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크든 작든 자기만의 일을 꾸려가는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꿈꾸는 미래 속의 50~60대는 어떤 모습일까?’ 하는 물음을 품게 됐습니다.
운 좋게도, 조언을 빙자한 훈계를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사실 나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몰라” 라며 담백하게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더 많았죠.
그 말을 들은 후의 기분은 ’50~60대에도 미래가 막막하다니 절망적인 걸.’ 이라는 불안보다는
‘이룬 것이 많고, 오래 일하신 분들도 늘 탄탄한 계획을 세우고 계신 건 아니구나.’ 하는
안도 섞인 끄덕임에 가까웠습니다.
사실 회사 밖에서 일하면서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특히 ‘계획’에 관한 고민이 컸습니다.
자칭 ’계획 러버‘이지만 되도록 장기계획은 세우지 않는 편입니다.
한 번도 지켜 진 적이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00고시’에 몰두하는 사람들을 보면 경외심이 생깁니다.
저렇게 긴 안목으로 침착하게 인생을 살아가다니…
하지만 혼자서 일하며 내가 나를 책임져야 하는 마당에, 전처럼 단기 계획만 가지고 살아도 괜찮은 걸까?
10년 계획, 5년 계획, 3년 계획을 탄탄히 세워둬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 불안이 앞서기 시작했습니다.
머리를 싸매고 앉아 이런저런 계획을 세워봤지만, 앞날을 예측하는 건 점점 더 어려워졌죠.
그래서 언제부턴가 머릿속에 새겨둔 말이 있습니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애정하는 이동진 평론가의 블로그 대문 글인데, 이 문장을 보자마자 반가워서 웃음이 날 정도였습니다.
딱 내가 찾는 마음이었다고나 할까요.
이후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계획에 대한 고민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때면, 꼭 저 문장을 소개합니다.
그러면 의외로 많은 사람이 장기계획보다는 하루하루의 성실을 쌓아가며 자기 일을 만들어왔다는 걸 알았습니다.
한국에 처음으로 ‘조향 학원’이란 것을 만드셨던 한 원장님은.
‘몇 년 안에 00을 이루겠다.’는 목표가 아니라 ’00을 하고 싶다.‘, ‘언젠가 00이 되면 좋겠다.’라고
꾸준히 바라며 살아오셨을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뭔가 계획을 거창하게 세워도 잘 이루어지지 않더라.
그런데 열심히 살다 돌아보면 이미 해낸 일들이 거기 있는 거야.”
글 쓰는 사람, 조향하는 사람은 많지만
글을 쓰며 동시에 조향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서인지 사람들은 자주 묻습니다.
“글쓰기와 조향을 동시에 하는 게 어떤 장점이 있어?”
“그 두 가지를 가지고 앞으로 어떤 걸 이룰 거야?”
하지만 항상 그럴싸한 답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시작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나의 다음 책에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은지,
나의 다음 향수에는 어떤 향을 담고 싶은지는 명확하게 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만들기 위해 어제도 오늘도 노력했고 내일도 노력할 것입니다.
이렇게 매일 매일을 성실하게 이루는 걸음 속에서,
되는 대로 헤매며 살아가는 것 같은 내 삶도 어디론가 향하고 있겠지요.
언젠가 뒤돌아봤을 때 무엇을 보게 될지 지금은 절대로 알 수 없고,
그래서 더 살아볼 재미가 있는 것 아닐까요?
-행복한가에서 퍼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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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관의 나이에 서게 된 일선교단에서부터 주위의 기대를 모은 교사였습니다
열정적으로 맡은 업무에 도전하였고, 휴일도 없이 제자들과 어울려 꿈을 꾸었습니다
보이스카웃 야영활동, 새마을 운동의 애향단 활동, 상설 특별활동 등 밤낮도 없었지요
연구시범학교에 근무할 때는 계획을 세우고, 활동을 추진하며 성과를 누가기록했습니다
일 잘하는 연구담당교사로 여러 학교의 선택받을 정도로 신뢰를 쌓았습니다
취미를 살려 문예지도에도 성과를 얻었고 마침내 스스로 등단도 이루어 문단말석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가장 젊은 나이에 승진할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시운이 따르지 않더라구요
도내에서 가장 벽지인 울릉도에 두 차례나 근무했어도 이런저런 사유로 입길에만 오르다 말았지요
그러면서 동화집도 내고, 시집을 7권이나 발표했으며 손주들을 위한 시집도 4권 묶었습니다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낸 적은 없었지만, 명예퇴임하던 날까지 주어지는 대로 그냥 살았습니다
이제 연금받는 퇴작자로서 작은 텃밭일구고, 몇 문학단체에 머물고 있어도 살만 합니다
앞서겠다는 마음 접으니 한 발짝 뒤에서 따라걷는 것도 즐거움이고
매일 카페에 새글 등불이 꺼지지 않게 몇 개 꼭지를 맡아 운영하는 것도 재미가 쏠쏠합니다
글쓰기를 통해 정서가 녹슬지 않도록 단도리하며 이어지는 인연들과 교유합니다
오늘 하룻길도 천천히 걸으며 자주 웃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