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전히 의대생을 증원시킨다죠.
우리들은 치료를 받을 때
중한 병일수록 주치의의 공개된 약력 등을 살펴보곤 하죠.
이때 S대 출신이고,
S대 병원에서 계속 과정을 밟아온 이들에게
좀 더 신뢰감이 가곤 합니다.
왜 그럴까요?
대체로 머리가 좋고
끈기가 있는 이들이 공부를 잘합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단지 암기만 잘한다고 공부를 잘하는 것이 아닌
여러 부분에서의 통합적 사고와 응용 등을 할 수 있어야겠죠.
바로 그 부분을 보는 것이 아닐런지요?
아무리 의사면허를 지닌 사람을 늘린다고 한들
특정병원 등으로 몰리는 현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여깁니다.
믿음의 경우
출발선이 같았어도 주님 앞에서 열심을 지닌 이와
단지 자신의 만족을 위해 살아가는 이와는
계속 동일한 선상에 있지는 못할 것 같네요.
그 사람의 기질, 성격, 살아온 모습 등이
믿음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
단지 주님을 믿었다고 하여 갑자기 변하는 것이 아닌지라
전혀 무관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것들이 걸림돌이 될 때도 있고
도움이 될 때도 있고 그런 듯요.
제 경우엔 이전과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특히 대인관계라고 여겨집니다.
지향하는 바가 달라진 탓에
먼저 연락하지 않는 등 그리 했더니 자연스럽게 멀어지기도 하고
방해자여서 정리를 해야 했던 경우도 있습니다.
새로운 관계가 형성이 되어지기도 하고요
나머지의 판타스틱한 변화는 잘 모르겠습니다.
로또 대박같은 대박을 맞은 바가 없고,
암기력이나 기억력이 더 좋아진 것이 아니고
할 줄 모르던 외국어가 술술 나오는 것도 아니고
등이 가렵지도 않고 (날개가 돋느라~~^^::)
생체나이가 한 열살 정도 어려진 것도 아니고 등
"그라서 좋아졌어? 나빠졌어?"
전반적으로 편해졌습니다.
잡스러운 이런 저런 이야기 등을 듣지 않아
생각 등이 깨끗해지는 부분도 있고
가장 좋은 점을 들라면
고요하게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좋습니다.
고요하게 흐르는 시간 가운데 있을 때가 좋습니다.
제게 고요함이란 평온함을 의미합니다.
악한 자로 인한 공격을 받지 않는 가운데
주님의 말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어지는 등
그러는데 어찌 싫겠나요.
몸과 마음이 늘 부산하고 바쁘기만 하다면
여러 생각으로 분산되어지는데다
현상 등에 이리저리 매일 것만 같습니다.
오래 전에 사라진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을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들이 살던 세상에 비해 덜 악하다고 할 수 있나요?
의인이었던 롯이
그곳에 기거하면서 어찌 되었는가에 대해 압니다.
당시 롯의 처지보다
우리는 훨~ 낫다라고 할 수 있는가 싶네요.
운항하는 대형 배의 선두에서
돌고래들을 종종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돌고래들이 배에 치일 것 같아 위험천만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네요.
돌고래 입장에서는
파도가 치는 것을 이용해 서핑을 하듯이
배가 전진하기 위해 물을 밀어내는 힘을 타고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으면서 앞으로 이동하는 것이라죠.
가끔은 선두에 있는 돌고래들처럼
가만이 있는데도 뒤에서 미는 힘이 있어
저절로 앞으로 나아가는
편한 믿음의 길이 있었으면 싶기도 합니다만,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아갑니다.
죄가 북적이는 가운데에서 살아온지라
상하고 상처난 심령을 치유하고 회복하는데 있어
시간이 필요할 것인데
그러기 위해선 자신만의 고요함이 필요하겠죠
마음이 이리저리 부산하다는 것은
생각이 많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마음이 부산하면 말 또한 그리 나갈 것 같습니다.
마귀 역사 가운데 하나가
사람에게 조급함을 일으키는 것이더만요.
조급함이 있으면
여러 상황 가운데 주님의 때까지 기다리기
힘들어하게 되겠죠.
주님의 때까지 기다리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을 주님보다 앞세우는 것이
될 것이고요.
또한 생각이 많다는 것은
생각이 깨끗하기 어렵다는 것일 수 있고
생각이 깨끗하지 않다는 것은
공격을 많이 받는다는 것일 수 있습니다.
"당신도 생각을 많이 하잖여~~~"
자신이 생각을 주도할 수 있는가 아닌가를 봐야겠죠.
하기를 원해서 하는 생각과
계속 이리저리 밀려드는 생각은 같은 범주의 것이 아닙니다.
제 의지로 생각을 하고 있을 때는
재미있고 좋습니다. 싫은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닌
관심사 등을 생각해보고 관찰해보는 것이기에
즐거운데 반해
그렇지 않고 생각이 이리저리
혼자 돌아가는 듯 할 땐 고통스럽습니다.
사실 ~~
어찌 생각이 혼자 돌아가겠습니까.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나인척 생각을 던지는 것이죠.
공격으로 기인하는 생각이나 감정은
멈추려고 해도 멈추어지지 않고
버리려고 해도 버려지지 않아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성령님은 강제하지 않으시기에
원치 않으면 계속 돌지 않습니다.
