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부터는 (눅 3-162)
2025년 5월 18일 (주일)
찬양 : 오 놀라운 구세주
본문 : 눅 22:66-71절
☞ https://youtu.be/zlf0SUjAvVg?si=n59ibEnug3fiYDIn
1. 삶의 이야기
주일 아침 겸손히 하나님앞에 선다. 주님 앞에 선다는 이 사실이 얼마나 쉽지 않은 자리인지 나이가 들면서 새삼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시선을 느끼며, 그분의 임재 아래에 서는 이 놀라운 시간의 소중함을 누린다.
어제 하나님의 은혜로 이전 예배를 드리는 목회사관학교 졸업생의 교회를 방문했다. 많은 라마나욧선교회에 함께한 이들이 축하했고, 많은 순서가 있었고 소중한 선물이 있었다. 잘 준비된 모습이 있었다.
그러나 이전이 예배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제물로 드렸는지, 하나님을 향해 드리는 예배의 요소가 무엇인지 홀로 고민을 했던 시간이다. 습관에 의해 이전해서 예배하는 자리는 아닐까? 내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구나? 하는 자책감이 드는 자리였다.
오늘은 사관생도 한 분의 총동원 주일 예배가 있다. 개척 1년이 된 교회가 몸부림치며 준비한 지역민을 위한 회복축제다. 아프고 나서 내가 바뀐 것은 작은교회를 향한 더 간절한 마음이다. 예전에는 설교하는 자리에 갔지만, 이제는 시간을 내어 함께하기 위해 몰래 무작정 간다. 조금의 힘이라도 되어드리고 싶고, 응원하고 싶어서다. 이런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2. 말씀 안으로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에는 산헤드린 공회 즉 유대인 최고의 종교지도자 회의로 공식적으로 예수님께서 재판하는 자리에 서신 장면이다. 그 첫 질문이다. 67-69절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우리에게 말하라 대답하시되 내가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할 것이요 내가 물어도 너희가 대답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그러나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하시니’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우리에게 말하라>
이들의 질문은 이미 정해진 답이 있었다. 마음으로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했고, 이 질문은 그 일을 이루는 수단일 뿐이지, 예수님을 알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형식적 질문이다.
이들의 의도를 너무도 잘 아시는 주님은 이런 형식적 질문에 답하지 않으셔도 되고, 지혜롭게 빠져나갈 수 있는 분이시다. 그러나 이 질문에 예수님은 매우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신다.
예수님은 위협과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드러내 다니엘서에 나오는 메시야적 칭호인 인자를 사용하며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는 놀라운 대답을 하신다. 자신이 하늘 보좌의 인자 곧 하나님으로부터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은 자임을 밝히신 것이다.
이 고백은 승리의 선언이다.
산헤드린 공회는 예수를 심판하고자 모여서 질문했지만, 실제로는 공회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으신 아들 앞에서 심판받고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세상은 정치적 메시야로 예수님을 기대하였지만, 예수님은 고난받는 종의 길을 선택하시며 너희가 믿지 않을 것을 분명히 아시면서도 당당히 고백하셨다.
누가는 이 장면을 통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인자, 메시아로 고백하는 신앙 고백을 하고 있다. 초대 교회가 고백했던 예수님의 신성, 부활, 재림에 대한 핵심 교리를 압축하여 보여준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발적인 누구의 실수나 음모로 만들어진 사건이 아니다. 이것은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이 만세 전에 예정하신 구원의 드라마 절정의 자리임을 묵상하게 된다.
여기서 ‘우편’(δεξιῶν)은 단순한 공간이 아닌 권위와 영광의 자리를 의미한다. 고대 근동 문화에서 왕의 오른편에 앉는 자리는 왕 다음가는 최고의 권위와 공동 통치를 상징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우편"은 먼저,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행사하는 위치(시편 110:1: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으라.”)를 말한다.
또한 히브리서 1:3절의 표현으로 보면 영광과 존귀의 자리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예수님은 이제 하나님의 사역과 통치를 공동으로 수행하시는 분이라는 선언이다.
신학적으로 이것은 예수님께서 고난과 죽음을 겪으신 후, 부활하시고 승천하여 하늘의 보좌에 앉으실 것이란 빌 2:9-11절 말씀과 같은 의미다.
여기서 중요한 표현은 <이제부터는>이란 표현의 시제다. 이것은 미래형이 아닌 “ἀπὸ τοῦ νῦν”이라는 현재-시작 시제를 사용하였다.
