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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헐~~~~
왜 그랴?"
아........더버서요.
지금도 더분데 앞으로 더 더버진다카니
상상 만으로도 후덜덜~ 더브네요.
시베리아의 얼음이 5월즈음부터 다 녹아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고 해요.
이게 대기권의 기단 변화를 일으ㅋ켜
이상기후를 만드는 한 원인이라고 합니다.
결과 자칫 7~8월 한반도에서
이상 폭우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합니다.
집중호우 형태의.
플리즈~~~~
따뜻한 기류와 찬기류가
한반도의 상공에서 격렬한 형태로 부딪히지 말았으면 싶습니다.
기상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금 추세대로 가면 해류가 점차 순환하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되면 온도차가 극에서 극을 달리게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투모로우'인가 하는 재난 영화가 있는데
갑자기 지구 전체가 꽁꽁 얼어붙습니다.
그게 현실화될 수 있다고 하던데요.
그리되면 한반도는 열대 기후가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하더군요.
이런 것을 보면서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좀 더 가까워졌나보다~합니다.
그만큼 죄가 관영했다는 것이므로
이상기후를 보면서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까워 왔다면
이 땅에 남겨질 자들에겐 어마무시한 고통의 기간이 있을 것이라 하니
더욱 믿음을 단단하게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러나 죄가 넘실거림으로 믿음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아이러니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 만일 그때 남겨진다면 어쩔겨?"
생각해본 바가 없어서 모르겠으나
그래서 더욱 더 주님께 감사, 또 감사할 것 없다고 여깁니다.
'나는 주님을 뵈러 올라간데이~~~' 그거이 아니라
때가 점차 가까워져 올수록 앞에 적은 이유로
은혜를 받기가 쉽지 않다고 여기는데,
그럼에도 주님을 알아갈 수 있는 은헤를 주셨음에 감사합니다.
주님의 은혜가 없는 가운데 스스로 주님을 믿을 수 있나요?
주님이 함께 하여주시지 않으면 자기 식의 믿음 등을 만들걸요.
대표적인 예를 들라면 이단들 아닌지요?
그들은 주님을 믿는다고 여기지만, 주님을 계시지 않습니다.
미혹의 영만 가득할 뿐.
곳곳에서 불신과 미혹이 넘실거리는 중이라고 여깁니다.
이를 선택하고 말고는 자신의 선택에 불과합니다.
아시다시피 미혹은 진리에 반하는 것입니다.
진리에 반하는 것은 비진리이기에 거짓이 되어지고요.
미혹이 되어지는 이유는 거짓을 받아들였기 때문이고
거짓을 말하기 때문이라고 압니다.
즉 거짓의 문제인데요. 어느 정도가 되면
미혹의 영 침입을 받는지 알지 못합니다만
그 시간을(침입받는 시간~~) 단축시키고자 한다면
이단들마냥 진리의 말씀을 어지럽히면 될 것입니다.
말씀을 더럽히고 혼잡케 하면 진노하심 속으로도
빠르게 들어갈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미혹을 일으키는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인데요.
그 중 하나는 객관적,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슈퍼내츄럴한(초자연적인~) 현상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축사에 관한 내용들을 접한 적이 있습니다.
보면서 상당부분 미혹이었다고 여겼습니다.
예컨대 어느 사람이 주기적으로 공격을 받곤 한답니다.
뱀의 쇳소리 같은 목소리가 나오고
심지어 몸이 뱀처럼 뒤틀리기도 한다는 것이야요.
해결하고자 영력이 강하다고 주장하는
어느 이를 찾아 기도를 받곤 한다는데요.
~~~~~여기까지도 그럴 수 있다고 여기지만
마귀와 무협지에서처럼 무공을 겨루는 것이 아닐진데
당사자의 죄에 대한 회개함 등이 없이
오로지 기도를 해주는 사람의 능력만으로~
마치 무속인을 찾아 주기적으로 굿을 하는 것과
진배없어 보였다는.
개인적인 궁금증))
왜 악한 영이
사람의 목소리를 이용하여 뱀소리와 같은
쓋쓋~거리는 소리를 내도록 하는 것일까?
정확히 알지 못하나 추론을 해보면
장난 내지는 속임을 위한 등의 이유가 있겠다 합니다.
"정신이 멀쩡한 가운데에서도 그게 가능햐?
뇌기능 이상 등으로 인한 것이라면 모를까
요즘 세상에 이상한 소리를 내고 몸을 뒤틀고 하는 것 말여.
과장 등의 공포 영화에서나 나오는 것이 아닐까? "
악한 영의 개입 내지는 작용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여깁니다.
요상시레 헐벗은 이들의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축제일 수 없는 것을 축제란 이름을 붙여
길거리로 뛰어나온 이들의 사진이었어요.
기괴함+헐벗음+난해한 퍼포먼스 등의 뒤엔
어떤 존재가 있었을까~~ 합니다.
