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가족에 파송된 원로사제(박경조주교)
뜨겁던 여름날 뒤에 오는 가을날의 신선한 바람과 함께 오는 아침 햇살은 나팔꽃을 가장 신선하게 보게 하는 것처럼 식물에게 좋고 인간에게도 좋고 고기들에게도 좋고 동물들에게도 좋습니다. 특히 거칠고 비참하게 사는 인간에게 살 힘이 나는 것은 하느님이 지켜주신다는 확고한 믿음입니다. 거칠고 비참한 인간이 뱀에 물렸을 때 죽게 되는데 이러한 믿음이 없으면 구리뱀을 걸어놓고 쳐다본 사람이 살아날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민수 21:4-9). 하느님이 세상과 우리를 다스리러 오신다는 뜻은 “모든 사람이 모든 곳에서 우리 하느님의 승리를 보게 되었다. All people everywhere have seen the victory of our God(시편 98:3).”는 것입니다. 아침 햇살은 우리에게 모든 곳에서 하느님의 승리를 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종의 신분을 취하시고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필립 2:7).” 오히려 자신의 것을 다 내어놓으신 예수님의 길이 우리의 길임을 받아들입니다. 자신의 것을 다 내어놓게 한 밤을 지나 아침 햇살이 떠오를 때는 자신의 안이 아침 햇살로 인하여 텅 비어있음을 보고 아침 햇살로 자신의 안을 채우는 거룩한 시간이 됩니다. 그렇게 아침 햇살은 “누구에게나 인류 모두에게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3:15).” 하느님이 주시는 아침 햇살은 지난한 밤 이후에 올 우리를 구원할 희망의 빛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수녀원의 건물이 커서 이를 유지하고 보수하기 위하여 파출부로 가서 돈을 버는 50대의 수녀님이 이제 70이 다 되었습니다. 이제 요양원으로 하느님이 파송하셔서 요양원에서 십자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기뻐하시는 노 수녀님의 입술이 주님께 찬미를 바치는 황금의 입술로 보였습니다. 그렇게 제도적인 교회에서 일을 마치고 가정으로 파송된 원로사제의 건강한 주님을 따르는 겸손을 바라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처럼 오직 하느님만 믿고 자신의 삶의 중요 결정을 내린 아브라함의 후예들이 성공회 원로사제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오직 주님만 따르고 가정에 파송된 원로사제의 삶을 끝까지 지켜주시는 하느님의 자비심의 크심에 매 순간 놀라울 뿐입니다. 원로사제가 되는 마지막 관문에 들어갈 때 주님이 주시는 마지막 시험과제를 잘 통과해야만 합니다. “그동안 하느님을 믿었다고 하는데 진짜 나 하느님을 네가 믿니?”라는 하느님의 마지막 질문에 답을 준비하는 가정에 파송된 원로사제입니다. 가장 잘 알기 때문에 가장 거룩한 믿음으로 만나기 어려운 가정에서 하느님의 제자로 파송된 원로사제의 삶이 아름답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교구장 주교를 내려놓고 외국으로 파송하시는 하느님의 뜻이 제게서 잘 이루어지기를 비는 마음으로만 지니고 사는 시간입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11)”는 하늘로부터 오는 소리를 들은 예수님입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태어날 때 부모님과 형제자매들과 친척들의 환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후 살면서 환대가 조금씩 사라지면서 환대 대신에 분노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 분노로 자신이 아닌 사람으로 살게 되어 자유를 잃어버린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후 세시가 오자 마지막으로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My God why did you abandon me?(마르 15:34)”. 예수님은 마지막에 가서는 함께 살고 가장 아낀 제자인 베드로까지 예수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떠나갔고 하느님 아버지조차도 버리신 외아들인 예수자신을 버리신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시고 아픈 사람들을 치유해 주시고 삶의 비젼을 주신 예수님 자신이 그들로부터 버림받고, 자신이 절대적으로 신뢰한 하느님 아버지까지 자신을 내버려 부정당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사람과 하느님으로부터 완전히 버림을 당한 사람이 된 예수님이 되는 시간이 원로사제의 시간입니다. 자신의 살았던 삶까지 부정당한 존재가 된 예수님이 느껴져 마음이 매우 아픈 시간이었습니다. 예리한 칼끝으로 등짝에 찔림을 당할 때 얼마나 아팠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원로사제를 위하여 기도를 아침 햇살이 오는 줄도 모르고 기도를 바친 아침입니다.
과거가 현재를 정의하게 두지 않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현재가 과거를 정의하게 하는 것입니다. 더 한발 깊이 들어가면 미래를 보며 현재의 토대로 과거를 보는 삶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삶의 주도권을 사제로 가졌을지는 몰라도 진실한 사제는 사제사목자일 때에도 주도권은 사제에게 이미 없었던 것이고 오직 주도권은 주님께 있었다는 것입니다. 원로사제가 되어서 실질적으로 삶의 주도권이 주님께 있었음을 살게 됩니다. 주도권이 주님께 있다고 고백을 하는 순간이 원로사제가 되면서 드러나게 됩니다. 실수했다고 하여 화를 내지 않게 되고 편견을 갖고 보지 않게 되는 원로사제가 되면 빡빡한 사람이기 보다는 부드러운 사람이 되어 갑니다. 원로사제 스스로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니 잘난 척을 하지 않고 사니 긴장없이 물 흐르듯이 살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 지옥임을 원로사제가 되어서 깨닫게 됩니다. 지금 자신 앞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하느님이 주신 복입니다.함께 헤쳐나갈 수 있는 가족과 성가족으로 원로가 되어 파송되었다는 단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원로사제는 주님을 찬미하는 깊은 밤이 됩니다. “사람마다 제가 가꾼 포도나무 그늘, 무화과나무 아래 편히 앉아 쉬리라.- 만군의 주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다. Everyone will live in peace among their own vineyards and fig trees, and no one will make them afraid. The Lord Almighty has promised this(미가 4:4).” 각 사람이 자기 포도원과 무화과나무 가운데서 평화롭게 살 것이며 그들을 두렵게 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만군의 하느님께서 이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두려움을 없이하시고자 이 시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위글은 박경조주교님과의 통화에서 제게 힘을 주시고 위로를 주시고자 제게 주신 말씀입니다. 교구장 주교로 교구를 성령으로 활성화 하였고 그 힘으로 영국에 파송되어 창의적으로 왕성한 새로운 선교가 세워질 것을 확신하신다면서 저를 위하여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