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방황하던 때가 있었다.
사람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할 때도 있었고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이리저리 치이면서 많이 힘들어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던 중..
길 위에서 스승을 만나게 되었다.
가만히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그 분은...
내게 내가 여태껏 가지고 살아왔던 마음중
그 마음의 대부분이 '웬디의 딜레마'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웬디....
웬디...
웬디....
소년으로 남기를 원하는 피터팬을 좋아하는 웬디..
곁에 있던 팅커벨 역시 피터팬을 좋아하기에 말도 못하고 홀로 가슴앓이한..
괜찮은척, 멋진 친구인척, 머물러 주지만
그녀의 속 마음은 그 '척'하는 만큼이나 까맣게 타 들어가고 있다는것을...
나는 내가 피터팬처럼 살고 있다고 생각을 했었다..
누구보다 자유롭기를 원했고 그 어느 누구와도 다른 나만의 길을 가기를 원하고 있었다.
허나 그때 돌이켜 본 내 젊은 날은 온통 말하지 못한 아픔으로 내 속을 까맣게 태우고 있었다는걸
'웬디의 딜레마'.. 이 한마디를 통해 알게 되었다.
한달 가까이 네팔 카트만두, 그 햇살좋던 조그만 방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또 마시고...
내게 현실에서 발 붙이고 살기에는 니 심성이 너무 여려서 어려울테니 공부하고 공부하고 또 공부하라면서도..
스승은 내게 그에 대한 어떠한 해답도 주지는 않으셨다.
돌이켜보니 스승 역시 30대 초반의 잘나가던 S호텔 인사과장직에서 어느날 퇴근하는 길로 출가를 하여
그 답을 찾기 위해 스님들이 공부를 하기 위해 머무는 선원에서 하루 열네시간씩 용맹정진 하여 20년 가까운 세월만에 답을 얻었으니..
몇년간의 여행길을 통해 처음으로 길에서 만난 길손의 이름을 물어보셨다고는 하나.. 그 답을 쉽게 알려줄리는 없었다.
그렇게 한달의 시간이 다 흐르고..
겨울의 정점에 서 있는 카트만두의 타멜거리....허름한 찻집에 앉아서....
다음날 길을 떠나는 내게 스승은 답을 주셨다...
모든 해답은 책 속에 있노라고..
영문 원서를 구해서 한번은 그냥 읽어 내리고
다음번은 단어를 찾아가며 읽어보고
그 다음은 내용을 보면서 읽어가고
그 다음번이 되면 책의 내용이 눈에 들어오고 마음으로 가노라고....
스승께서 책을 통해서 깨달은 현대인들의 마음의 병은 다음의 짧은 글로 대신해 주시며 답을 주셨다.
'예전 그리스 로마 시대에 한 귀족이 전장에 나가게 되었지.
허나 상대편 장수는 천민 출신의 반란군이었고.
그 당시 시대상으로 귀족출신의 장수가 천민출신의 장수와는 싸움을 하는게 말이 안되었기에..
고민하던 그 귀족은 부하들을 돌아보며 이야기 했지.
"저 상대방 장수는 천민이 아닌 ****경이노라고...."
그렇게 상대방 장수에게 귀족 칭호를 붙이고 나서야 장수는 싸움에 임할 수 있게 되었노라고...'
스승은 이 이야기를 끝내고 이렇게 덧붙이셨다.
'모든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이 귀족주의에 사로잡혀 힘들어하고는 한다'
신입사원때 충성을 다 바쳐서 믿고 따랐던 상사가 중요한 순간에 자신을 져 버렸을때,
뜨겁게 사랑하던 연인이 다른 사람에게 눈길을 주고 마음을 져 버렸을때,
수많은 빚보증 사례가 있어도 내 친구니까...내 선배니까 하면서 꼭같은 빚보증으로 재산을 탕진했을때,
남들은 다 욕을해도 내게 잘해준 친구가 나쁜짓을 저지르고 욕을 먹어도 내게 보였던 그 행동들 때문에 쉽게 인정하지 못할때...
비단 예시가 이정도 뿐이랴마는...
모든 인간관계가 여기에 휩싸여서 힘들어진다는 것을...
내가 아는 사람이니까...
