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시는 글은 📸 스마트폰(smartphone) 화면으로 볼 수 있게 조정하였습니다.
사도행전강해8*경건한 두려움
사도행전 5장1-11절 / 송태근 목사
➤“1. 그러나 아나니야라 하는 어떤 사람이 자기 아내 삽비라와 함께 소유 하나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었는데 그의 아내도 이 일에 은밀히 관여하였더라. 그가 일부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거늘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야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 차서 네가 [성령님]께 거짓말을 하고 땅값의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남아 있었을 때에 네 것이 아니었느냐? 그것을 판 뒤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속에 품었느냐? 네가 사람들에게 거짓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였도다. 하니 5. 아나니야가 이 말을 듣고 쓰러져 숨을 거두매 이 일들을 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큰 두려움이 임하더라. 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그를 싸서 들고 나가 묻으니라. 7. 세 시간쯤 시간이 지난 뒤에 그의 아내가 이루어진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매 8. 베드로가 그녀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내게 말하라. 너희가 땅을 그 값에 팔았느냐? 하니 그녀가 이르되, 예, 그 값이니이다. 하거늘 9. 이에 베드로가 그녀에게 이르되, 어찌 너희가 서로 합의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였느냐? 보라, 네 남편을 묻은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은즉 또한 너를 메고 나가리라, 하니 10. 이에 즉시 그녀가 그의 발 앞에 쓰러져 숨을 거두니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그녀가 죽은 것을 보고 그녀를 들고 나가서 그녀의 남편 곁에 묻으니 11. 온 교회와 이 일들을 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큰 두려움이 임하더라.”(행5:1-11 KJV)
오늘 4장과 5장의 사건은 조금 뜬금없기도 하고 굉장히 그 내용 자체가 충격적이지요. 시간 간격으로 부부가 시체가 되어서 실려 나갑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보면서 아 두 가지 생각을 좀 하면서 본문 말씀으로 진입을 했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는 사도행전 분위기가 괜찮았는데 험한 얘기가 여기 기록이 되어 있을까? 이 이야기는 정말 헌금 뚱처 먹었다가 경을 친 사건일까? 이런 이제 질문을 던지면서 오늘 본문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그 부부 이름이 아나니아와 삽비라지요. 아나니아라 하는 이런 뜻입니다. 따라서 해볼까요? [하나님은 은혜로 우시이다] 그리고 삽비라 라는 이름은 [보석]이라는 뜻입니다. [아름답다.]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이 사건이 과연 헌금 떼어먹었다가 혼난 사건일까요? 그렇게 보기에는 너무 좀 결말이 비극적이지요. 그러니 사건은 헌금 이야기 이상의 앞으로 펼쳐질 교외 시대의 중요한 어쩌면 이정표 들어 싸인 판 같은 역할을 하게 됩니다. 지금부터 그 얘기를 성경 전체 속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들어가 보도록 하지요.
성경에는 하나님이 가상 이상적으로 설립한 2개의 공동체가 있었어요. 첫째가 에덴동산에서 남자와 여자를 지으신 다음에 만들어 놓은 과정입니다. 그런데 죄가 그 가족으로 들어오지요. 에덴동산이 파괴가 됩니다. 물론 가정도 무너지게 되지요. 죄의 결과입니다. 남자가 그랬나요? 아니고 여자 때문일까요?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세력이 있지요. 그 배후 세력이 누굽니까? 사탄입니다.
사탄이 뱀을 통해서 여자를 꼬드기는데 어떤 공동체를 흔들던지 그 공동체를 깨는 사탄의 전략은 그의 갖고 있는 본성처럼 거짓말이에요. 거짓말을 합니다. 거짓말은 두 가지로 들어오지요. 그리고 말은 첫째 물타기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과장법을 씁니다. 한번 예를 들어볼까요? 뱀이 여자에게 그러지요. “정말 하나님이 그 동산 중앙에 모든 실과를 먹지 말라 하드냐?” 하나의 실과를 지적했는데 사탄은 뭐라고 건 드렸지요. 모든 실과를 늘 사탄은 요 이거예요. 절대 진리를 물타기를 해서 보편화 시키고 일반화시키는 전략을 씁니다. 여기에 여자가 걸려요.