뭔가 계속 떠나지 않고 돈다면
내가 놓지 않고는 계속 집착을 하고 있는 상태이거나
공격에 기인하는 겁니다. 그리 여깁니다.
나아가 공격이라고 해도 나는 무죄한 것이 아닌
내 안에 그것이 있기에 받는 것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만일 마귀가 은행을 털어
돈을 들고 외국으로 도주하란 생각을 준다면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지요?
결국 마귀가 주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결국 내 죄로 기인하는 것이더만요.
뱀에 들어간 사단이가 하와를 꼬셨고
하와는 아담이 죄를 짓도록 같이 끌고 들어갔었죠.
이중 사단이면 빼고 모두 저주를 받았음을 봅니다.
아담이 하나님과 같아지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오로지 말씀에 순종하기만을 원했다면
지금과는 많은 것이 달랐을 것 같습니다.
아담 할아버지의 경우보다
더 강렬하고 분명하게 죄가 무엇인지
알려주실 수 있는가?싶네요.
누가 가계저주 같은 것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물었죠.
"그런데 우리는 왜
아담할아버지의 죄로 인하여 죄 가운데에서 태어나고
죄 속에서 살다가 죄로 인해 죽는가?"
생각해볼수록
교만의 죄는 어마무시한 것 같습니다.
사단이도 교만으로
아담 할아버지도 교만으로 그리 되었으니까요.
즉 교만이란 자신이 하나님과 비기려는 죄인 것이고요.
내가 불순종하며 죄를 짓는 것은
후손에게까지 저주를 흘려보내는 것임을 안지라
은혜주심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갑니다.
설교도 그렇더만요.
마음의 상태가 평온하고 고요할 때 잘 들리지
그렇지 않을 때는 집중 등을 잘 하지 못하더라고요.
어느 오락 프로그램을 잠깐 봤습니다.
어느 배우가 자신은 불면증으로
오랫동안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는 겁니다. 10년 즈음.
수면 검사를 했는데 당사자가 느끼는 15분과는 달리
3시간 반 넘게 잤다고 해요.
잠을 자고도, 자지 않는다고 여기는
'수면착각증'으로 진단하던데
여기서도 알 수 있듯
사람은 자신에게 속기 쉬운 존재더라고요.
그런데 말이죠.
악한 영이 특정 생각을 주는 것은
그 자신이 원하기 때문이지
억지로 준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마귀가 공격하는 형태와 유형이 다를 것입니다만
공통된 부분이 있다면
마음 중심에 있는 평온함과
고요함을 깨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평온의 반대말은
격동, 다툼, 분쟁, 분열, 갈등, 고통, 두려움, 불안,
답답함, 다사다난 등이겠죠.
제 경우를 돌아보면
말씀을 꽉~~붙잡고 있어야
싸울 수 있고, 공격을 피할 수 있게 되어지더만요.
그렇지 않으면 죄를 향해 달려갈 수도 있더란.
비단 저만 그런 것은 아닐테고요.
어려서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때 많은 미혹이 들어왔었다고 여겨집니다.
그 중 하나가 전쟁, 전투의 개념입니다.
이긴다는 것은 전멸을 시키거나 항복을 받아내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정의로는 분명 맞는데
그러나 모든 싸움~~~~
영적 전쟁까지도 포함해서 맞는가란 부분에서 본다면
그렇지 않은 듯요.
제게 강한 힘을 주셔서리
심지어 날아다니기까지 한들
그 힘으로 악한 영을 전멸시킬 수 있거나
다시는 엉겨붙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낼 수 있나요?
단지 밀어내거나, 공격을 피하는 것 외엔
더 할 수 있는 것이 있는지요?
사람을 통해 공격이 들어온다는 것은
매우 교활한 방식이라고 여깁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끊어지더라도
주님을 신뢰하여 따라가야 하지만
결국은 어리석음으로
상대와의 관계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우왕좌왕 하고 있기 쉽고
그 뒤의 존재가 아닌
단지 사람을 바라보기 또한 쉽습니다.
뒤에 있는 악한 영을 본다고 해도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는 가운데 자신의 의를 앞세워
자칫 사람에 대한 간섭, 조종 등의 문제를 일으키기
쉽기도 하고요.
아무리 제 생각이나 판단으로는
의롭고 선한 것으로 여겨지고,
필요한 등으로 마음 가운데 원하는 부분이라한들
주님의 인도하심보다 앞서면 단지 죄에 불과하다는 것을
지식으로서가 아닌
진짜로 깨달아 알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 갑자기 왜 울어?
이래저래 모지리~과에 속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나보네 "
헐~~~~@#$%
울다가 웃으면 안되는데 ~~~~
ㅋㅋ
주님이 은혜를 걷어가신다면
물 밖에 놓여져 있는 물고기,
털이 다 빠진 호랑이....와 같다고 여깁니다.
"이가 아닌 털이 빠졌다고?"
그럼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대요.
카페트마냥 바닥에 깔기도 하고 벽에 걸기도 하는 듯.
이때 소가죽마냥 털이 없는 호랑이 가죽을 본 적이 있으신지요?
털이 빠진 호랑이는 살아서도 모냥~~이 한참 빠지고
죽어서도 남길 것이 없는지라
오로지 털빨~~~~로 사는 동물이 호랑이더만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