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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9)갈등 새 기회
사도행전 6장1-6절 / 송태근 목사
➤“1. 그 무렵에 제자들의 수가 크게 늘어났는데 그리스말 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과부들이 날마다 주는 배급에서 빠지므로 히브리 사람들에게 불평을 터뜨리니라. 2. 이에 열두 사도가 제자들의 무리를 자기들에게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려두고 상을 섬기는 것은 합당치 아니하니 3.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는 너희 가운데서 정직하다는 평판이 있고 [성령님]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4. 오직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념하리라, 하니라. 5. ¶ 온 무리가 이 말을 기쁘게 여기고 믿음과 [성령님]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안디옥 출신의 유대교 개종자 [니골라]를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 하니라.”(행6:1-6 KJV)
이제 오늘은 사도행전 9강인데 6장입니다. 우선 본문말씀으로 들어가기 전에 우리 사탄의 그 계락의 대해서 조금 생각 속에 몇까지 넣어둘 사항이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 기독교의 역사와 함께 항상 같이 반응을 했어요. 한시도 팔짱끼고 구경했던 적이 없습니다. 그가 역사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했던 방법이 성도들을 핍박하고 환란을 통해서 넘어 뜨이는 겁니다. 그런데 보편적으로 이 전략은 그렇게 써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예수쟁이들은 그들의 입장에서 억누를수록 압박 할수록 더 단단해지고 더 견고해진 다는 사실을 간파한 겁니다. 이제 그 작전을 잘 쓰질 않아요. 그런지 교회 공동체 안에다가 여러 가지 불순물들을 집어넣기 시작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경우는 하나의 그 불순물이지요. 이제 그것도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 앞에 다 천하에 드러나게 되고 교회 공동체가 더 하나님의 영광을 두려워하는 결과를 맡게 됐지요. 그것도 썩 그렇게 훌륭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포기할리 없지요. 사탄은 계속 작용을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은 교회 공동체 안에 분열을 조장합니다. 이 분열을 어떤 방식으로 책동 하냐면 교회 공동체를 잘되게 만들어요. 그래서 은혜를 받게 만들어요. 여기에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넘어집니다. 여기 많이 속아요. 그래서 사탄은 성도들이라 해도 은혜를 많이 받게 만들어요. 엄청 받게 만듭니다.
성령 충만함 받게 만들고 그래서 영적으로 더 많이 꼭대기까지 차게 만들어요. 이제 조심해야 되는 것 이때 우리가 분별들이 잘 안돼요. 그 은혜도 조심해서 받아야 되겠구나? 이건 좋은데 아예 은혜 안 받아야 되겠다. 이건 아니에요. 은혜 받아야 되는데 그 은혜를 균형 있게 말씀에 근거해서 받아야 되요.
자 오늘도 6장1절에 보면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자 여러분 교회 공동체가 잘 안 되고 있었습니까? 잘되고 있었습니까? 잘되고 있었지요. 이때 갈등이라는 구조를 통해서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초대교회는 이 갈등을 오히려 도약의 기회로 삼아요. 하나님의 경륜(經綸)을 드러내는 발판으로 삼게 됩니다. 오늘을 우리가 도대체 초대교회가 빠졌던 갈등은 뭐고? 초대 교회는 이 갈등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하나님의 목적에 순복하게 되었나?