이렇게 대답을 하지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그랬습니다. 과장법을 쓰지요. 극단적인 표현을 해요. 거짓말 하는 사람들의 특징이에요. 언제 먹지 말라. 그랬지 만지지 말라고 했어요. 그러니깐 사탄이 걸렸구나? 그리고 극단적인 표현으로 덫을 놓았어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전부 무슨 표현이에요. 과장된 편이에요. 그래서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특징은 늘 절대 진리를 물타기를 하고 과장법을 씁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는데 거짓말을 밥 먹듯 아는 사람이 가끔 있어요. 이건 영적인 문제라는 걸 아셔야 되요. 그 고쳐지지 않으면 아 이게 개인적인 성향이 아니라 영적인 문제이구나? 이걸 아셔야 됩니다. 반드시 그 문제를 하나님 앞에 해결을 하셔야 되요. 거짓말은 사탄의 속성이에요. 사탄이 공동체를 깨는 데는 가장 좋은 전략이 거짓말입니다. 형사들도 그래요. 공법을 했는데 죄를 같이 졌는데 서로 안 부러요. 그러면 각자 다른 방에 다 집어넣고 형사들이 제일 자주 쓰는 수법이 거짓말을 합니다. 재가 도박했다는데 그때부터 이 좔좔 잘 불기 시작해요. “이 자식이 의리 지키라고 입 다물고 있었던 이것이 불어 다 넘어가요.” 이간 질의 아주 전형적인 수법이에요.
거기에 교회 성도들이 넘어가지요.
속는 겁니다. 그래서 죄가 들어오고 에덴동산이 깨졌지요. 그 가정이 무너집니다. 이것을 회복시키고 하나님이 신약으로 넘어와서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이 땅의 사도들을 통해 설립을 하세요. 4장까지 분위기 아주 좋았어요, 성령님이 임하고 병자들이 고쳐주고 사람들이 유무상통하고 엄청난 이상적인 그림이 교회의 나타났습니다. 사탄이 가만히 있겠어요.
성경을 잘 보세요. 3절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야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 차서 네가 [성령님]께 거짓말을 하고 땅값의 얼마를 감추었느냐?”
삽비라 라는 부부의 어떤 윤리적인 실패로 귀결된 것입니까? 아니면 누구의 장난으로 지목 되었지요. 사탄. 사탄의 장난으로 지목 되요. 이것이 바로 신약과 구약에 나타난 착한 대비 돼야 될 그림이에요. 그러면 성경 기록자는 이 일을 왜 썼을까? 이걸 아셔야 됩니다. 첫째 주제요. 교회는 분명한 영적인 실체와 맞닥뜨려 있다는 것을 잃어버리지 말라고 뜻이래요.
그런데 지난 20-30년간 한국교회가 잊어버리고 놓쳐 버렸던 전선 하나가 있어요. 무엇인지 아세요? 어둠의 실체와 전쟁 중에 있다는 사실을 놓쳐버리고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그리고 20-30년 동안 좀 어디에 몰두 있었는가? 하면 내부적 싸움에만 몰두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것을 우리는 교육, 심리학, 또는 상담, 이런 것으로 접근하려고 시도를 했지요. 여러분!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그런 것 필요합니다. 무용하다는 얘기 아니에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과연 교회 싸움이 거기에만 매달려 있다면 더 큰 전선을 놓치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예를 들어서 집안에 요즘같이 더운 날 물이 안 나와요? 어떻게 될까요? 제일 급한 게 어떤 문제가 발생합니다. 화장실 문제 어떡할 거야? 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끔찍하지요? 두 번째 밥을 못해서 모두 나가서 사먹을 수도 있어요. 씻지 못해요. 우리말 사우나 살 수 없고 어떻게 할 거에요. 그래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집안에 라인을 다 점검하고 우울하고 수도국에 수리를 전화를 했어요. 그런데도 물이 안 나와 그러면 내부 문제입니까? 외부 문제입니까? 외부 문제입니다. 밖에서 들어온 라인의 문제가 생겼거나 저수지 문제가 생긴 거예요.