그 사람들은 정신줄을 놓은 이들이 아닌
자기 정신으로 그러는 것일텐데요.
뱀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나
요상시런 퍼포먼스 등이 뭐가 다른가요?
"자의로 그러는 것과 무의식 가운데 되어지는 것은 다르잖여"
그렇긴 하지만
자의여도 공개된 장소에서 그럴 정도면
일상 중 무의식적인 가운데 자연스럽게(?)
많은 것들이 있었을 겁니다.
따라서 다른 이가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정도라면
해당되는 그 사람은 많이 장악되어진 상태이거나
그 직전의 상태가 아닐까란 의심을 가져봅니다.
말씀을 이용한 미혹도
얼마든 던질 수 있다고 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네요.
'주님을 믿으면 만사가 형통하리~~'
얼마나 탐스럽고 이쁩니까.
모든 것이 다 형통하게 된다는데요.
하지만 주님을 믿음으로
실제로 그렇기만 하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어떤디?"
저는 만사형통이라기보다는
(주님으로 인해 ) 미움을 받기도 하고
이전에는 경험한 바가 없었다고 여겨지는
강한 사단이의 공격을 받는 등
꽃길은커녕 날카로운 돌들이 많아
언제든 베이고 다칠지 모르는 길이라고 하는 것이 ...
고백컨대 저는 주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입니다.
여전히 가느다란 거미줄같은 믿음에 불과하나
그 믿음마저 잃게 된다면
바로 거센 공격의 자리에 놓일 것을 압니다.
넘어졌을 때
천천히 공격이 들어왔었다면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는데
속전속결식의 공격을 받았어요.
영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 얼마나 처참한 상황인지
어떤 공격이 들어오는지 등에 대해 경험해봤습니다.
그럼에도 감사하고 기쁜 것이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이란 것이
아침에 생겼다 사라지는 안개와도 같은 것인데
무엇을 향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의
분명한 목적지가 확고부동해졌다는 것입니다.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나 합니다.
누가 그럽디요.
"니는 공격을 받으면 더 단단해지잖여~~~"
헐~~~
이는 미혹에 해당됩니다.
제 경우라고 예외겠는지요?
공격을 받으면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사실 공격을 받는다는 것이 그렇습니다.
쳐내지 못했기에 공격을 받는 것이지
제 수준에서의 믿음으로 쉽게 쳐낼 수 있었다면
공격을 받지 않았겠죠.
공격이 강한 것엔
본질적으로는 죄의 문제이겠지만
강한 존재이기에 강한 공격이 오는 것일 수도 있겠죠.
죄의 문제라는 것은 자신의 죄일 수도 있고
가계 저주같은 저주로 인한 것일 수도 있는지라
타인이 쉽게 개입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익힌 것이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하면서 알고도 들어간다면
풍차를 향해 달려들었던 돈키호테나 뭐가 다르겠는지요?
공격을 피할 수 있으면
아무리 교활한 덫을 친다고 해도 걸리지 말고
피하는 것이 상책이란 것을 알았어요.
"그 전에는 몰랐어?"
안다는 것과 실제 그리한다는 것은 다른 겁니다.
역시도 미혹으로 여기는데요.
타인에게 자신이 회개할 죄가 무엇인가에 대해
묻는 종류의 미혹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 사람보다는 많은 사람에게서 발견한 것인데
그런 경우 얼마나 회개가 가능할런지 의문입니다.
이 부분을 생각해봅니다.
매우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면
성령님의 이끄심으로 인한 경우라고 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남에게 자신에 대해
판단, 비판, 정죄 등을 해달라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따라서 타인을 죄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은지요?
회개는 은혜의 영역에 속한 것으로
죄를 알려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자신의 믿음 수준에 따라 깨달을 수 있는 범위가 다른 듯 합니다.
하여 이끄심을 따라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성령님의 사역을 대신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은
주님을 부인하는 죄일 수도 있겠다 합니다.
"그라도 회개를 하면 은혜라고 여길 수 있는 것 아닌지?"
아닐 겁니다.
사람의 판단이 정확하다고 할 수 없는데다
기억 등의 왜곡 문제가 까어들 수도 있고 등등과
성령님이 일깨워주시는 것이 아닌 경우라면
단지 반성문을 쓰는 수준이 되기 쉬울 것 같습니다.
만사형통이란 미혹을 보곤 합니다.
목사님의 주일 설교에서처럼
주님을 믿는다는 것과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산다는 것은 다른 것인데
동일시 여기는 기복주의적인 미혹이 팽배한 듯 싶습니다.
제게 가장 친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주저함 없이 남편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복음을 전달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봅니다.
어제 그랬죠.
"나와 같이 설교를 들을 것인가 vs
성경이라도 복음서 위주로 읽을 것인가"
후자를 선택하겠답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나와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지 않겠다는 것으로 여겨
집을 나가겠다~~~라고 했거든요 ㅋㅋ
"정말로 가출하려고 했어?"
