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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정승[1]이자 한국의 대표적인 친구 사이로 유명한 이항복과 이덕형을 이르는 말. 오성(鰲城)은 이항복의 봉호인 오성부원군[2]에서 따왔고, 한음(漢陰)은 이덕형의 호다.[3]
조선 최고의 개그 콤비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두 사람이 얽힌 코믹한 에피소드가 민담, 전래동화, 어린이용 문고 등으로 워낙 많이 다뤄지면서 흔히 두 사람이 불알친구 수준의 어린이일 때부터 알고 지낸 소꿉친구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두 사람이 진짜로 처음 만났던 때는 선조 11년(1578년)으로, 두 사람이 어른이 되어 과거 시험을 봤을 때였다. 이때가 세는 나이 기준으로 이항복은 23세, 이덕형은 18세.[4] 또한 이항복은 <백사집>에서 본인이 "내가 어렸을 때는 마치 짐승과 같아서 아무도 나를 바로잡아 주지 못했다."라고 밝혔을 정도로 어릴적 스테레오타입 그대로의 말썽꾸러기가 맞았던 반면, 이덕형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크게 두드러지거나 임팩트 있는 에피소드가 없는 편이다.
이덕형의 문집인 한음문고와 그의 후손 이병교가 밝혔듯이 둘은 실제로도 과거장에서 처음 만났고, 이항복이 이덕형보다 5살 형이다.[5][6] 이병교가 이렇게 밝히기 전에 고종은 이병교에게 "오성과 한음이 소꿉친구라는 게 정말인가? 그 사람들 장난친 일이 아직도 전설로 전해지니 매우 멋진 일인듯. 나이는 누가 많고 적은지 모르겠네?"라고 물었다고 한다. 고종은 태어나서 12세의 나이에 즉위할 때까지 궐 밖에서 살았던 인물이었던만큼 거리의 이야기꾼이나 여러 야담집을 통해 오성과 한음 이야기를 접해 이미 알고 있었으며, 오성과 한음이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다는 이야기는 이 때에도 민간에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는 조선 후기 백성들 중에서는 이항복의 본명이 '오성'인줄 알고 성을 오씨로 알았던 사람도 있었다고 전한다.
역사상의 이항복, 이덕형의 본모습보다 민담 속에서 그려진 이야기가 더 유명해진 케이스[7]지만, 이 두 사람이 평생에 걸친 각별한 우정을 나눈 남다른 관계였던 것 자체는 분명한 사실이다.
특히 이덕형의 문집인 한음문고를 보면 이덕형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가 총 110여 통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중 이항복에게 보낸 편지만 무려 77통에 이른다. 특히 이덕형은 이항복을 형(兄)이라는 매우 격식 없는 호칭으로 부르고 있으며 "형도 내 마음 몰라요"라고 징징대는 편지도 남아 있다.[8] 그런데 정작 이항복의 문집인 백사집에는 이덕형을 위해 지어준 시가 몇 수 남아 있지만, 이덕형에게 보낸 편지는 한 통도 실려 있지 않다.
물론 이덕형이 읽씹이나 당하는 그런 관계였던 건 아니고, 이덕형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이항복이 묘지명을 쓸 때 "내가 명보(이덕형의 자)를 그르쳤구나. 한스럽다."는 식으로 애통해 하고 있으며 이덕형이 세상을 떠났을 때 지은 시에서도 "목소리 죽여 남몰래 한원군(이덕형)을 곡하노라."는 구절이 남아 있다. 이항복이 꽤 인간 관계가 폭넓었던 것에 비해 이덕형은 인간 관계가 협소한 편이었지만 벼슬도 짝을 이뤄 한 경우도 있었고 실록에서도 이항복과 이덕형이 서로를 배려하는 기록도 남아 있던 만큼 두 사람이 매우 특별한 우정을 나눴던 것 자체는 분명하다.
이항복과 이덕형은 5살 차이였는데 공교롭게도 죽을 때에도 5년 차이가 났다. 이덕형은 1613년 사망, 이항복은 1618년 사망.
포천시는 그들과 유서가 깊은 지역이기 때문에 마스코트 역시 오성과 한음이다.
2018년 오성의 묘지가 있는 경기도 포천시에서는 포천역사문화관에서 '백사 이항복 선생 서거 40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병찬 대진대 교수는 '백사 이항복의 캐릭터 연구'를 발표하였는데 흥미로운 통계가 실려 있다. 기지가 넘치고 해학의 대가였던 오성에 대한 '문헌'설화는 중복된 것을 제외하면 87편에 이른다. 이 중 오성과 한음이 함께 등장하는 것은 6편에 불과하다. 물론 그중에 죽마고우 시절 이야기는 없다. 그러나 오성과 한음 '구비'설화는 180편 가까이 되고 그중 오성과 한음이 함께 등장하는 설화가 63편에 이른다. 상당수는 두 사람의 어린 시절 일화다.