한국교회가 지금 헷갈려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이 싸움에서 지금 헷갈려 있습니다. 즉 모든 싸움을 계속 내부의 싸움으로 많이 애를 먹였어요. 그래서 자꾸 복음을 윤리화 시키고 도덕화 시켜서 복음을 약화시켜 버리고 말았어요. 그런데 아니에요. 성경 한 구절을 좀 볼까요.
에베소서 2장을 보세요. ➤“1. 또 그분께서 범법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지나간 때에는 너희가 그것들 가운데서 이 세상의 행로를 따라 걸으며 공중의 권세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녀들 가운데서 활동하는 [영]을 따라 걸었느니라. 3. 지나간 때에는 우리도 다 그들 가운데서 우리 육신의 욕심 안에서 생활하며 육신과 생각의 욕망을 이루어 다른 사람들과 같이 본래 진노의 자녀들이었으나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사랑할 때 보여 주신 자신의 크신 사랑으로 인하여 5. 심지어 우리가 죄들 가운데서 죽었을 때에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느니라.)”
“이 세상의 행로를 따라 걸으며 공중의 권세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녀들 가운데서 활동하는 [영]을 따라 걸었느니라.” 누가 옛날에 우리가 그 졸게 노릇을 하고 있었다고요. 이건 소속의 싸움이에요. 다시 말하면 지금 한국교회는 내부적 싸움도 중요하지만 더 심각한 싸움은 보이지 않는 [영]적인 실체 사탄과 싸움에 전선의 치열한 대치 국면에 있다는 것을 다시 눈을 열고 봐야 되는 시기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여러분 보세요.
한국의 대형 교회당들 안 건드려진 교회 있나요? 다 지고 사탄이 자 한국교회는 이 말세에 세계를 향해서 선교의 요람으로 선교에서 전진기지로 쓰임 받아야 될 교회이니까 사탄이 가만있지 안하겠지요. 이걸 어떻게 하든지 흔들어야 되겠다. 그런데 진짜 한국의 위기가 뭘까요. 한국의 위기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한국교회는 맨 파워를 준비했고 재정이 있다는 게 위기에요. 그러니까 아쉬운 게 없지요.
진짜 한국의 위기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 없게 됐어요. 은과 금의 위력이 많아졌기 때문에 그래서 오늘날 교회가 다시 사도행전의 그 정신으로 성경적 가치로 돌아가야 된 이유 중에 하나가 뭐냐면? 성전 비문의 앉은뱅이를 일으킬 때 사도들이 외쳤던 것처럼 내게 은과 금은 없거니와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어라. 하는 선언입니다. 믿습니까?
여러분들이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분명하게 눈을 열어야 할 것은 뭐냐면? 아 내부적인 싸움도 중요하나 더 중요한 것은 외부적 실체와 거대한 영적인 어둠의 권세와 우리가 전쟁 중에 있구나! 이것을 놓쳐서는 안 되어요. 그래서 어느 때보다도 지금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구하고 기도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됩니다.
두 번째로 그 결과가 이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을 통해서 초대교회에 나타났던 결과가 뭐냐? 5절을 한번 볼까요? ➤“5. 아나니야가 이 말을 듣고 쓰러져 숨을 거두매 이 일들을 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큰 두려움이 임하더라.” 여러분 5절과 11절에 비교해보시면 공통된 문장이 하나 있지요? ➤“모든 사람들에게 큰 두려움이 임하더라.” 여기서 사용된 두려움이 임하더라는 뜻은? 일반적인 두려움에 단어를 쓰질 않고 이런 단어를 썼네요.