몇 가지 원리를 붙잡고 또 여러분들의 [개인의 적용] 우리 삼일교회가 가야될 방향을 붙잡는 시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1절을 한번 보세요.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잘되고 있었지요. ➤“1. 그 무렵에 제자들의 수가 크게 늘어났는데 그리스말 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과부들이 날마다 주는 배급에서 빠지므로 히브리 사람들에게 불평을 터뜨리니라.”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불만했다. 라는 간단한 에피소드입니다. 자 이젠 저를 보세요. 이 본문을 알기 위해서는 조금 상황을 먼저 이해하실 필요가 있는데? 유대인들은 명절이 되면 시계 각지에서 모여 들지 않습니까? 그들을 순례자라 그러지요. 이제 명절을 앞두고 세계 각처의 유대인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말이 예루살렘의 뭐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데 명절이 되어서 오순절 날 성령이 강력하게 한 공동체에 임한 겁니다. 게다가 모두가 성령의 내적인 개인적 충격과 경험을 하게 되면서 동시에 새로운 공동체가 탄생하는 기적을 보게 됩니다. 여느 때 같으면 이들이 예배드리고 나서 살던 곳으로 다 돌아가야 되는데 그 영적인 충격과 내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이들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계속 모여들고 머물기 시작합니다. 이 체계에서는 문제가 생겼어요. 이제 먹여 살려야 할 것인데 돈이 필요하단 말이에요. 그래서 지난주 살펴본 바와 같이 바나바를 중심으로 전답을 팔고, 이것도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흉내 내다가 성령께 들켜서 경(警)을 치게 되고 난리가 벌어졌지요. 이때는 그들을 위해서 모여들고 떠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 교회가 본격적으로 먹이고 재우는 이 가장 큰 교회 업무였어요. 그걸 우리가 여기서 구제라고 표현을 합니다.
구제는 있을 때 구제는 2가지 구제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매일 구제 매일 밥을 먹어야 되요. 이거를 써빙 하고 공금 하는 일이 만만치 않은 과업이었습니다. 우리 여기 이젠 노숙하는 분들 가끔 가다가 가면 국수 주고 밥 주고 하는 일들 있지 않습니까? 뭐 그런 식이 되어 버린 거지요, 매일 구제라고 합니다.
두 번째 형태는? 주간 구제가 있습니다. 주간 구제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가서 도와주는 일이니까 이렇게 큰 문제가 아닌데 제일 큰 문제는 매일구제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도들도 있어서 써빙 하는 일, 또, 금전출납 하는 일에 전부 매 달렸던 것 같아요. 초창기에는 그 일을 열심히 하다보니까 한번은 해외에서 들어온 헬라파 유대인들이 불만이 생긴 거예요.
히브리 사람들 웃긴다. 본토 사람들이라고 우리 쪽 과부들을 자꾸 배제한다는 말은 구제하는 일에 빠뜨린다 말이에요. 그래서 섭섭함이 생긴 거예요. 이들은 소수니까 힘도 없고 세력도 없고 그래서 히브리파 사람들에게 컴플레인을 한 겁니다. 이 법의 우리 멀리서 왔다고 수가 적다고 무시하나? 우리 쪽에도 과부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 왜 자꾸 빠뜨리나? 똑같이 지금 밥은 먹어야 될 사람들인데? 이거 불만이 일어난 거예요. 그 이 문제에요. 이 갈등이 일어난 겁니다. 이 사안을 놓고 교회 공동체가 위기에 빠졌어요. 히브리파 유대인들과 헬라파 유대인들 간의 골이 생긴 겁니다.
히브리파 헬라파 유대인?
자! 여기서 우선 히브리 바른 뭘 기준으로 히브리 파는 무엇을 가지고 헬라파는 뭘 기준으로 헬라파라고 그러냐? 이 의미를 먼저 이해하실 필요가 있는데 이때는 어느 지역에 사느냐? 기준으로 말하는 것도 아니고 혈통 중심으로 구분을 짓지도 않습니다. 딱 하나 기준을 언어입니다. 저 사람이 어느 언어를 모국어처럼 쓰느냐? 따라서 헬라파 유대인이 되고 어느 언어가 모국어냐에? 따라서 정통 히브리파 유대인이 되는 겁니다. 여기서 기준은 혈통 지역이 아니에요.
