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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보 기도해 주기
로마서 15장1-2절 / 김병삼 목사
중보기도에 대한 마음을 열고 여러분들이 잘 들으라. 제가 중보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면서 그때는 담임목사를 위해 중보기도 해 주십시오. 그것은 저를 위한 기도일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을 위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포인트 가운데 하나는 우리들이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가? 헤아려서 기도해야 된다. 그렇게 말하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했지요.
중보기도는 하나님의 목적을 꺾는 기도다. 그런데 유일하게 하나님의 목적이 꺾여 져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가 중보기도다. 전혀 안들은 것 같은 표정을 하시면 안 돼요. 여기까지 자 그래서 오늘은 이제 우리 서로 성도들 간의 중보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 현장에서 중보 기도하는 일들을 통하여 얼마나 큰 능력이 일어나고 있으며 우리 성도들의 삶 가운데서 이 영적 전쟁의 한가운데서 중보기도가 얼마나 중요한가? 이런 말씀을 나누는 것입니다.
2023년 지난해 4월18일자 국민일보에 보면 세들백 교회를 설립한 워렌 목사가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세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건 변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건 누구 때문이에요. 변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 때문입니다. 아 제가 지난주부터 읽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탈기독교 시대의 교회라는 책인데 거기에 보면 그런 이야기가 나와요. 이게 물론 미국의 통계이기 우리나라도 이제 거의 비슷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 25년 동안 미국에는 교회당을 떠나간 교회당을 출석하지 않는 사람이 4천만 명 된답니다. 25년 동안~! 안 놀라오세요. 25년 동안 4천만이 교회를 나오지 않고 있어요. 물론 그 사람들이 신앙을 떠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중에 복음 주의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왜 당신들은 교회를 떠났는가?” 놀랍게도 68% 사람들이 부모님들의 신앙과 부모님들의 모습 때문에 교회를 떠났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신앙을 떠나간 하나님을 떠나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때문에 떠나간 것이 아니라. 교회에 있는 신앙인들 때문에 교회를 떠났다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이 기도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중보기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 중보기도가 우리 믿음의 형제자매들 간에 얼마나 좋은 연합과 아름다운 모습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그리고 이런 모습을 바라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게 될지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말씀을 나누려고 하는 거예요. 오늘 말씀 로마서 15장1절에 보니까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악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라고 돼 있어요.
이 마땅히 기도할 때 굉장히 아름다운 모습이 보여 진다는 거예요. 어제 변화산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아마 많은 사람들이 지역에 있는 이제 식당으로 흩어졌을 것입니다. 우리 청년들이 불행하게도 요즘이 교회 근처의 식당들이 아침에 빨리 문을 안 엽니다. 그래서 혹시 여러분들 중에 이 근처 식당 중에 돈을 벌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변화산이 언제 열리는지 좀 알려 주세요.
또 우리 교회 청년들이 판교에서 식사를 하는데도 우리 장로님들이 우리 청년들의 밥값을 다 내고 갔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냥 그 얘기를 들으면서 아름다운 거예요. 그니까 청년들에 비하면 여유 있는 어른들이 청년들을 위하여 밥값을 내준다. 이건 단순히 경제적인 돈에 대한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약함을 보았을 때 약한 자들의 약함을 담당하는 것은 공동체에 굉장히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거요.
스카 솔즈 목사가 쓴 세상이 기다리는 기독교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도 여러분들에게 한번 권해 볼 만한 좋은 책입니다. 이 책에는 이런 표현이 있어요. 가난한 이웃은 하나님이 보내신 최고의 선물이다. 그니까 우리들 주변에 약한 자를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이것도 오늘 중보 기도를 생각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가 될 거 같아요. 자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게 하실 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라고 마음을 주실 때 그건 무거운 짐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마음을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들에게 쉬운 신앙의 길을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신앙의 길을 여러분들에게 알려 드리는 겁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 성령님께서 우리들에게 강권적으로 누군가를 위하여 기도를 시키실 때 그것이 때로 힘들고 부담스러운 일일지 모르지만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일이라는 거요. 저도 만나교회 담임목사로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 중보기도를 시키실 때가 많아요. 가끔 우리 교회에 유명한 강사목사님이라서 이렇게 설교를 하고 가실 때도 있고 그런데 가끔 교인들이 그런 얘기를 해요. 목사님 그 설교를 잘하는 유명한 목사님이 이렇게 설교를 하고 가도 우리들의 마음이 조금 이렇게 뭔가 허전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무리 설교를 잘하는 분이 여기 와서 설교를 해도 저와 같은 마음으로 여러분들을 바라보면서 설교를 하지는 않는 거 같아요.