한번 따라서 합시다. 포보스(Φόβος) 혹시 여러분 공부를 좀 하신 분들은 이단. 어디서 기억나는 기억이 없습니까? 포보스(Φόβος) 어디서 들은 것 같잖아요. 이 포보스는 아프로디테의 아들입니다. 아프로디테가 정부에게 나온 아들이에요. 전쟁의 신을 얘기합니다. 그 단어를 여기 썼어요. 무슨 뜻일까요? 이것은 이런 뜻입니다. 큰 전쟁을 앞에 둔 끝과 대한 공포를 얘기합니다. 왜 단어를 썼을까요?
오늘날 한국교회가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고 상실한 것 중에 하나가 뭐냐면? 하나님의 대한 경건한 두려움을 잃어 버렸어요. 마음껏 죄를 먹고 토하고 넘어진 자리에 또 넘어져도 하나님의 대한 두려움을 잃어버리고 말았어요. 이것은 한국교회가 엄청난 손실을 지금 겪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이게 지금 똑같이 가정에서도 일어나고 있어요.
아버지의 권의? 이제는 아버지의 권위를 가정에서 말했다가는 구석기 시대의 유물로 취급 받습니다. 때가 어느 때인데 그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되는 것도 중요하고 다 중요하지만, 영적인 질서라는 것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아버지의 위치가 확보되고 인정되지 않으면 많은 부작용이 생겨요. 어떤 여자 분은 TV같은데 나와서 노골적으로 그러더군요. 자기 그 남편 되는 분을 지칭해서 나보다 수입이 적은데 뭐~! 그걸 자랑이라고 얘기를 하는지 그래서 이혼율이 높아 졌지요!
그래서 여러분 저 예를 하나 하지요. 이건 어디까지나 에입니다. 또 앞에 다 잘라먹고 끄덕거리고 돌아가시면 안돼요. 집에 들어갔더니 평소 아끼던 비싼 화분이 하나 와장창 깨져 있어요. 우리 집에 이 짓을 위인이 한 사람밖에 없어요. 근태가 그런데 나와 봐! 너 이거 왜 깼어? [제가 안 깨는데요.] 얌마! 그러면 우리 집에 남자는 너하구, 나, 나머진 여자들인데 그러면 할머니. 누나, 엄마가 깨겠냐? 너와 나 둘밖에 더 있겠냐? 너 아니면 누가 깨. 난 분명 안 깼고 너 아니면?-- 어! 아빠 진짜 안 깨는데요. “자식이 거짓말까지 하네!” 그런데 애가 인제 눈빛이 흔들리면서 아빠가 진짜 안 깼어요. 애가 소리 고래고래 주고 덤비는 거예요. 이때 이제 싸움에 전선이 달라져요. “자식이 어디 아빠 앞에서 눈을 부릅뜨고 덤비는 거야! 큰 소리 질러.” 자 아빠로서는 깨었느냐? 안 깨었느냐? 가 중요할까요? 눈 부릅뜨고 댕댕 그리고 덤비는 게 더 화딱지 날까요? 다 해 봤잖아요.
어느 게 더 아빠로 심각해요.
후자이지요. 그겁니다. 아빠 입장에서는 아버지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교회 공동체의 연약한 사람들이 모인 곳인지라 넘어질 질수도 실수 할 수도 있어요. 얼마든지 그거는 회복을 하면 되는데 정말 무서운 죄는 뭔지 아세요. 아빠가 매를 들었는데 몽둥이를 잡는 태도 해요. 이러면 아빠가 충격을 받아요.
이 아빠를 몰로 보고 그때는 이제 화분은 그 사건 없어져 버린 거에요. 그리고 “어디에 눈을 부릅뜨고 아빠한테 덤벼 너! 진짜 죽어볼래!” 뭐 이렇게 되는 거에요. 이제 자 아빠의 입장에서는 화분 그까짓 깨니 않겠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아빠가 야단을 치는데 아빠한테 불손한 태도로 옮기는 게 도화가 나는 거예요. 이해가 되요. 지금 아나니아와 삽비라 문제로 무슨 얘기냐 하면? 헌금을 둥쳤느냐 아니냐?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인생들이 경건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거예요.