언어에요. 이번에도 그 대만의 한 자매가 따라갔는데 팀장으로 팀장 이래요. 제가 이제 연기 교회를 방문 하다가 그래서 막 보고를 하는데 말씨가 경상도 맛이에요. 그 자매를 보고 어디 사느냐? 우리들이 자기는 중국에서 태어나서 국적이 중국 사람이래요. 어떻게 그렇게 경상도 말로 한국말 씨가 유창 하냐?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 이셨는데 고향이 경남 밀양 분이에요. 그 자매가 중국 땅에 태어나서 한국말을 배울 때 할아버지한테 밀양 말을 배운 거예요. 그래서 경상도 말을 쓰고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더러 있어요. 중국에 가면 일단 그 사람은 자기는 중국 사람이라고 얘기하지만은 국적이 또 중국 사람이고 하지만 말은 밀양 사투리를 쓰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때는 헬라파냐? 유대파냐? 기준을 어느 말을 모국어처럼 쓰느냐로 기준을 했습니다. 자 이 언어가 왜 중요하냐? 언어라는 것은 여러분 아시겠지만 전통, 생활습관, 문화, 역사, 또 철학, 개념, 전부 녹아진 총아가 언어예요. 언어는 단순히 말이 다르다 는 문제를 뛰어 넘습니다. 그래서 그 문화를 먼저 알 때 그 나라 언어도 쉽게 해석을 하고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헬라파 사람들이 지금 이 교회 공동체 안에 썩여 있는 거에요.
어디에 문제가 생길까요?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되는 거예요. 예를 들면 정통 유대파 사람들은 a라고 생각을 했는데 문화가 다르고 개념이 다르니까 헬라파 사람들은 b라고 이해할 수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더더군다나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헬라파 쪽 과부들을 자꾸 구제에 배지를 시키니까 이걸 그냥 단순한 표면적 이유로 섭섭하게 생각을 한 겁니다.
써컴플레인을 한 거죠 아니 누구는 입이고 누구는 주둥이냐? 뭐 이래 해가면서 항의를 한 거예요. 자 교회당 안에 이런 공동체적인 갈등이 벌어졌을 때 이 교회 공동체 문제뿐만이 아니라 우리 개인 인생사도 이런 갈등들이 직장에서 일터에서 가정에서 많이 벌어집니다. 이때 사도들이 초대 교회가 어떤 원칙과 원리로 이것을 풀어 나가고 극복할 뿐 아니라 더 복된 내일을 준비하게 되었는가? 그 원리를 붙잡는 것이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중요한 관심 이어야 합니다.
자 그러면 그런 관점에서 우리가 성경을 좀 보십시다. ➤1-2절을 보겠습니다. “1. 그 무렵에 제자들의 수가 크게 늘어났는데 그리스말 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과부들이 날마다 주는 배급에서 빠지므로 히브리 사람들에게 불평을 터뜨리니라. 2. 이에 열두 사도가 제자들의 무리를 자기들에게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려두고 밥상을 섬기는 것은 합당치 아니하니”
자! 여기를 보세요. 우린 여기서 두 가지 문제를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본문에는 문자로 쓰여 지지 않았지만 놀랍게도 사도들이 그 소수파에 궁시렁 거리는 불평불만을 숫자로 밀어붙이고 나서거나 다수의 논리로 무시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외국 굉장히 중요한 관심이 해야 되요. 초점이 가야돼요. 왜냐하면? 오늘날 교회들이 어쭙잖게 민주주의라는 명목으로 숫자로 횡포를 부릴 때가 있어요.
한 사람의 어떤 불평불만을 귀담아 듣지 않고 애 또 그래 내 버려도 그냥 저 혼자 또 두고 있어! 저러다 말겠지 뭐 치워버려! 이게 소의 숫자의 횡포고 다수의 논리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될 그런 식으로 생명을 이해해서는 안 돼요. 이제 저도 이제 학교에서 우리 후배들을 가르치면서 이제 목회학이라는 시간에 차기 본업처럼 하는 얘기 중에 하나가 뭐냐면? 너희를 절대로 목표는 대범하게 하지 마라. 소심하게 하라. 왜 그럴까요? 교회라는 공동체는 대량으로 무슨 제품 찍어 내는 데도 아니고 빵 찍어 내는 공장도 아닙니다.
여기는 여러분들이 혼자 존재 했을 지라도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들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을 분이세요. 믿습니까? 언제나 교회는 한 영혼에 관심 있어요. 몇 명이 모였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오늘도 그 형제가 얼굴이 안보이네! 이 거지요.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한 마리 양을 찾도록 까지 찾아서 길을 떠나는 예수님의 마음이에요. 그래서 소심한 마음이요. 작은 마음이요. 한 영혼의 관심이 있는 마음이에요.