1. 서당에서 공부할 때 수업 도중 훈장님이 졸고 있었는데 오성이 몰래 껍질을 안 깐 생밤을 화로에 넣어 폭발시켜 훈장님과 학생들을 놀라게 했다. 어린이용 문고판에서는 보통 이 때 한음과 처음 만난 것으로 나온다.
2. 오성이 본인의 집의 잘 익은 감을 따 먹으려고 하인을 하나 호출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하인이 옆집 권철[9] 대감의 자택으로 넘어간 가지의 감은 하나도 손을 안 대는 것이었다. 오성이 왜 그러는 거냐고 의아해하자 저쪽 감을 땄다가는 (하인) 본인이 옆집 하인한테 볼기를 맞기에 그럴 수 없다고 하였다. 이에 오성이 무슨 이유로 옆집 하인이 너를 구타할 자격이 있는 거냐고 묻자 옆집이 권철 대감의 집으로써 더 지체 높은 사람의 하인이니 그렇다는 것이다. 이에 오성이 옆집으로 가서 권철의 방 창호지를 손으로 뚫어 손을 넣고 권철에게 "대감, 이 손이 누구 손입니까?"라고 물었다. 권철은 황당해하며 "그게 당연히 네 손이지 누구 손이냐?"라고 대답했고, 이에 오성은 또다시 "이 손이 대감의 방으로 들어갔는데 대감의 손 아닙니까?"라고 다시 물었고, 권철은 "네 손에 달렸으니 당연히 네 손이지."라고 재차 답했다. 그리고 잠시 후 오성은 "그럼 저희 집 감나무에서 대감댁으로 넘어간 가지에 달린 감은 누구 감입니까?"라고 되묻자 권철이 웃으면서[10] "그야 당연히 너희 집 감이지."라고 하였고 이에 오성이 "그러면 왜 대감님댁 하인들이 담장 너머로 넘어간 감들을 못 따게 한 것입니까?"라고 다시 묻자 권철은 "아마도 우리 집 하인들이 배움이 부족해서 그랬던 모양이다.[11]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잘 교육하마."라고 하였고, 감들을 마저 다 따 가게 허가하였고, 이후 권철은 오성의 모습에 감탄했고, 이후 오성은 권율의 사위가 되면서 한집안 식구가 되었다.
3. 오성이 어린시절 대장간에 자주 놀러 갔는데 집에 가면서 몰래 못(이야기에 따라서는 편자)을 한두개씩 슬쩍해갔다. 당시에는 소위 말하는 개구멍바지라고 해서 엉덩이가 뚫려 있는 바지가 있었는데, 이걸 이용해서 개구멍바지를 입고 방문 후 훔치고 싶은 물건 위로 앉고서 슬쩍한 것. 이를 눈치챈 대장장이가 오성을 혼꾸녕을 내주기 위해 불에 달군 못을 맨 위에 올려놓았는데, 이를 몰랐던 오성이 못을 깔고 앉았다가 엉덩이에 화상을 입었다. 전승에 따라서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뒷이야기가 더 있기도 하다. 나중에 오성이 복숭아를 먹으며 놀러오고 대장장이가 하나 달라 부탁해 주는데, 이게 생복숭아였고, 이 일 이후에 대장간이 모종의 불운을 당해[12] 망하게 되었는데, 오성이 그동안 훔쳤던 못들을 단지에 넣어 전부 돌려주며 다시 재기하게 도와주었다는 결말.
4. 오성이 한 방 먹은 이야기도 있다. 오성이 한음에게 "내가 네 부인과 정을 통하였다"고 말하자, 이 말을 들은 한음 부인은 오성을 초청해서 떡에 똥을 넣어 오성에게 먹였다. 오성은 뭣도 모르고 똥이 든 떡을 먹었다가 호되게 당했다. 한음 부인은 거짓말을 하는 입에는 똥이 들어가야 한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5. 오성은 신붓감을 선보려고 인절미를 해서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고 몽둥이로 자기를 쫓으며 때리라고 시킨 뒤 도망치는 체하며 신부의 치마폭 속으로 들어갔다. 신부는 이에 당황하지 않고 “선을 보려면 겉선이나 보시지 속선까지 보십니까.”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6. 한음으로부터 한밤중에 전염병으로 일가족이 몰살한 집에 시체 감장(勘葬)[13]을 부탁받은 오성이 혼자 그 집에 이르러 시체를 감장하다가 갑자기 한 시체가 벌떡 일어나며 볼을 쥐어박는 바람에 혼비백산하였는데, 알고 보니 시체인 척 누워 있었던 한음의 장난이었다.
7. 오성의 아버지는 오성의 담력을 시험하려고 한밤중에 외딴 숲 속의 고목나무 구멍에 무엇이 있는가를 알아 오라고 시키고, 먼저 가서 나무 구멍 속에 숨어 있다가 오성이 구멍 속으로 손을 넣을 때 안에서 그의 손을 잡았는데, 오성은 놀라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체온이 느껴지자 귀신이 아니고 사람의 장난임을 알았다는 것이다.
