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삼류의 화려한 변신
3류가수 출신이라는 범죄인을 변호한 적이 있다.
감옥에 있는 그를 면회하면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지방 도시로 내려가 극장식당에서 한달정도 노래를 부른 적이 있어요.
당시 그 무대에서 일류가수인 김정호를 초청하는 바람에 저는 매니저가 예약해 둔 일급호텔에
스타가수와 같이 묵게 됐어요. 스타에 대한 대접이 대단하더라구요.
스타가수가 서울로 돌아간 날 저녁이었어요. 매니저가 슬리핑빽 하나를 툭 던져주면서
그날 밤부터 홀 뒤쪽 창고에서 자라고 하더라구요. 3류인 저는 찬밥 신세였죠.”
그런 게 내가 살아온 세상이었다. 어느 분야나 그 차별이 비슷했다. 노래로 성공하지 못한
그는 범죄의 길로 들어서 감옥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게 됐다. 세상에서는 일류만 살아남고
박수를 받지만 그건 극소수의 선택된 운명이다. 대부분은 삼류나 사류 오류로 세월의
그림자 속에서 우울하게 살아간다. 그러면 일류는 행복할까.
국내에서 정상에 오른 가수와 속을 터놓고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가수 동료들까지도
그를 진짜 아티스트라고 칭찬하고 존경하는 사람이었다. 한번은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뉴욕을 가봤더니 거기의 삼류 사류 아티스트도 나보다 재능이 뛰어나더라구요.
절망하고 돌아왔어요.”
그의 말이 사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분야만이 아니라 문학분야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문단의 최고 원로로 자리 잡은 소설가와 친했었다.
그가 나와 둘이 있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외국의 뛰어난 작가들을 보면서 나는 절망합니다. 그들을 보면 나는 삼류가 아니라
사류 오류인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이 나라에서는 과분한 대접을 받고 있는 거죠.
그렇지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류, 오류라도 그냥 살아가야죠.”
일류라는 사람들도 긴장과 내면의 고통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들면서 옷의 사이즈가 다른 것처럼 능력도 품질도 다 다르게 만든 것 같다.
세상에 내보낼 때 입에 물려준 수저도 달랐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가 있다.
인간적인 잣대로 생각할 때 나는 솔직히 하나님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머리도 재산도 재주도 끼도 사회에서의 배역도 공평하게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해 줘야 하나님다우신 게 아닌가 생각했다. ‘나는 나다 너는 뭐냐?’라는 식으로
세상을 살다가 두들겨 맞고 온통 멍투성이가 되어버린 적도 많다.
억울하다고 생각하니까 내 영혼만 지옥을 드나들었다. 성경을 찾아보니까 하나님은
너는 내가 만든 피조물이니까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불평하지 말라고 한다.
그건 만든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왕을 만들기도 했고
문지기를 만들기도 했다. 하기야 모두를 왕을 만들면 병사는 누가 하고 문지기는 누가 할까.
삼류가 있어야 상대적으로 일류가 있는 것이다.
오래전 나환자촌으로 음악 봉사를 가는 팀에 합류한 적이 있었다. 무명의 소리꾼, 춤꾼,
캬바레 삼류악사등으로 조직된 위문단이었다. 음악적 재주가 없는 나는 그들의 분장도구나
악기를 날라주는 잡부역할이었다.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마당에서 공연을 마쳤다.
세상에서 소외되어 살아온 나환자들이 엄청 좋아하는 것 같았다. 공연이 끝나고 나환자들이
차려준 밥상에서 밥을 먹을 때였다. 육십대쯤의 소리꾼 최씨가 미소띤 얼굴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어린 시절 창에 미쳐서 민요, 가요, 닥치는 대로 배웠죠. 잔치집과 밤무대를 전전하면서
평생을 보냈어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삼년 전부터는 그나마 불러주던 게 뚝 그쳤어요.
그래서 이왕에 배운 재주로 나환자촌이나 다니자고 한 거죠. 그런데 여기서는 나를 열광했어요.
모두들 제 손을 잡아보려고 난리데요. 사회에서는 삼류라고 무시하고 불러주지 않아도
여기서는 스타예요. 어깨가 절로 으쓱해지는 거예요.”
나는 비로서 알 것 같았다. 살아가는 데는 금 그릇과 은그릇만 필요한 게 아니다.
국밥을 담는 뚝배기도 필요하다.
일류와 이류 삼류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부여받은 재주와 능력으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 하찮게 보이더라도 그만이 가진 특별한 능력이다. 설사 그 능력이 삼류라
하더라도 바른 활용을 한다면 일류보다 놀라운 결과를 맞이하는 걸 봤다.
지독히 가난한 무명 소리꾼 최씨가 그랬다. 세월이 흐르고 그 무명소리꾼의 딸이
온 국민이 열광하는 디바가 되는 걸 멀리서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