다시 말하면 고난의 순간부터 예수님의 왕권의 여정이 시작되어, 십자가, 부활, 승천으로 이어지는 종말론적 역사의 전환이 시작됨을 선언하신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수치스러운 재판과 죽음이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구속사와 통치의 개시가 시작된 시간이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선언이다.
나는 이 예수님을 확실하게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있는가?
이런 자리에 당당하게 답하신 예수님처럼, 나도 당당하게 답할 수 있을까? 나를 부르신 뜻을 따라 나도 이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오래 황폐된 이곳에도 다시 부흥이 일어날 것이라고, 이곳이 사람들이 모여 천국을 이루는 곳이 될 것이라고 외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사역의 자리에서 오늘 내가 만나는 자리를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이 주신 시간표를 이수하고 있을까?
여러 질문이 마구마구 터져 나온다. 주님 ~
3. 내 삶으로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죽임당해야 하는 자리에서도 구원의 길을 당당하게 걸으신 주님을 묵상한다. 자신이 당하는 자리를 오히려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을 것이라 승리를 선포하는 자리로 바꾸신 주님을 찬양한다.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우리에게 말하라>
예수님을 향해 질문을 던진 세상은 오늘 내게 어떤 질문을 던질까?
<네가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세상에 부흥이 있겠는지 우리에게 말하라> <이렇게 가망성 없는 현실에 부흥의 희망이 있는지 말해보라>
죄로 멸망해야 할 세상,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자신을 죽일 이유만을 찾는 그들이 외친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우리에게 말하라는 질문에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외치신 주님을 깊이 묵상한다.
이것이 믿음이 아닌가? ‘이제부터는’이라는 주님의 고백이 큰 울림을 주는 아침이다. 나도 이런 승리하신 하나님의 뜻을 붙잡은 인생으로 살아가련다.
모욕과 억울함, 고난과 심판의 순간에 주님은 오히려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신뢰하며 선포하셨다. 그것도 미래형이 아닌 현재형으로 ~
나는 이 예수님의 승리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왕같은 제사장으로 택하신 족속으로 택해진 자다. 주님의 승리가 나를 통해 동일하게 일어날 것을 믿고 그 어떤 사탄의 궤계 앞에서도 주님처럼 승리를 선언하는 당당함을 가지고 나아가는 종 되기를 기도한다. 나는 주님의 종이다. 주님의 길을 걸어야 할 종이다. 아멘.
이제부터는 오래 황페된 곳들이 다시 세워질 것이다. 이제부터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가 쌓아질 것이다. 나는 무너진 곳을 보수하는 자라 칭해질 것이고, 내가 가는 곳에서 길이 수축되고 부흥이 일어날 것이다.
주님, 거룩한 주일 아침 승리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권능의 우편에 앉아 이 땅과 열방과 교회를 통치하시는 주님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권능의 우편에서 나의 삶을 통치하시는 주님을 신뢰합니다. 주께서 보내신 자리에서 오늘도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주님처럼 당당히, 진리로 말하며 걷는 종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묵상, 한 줄 정리 :
<‘이제부터는’이라는 주님의 선언처럼, 오늘은 믿음의 전환점이 되는 날>
중보기도 제목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 여러분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1. 웨이브리즈 플랫폼의 콘텐츠 제작이 주님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2. 목회사관학교를 통해 이 시대를 이끌 진짜 목사가 세워지도록
3. 30억의 재정 공급을 통해 선교회가 새로운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4. 라마나욧선교회 행정 시스템이 섬김을 위한 최적의 구조를 찾도록
5. 사단법인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스페이스 알 사역이 세워지도록
6. 틴케이스가 2025년 세운 계획들이 세워져 가도록
7. 작은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져 가도록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도록
8. 충주 라마나욧이 구체적인 사역 방향을 정하여 세워지도록
9.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으로 겸손히 섬기며 주님의 꿈을 이루게 하소서.
* 이 기도 제목들이 단지 필요를 위한 나열이 아니라, 오늘 말씀이 촉구하는 나를 드러내는 사명의 삶으로 이어지길 소망한다.
삶을 변화시키는 3가지 질문 :
1. 예수님처럼, 당신은 진리를 위해 불이익 앞에서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습니까?
2. “이제부터는…” 내 삶에 어떤 신앙적 전환이 일어나야 할 시점입니까?
3. 나는 지금 어떤 자리에 서 있는가? 하늘 보좌의 통치를 진짜 믿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