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안전한 곳은 하느님의 뜻입니다( 코리 텐 붐)
네덜란드의 제2차 세계대전 영웅 코리 텐 붐 Corrie Ten Boom(1892.4.15.- 1983.4.15.)은 시계 제작자 가족일 뿐만 아니라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으며 상점 위의 큰 집에서 살았습니다. 나치가 유대인들을 죽음의 곳으로 이송하는 것을 막기 위해 유대인 가족을 큰 집 다락방에 숨기기 시작했습니다. Corrie는 결국 제보자에 의해 비난을 받았고 그들의 집은 독일군에 의해 습격당했습니다. 그곳에 숨어 있던 유대인 가족은 다락방 가짜 벽 뒤에 숨어 있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Corrie와 그녀의 여동생은 체포되어 증거도 없이 독일의 여성처벌 수용소인 라벤스브르크 Ravensbruck로 보내졌습니다. 그들은 굶주리고 학대당했으며 하루 12~15시간 동안 일했습니다. 그들에겐 성경은 없었고, 얇은 티슈 페이퍼에 쓰여진 마가복음 한 권만 있었는데, 결국에는 닳아 없어졌습니다. 그 무렵 그들은 그 책을 너무나 자주 읽었기 때문에 이미 암기하고 있었습니다. Corrie의 여동생은 수용소에서 죽었고 나치는 결국 Ravensbruck에 수감된 모든 사람을 죽였습니다. 사무상의 실수로 코리는 실수로 풀려났고 모든 수감자들을 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지기 불과 2주 전에 네덜란드로 돌아왔습니다. 그녀는 즉시 유대인과 집시 가족을 보호하고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로 돌아갔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Corrie는 전쟁에서의 공로로 네덜란드로부터 최고의 민간인 훈장을 받았으며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저서 “은신처. The Hiding Place(1975)”에서 Corrie는 자신의 첫 생각이 하나님께 있었다고 썼습니다. “주님, 제가 무엇을 합니까?” 그녀는 하나님께서 “코리를 용서하세요!”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주님, 그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수감호의 경비병으로 일한 독일인을 전쟁이 끝난 1년후에 만났는데 코리는 손을 내밀며 “당신은 Ravensbruck에서 나를 지키는 경비원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용서하라고 하셨으니 나도 당신을 용서합니다.” 그녀는 “당신을 용서합니다”라는 말을 하자마자 용서가 현실이 되었다고 썼습니다. 그녀는 갑자기 독일 경비병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나치당의 희생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경비병에게 미치는 영향도 똑같이 극적이었습니다. 갑자기 “미안해요, 너무 미안해요”라며 무너졌습니다. 그녀는 용서란 자신이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의지의 행위라고 썼습니다.' 용서에는 본능적이거나 자동적인 것이 없습니다. 그녀는 용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원한 resentment"이라는 단어는 문자 그대로 "다시 re 느낀다 sentment"를 의미합니다. 용서가 없었다면 그녀는 강제 수용소의 악덕 속에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항상 그 타락과 황폐함을 다시 느끼고 결코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곧 Corrie의 놀라운 삶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습니까? 아주 쉬운 용서조차도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까? 이런 자신에게 질문할 때 우리는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용서는 자기 스스로 할 수 있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힘이 주어질 때에 용서가 가능한 것으로 성령의 움직임으로 이루어지는 용서입니다. 용서는 계산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닙니다. 1달란트가 당시 15년치 돈인데 1만달란트라면 15만년치의 돈이니 무진장 큰 액수입니다. 용서는 큰 은혜입니다. 용서는 용서한 사람과 용서받은 사람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며, 이는 우리를 Corrie Ten Boom으로 다시 데려옵니다. 우리가 용서하면 하늘나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납니다. 양측 모두 사건의 고통에 묶여 있는 일종의 속박에서 풀려납니다. 전쟁 후 네덜란드에서는 나치 협력자와 정보원은 어떤 형태의 고용도 허용되지 않았으며, 여러분이 상상할 수 있듯이 사회 보장을 위한 돈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음식이나 주택을 살 돈이 없었습니다.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은 강제 수용소 생존자들을 위해 블로멘달 Bloemendaal에 재활 센터를 세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은 박해를 받고 있는 독일군을 도운 사람들, 텐 붐즈에 대해 알린 사람들, 죽음을 초래한 사람들을 위해 재활 센터를 세웠습니다. 그녀의 여동생과 다른 가족들의 죽음이 거의 그녀 자신의 죽음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유대인이 하느님께 소중하다는 사실과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사실이 그녀의 신앙이었던 것입니다.하느님의 눈에는 정신장애자가 시계제작자인 자신보다 더 가치가 있을 수 있다는 변호를 한 그녀입니다.
“가장 안전한 곳은 하느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언제나 그것을 알도록 기도를 드리자.” “나처럼 평범하고 뻔한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도 하느님께서 사용하시도록 해 드릴 때 완전히 새로운 미래가 준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언제나 그곳에 있겠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든지 그곳은 예수님을 위한 증인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동생 베시가 있는 어느 곳에서든지 베시는 예수님 이야기를 했다. 몸이 약해질수록 믿음이 더 강해지는 듯했다.” “주님의 은혜보다 더 깊은 고난의 구렁텅이가 없다는 것을 말해야 해.” “원수들을 위하여, 평안을 위하여,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