사사시대처럼 그래서 이 사건이 갖는 실질적 의미 이런 겁니다.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 가셨는데 선생님이 들어왔는지 안 들어 왔는지 아니 완전히 유령 치급을 해요. 그리고 막 어떤 녀석은 지우게 던지고 분필 던지고 도시락 까먹고 엎어져 자고 걸레 뽑아 가지고 막 칼싸움하고 그 선생님이 이제 교탁에 서서 가지고 좀 조용해지겠지? 기다리는데 안 조용해요. 계속 떠들어요. 그럼 나중에 늘 들고 다니던 그 몽둥이 같은 걸 어떻게 하지요.
하나님의 대한 경건한 두려움이 사라졌어요.
조용조용 이 애가 떠들었나요? 교탁이 떠든 것은 아이들이 떠들었는데 누가 맞았지요. 교탁에 두들겨 맞아요. 조용. 조용. 조용. 이게 뭐죠.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기 위해서 교탁이 대신 벌을 받는 거예요. 이 사건은 그런 싸인판 같은 역할이 예요. 왜 교회 가치와 속성 중에 정말 중요한 게 뭐냐면? 하나님의 대한 경건한 두려움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있어요.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세요. 그분은 자비하세요. 저도 그런 하나님인 줄 알아요. 그런데 한국교회는 너무 좋으신 하나님만 가르치고 강조했어요. 좋으신 하나님, 문제는 뭐냐면 그러다 보니까 경견한 두려움이 사라져 버렸어요.
막가기 시작했어요. 죄를 짓고도 무서운 줄 모르게 되었어요. 권증이 살라진 거죠. 이 메시지가 이 속에 감춰져 있는 겁니다. 자 그 다음에 우리가 성경을 좀 더 보십시다. 2절을 좀 볼까요?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었는데 그의 아내도 이 일에 은밀히 관여하였더라. 그가 일부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거늘”
자! 여기 보세요. 우린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좀 지목할 수 가 있는데 즉 정황을 보면 사도들이 헌금을 강요한 것 같지도 않아요. 작정을 시킨 것 같지도 않아요. 자발적으로 한 거예요. 자발적으로 했어요. 그들이 자발적으로 헌금 한다고 했다가 후에 아까웠던 모양인지 땅을 팔아 보니까 그리고 일부를 감춰 딴 말이에요. 그 이 사람을 도대체 왜 이 짓을 했을까요? 그리고 하나님은 반드시 이 두 부부에게 기회를 주었습니다. 7-11절을 볼까요? ➤“7. 세 시간쯤 시간이 지난 뒤에 그의 아내가 이루어진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매 8. 베드로가 그녀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내게 말하라. 너희가 땅을 그 값에 팔았느냐? 하니 그녀가 이르되, 예, 그 값이나이다. 하거늘 9. 이에 베드로가 그녀에게 이르되, 어찌 너희가 서로 합의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였느냐? 보라, 네 남편을 묻은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은즉 또한 너를 메고 나가리라. 하니 10. 이에 즉시 그녀가 그의 발 앞에 쓰러져 숨을 거두니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그녀가 죽은 것을 보고 그녀를 들고 나가서 그녀의 남편 곁에 묻으니 11. 온 교회와 이 일들을 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큰 두려움이 임하더라.”
자! 베드로가 사도들이 그 아내에게 기회를 줬어요. 하나님은 바로 처단하지 않습니다. 기회를 줬어요. 그래 이 부부는 불행하게도 그 기회를 놓쳤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어떤 문제에 대해 사인을 통해 기회를 주세요. 돌아갈 기회를 주세요.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그 기회를 놓쳐 버립니다. 그런데 왜 그런 짓을 했을까요? 여기에는 여러분 꼭 놓치지 말아야 되는 문맥적 고려가 있습니다.