잉~~
농담이었고 농담이란 것을 몰랐을리 없는데요~~~
읽다가 궁금한 부분이 있으면
혼자 알려하지 말고 일단 제게 물어보라고 했어요.
오늘 아침에 읽은 부분에 대해 말을 하는데
사람의 이름이 틀렸습니다.
바로 잡아주었는데 아니라는 겁니다.
'성경에 오탈자가 있었나?' 하고는 말았는데,
방금 전에 확인해보니 오탈자는 없다는.
이처럼 제게 마음이 완전히 열려져 있다고 해도
때가 아직 아니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제 경우를 돌아보아도
해결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부분에 부딪혔을 때
주님을 간구했었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죽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면~이란
공포심이 생겼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죽음이 무서워?"
아닙니다.
죽음이 이젠 무섭지 않지만
그러나 좀 더 오래 살기를 바랍니다.
단지 저의 의로서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 아님을 알지만
주변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줄 수 있도록요.
주님을 십자가에 단 이들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강제하도록 하심이 아닌 살아서의 심판을 받은 가운데
자신들의 자유의지로서 악한 길을 갔던 것에 불과함을 봅니다
심판을 하시기 이전에
되돌릴 수 있는 기회를 주셨을 때를
제대로 선용하지 못한 것의 결과물이고요,
사람들은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기 쉬운 존재인듯요.
언제든 자신이 원할 때, 은혜를 주신다는 믿음.
은혜를 주실 때 은혜를 받아들인다와
내가 원하면 은혜를 주신다는 것은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설마 그런 이들이 얼마나 있간디?
없을거여~~~~~"
그런가요?
사람들이 지닌 자유의지의 원본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모르는 이들이 많은 듯요.
하나님의 자유의지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생각해보려조차도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전에 누가 그랬다디요.
지금은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나중에 나이들었을 때
천국에 가야 하므로 주님을 믿겠다고.
저의 생각에 불과하나
주님을 자신의 행복을 위한 수단 즈음으로 여기는 것인지라
그 사람이 주님을 영접하기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설령 잠시 주님을 만난다고 해도 그 사람이 스스로 왕인지라
은혜를 유지시키지 못할걸요.
이단 등을 포함하는 미혹 또한 그랍니다요.
당사자가 스스로 받아들인 것에 불과할 뿐으로
주님이 대신
잘못된 내용들을 거부하여 주시는 것이 아니겠죠.
목사님의 설교 예화에 등장하는
남묘~~~의 어느 할머니 분을 생각해봅니다.
그 분의 입장에서 나로 인해 누구,
누구가 미혹을 받아들였다고 여긴다면
죄책감 등 여러 문제에서 짓눌림 등을 당하겠죠.
비록 그것이 사실이라고 한들
죄책감 같은 자기 정죄는
주님의 것도, 주님의 원하심도 아니기에
오로지 은혜를 주신 주님만을 바라보는 것이 옳은 것이겠죠.
그렇지 않고 계속 자기 정죄 등에 빠진다면
불순종인 것이고 교만 같습니다.
"그것을 왜 교만이라고 여기는 겨?"
바탕에는 미혹을 전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온전한 주님의 사람으로 살았을 것이란
전제가 깔려 있는 것 같아서요.
실제로는 그랬을런지, 아닌지 모르는데 말이죠.
실상이 이러한데
'나로 인해~'란 자기정죄에 빠져든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답보하지조차도 못할듯요.
미국인들과 한국인의 정서 중
다른 것이 이혼에 대한 것이 있습니다.
미국은 이혼과 재혼에 대한 거부감이 낮습니다.
그 바탕엔 자녀가 성인이 되면 독립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이기 때문이라고 하대요.
성년이 된 자녀의 삶에도 관여하지 않는 정서이다보니
부모는 유명인사인데 자식은 개망나니~~인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자식에게도 그럴진대
타인의 삶에는 얼마나 개입하겠나 합니다.
이기주의, 개인주의로도 흐를 수 있긴 하나
한국인인 우리들 보다는
자신에게 좀 더 충실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님과의 관계는 1 대 1의 관계인 것이라
타인이 가타부타 끼어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다윗의 하나님이었고
사도 바울의 하나님이기도 하셨는데도
단지 거기서 머물면 안되겠죠.
나의 하나님이 되셔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의 하나님 선에서만 머물면
거대한 미혹이 급습할 것 같습니다.
그리 여기는 이유는 이미 보았으니까요.
중간에 사람을 놓고 고해성사를 하고
중간에 성인을 놓고 기도를 하는 것 같은~
나의 하나님, 나의 주님이 아니면
그 사람은 제대로 복음을 잡고 있는 사람으로 보기엔
어렵겠죠.
나의 주님이 되시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리신 분이
바로 주님이시니까요.
두서없이 생각나는대로 적었는데,
이런저런 미혹에 대한 것들입니다.
미혹이란 말씀을 바탕으로
스스로 깨달아 정리해야 하는 것이지
타인이 대신 치워주지 못하는 영역일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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