로써 호세아가 있습니다.
그는 음란한 아내로 맞이하여 딸을 낳게 됩니다.
그런데 그 딸의 이름을 로루하마 즉 “긍휼을 받지 못한다”고 작명합니다.
이후 호세아는 다시 얻은 아들의 이름을 “로암미, 내 백성이 아니다” 라고 짓게 됩니다.
이렇듯 자식 이름속에 이스라엘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담겨 지는 의미가 내포된 작명을 하도록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에게 명령하십니다.
이러한 성경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람에게 요구되는 분명한 기준은, 내 뜻과 생각과 기분에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니라 때론 여건과 상황은 나와 배치되고 상이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순응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임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람의 선명한 기준은 삶의 자리에서 구현 되어지는 모습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순복하는 실천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첫댓글 감당할 만한 그릇을 사용하시는 주님이신데
누구나 그렇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하시지 않기에
감사하다고 해야 할까요/
평범한 삶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