4장36절을 볼까요? 여러분들이 읽겠습니다. ➤“36. 사도들이 키프로스 지방 출신의 요세라 하는 레위 사람에게 바나바라는 이름을 주었는데 (그것을 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이라.) 37. 그가 땅이 있었으므로 그것을 팔아 그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여러분 이 사건을 이해해야만 아나니야와 삽비라 사건이 귀에 있게 해석적인 자리매김을 할 수가 있습니다. 초대 교회 안에 지금 어떤 상황인가 하면? 세계 각처에서 명절을 맞아 사람들이 몰려들었어요. 그런데 오순절 날 강력하게 임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보면서 이들이 충격과 은혜를 경험 한 것입니다. 돌아가야 될 사람들이 안돌아가고 계속 어디에 머물지요. 교회에 머물기 시작했어요. 인산인해를 이룬 겁니다. 이들이 다 먹고 자고 해야 되는데 뭐가 필요할까요? 재정이 필요하겠지요? 그 광경을 보고 은혜 받은 사도들과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헌금을 하기 시작했어요. 헌금은 가장 중요한 원칙이 자발적으로 해야 됩니다.
그래서 그 중에 누가 있었는가? 하면 우리는 바나바로 알고 있는데 그 원래 이름이 아닙니다. 별명입니다. 원래 이름은 요셉이지요. 그런데 사도들이 그들을 그 사람을 가르쳐서 별명에 붙여졌는데 바나바 뜻을 보니까 위로의 아들이란 뜻이에요. 이 사람은 항상 사람에게 생기를 주고 위로를 줘요. 제가 이번에도 영동을 갖다가 김해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일본 삿포로 가서 우리 청년들이 다니는 걸 봤어요. 이번 일본 땅은요, 참 미안한 얘기지만 묵직한 것이 내려앉은 땅 같아 보여요.
영적으로 느끼는 느낌을 아니까 그런데 거기에 몇 안 되지만 우리 삼일교회 청년들 풀어 놓으니까 이 친구들이 가는 곳마다 반짝반짝 살아나요. 교회가 살아나고 회복이 되고 생기가 나요. 생기가 그 얘들이 가서 특별한가? 들여다보면? 뭐 주방 들어가서 파 썰고 있고 만두도 빚고 있고 그래요. 코리안 파티 한다고? 코리안 파티 준비하는 것도 보면 세련되지 않았어요. 엉성해요. 그런데 그거 보려고 동네가 다 모여요. 신기하지요?
여기 요셉의 그런 사람에게 격려와 위로가 되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오죽했으면 사도들이 위로의 아들이라는 바나바라는 별명을 붙여준 겁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청년들이 어딜 가든지 일터에서든지 사람을 살리고 회복하고 여러분들이 머무는 곳에 좀 살아나는 생기가 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요셉처럼. 요셉처럼 요셉은 한 시대와 역사를 먹여 살리지 안 습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런 사람이 있죠. 그 사람 탁 만나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이 돼서 되겠어요. 안 되는 거죠. 이 사람은 인격뿐만 아니라 교회 상황을 보고 자기 밭 있는 것을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그대로 둡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에게 모든 칭송과 영광이 돌아가고 박수가 돌아가요?
그 박수를 그 칭찬을 돈으로 사려는 불순한 동기
여러분 이걸 누가 봤을까요? 누가 봤을까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본거지요. 집에만 돌아오면 입이 이렇게 나와서 “바라바 젓까지 게 뭐라고 샘이 난 거죠. 그 부부가 의논을 했어요. 함께, 함께 의외로 했다고 돼 있어요. 그럼 우리도 뭐 저 바나바처럼 좀 칭찬받는 일 없을까? 우리도 밭팔지 뭐 밭을 팔았어요. 팔아서 돈을 쥐어 보니까 견물생심(見物生心) 이라고 욕심이 때 느꼈던 것 같아요. 일부를 감춥니다.
