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4주일: 나해
복음: 마르 6,1-6: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역사를 통하여 인간들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는커녕 어기기만 하고 고집스럽게 자신의 길만을 고집하여 멸망의 길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계속 사랑하셨다. “그들이 듣든, 또는 그들이 반항의 집안이어서 듣지 않든, 자기들 가운데에 예언자가 있다는 사실만은 알게 될 것이다.”(에제 2,5). 예언자는 하느님 사랑의 표지이다. 그 예언자가 그리스도로 나타나게 되면, 그것은 하느님 사랑의 최고의 표현이다.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최고의 값진 선물이라는 것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들의 완고함과 거부감이 최고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구원이 이루어진다. 매우 역설적이지 않은가?
오늘 복음에서 역시 예수께서 당신 고향에서 복음 선포에 실패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믿음이 불투명하고 무장되어있지 않을 때는 예수와의 진정한 만남이 어렵다는 것이다. 고향 사람들은 분명히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적에 대해 놀라움을 표현하고 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2절). 예수께서 누구에게도 배운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예수님의 지혜와 그 기적을 보고 놀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분을 거부하는 반응은 왜 나타났을까? 그것은 같은 고향 사람이라는 데서 오는 시기가 아니라, 예수께서 보여주신 여러 가지 표징은 믿음이 있어야 알아들을 수 있는데, 그것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3절). 이는 믿음의 단절상태를 말한다. 이것은 예수의 출생상태나 성장배경 가족 상황을 모두 아는 그 상황을 벗어나지 못한 예수로부터 그러한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으므로 이해할 수가 없었고 오히려 의심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은 일상의 평범한 사건이나 인물을 통해서 드러내신다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유다의 지도자들이 하느님의 품위를 보존한답시고 예수님을 단죄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은 십자가 위에 그분을 오르게 하는 것의 전조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모든 예언자의 길이며 예수께서 가셔야 할 길이다. 이렇게 볼 때, 기적은 하느님의 권능과 자비의 표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기적이 있으려면 적어도 어떤 신앙의 발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특별한 일을 통해서가 아니라 평범한 일을 통해서, 권능을 통해서가 아니라, 나약성을 통해서 당신을 드러내신다. 나자렛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한 기적은 단순한 목수에 지나지 않은 비천한 마리아의 아들을 통해서 당신을 드러내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우리에게도 특별한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낮추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사실보다는 그분의 권능에 더 집착하려는 신앙에 맞서는 것이다. 특별한 징표를 추구하다가 자칫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실망하고, 더구나 나자렛 사람들과 같이 주님을 거부하는 잘못도 범할 수 있음을 명심하여야 한다.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2코린 2,9). 일상적인 평범한 것을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를 맞이할 수 있어야 하며, 또한 고통과 가난의 “징표”를 통하여 당신을 드러내시는 그리스도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외적으로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여, 성성의 커다란 표지가 되지 못한다고 꺼리는 교회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더 성실히 우리의 일상을 살면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예수님을 거부했던 나자렛 사람들로부터 끌어내는 교훈일 것이다. 어쩌면 오늘의 우리는 나자렛 사람들과 같이 우리가 만들어 놓은 하느님을 가지고 하느님께 우리의 신앙을 강요하면서 진정 참 하느님을 거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의 모든 사소한 것이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도록 하자. 모든 일은 하느님 앞에 영원한 가치가 있으며, 그 하나하나를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는 분이며, 일 하나하나에서 우리는 주님을 체험할 수 있다. 모든 삶의 순간을 신앙의 눈으로 볼 때, 우리는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그 기적을 체험할 수 있다. 이러한 신앙의 눈을 지닐 수 있도록 주님의 은총을 겸손되이 청하도록 하여야 한다.
첫댓글 삶의 매순간 그냥 흘려버리는 것이 아닌 신앙적인 예민함을 갖고 주님 함께 하심을 민감하게 느끼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