그러니까 어떤 친구들이 그래요? 그분 99마리 양은 중요하지 않냐? 어떻게 목자가 돼 가지고 않으나 99마리를 버려두고 한 마리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한 마리를 찾아서 떠날 수가 있느냐? 여러분 팔레스타인 지역의 목양은 100마리 정도 규모의 양떼를 몰고 나갈 때는 절대 혼자 나가지 않습니다. 여러 목동들이 백 마리를 데리고 나가기 때문에 다른 목동들에게 그 아흔아홉 마리를 맡기고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떠나게 되어 있는 거예요.
쓸데없는 걱정들을 하는 사람이 이렇게 있어요. 그런 것이 교수님 아세요. 그리고 그 양을 찾아서 어떻게 오지요. 목자가 양을 타고 오던가요? 너 그러고 다니느라고 얼마나 발이 아파니 그리고 그 양을 어깨 턱 메고 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입니까? 여기에도 리더들 간사들 교사들 많이 계시지요. 목자들도 계시고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생명을 책임진 리더로 섬길 때 제일 중요한 태도와 마음이 소심한 마음이에요.
그래서 윤동주라는 시인은 그런 글을 썼어요.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왔다] 이는 바람은 어떤 바람입니까? 부는 바람, 떠는 바람, 이는 바람이 있어요. 이는 바람은 그 떨린 조차 눈으로 분간이 안 되는 미세한 바람을 얘기예요. 그런 가녀린 흔들림에도 시인은 괴로웠대요. 적어도 한 생명을 책임진 목자의 마음이라면 그게 정상이에요. 소수의 소리에 귀를 기울 일줄 아는 태도, 이것이 교회 중요한 가치입니다. 믿습니까?
둘째로 그 일을 통해서 4절을 한번 볼까요?
다 같이 읽겠습니다. ➤“4. 오직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념하리라. 하니라.” 그리고 2절을 제가 읽어 볼게요. ➤“2 이에 열두 사도가 제자들의 무리를 자기들에게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려두고 밥상을 섬기는 것은 합당치 아니하니” 이들은 오히려 이 갈등의 위기를 통해서 목회자들이 어디에 참여해야 될 것인가? 대한 본질을 붙잡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여기 [마땅치 않다]는 말은 [틀렸다]라는 그런 개념이 아니에요. 지금으로서는 시의 적절하지 않다고 말이에요.
시의적절(時宜適切)이가 뭐예요.
일본의 실제 있었던 일이지요. 홍수가 났어요. 마을이 다 수몰 되게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위기일발의 그때 뭐 우리나라로 시장군수 같은 사람 하나가 쌀 창고의 쌀을 정부 풀어내서 [뚝을 막아라] 그러니깐 그 군수에 대해서 비난을 막 쏟아 냈습니다. 세상에 저런 정신 나간 얼빠진 군수가 어디냐? 그 아까운 쌀을 지금 뚝을 막으면 어떡하란 말이냐?
그럼 군수의 입장에서는 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게 사람 목숨이에요. 목숨이 산 다음에 그 다음에 쌀이 에요. 그 쌀로 뚝을 막아버렸어요. 전부 창고의 쌀을 내가 지고 범람 할 줄 알았던 물이 그 만들은 급조한 뚝으로 인하여 마을 침수를 막았습니다. 쌀은 버렸지만 목숨은 살렸어요. 자 우리는 이렇게 시의적절(時宜適切)을 따질 때, 자 전쟁나면 그 금은보석이 무슨 소용이 있어요. 전쟁에 제일 중요한 게 안전과 생명이에요. 우리가 그런 판단이 요구될 때가 살아가면서 굉장히 많지요.