8. 오성과 한음이 참새를 잡아 키우고 있었는데 어느 날 참새가 죽어버렸다. 이에 슬퍼한 오성과 한음은 새를 묻어주고 축문을 써주며 곡을 했는데 이를 본 오성의 아버지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장례식 놀이나 하냐?"고 오해하며 꾸중했다. 이에 오성은 "저희 때문에 참새가 억울하게 죽었는데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며 참새의 명복을 비는 축문을 아버지에게 보여주었다. 축문의 내용을 읽은 아버지가 그 문장 솜씨에 감탄하여 "한 번만 용서해줄 터이니 앞으로는 생명을 함부로 해치지 마라."고 주의를 주었다.
9. 둘이 어린 시절 시골 외갓집에 놀러갔는데, 그 곳에는 구두쇠 영감이 수박농사를 짓고 있었다. 오성과 한음은 맛있어 보이는 수박을 하나 따서 먹어봤는데, 이 영감이 거름을 안 줘서 비리고 맛도 더럽게 없어서 몇입 먹지도 못하고 퉤퉤 뱉어버렸다. 이에 둘은 수박밭에 말뚝을 박아 수박들을 몽땅 못 먹게 만들었으며, 둘은 "아마 영감이 이걸 목격하면 정신을 차릴 것이다.", "아니다, 정신을 차리기는 커녕 더 길길이 날뛸 것이다."라고 큭큭대며 상경했고, 다음날 이 모습을 보고 영감은 분기탱천해서 "아니 어떤 놈들이 우리 수박밭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은 거야? 당장 잡아서 모가지를 꺾어놔야지!"라고 길길이 날뛰었다. 그러나 그래놓고도 영감은 개과천선했는지 이듬해에 썩어버린 수박이 거름이 돼 맛 좋은 수박이 열렸고, 오성과 한음은 다시 그 시골을 찾았고, 영감은 둘에게 고마워하며 맛 좋은 수박을 대접했다.[14]
10. 허 서방이라는 이름을 가진 농부가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기 위해 어느 날 오성과 한음을 찾아왔다. 사정인 즉슨, 얼마 전 본인의 아내가 길을 걷다가 화장실이 너무 급한 나머지 이 마을의 최고 부자인 황대감의 밭머리에서 소변을 봤는데, 운나쁘게도 그만 황대감에게 들켜버리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고 극대노한 황대감은 허 서방의 처에게 화를 마구 내며 집의 황소를 가져오라는 어이없는 퀘스트를 내렸고,[15] 마을 사람들도 이게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면서 황대감을 원망했단다. 보아하니 황대감은 이 마을 내에서 인심 잃을 짓들만 골라 해 온 모양. 오성과 한음은 본인들이 해결해주겠다고 하고 허 서방을 돌려보낸 뒤 다음날 황대감이 출입하는 타이밍에 맞춰 짜고서 갑자기 대판 싸우는 척 연극을 하였다. 황대감이 무슨 일인고 하며 의아해하자 오성 曰 "제가 얼마전에 길을 가다가 하도 급해서 이 밭에다가 본의 아니게 오줌을 눴습니다. 그런데 제 친구가 이 모습을 봐버렸고, 여기서 오줌을 눴다가는 황소 한 마리를 빼앗기게 된다며 날뛰는 게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게 무슨 터무니없는 말이냐고 맞섰고, 그래서 그 문제로 싸움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성이 이렇게 또박또박 얘기하자 황 대감은 뜨끔했다. "저는 정말 이 고을에 그런 사람이 있다고 들었기에 이 친구를 말린 겁니다. 자기 밭에다 오줌을 누었다고 그 사람의 전 재산인 황소를 끌고 갔다고 하던데 혹시 대감님께서는 그 이야기 모르시나요?" 이번에는 한음이 맞장구를 치자 황 대감이 괜히 헛기침을 하며 딴전을 피웠다. "저것 보십시오. 현재 저 친구는 끝까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번에 암행어사가 되신 제 숙부께 말씀드려서 혼을 내주라고 할 겁니다. 하지만 세상에 그렇게 못된 짓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어르신?" 암행어사라는 말을 듣자 황 대감은 표정이 굳어졌다. "얘들아, 그만 가마를 돌려라. 갑자기 속이 좋지 않구나!" 황 대감은 그 길로 집으로 돌아가 허 서방을 호출했고, 그에게 황소를 돌려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보게, 내가 자네 부인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주려고 잠시 황소를 맡아두었던 것이니 오해는 말게. 자네도 생각해 보게. 상식적으로 아직 젊은 여자가 길바닥에서 방자스럽게 치마를 벌렁 까 내리고 소변을 보는 모습이 좋아 보이는가? 그래, 내 생각한 바가 있어서 한 일이니 그리 알게." 황 대감은 애써 웃음을 지으며 허 서방의 등을 두드려주었고, 허 서방은 그렇게 소를 뺏기는 일은 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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