왜 저에게는 우리 성도들의 마음들이 전해지기 때문에 그 마음들과 우리 성도들을 바라보면서 설교하고 있기 때문이요. 그 제가 설교를 할 때면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다른 교회 가서 설교를 할 때도 늘 그런 기도를 해요. 하나님 제가 오늘 말씀을 전하는데 제가 준비한 이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위하여 주시는 그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오늘 제가 이 설교를 하면서도 제 마음 가운데는 몇몇 떠오르는 우리 교인들이 있어요, 하나님 오늘이 분들에게 이 설교가 참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제가 수년 전에 알라스카에 한인연합집회를 인도했을 때입니다. 말씀을 마치고 났는데 한 권사님이 저에게 해서 이야기 하는 게 목사님 왜 하나님이 목사님을 한국에서부터 이곳 알라스카 보내셔서 말씀을 전하게 하셨는지 이 말씀이 꼭 제 동생을 위한 말씀입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그런 경험들을 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저에게 말씀을 전하게 하실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 마음 가운데 중보기도에 부담을 주실 때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는 것이다.
중보 기도는 왜 중요한가?
중보기도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기도이고 우리들이 중보기도를 할 때는 이렇게 기도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이 하나님의 시간에 님들의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우리는 기도하고 있지만 어떤 일이 일어날지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실 몰라요. 그런데 한 가지 우리들에게 분명한 게 있어요. 우리들이 누군가를 위해 중보 할 때 우리들의 마음에 소망이 있는 거예요. 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이요. 제가 언젠가 변화산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며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사단이 우리를 시험하는 가장 큰 유혹은 돈도 명예도 성적인 것도 아니다. 우리에게 가져오는 좌절과 절망만큼 위험한 시험은 없다. 여러분 우리들이 좌절하고 절망하게 되면 그게 어떤 순간인지 아세요. 더 이상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심하고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의심할 때 우리는 절망할 수밖에 없는 거요. 로마서 5장5-6절 말씀 유명한 말씀 같이 봅니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에 의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넓게 부어졌기 때문이니 6. 우리가 아직 힘이 없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때가 되어 경건치 아니한 자들을 위해 죽으셨느니라.”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하는 것은 뭐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중보 됨이니 중보 기도는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며 기도하기 때문에 그 기도하는 순간 우리들에게 뭐가 있어요. 소망 오늘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 간혹 여러분들의 인생에 절망이 찾아왔다면 여러분들의 인생을 포기하고 싶다면 그 소망을 잃어버렸다면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요.
여러분들 주변에 누군가 절망하는 사람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기도하게 하시는 마음에 부담을 주셨다면 그 부담은 소망으로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이 기억해야 될 필요가 있어요. 오늘 말씀 가운데 아주 중요한 중보 기도의 기준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 1절 말씀에 보니까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라고 되어 있어요. 아 중보기도는 믿음이 강한 자가 믿음이 약한 자를 위해 기도하는 거구나 우리가 객관적으로 어떤 정량적 평가를 할 수는 없지만 우리들은 알아요.
내가 누군가를 바라보면서 그래 내가 그래도 오래 믿었고 내 믿음이 낫지 그니까 우리들 눈에 저 사람이 믿음이 약하다. 라고 보이는 사람이 있어요. 중보기도는 믿음이 강한 자가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구약에 예언된 많은 예언의 말씀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성취해 주신 일, 이것을 가지고 ‘복음’이라고 그럽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여러분에게 “교회당에서 복음, 복음 그러는데 그 복음이 도대체 뭡니까?” 이렇게 이야기하면 10초짜리로 대답해 줄 답이 있고, 5분짜리로 해줄 답이 있고, 1시간짜리로 해줄 답이 있는데요. 이것을 10초짜리로 딱 한마디로 엑기스로 “복음이 뭐냐고요?” 그러면서 설명하려면 이렇게 대답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굉장히 중요한 게 있어요.
우리들이 약한 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 이것이 힘이 있어서 전도서 4장12절 말씀에도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3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분명히 힘이 있는데 실제로 중보 기도가 이루어지고 함께 기도하는 모든 그런 기도 모임이 그렇게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라는 거예요. 기도하는 사람들 사이에 불려 파음이 일어날 수도 있고 거기에 분쟁과 싸움과 미움이 있기도 하다는 거요. 오늘 중보기도에 대한 굉장히 중요한 기준을 말씀하고 있는데 믿음이 강한 자는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너희들이 당연히 감당하고 하는 것이지 내가 믿음이 강하다고 영적 교만을 가지고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누군가를 훈계,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때 믿음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서 중보 교도의 모임 가운데서 이 불려 파음이 나오는 것은 올바른 기도의 모습이 아니라 제가 목회를 하면서 제일 가슴 아픈 게 뭔지 아세요. 신앙의 연도 오래됐고 믿음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믿음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들이 너무나 쉽게 당신의 믿음이 그게 뭐냐고 그 신앙생활이 그게 뭐냐고 누군가를 질책하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일만큼 마음 아픈 일이 없어요. 믿음이 강한 자는 마땅히 연약한 자의 짐을 감당하는 것이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제가 지난 변화산 기간 중에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기독교는 우리들이 얼마나 성공 했는가? 잘하는 종교가 아니라 하강의 종교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하여 우리들이 얼마나 낮아졌을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우리 믿음의 진리이지만 난 것을 자랑하는 것이 우리 신앙이 아니라. 하는 거니까 우리들이 누군가를 위하여 기도를 할 때 분명히 저 사람은 내 수준하고는 만들어 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돼요 믿음이 강한 우리가 약한 자에게로 내려가야 되는 거예요. 그 사람에게 맞춰 줘야 되는 거예요 조금 유치한 것까지만 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들이 우리들에게 있어야 됩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누구예요. 예수님이 우리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리가 아니요. 예수님은 우리의 아픔을 아시기 때문에 죽기까지 낮아지셔서 종의 몸을 입고 우리들에게 오셨다는 중보기도는 힘든 거예요. 어려워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까지 낮아진다는 것이 얼마나 무겁고 짐이 되는 일인지 몰라요. 초대 교회에도 오늘 사도바울이 로마에 있는 교회 로마서를 썼을 때 무엇을 보았어요? 너희들 가운데 이렇게 짐을 좀 쳐줘야 될 사람이 있다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6장2절에도 보면 아주 흥미로운 말씀이 나와 있어요. “2. 너희는 서로 남의 짐들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신앙의 공동체를 바라보면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방법을 사도바울은 뭐라고 했어요. 여러분들의 짐을 서로 지십시오. 자 여러분들 개미와 배짱이 이야기를 아시지요. 예 개미는 여름 내내 열심히 땀을 뻘뻘 흘리고 이래서 겨울에 먹을 양식을 이렇게 쌓아 놨고 베짱이는 여름 내내 기타치고 노래만 부르다가 겨울이 되어서 먹을 것이 없어서 헐벗고 구걸을 하러 다니는 모습, 그게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개미와 배짱이 이야기잖아요.