그래서 우선순위도 중요하지만 본질적 가치를 헤아리는 문제도 지혜도 분별력도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오늘 이 사도들이 이 위기 앞에 그러면 이제 우리가 교회가 조금 할 때는 성도들 하고 똑같이 접시도 땄고 서빙도 하고 금전출납부 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교인이 점점 늘어나고 이런 갈등이 생기니까 [이참에 이제 우리는 본업으로 돌아가자] 그러면 사도들의 본업이 뭐냐? 말씀과 기도에 전무 하는 일입니다.
여러분 교회당에서도 교회 교역자들이 말씀과 기도를 전무하는 일에 문제가 있다면 시비를 거십시오. 괜찮습니다. 그 문제가 있다면 시비를 거십시오. 그러나 그 외에 뭐 키가 작느냐? 뭐 성격이 왜 그러냐? 이런 것은 봐주십시오. 그 본질이 아닙니다. 이럴 때마다 제가 항상 의사론을 얘기합니다. 좋은 의사는 키가 1m80에 장동건처럼 생긴 의사가 좋은 의사가 아닙니다.
그 병원만 찾아가면 그 의사가 문에까지 나와서 어서 오십시오. 여기로 앉으십시오. 여기 누우시지요. 매너와 친절이 뛰어난 의사 그것은 친절한 의사지 좋은 의사의 기준은 될 수 없어요. 좋은 의사란? 환자가 아프면 날카로운 매수를 들어서 아픈 상처에 정확히 도려내서 살을 벼고 곪은 상처를 끄집어내서 살을 잘 아물 도록 봉합하는 것이 좋은 의사입니다. 그 의사의 본질이 맞습니까? 틀리니까? 거기에 의사가 왜 세수를 안했냐? 이를 안 닦았냐? 아무 상관없어요. 이왕이면 닦으면 좋겠지요. 그래 그것이 본질적인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가 1997년도 11월 달 혹시 무슨 시기 어떤지 기업 되십니까? IMF, 8.15 이후에 가장 6.25 보다 큰 국난 이었다고 경제학자들의 얘기합니다. 물론 자기들의 기준에서 그렇겠지요. 그러나 그때 얼마나 정말 심각했는가 하면? 그때 경제 활동을 하신 분은 아실거요. 대한민국 국민치고 은행이 쓰러지고 문 닫을 거라고 상상해본 국민이 없어요. 그런데 우리의 아버지들이 우리 아들딸들이 일터에서 거리로 엄청나게 내 몰렸습니다. 깜짝 놀랐어요. 너무 샴페인을 일찍 터뜨렸고 전부 빚으로 그들의 잔치를 했던 겁니다.
거품이 좌 빠지기 시작했어요. 이때 미디어에서 공장에서 경영에 현장에서 회사에서 가장 나의 쏟아냈던 용어 하나가 있습니다. 혹시 뭔지 아십니까? 제로 베이스 운동이에요. 우리 제로 베이스 있어야 된다. 제로 베이스란? 뭐냐 두 가지 개념을 담고 있는데 우리 [처음부터 다시하자.] 우리 본질에서 부터 이 문제를 보자. 이 2가지가 제로 베이스운동이여요. 그리고 한국 경제가 그 IMF를 통과하면서 웬만한 국가는 그 기간을 10년 잡아요. 선진국도 그런데 한국은 2년 만에 온 국민이 슬기를 모으고 절약하고 땀을 모아서 2년 만에 IMF를 졸업했습니다. 빨리 하는 건 뭐든지 잘해요. 세계가 깜짝 놀랐지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초대교회도 이런 위기 속에 그 위기를 이해할 줄 알았어요. 위기의 한물 되는 사람이 있고 위기를 딛고 일어서는 사람이 있어요. 문제로 관점의 차이에요. 사도들이 정확히 본거요. 자 이 때야말로 교회가 포맷(format)을 다시 해야 될 시기이다. 우리는 본업으로 돌아가자. 그리고 이들이 착수했던 게 뭐냐면? 3절 읽겠습니다. ➤“3.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는 너희 가운데서 정직하다는 평판이 있고 [성령님]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자 여기에서 이들이 놀랍게도 그런 갈등이 증폭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자신들은 본업으로 돌아가고 이제 교회 공동체가 덩치가 커진 만큼 시스템을 만들고 제도를 만들고 사람을 세우자. 이 작업에 착수한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경영도 골목에 조그만 구멍가게 할 때는 외상장부 잘 써놓으면 되요. 누가 얼마 가지고 그렇고 외상 잘 받으면 되요. 그런데 슈퍼마켓만 되어도 이제 복식부기를 해야 되요. 그 다음에 마트가 되면? 그때는 경영의 규모가 더 커져 쓰니까 경영에 운영과 논리와 방식도 달라야 되겠지요. 덩치에 따라서 포맷을 새롭게 해주고 시스템을 도입을 해야 됩니다.
