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3주일 (마태10,37-42)
반드시 걸맞은 상을 받을 것이다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분의 사랑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변함이 없으십니다. 변덕스럽지 않습니다.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그 사랑 안에 머물러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특별히 하느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당신 자녀로 뽑아주심에 감사하고 기뻐하며 우리의 목자 교황님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느 도시에 공부하는 스님과 술 파는 여인이 나란히 이웃에 살았답니다. 스님은 열심히 공부했고 여인은 열심히 술을 팔았습니다. 여러 세월이 흐른 후 두 사람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스님은 지옥에 떨어졌고 여인은 천상 극락에 들어갔습니다. 마음속으로 진정 부러워했던 것이 서로 달랐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열심히 공부하고 예불을 드리면서도 ‘아! 부럽다. 맛있는 술에다가 어여쁜 여자, 춤추고 노래하고 얼마나 신날까?’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여인은 ‘아 부럽다 부러워! 새벽마다 예불을 드리고 꽃을 바치며 경전을 읽고.. 얼마나 행복할까?’ 하며 늘 거룩함을 갈망했습니다.
사무엘 상권 16장에 다윗에게 기름 붓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7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사도 바오로도 말합니다. “그분께서 어둠 속에 숨겨진 것을 밝히시고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때에 저마다 하느님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1코린 4,3). 예수님께서도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6,21). 우리의 마음을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할지 생각해야 합니다. “마음이 똑바로 향해 있으면 행동 또한 바릅니다. 마음과 행동이 일치할 때 구원의 은혜를 입을 것입니다”(성 아우구스티노).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6,4). 하고 선언합니다. 우리는 새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항상 주님을 향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어중간, 양다리 걸치기는 없어야 합니다. 주 하느님 앞에서 “갈라진 마음이나 어정쩡한 결단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출가와 가출이 다르다는 것을 아시죠? 출가는 세속의 집을 떠나 구도의 길을 걷는 것이고 가출은 집이 싫어서 그냥 나와 방황하는 것입니다.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출가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논리를 따르지 않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제시하고 걸으신 길을 함께 살아갑니다. 출가란 단순히 집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집착을 버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오랜 세월을 길에 나와 있으나 집을 떠나지 않았고, 어떤 사람은 집을 떠났으나 길에 있지 않습니다. 누가 하늘의 상을 받겠습니까? 술 파는 여인입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이 말씀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집착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 보십시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그것은 당신의 생명을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을 참으로 먼저 사랑하는 것이, 부모, 자녀, 형제를 사랑하는 길입니다. 예수님을 철저히 따르는 사람은 새로운 양식으로 자기 이웃과 가족을 사랑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기를 죽여야 합니다. 하고 싶은 것을 내려놓고, 해야 하는 일을 우선해야 합니다. 자기 소신, 주관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도구 삼아 당신의 일을 하시도록 나를 온전히 주님께 맡기는 것, 그것이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요. 그것이 승리하는 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냥 자기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기를 죽여야 합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하늘의 상을 받게 됩니다. 완전한 헌신, 순종이 신적인 사랑의 힘으로 충만한 새로운 마음을 되돌려 받게 됩니다. 사랑의 진가는 사랑을 해본 사람만이 압니다. 사랑에는 생각지도 못한 보답이 옵니다. 지금 하느님을 먼저 생각하고 희생하며 사랑하는 그 자체가 상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길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길, 구원을 위해 선택하신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고 말씀하십니다. “교회가 이 길을 따라가지 않을 때 잘못을 저지르고, 세속적으로 변합니다. 많은 이들이 특히 성직자들이 예수님을 따른다면서 명예, 사치, 세속의 길을 찾는 것을 볼 때, 우리는 그들이 예수님을 찾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칭하지만, 그저 허울뿐인 그리스도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의 길,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길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시며 출세의 도구로 그리스도교를 이용하지 않는 은총을 청하셨습니다.
우리는 이기적인 목적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 생명을 얻으려고 노력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헛된 명예 따위를 위하여, 재물을 위하여, 자기만족을 위하여 별다른 이유도 없이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사람이 적잖은 세상입니다. 이러한 혼돈의 세상에서 우리는 천주교 신자의 자부심과 복음 정신인 사랑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주님을 향한 자기 포기와 희생, 헌신의 정신이 우리 교회는 물론 사회를 유지하고 지탱하게 하는 힘이 됩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좋은 소식, 맑고 밝은 소식이 별로 없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할 일이 많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어둠을 탓하기에 앞서 하나의 빛을 밝혀야 할 소명이 있음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주님을 향하여 있고 그분이 원하는 곳으로 발길을 재촉해야 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저는 어머니의 생전에 두 번의 편지를 받았는데 그중의 하나입니다.
93세로 2021년에 돌아가셨는데 2005년 교포사목할 때의 편지입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출가시켰고, 아들은 주님 안에서 어머니를 늘 사랑했습니다.
“부족한 어미가 신부님께 드림.
고향을 떠난 지도 두 달이 넘는군요. 낯선 곳에서 사귀느라 맘고생이 크지요?
모든 고난 참아 받고 건강 조심하세요. 건강이 첫째인지 누구보다 잘 알지요.
조석 굶지 마세요.
이 못난 어미한테 태어나서 공부할 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돈 한 푼 제대로 주지 못하고 살아온 어느 날 신학교 간다고 할 때,
반대를 하였더니, 하느님 부르심을 받고 신부가 되어서,
머나먼 외국을 간다고 하니 더욱 면목이 없습니다.
신부님은 오늘이 있기까지 많은 고통을 겪었지요.
쇠털같이 많은 고난을 참고 살아왔지요.
그러나 앞날을 기대하고 사는 게 인생입니다. 몸조심하세요.
훌륭한 신부님 되시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신부님 생각하면 한없이 기쁩니다.
여기 생각하지 말고 몸 건강 챙기세요.
신부님은 나한테 너무 신경 쓰십니다.
나한테는 다른 아들딸이 있습니다.
첫째는 신부님 건강을 조심하세요.
늙은이 글씨 말도 안 되니 잘 읽어보세요. 이만 줄입니다.
마지막 날 신부일 수 있게 지향 두어 기도하고 영성체 했네요.” 2005년 6월
첫댓글 아멘 . 감사합니다
아멘.
생전의 어머님 글을 접하니 제가 울컥합니다.
ㅠㅠ
어머니 많이 보고싶으시죠?
출가란 단순히 집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묵상하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