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단풍이 들어가는 건
단풍나무만이 아니다
봄의 다리를 건너오느라
여름의 산을 넘어오느라
한편으론 지치고
한편으론 무성해진
나도 단풍이 들어간다
내가 지나온 숲에서
누군가 붙여 둔 표지만을 보기도 하고,
누군가 놓아 둔 의자에서 쉬기도 하고
누군가 걸어 놓은 컵으로 물을 마시기도 하면서
단풍나무처럼 나도 단풍이 들었다
그러나 겨울이 오기 전에
무거운 삶의 이파리들을 정리해야 한다
몇 가지에 골몰하기 위해
몇 가지만 남기고 털어 내야 한다
고마운 사람들을 위해
봄꽃을 피우고
건강한 여름 그늘을 엮으려면
이제 나는 낙엽 지는 단풍나무처럼
거추장스러운 이파리들을 버려야 한다
겨울나무처럼
모든 빛깔을 삼킨 채
단순해져야 한다
-최명숙 시, <단풍나무의 꿈>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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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 넝쿨에서 진잎이 떨어지는 8월 초닷새입니다
원당로 벚나무 잎새에도 단풍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주말 고향 선산과 선영 벌초를 마쳤다는 연락도 받았으니 계절을 실감하는 중입니다
밭가 둑에는 알밤이 떨어져 나뒹굴고 고구마 줄기도 가을빛에 물들어 갑니다
초목만 그런 게 아니라 오고가는 사람들 옷차림도 색깔이 달라집니다
가벼워보이던 색깔이 조금 무거워지면서 걸음걸이마저 진중해졌다고나 할까요
자연은 그렇게 단순해지는 중이건만 인간 세상은 날로 복잡해집니다
거추장스러운 비난과 음모 따위는 버려야 함에도 덮어쓴 위장포를 더 여미고 있네요
골몰하기 위해 털어내야 할 것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하룻길 천천히 걸으며 자주 웃으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