우리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복잡했어요.
월말에 은행에 가면 창구 앞에 줄 쭉 서 있었어요. 창구 앞에 그래서 오줌도 못 누러가고 누가 새치기 하며는 거기서 창구 앞에서 싸움이 일어나고 난리가 났어요. 줄을 쭉 섰습니다. 얼마 전에 가면서 들어가서 제일 먼저 번호표를 뽑아요. 그리고 앉아서 여성중앙 우먼센스 이런 거 보면서 그런 책 밖에 없으니까 또 보기에는 띵동 소리 날 때마다 쳐다보면 되요. 몇 명 남은 것까지 다 나와요. 자 간단한 시스템이 하나가 도입이 되었는데 참고 앞에 갈등이 사라져 버렸어요. 줄 서고 새치기 하는 싸움이 사라져 버렸어요. 시스템이 필요합니까? 안 합니까? 필요하지요.
저는 미국에 건너가기 전에는 미국 사람들은 원래 나이스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도착하는 순간부터 이런 인간들이 이 지구상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좌절과 실망에 벽에 부딪쳤습니다. 우리나라는 운전을 하고 가다가 교통순경들에게 걸리지요. 그러면 제가 여기 초행길이라 길을 좀 잘 못 들어왔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면 선생님 다음부터 그러지 마세요. 그리고 스티커도 깎아 줘요. 자기가 알아서 그리고 안전띠 미착용으로 하겠습니다. 굉장히 좋은 나라요. 좀 돌아다니면서 그런 은혜를 많이 입었어요. 아 정(情) 문화 아닙니까?
미국에서 생일날, 이제 집 식구들이 파티 하다고 기다리니까 급한 마음에 조금 밟아어요. 위에서 헬리콥터가 뜨더니 막 스피커로 뒤에서 서라 그래요. 갓길로 갖다 대라 걸린 거에요. 생일날 그래서 갓길로 갖다 대고 핸들의 딱 손잡고 있었지요. 우리나라처럼 뭐 패스포드 끌어다 그랬다가는 총 맞아요. 다들 총들을 갖고 있으니까 총 꺼내는 줄 알고, [창문 내려요.] 이렇게 패스포트 달래요.
그래서 그때 이제 끓여 가지고 좋더니 주면서 제가 한 말이 뭐냐면? {오늘 내 생일이다.] 그래서 이제 설명을 해 것들이 이 패스포트 보지도 않고 축하한다. 축하한다. 오늘이 생일이냐고 이런 생일이다. 식구들이 기다려서 내가 조금 과속을 했는데 이제 한국식으로 통할 줄 알고 그랬더니 어우 축하한다고 해서 나는 봐주는 줄 알았어요.
웬 걸 딱 80분짜리 끊었어요. 80분짜리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코트에 가서 재판 받아야 되요. 그걸 드라이브 스쿨 가서 강의 들어야 돼요. 복잡 합니다. 걔네들은 네 생일 축하는 축하고 딱지는 따로 끊는 것, 로드니 킹 사건 기억하십니까? 흑인 하나를 백인 경찰들 4명이 길거리에서 폭행 사건이 있었어요. 구타한 사건이 있었어요. 그걸로 전역에서 흑인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제일 심하게 상처를 입은 도시가 로스앤젤레스 에요.
