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알았으면 좋겠어요. 꽃들은 다 어디로 갔나요?(마리아 트래버스)
“꽃들은 다 어디로 갔나요?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작사: 피터 시거 Peter Seeger. 노래 :피터, 바우로, 마리아.
꽃들은 다 어디로 갔나요?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오랜 시간이 지났어요. Long time passing.
꽃들은 다 어디로 갔나요?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옛날에. Long time ago.
꽃들은 다 어디로 갔나요?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소녀들은 그것들을 모두 골랐어요. The girls have picked them every one.
아, 언제 배우실 거예요? Oh, When will you ever learn?
아, 언제 배우실 거예요? Oh, When will you ever learn?
어린 소녀들 Young girls
그들은 모두 남편을 데려갔어요. They've taken husbands every one.
젊은 사람들 Young men
다들 유니폼을 입고 있어요. They're all in uniform.
군인 Soldiers
그들은 모두 묘지에 갔어요. They've gone to graveyards every one.
묘지 Graveyards
하나같이 꽃으로 뒤덮여 있어요. They're covered with flowers every one.
꽃들 Flowers
어린 소녀들이 그것들을 모두 골랐어요. Young girls have picked them every one.
1960년대 평화운동가요로 불렸던 노래인데 이 멤버 중 한명인 마리아 트래버스 Mary Travers(1936. 11. 9 미국 켄터키 생)가수가 2009년 9월 16일에 죽었습니다. 그녀의 14주년의 9월 16일에는 이 노래를 들어도 좋을 것입니다. 치과기공사로 일하면서 1960년대의 전쟁반대의 목소리로 노래한 마리아 트래버스의 소리로 지금의 전쟁을 멈추게 할 힘으로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수많은 이들을 한방에 죽이는 포탄을 수출하는 나라가 평화를 상징한다는 말도 이상하게 들립니다. 대포알 대신에 꽃을 던져주는 너무나 낭만적인 광고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평화를 노래한 이들이 대개 가난하게 살아서 마음이 짠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노래를 듣고 평화의 마음을 지니게 한 것에 고마운 마음을 갖습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 활동가는 마리아 트래버스를 "우리에게 자유로운 여성으로 보였고, 그것이 우리가 자유로워지는 데 도움이 되었다 ."고 피력했습니다. 대전의 우금치에서 일하는 평화를 세우는 벗들이 생각납니다. 대다수 가난하게 사는 벗들이어서 뵐 때마다 마음이 짠합니다.
마리아 트래버스는 "마리아. Mary(1971년)", "아침의 영광. Morning Glory(1972년)", "나의 모든 선택들. All My Choices(1973년)", "순환. Circles(1974년)", "우리들의 모든 사람들 안에서. It's in Everyone of Us(1978년)"등의 노래들을 녹음했습니다. 백혈병진단을 받고 치료받다가 죽어서 코네티컷 주 래딩의 움파우그묘지에 묻혔습니다. 마리아 앨범에 수록된 빌리 테일러가 작곡한 이 노래가 좋습니다. "자유롭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알았으면 좋겠어요. I Wish I Know How It Would Feel to Be Free ". 자유롭다는 것은 자기자신이 되는 것이고 행동과 말에 자유를 가진 것이고 두려움이 없는 것이라는 나나시몬 가수는 피력했습니다.
자유로워진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알았으면 좋겠어요. 나를 묶고 있는 모든 사슬을 끊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하고 싶은 말은 다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큰 소리로 말하고 명확하게 말하세요. 온 세상이 들을 수 있게요./
내 마음 속에 있는 사랑을 모두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를 갈라놓는 모든 막대를 제거하세요. 내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신이 알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당신은 보고 동의할 것이고. 모든 사람은 자유로워야 해요./
내가 주고 싶은 것을 모두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많이 늦었지만 다시 시작하겠어요./
글쎄요, 나도 하늘을 나는 새처럼 되고 싶어요. 내가 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 나는 태양을 향해 날아가서 바다를 내려다보고 싶어요. 그리고 나서 나는 노래를 부를 거예요. 왜냐면 난 그걸 알거든요, 예.
그러면 나는 노래를 부를 거예요. 왜냐면 나는 알고 있으니까요. 그러면 나는 노래할 거예요. 왜냐하면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예요.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자유로워진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아요. 예, 예. 아, 어떤 느낌인지 알겠어요. 예, 알겠어요. 어떤 느낌인지 알겠어요. 자유로워진 기분이 어떤가요, 주님, 주님, 주님, 예.