여러분 뭐가 잘못된 겁니까? 모든 일에는 동기가 순수해야 돼요. 동기가 잘못됐어요. 물질로 칭찬과 영광을 박수를 사려고 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교회 촛불을 원하는 사람들이 또 가끔 있어요. 교회 보면 큰일 랄 짓입니다. 그런 것을 잘 분별도 해야 되겠지만 절대 그런 사람들은 일꾼 세워서 안돼요. 교회 일은 재정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사람의 수가 많다고 할 수 있는 일도 더더욱 아닙니다.
우리 삼일교회에도 그 유혹에 속기 쉬운 교회입니다. 속아서 안 돼요.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만 된다는 고백이 가장 중요하고 숭고한 고백인 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나니아는 여기서 실패했어요. 그 박수를 그 칭찬을 돈으로 사려는 불순한 동기로 밭을 팔아 일부를 감출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자 그러면 우리는 이제 이 말씀을 마치면서 도대체 이 사건을 통해서 교회가 뭐냐? 이거를 정리해야 되는데 이것은 중요하니까 아무 따라서 하십시다. 교회가 뭐냐? 자 첫째 따라서 합니다. [어떤 일을 하기 이전에] 따라서 합니다. [어떤 사람이 되는가? 더 중요하다] 뭐 있습니까? 한국교회는 그동안 너무 사명 단체처럼 무슨 미션 단체처럼 일일에만 몰두해 왔어요. 일하지 말자는 얘기도 아닙니다. 일해야지요. 그런데 그걸 강조하다 보니까 정말 중요한 걸 놓치고 지나왔습니다.
그 속에 그리스도의 성품과 그리스도의 따뜻함과 그리스도의 용서와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부흥되고 새로워지는 이것이 굉장히 가벼운 가치로 상대적으로 전락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때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우리를 써먹으려고 우리를 이 땅에 성도로 두신 것이 아니에요. 어느 부모가 애를 낳는데 부부가 앉아 가지고 첫째는 어디서 먹을까? 우리 이러고 애 낳는 부모 있어요.
여러분 저는요, 우리 아이들 변변하지 못해요. 그런데 그 변변하지 못하는 애들이 주는 은혜와 기쁨이 너무너무 커요. 부모를 정말 새롭게 만들어 줘요. 거기서 사랑을 배우고 나는 그래서 자녀들의 은혜라 그래요. 부모의 은혜가 아니라 자녀의 은혜라 그래요. 그럼 무슨 얘기냐 하면 하나님은 여러분들 존재 자체 고냥 기쁘신 거예요. 거기에 더도 붙이지 마세요.
여러분 써 먹으려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구원하신 게 아니에요. 나님의 관심은 여러분 존재 자신이에요. 네가 어떤 존재가 되어야 되느냐? 어떤 가치로 보석처럼 다듬어 줘야 되느냐? 여기에 하나님의 관심이 있지 둘째는 어디 써 먹을까? 껌 팔게 할까? 불펜주어서 내 보니까? 이런 거 아니라 말이에요. 아멘! 그리고 착각하지 마세요.
큰 두 번째 결론입니다.
교회라는 공동체는 상식 그 이상의 신비함이 있어야 됩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제가 어느 때, 이런 것도 말씀을 드린 기억이 나는데 일산에 어느 교회 목사님이 사석에서 하신 말씀이에요. “목사님 요즘 교회들이 얼마나 개판을 치는지 강대상에서 목사가 상식적인 이야기만 해도 교인들이 은혜 받았대요.” 사실이에요. 하도 몰상식한 짓들을 교회 공동체가가 오늘날 많이 하니까 성도로 목사로 사는 게 요즘처럼 부끄러운 시대가 없어요. 그래서 목사가 강대상에서 상식적인 얘기만 해도 교인들이 수긍하고 도구라고 은혜를 받아요. 그리고 좋은 목사래요. 개뿔은 뭐가 좋은 목사요.