여러분 그때는 도시가 거의 전쟁터였어요. 우리 한국 사람들은 전부 군대를 갔다 왔기 때문에 총을 제대로 쏩니다. 이놈들은 막 쏴요. 그 전부 지붕에 올라가 가지고 시가전 양상 이었어요. 그때 미국 사회가 무너지는 걸 봤어요. 미국 사회는 놀랍게도 시스템이 붕괴 되니까 총 들고 약탈자로 변했어요. 깜짝 놀랐어요. 멕시칸 흑인 할 것 없이 백인까지도 남의 가게를 떨어요, 시스템이 무너지니까 그 나라는 워낙 다양한 인종의 모여 있으니까 시스템과 법이 강력하게 집행이 안 되면 유지가 안 되는 나라입니다.
우리나라는 이렇게 정(情) 문화이기 때문에 그리고 한민족 아니에요. 이건 88올림픽 같은 국가적인 때 그 축제 때는 전국의 소매치기들이 동맹을 해가지고 이 국가적 행사에 우리가 먹칠을 해선 안 된다. 그래 가지고 그 기간 동안은 소매치기가 없었대요. 실지로 그런 민족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원래 나이스한 사람들이 아니라 강력한 법 집행과 시스템이 떠받쳐 주로 나라입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인간이 모여 있는 공동체는 어쩔 수 없어 시스템이 필요합니까? 안합니까? 필요하지요. 그래서 그걸 계기로 교회 공동체 규모가 커지면서 새로운 제도와 일꾼을 세우게 됩니다. 자 그런데 [그 일꾼들 어떻게 세워나?] 보십시다.
➤5-6절 다 같이 읽습니다. “5. ¶ 온 무리가 이 말을 기쁘게 여기고 믿음과 [성령님]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안디옥 출신의 유대교 개종자 [니골라]를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 하니라.”
유명한 일곱 집사의 이름이 여기 쭉 열거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보십시오. 이제 왜 내려오니까 여러분이 분간을 못하는데 이 이름이 전부 일치하게도 일곱명 모두가 헬라파 유대인 이름입니다. 자 그러면 교회 공동체 안에 주류 세력 입니까? 아니지요. 소수파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의 최초의 위도 의식을 이 소수파인 헬라파 유대인들이 게 전부 주어요. 헬라파 유대인들은 훌륭해서 뽑혔지만은 실질적으로 훌륭한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히브리파 유대인들입니다.
교회는 그런 것 같아요. 누가 어떤 문제에 대해서 유난히 궁시렁 거리는 사람이 있어요. 아 뭐 이건 어떻고 저건 저렇고 교회당의 모양이고 대개 그런 사람들이 그쪽에 은사가 있는 사람들이에요. 우리 같은 사람은 그게 눈에 안 들어와요. 그래 그 별 관심이 없어요. 아무 불만이 없어요. 그런데 관심이 있고 은사가 있는 사람은 자꾸 그게 눈에 보여요. 그러니까 불만이 자꾸 나오는 거예요. 그 간단해요.
이 초대 교회처럼 그거 네가 해! 그 사람 주는데 하라고 최초로 이 교회 갈등을 일으킨 컴플레인 했던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헬라파 유대인들이에요. 그러니까 “그걸 너희들이 해” 그리고 준 겁니다. 자 그 결과 그 결과 어떻게 됐을까요? 성경을 잘 보세요. ➤1절 “그 무렵에 제자들의 수가 크게 늘어났는데” ➤7절 “7 [하나님]의 말씀이 자라나서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의 수가 크게 늘어나고 제사장들의 큰 무리도 믿음에 순종 하니라.”
결과가 어떻게 됐어요. 교회는 좀 말씀으로 왕성하게 수가 더해갑니다. 그런데 이 수가 말하고자 하는 목적지가 아니에요. 교회는 절대 숫자를 쫓아서도 안돼요. 숫자가 목적이 되어서도 안돼요. 더 중요한 것은 이 숫자는 하나의 결과를 말하는 것, 뿐이지 성경을 잘 보세요. 후 반절에 “제사장들의 큰 무리도 믿음에 순종 하니라.” 제사장은 누굽니까? 전문 종교인들이에요. 그들은 성전에서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들이여요. 성전에서 먹고사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그들의 원수 껵인 대립 깍을 이루고 있는 그리스도의 믿음을 따른다면? 우리 지난 주 주일저녁 때 다니엘이 목적을 정했다는 말이 무슨 말이 라고 했지요? 포기를 전제로 한 결심 이라고 했지요. 목적을 정한다는 것은 포기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동의의 적어도 이 전문 종교인들이 제사장들이 믿음의 회복 쪽에 따는 것은 무슨 목적인가 하면? 모든 생업에 대한 손해를 감수하고 그 믿음을 따르고 헌신하고 결단하고 손해 보겠다는 얘기입니다.