I wish I knew how it would feel to be free.I wish I could break all the chains holding me. I wish I could say all the things that I should say. Say 'em loud, say 'em clear. For the whole round world to hear./
I wish I could share all the love that's in my heart. Remove all the bars that keep us apart. I wish you could know what it means to be me. Then you'd see and agree. That every man should be free./
I wish I could give all I'm longing to give. I wish I could live like I'm longing to live. I wish I could do all the things that I can do. Though I'm way overdue, I'd be starting anew./
Well, I wish I could be like a bird in the sky. How sweet it would be if I found I could fly. Oh, I'd soar to the sun and look down at the sea. And then I'd sing 'cause I'd know, yeah.
Then I'd sing 'cause I'd know, yeah. Then I'd sing 'cause I'd know. I'd know how it feels. I'd know how it feels to be free, yeah, yeah. Oh, I'd know how it feels. Yes, I'd know, I'd know how it feels. How it feels to be free, Lord, Lord, Lord, yeah.
이 노래는 장례식장에서 많이 듣기도 하는 노래이고, 보기힘든 성실함을 이 노래에서 느끼기도 하고 영혼 안으로 들어가도록 이끄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아, 누가 우리를 여기에 데려다 놓았을까. 그때 거기가 아닌 지금 여기에(박노해의 시 ”누가 우리를 여기에“의 마지막 싯귀).” 지금 여기에 사는 나를 안다는 것은 영적으로 참으로 중요한 질문입니다. 과거의 나가 아닌 현재의 나로 산다는 것은 영성생활의 핵심인데 박노해의 싯귀가 저 스스로 지금을 사는지를 질문하게 합니다. 청년시절의 불타는 심정으로 지금도 사시는 박노해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타는 열정으로 사시는 박시인의 안해의 겸손한 큰 마음이 기억이 납니다. 참으로 귀한 박시인 부부이십니다. 지금 여기에 데려다 놓은 이는 하느님인데 내가 과거로 사는 것이라면 어리석은 것입니다. 하느님은 늘 나에게 바라십니다. 과거로 나를 살지 말고 현재로 살라고요.
추워서 죽기 때문에 우리는 추위를 싫어합니다. 춥다는 것은 열이 없다는 단순한 사실에서 본다면 추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열을 지니고자 합니다. 우리 존재의 이유가 열을 형성해 가는 것입니다. 서로 힘을 합해 열을 형성해 죽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추위처럼 우리 안에 악이 존재하는 것으로 인하여 우리가 더욱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게 됩니다. 비바람 몰아치는 어두운 밤이 지나 모두가 아침을 맞이했다는 이야기가 성경이야기의 핵심이라면 우리는 참으로 고난 중에도 영광을 이미 지니고 살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고난을 받는다면 고난 속에서 고난을 이길 힘도 하느님이 주셨음을 믿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믿음을 지닌 인간으로 인하여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9월 17일은 어린 시절부터 환상을 본 신비주의자, 설교자였던 12세기 베네딕토회 수녀인 빙겐의 힐데가르트 축일입니다. 그녀는 기적을 일으킨 사람도 아니고 순교한 사람도 아니면서 그녀의 업적이 너무 커서 성인과 교회학자로 시성받았습니다. 열 번째 자녀로 십일조의 개념으로 교회에 바쳐 수녀가 되었다는 말도 들립니다. 평생을 하느님께 자신을 쏟아 부은 삶입니다. 여성들만을 위한 독립된 수녀원을 세웠기에 페미니스트들이 좋아합니다. 교종과 왕들이 그녀와 편지를 주고 받아 생각과 조언을 구하였습니다. 그 시대의 여성으로 그녀는 자신의 은사를 알고 모두의 이익을 위해 그것을 발전시킨 진정으로 겸손한 여성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녀는 여성 운동의 수호성인이 되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다음은 그녀의 어록입니다.
“선한 행동을 하지 않고 단지 믿음이라는 그림자 뒤에 숨어있는 자는 주를 경배하는 자가 아닙니다. 또한 우리는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고, 인간이 비롯되지 않은 이교도의 신들을 거부합니다. 그런 신들은 우리의 동반자가 아닙니다.”
“육신은 죄에서 잉태되며 육신에서 태어납니다. ··· 모든 영적인 존재는 하느님에게서 비롯됩니다. 영은 육신이 되지 않으며, 육신 역시 영이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영과 육의 일체화에 의해 우리는 완성됩니다.”
“모든 살아있는 피조물은 창조주이신 주를 경배해야지 자신을 높이려 해서는 안 됩니다.”
“광기의 길을 따르는 자와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지혜를 비웃는 자들은 저 자신을 저주함이라. 이들은 영생의 축복을 모르기에 그 악행은 끝이 없도다. 내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싶어 하지도 않고, 자신의 타고난 성질이 왜 이토록 변덕스러운지 고민하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