그런데 제가 그 말을 듣고 수긍을 하면서도 이런 얘길 했어요. 그런데 목사는 교회는 상식대로만 가서는 안 됩니다. 상식 그 이상이 있어야죠. 그게 뭘까요? 신비입니다. 전 신비주의는 동의하지 않아요. 그런데 분명 교회라는 공동체는 신비함이 있어야 되요. 이거 분명 주판 놓아서 안 되는데 돼요. 그런 것 보면? 이건 돈의 힘으로 맨 파워 힘으로 되어 진 일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고 깨닫게 되지요.
저희 형제 스펙이나 모든 배경으로 봐서 죽었다 깨어나도 저런 훌륭한 자매를 만날 수가 없는데 보면은 훌륭한 자매를 만났어요. 그 신기해요. 놀라운 일이네요. 이상한 일이에요. 경의에요. 교회는 그런데 그런 일들이 생기게 된다는 얘기에요. 정답 때로 그 이상이 교회 공동체는 나오는 곳이에요. 그럼 우리는 [신비주의]라고 하질 않고 [신비]라 그렇지요. 저희 형제가 저 실력으로 저 영어 실력으로 그 외국인 회사에 들어갈 수가 없는데 면접 때 아은 문장이 나와 가지고 유창하게 답을 해버렸어! 그래서 덜커덕 합격이 됐네! 자기도 어리둥절하지? 뭐 이런 거죠 누가 밀었어? 누가 밀린 하나님 밀어버린 거지요.
그러니깐 요셉의 일생을 보세요. 제가 요셉을 좋아하는 이유가 요셉은 무슨 비전과 꿈을 붙들고 그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 결국은 총리의 자리에 오른 입지적(立志的)인 인물이 아니에요. 계속 이건 뭘까? 누가 이런 날 여기다 떠밀었지? 이러다가 얼떨결에 깨보니까 총리 자리에 있는 겁니다. 자기가 그러고 나서 형들이 기근의 때를 만나 머리 조아림 모습을 보고서야 기절을 하였지요. 하나님이 하신 일이 없구나! 그때서야 처음으로 자기가 팔려온 것이 아니라, 보냄을 받았다는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의 경륜(經綸)을 눈 떠 버린 것 이지요. 이 신비지요.
그래서 우리 선배들이 많이 불렀던 찬송 중에 이런 후렴에 가사 기억하지요. [예수, 예수 받은 증거 많도다.] 다 기억나세요. 그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 자녀들의 고백을 올려야 합니다. 이 한주간도 여러분들 일터 직장에서 들어 삶의 현장에서 이상한 일들이 많이 생기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신비스러운 일들이 많이 만나지는 한 주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게 교회요, 성도의 인생이에요. 저는 젤 신비한 분의 누군가 하면? 접니다. 저를 보면 정말, 정말 놀라워요.
그것을 이루어 설명으로 i can't explain 설명할 수가 없어요. 정말 하나님이 경이로운 밖에는 답이 안 나와요. 그런데 그것이 신자의 삶입니다. 믿습니까? 그러니까 내 스펙 보고 좌절하지 마시고 배경 보고 절망하지 마시고 내 현재 나약한 모습을 보고 우울해 하지 마세요. 늘 하나님의 은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렐루야!} 이 접속사의 하나님의 은혜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번 한 주간도 여러분들의 일생의 수많은 신비와 경위와 놀라움과 하나님의 등 떠미는 역사가 나타날 때 그냥 엎어지는 척만 해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그곳에 경쾌하십니다. 믿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영상녹취 / 김은영 목사-
|
첫댓글 설교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감사드립니다. '경건한 두려움' 이 상실된 교회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오늘도 내가 건강함에 감사하고, 오늘 내가 숨 쉴 수 있음에 감사하고,
오늘 내가 누군가를 만남에 감사합시다.
모든 일을 감사하고, 감사하다 보면 감사 못할 일이 없으며,
감사가 넘치다 보면 우리의 삶도 저절로 행복해질 것 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