그들의 변화된 삶을 보고 사람들이 점점점점 교회 공동체로 구름 떼처럼 몰려들기 시작한 겁니다. 여기서만 끝났을까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갈등을 일으킨 쪽도 사도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신비스러운 오묘한 경륜과 섭리가 이 갈등 속에 감추기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깨닫게 됩니다.
사도행전 11장 19-21절을 보십시다.
➤“19 ¶ 이제 스데반으로 인하여 일어난 핍박으로 인하여 널리 흩어진 자들이 멀리 베니게와 키프로스와 안디옥까지 여행하며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말씀을 선포하더라. 20. 그들 중의 몇 사람은 키프로스와 구레네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이 안디옥에 이르러 그리스말 하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주] 예수님을 선포하매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하므로 많은 수의 사람들이 믿고 [주]께로 돌아오더라.” 여러분 그리고 그대로 6장 5-6절로 넘어가 보세요. ➤“5. ¶ 온 무리가 이 말을 기쁘게 여기고 믿음과 [성령님]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안디옥 출신의 유대교 개종자 [니골라]를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 하니라.”
여러분 이 일곱 집사 중에 언제 누가 있었어요. 안디옥 사람이 있었어요. 그런데 교회에 핍박이 일어랍니다 스데반의 죽음으로 교회가 전부 풍지박살 흩어지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 흩어진 사람들이 민들레 꽃씨 마냥 흩어지고 바람에 날려서 도망 다니면서 지금 어디까지 도착을 했어 안디옥까지 도착을 했어요. 그리고 누구까지 복음을 전 하냐면 헬라 사람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 그 복음을 누가 전 했겠어요. 누가 전했겠어요? 바로 일곱 집사를 중심으로 파일링 걸 2중 언어가 가능했던 사람들이 그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미 그들은 예루살렘 초대 교회에서 리더쉽으로 섬김을 경험했던 사람들이에요. 그 경험으로 이 땅에 흩어져 안디옥에 최초의 이방교회가 세워집니다. 그리고 그 이방 교회는 온 세계의 그리고 대한민국까지 복음이 전해질 수 있도록 선교의 전진 기지가 되는 거지요. 그게 유명하고 안디옥교회요. 그리고 그 안디옥교회 에서는 최초로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 하지 않습니까? 놀랍게도 예루살렘교회 갈등 속에 그 얘기 속에 하나님은 이런 복음의 신실한 하나님의 오묘한 격려의 역사를 감추어 놓고 있었던 겁니다. 믿습니까?
여러분 이 일은 단순히 공동체에 관한 일만이 아니라 우리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예요. 내 인생에 어떤 위기가 지금 닥쳤습니까? 어려움이 봉착해 있습니까? 그 어려움과 위기와 위험 속에 지금도 여러분들을 향해서 하나님이 감추어 놓으신 해안을 보시고 믿음의 눈을 열어서 하나님이 경련을 만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선하십니다. 그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가장 사랑하십니다. 믿습니까? 오늘도 이 갈등을 어떻게 기회로 이겨낼 수 있었는가? 하는 원리를 여러분들이 개인 인생과 우리 삼일교회 미래의 목회 여정의 중요한 원리로 순종하는 은혜가 있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
-영상녹취 / 김은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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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감사합니다.
💖아무도 알수 없는 내일이 있기에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꿈을 꾸고
희망을 가질수 있는것 같아요. 오늘 하루도 즐거운 행복한 하루 되세요.💖
잘 보고 갑니다.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