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갤러리 - 노인들의 나라
머리가 눈이 내린 듯 하얗게 된 할머니가 실버타운의 벽아래 놓인 의자에 앉아 있었다.
지나가면서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안부를 물었다.
“이제는 가진 게 시간 뿐이랍니다.”
노인의 말이었다.
그 노인을 보면 적막한 공간 속에서 사멸의 과정을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산다는 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에서 유튜브를 보면서 이 화면 저 화면
마음에 끌리는 대로 무심히 클릭을 하고 있었다. 지하철역 사람들이 오가는
바닥에 아흔 아홉살의 바짝 마른 영감이 초라한 모습으로 구걸을 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다가와서 돈을 주고 가고 있었다.
그런데 노인의 눈에서는 감사의 빛이 전혀 없었다. 방송국의 촬영팀이 그를 몰래
관찰한 것 같다. 오후가 되니까 그 노인은 택시를 잡아타고 부천으로 갔다.
그곳에 노인이 사는 다가구 주택이 있었다. 노인에게는 딸도 있었다.
다음날 아침 정해진 시각에 노인은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구걸을 하는
그 지하철역으로 가서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만만치 않은 택시비를 써가면서 왜 그렇게 매일 그 자리에 앉아 구걸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세상의 인정에 메말라 손을 내미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가면 인생도 색이 바래고 부수어지지만
풍화되어 가는 노년의 모습도 여러 가지였다.
또 다른 화면이 나오고 있었다. 골목길의 초라한 단층 주택이 나왔다.
그 집에서 혼자 사는 아흔아홉살의 할머니가 단정한 자세로 벽에 놓여있는
건반 앞에 앉아 있다. 할머니는 건반 위에 놓인 찬송가 악보를 보면서
갈퀴 같은 손으로 건반을 하나하나 짚어나가고 있었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 일흔 한살부터 독학으로 배운 피아노가 어느새 삼십년
가까이 되어가고 있다는 설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젊어서 자식을 키우고 먹고 사느라고 해 보고 싶었던 것을 인생의 노년에 하고
있다고 했다. 대단한 의지 같았다. 딸과 주변의 사람들이 그 노인에게 연주회의
기회를 만들었다. 가족과 지인 몇 사람을 청중으로 앉은 교회에서 할머니는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연주회를 하고 있었다.
그 얼굴에는 소녀 같은 미소와 수줍음이 묻어 있었다.
비슷한 내용을 담은 또 다른 화면이 소개되고 있었다. 일흔 여섯살의 부부가
외따로 떨어진 산속의 주택에서살고 있었다. 부인이 구석방에 설치되어 있는
드럼앞에 앉아 신나게 두드리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드럼을 연습하고 싶어 일부러 산 위의 외딴집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들 부부의 얼굴에서 지는 노을 속에서 불타오르는 마지막 열정을 보는 느낌이었다.
나의 돌아가신 어머니는 칠십대 중반이 되자 비로서 인생의 여유를 찾은 것 같았다.
교회에서 어머니는 서예반에 들어갔다. 붓과 벼루 그리고 먹을 준비한 어머니는
어느 날부터 한 글자 한 글자 정성들여 쓰기 시작했다. 아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칭찬이었다. 어머니가 쓴 글을 볼 때마다 나는 어머니를 추켜올렸다.
그 순간 어머니의 얼굴에서는 행복한 미소가 배어나왔다.
일년이 지나고 이년이 지나고 어머니의 집념은 십년가까이 갔다. 어느날 어머니가
나를 보고 글씨를 쓸 문장을 달라고 했다. 나는 어머니의 붓글씨로 남을 간단하고
좋은 문장을 생각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정했다.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우리 집안의 정신적 가훈을 그렇게 만들어 보고 싶었다. 어머니는 그 걸 쓰고 쓰고
또 썼다. 그리고 최종본을 액자에 넣어서 교회의 서예전에 응모했다.
전시회가 열리는 날 교회에 가서 벽에 걸린 노인들의 작품 속에서 어머니의 글씨를 보았다.
어머니를 다시 칭찬해 드렸다. 아들의 칭찬이라는 촉촉한 비를 맞고 어머니
내면에서 꽃이 피어나는 것 같았다. 톨스토이도 나이 팔십이 넘어 이태리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플라톤도 노인이 되어 수금을 새로 배웠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늙어가도 끝없이 배우고 배우고 그렇게 살아야 늙지 않을 것 같다.
누구에게나 열정은 있다. 다만 어떤 이는 그 열정을 삼십분 밖에 유지하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삼십일 밖에 유지하지 못하지만 성공한 사람은 그 열정을 삼십년간
유지한다. 인생의 기나긴 노정을 여러 단계로 나누어 끊임없는 작은 성취의 기쁨을
만끽한다면 삶 자체는 늘 축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