내겐 안그랬던 사람이니까.....
그렇게 눈에 뭔가가 씌여서 현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나와 같은 위치로 올려놓고 보게 되는 그 수많은 사연들....
비단 내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 마음은...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은 내게는 의미있고 그 길의 끝에서는 세상에 빛이 될 지언정,
나를 사랑하는 사람, 내 친구들, 내 가족들이 아닌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철없는 젊은 청춘일수도 있다는 것을...
나 역시 내 가족이 그러했고 내 친구들이 그러했다.
누군가 내 가족을 욕하고 내 친구의 험담을 하면 세상 누구보다 화가나서 그건 아니라고 소리소리 질러대었고,
그 현상속에 빠져서 그 일들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지 못했던 어리석은 날들이 있었다.
산을 좋아하는 내게 많은 후배들이 산에 대해서 묻는다.
그러면 나는 늘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 좋아하는 지리산을 예를 들면서..
많은 사람들이..특히나 시간에 쫓기는 많은 사람들이 금요일 밤기차를 타고 구례구 역에서 내려
화엄사에 새벽에 들어가 지리산 주능선 종주를 시작한다.
그리고 일요일 저녁에 어떤이는 백무동으로 어떤이는 중산리로.. 걸음이 빠른 이는 대원사로 내려와서
어스럼한 저녁 밤차를 타고 서울로 향한다.'
허나,
이 사람들은 지리산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모른다.
평생을 지리산에 다닌다고 해도 이 산의 생김새는 모르고 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이야기한다.
이따금..니가 정말 가고 싶은 산이 있으면 그 산 아래서 산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바라보라고....
그렇게 시간을 할애한 후에 산에 들어갔을때....
만약 니가 길을 잃어도 그 산의 생김생김을 알기에 니가 어디쯤에 있는지 알수 있으며
그렇다면 오래 헤매이지 않고 다시 길위에 설 수 있노라고.
물론 길은 또다른 길로 통하게 되어있지만,
원래 가고자 했던 그 길을 찾기 위해서는 그 산을 한번 산 바깥에서 쳐다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라고....
이게 바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에 쫓겨, 남들의 길에 쫓겨 인생이라는 산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지 못하고 쫓아 들어가다보면...
언젠가 그 인생의 산에서 길을 잃었을때 나 자신이 어드메에 있는지 알 수가 없게 된다고..
가끔은 내가 가고자 하는 인생이 어떻게 생겼고....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알 수 있다면 그렇게도 헤매이고 고생을 할 일은 없을거라고....
그리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모든 관계에 대해서 나 자신이
또다시 귀족주의에 휩싸여서 전체적인 모양새를 보지 못하고 있는건 아닌지..
늘 한발짝 물러나서....
아니 물러나지 않더라도 사람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마음에 생채기를 낼때는 이게 그것이구나 하고 객관적으로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
..
스승이 던져준 이야기에 내가 생각하게 된 내 이야기다.
스승은 내게 고대 장수의 이야기만 해주었지만..
나는 이제는 조금은 알것 같다..
그 얄팍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어떻게 하면 내 모습을 내가 바라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반년이 지나 또다시 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스승은 또 내게 말씀하셨다.
니 마음 먹은대로.....마음을 다 잡고....
그것들에 대해서 용서하고 사과를 바라는 니 마음 그 자체가 또다른 귀족주의라고..
니가 성자가 아닌이상.... 그 마음을 기억하되..
그 마음이 너를 아프게 할것 같으면 '통째로 버리라고'..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던 일처럼.. 애초부터 나에게 상관이 없었던 사람이었던 것처럼...'
잠시 한국에 들어갔던 내게...내게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서 마지막 해답을 주신것 같다...
오늘을 살며 내일을 꿈꾸되 늘 공부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이제는...
나이 서른즈음에....
조금은 사람들에 대해서 알것 같기도 하다...
매일 아침 포기하지 않을 내꿈에 대해서 힘차게 일어나고...
매일 밤... 구름에 가리워져있는 내 미래에 빛날 별들에 대해서 꿈꾸면서....
그렇게 살아가리라는 것을....
나이 서른 즈음에.... 조금 알것 같다....
당신은.....어떤 누구와 귀족주의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