다른 버전이 있어요. 어떤 버전이냐면 원래 개미가 그렇게 부지런한 곤충이 아니래요. 그런데 여름에 배짱이가 기타치고 노래를 불러 주니까 그 노래를 힘입어 열심히 일을 한 거래요. 그래서 먹을 거를 이렇게 쌓아놓았으니 겨울에 배짱이가 먹을 게 없을 때는 마땅히 개미가 배짱에 먹을 걸 줘야 되는 거예요. 이게 새로운 버전이에요. 자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절대로 일방적이지 않아요. 저는 중보기도를 보면서 여러분들이 중보기도를 할 때 아 나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있어라.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중보기도를 하면서 중보 기도하는 사람의 믿음이 자라요, 사실은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면서 그 사람의 짐을 담당해 주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짐을 담당해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돼요.
사도바울이 빌립보에 있는 교인들에게 빌립보서 1장8절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지난 변화산 기간 동안 계속해서 빌립보서의 말씀을 가지고 나눴는데 제가 사실 요 부분은 다루지 않았거든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자주 그런 얘기해요. 저는 사도바울의 편지를 읽을 때 사도바울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게 제가 사도바울을 참 좋아한다. 오늘이 말씀이 그 부분 중에 하나요. “내가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라.” 사도 바울이 교인들을 향한 그 마음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내가 너희를 사모한다. 라고 말을 하고 있어요. 제가 아 20대 중후반 넘어갈 때 은혜를 체험하고 아 내가 목회를 해야 되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었을 때 그리고 그때 제가 미국 유학을 갔어요.
이 교회는 어떻게 이렇게 큰 교회가 됐을까?
그런데 공부를 하면서 제가 소명을 받기는 했는데 내가 목회를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어요. 왜냐면 제가 생각할 때 제 성품이 목회자로서 그렇게 좋은 성품이 아니었어요. 제가 생각할 때 무엇보다 저에게는 공감 능력이 굉장히 떨어졌고요. 저는 이렇게 눈물을 흘리는 사람 잘 이해가 안 됐던 사람이에요. 그니까 나는 내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이렇게 차가운 성격을 가지고 내가 어떻게 목회를 할 수 있을까? 그게 저에게 고민이었던 시절이었어요. 그때 제가 유학을 가서 한 6개월 동안 미국에 있는 한 장로교회를 성가대원으로 그냥 출석하던 때가 있었어요. 저도 그냥 이렇게 성가대원으로 6개월을 봉사를 하는데 그 교회가 제가 있던 시카고에 제일 큰 한인 교회 중에 하나였어요. 예배를 드리면서 이렇게 제가 느껴지는 게 이 교회는 어떻게 이렇게 큰 교회가 됐을까? 교회가 성장한 게 이해가 잘 안 되는 거예요. 왜냐면 목사님의 설교가 그렇게 성장할 정도의 설교는 아닌 거 같아요.
여러분들 마음 가운데 야 목사가 어떻게 저렇게 교만하게 누구 설교를 저렇게 평가하고 얘기할 수 있나 그런데 괜찮은 게 그분이 저희 외삼촌이 있어요. 이런 얘기를 해도 괜찮아요. 아 그런데 설교만 놓고 보면 그냥 젊은 목사가 생각할 때 교회가 성장하는 게 잘 이해가 안 됐는데 6개월 설교를 듣는 동안 그 목사님이 설교하시고 두 번을 강단에서 우셨어요. 사업에 실패한 교인의 이야기를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교인의 이야기를 하다가 목사님이 두 번을 오셨어요. 그때 제 마음에 소원이 생겼어요. 하나님 저에게 저 마음을 주세요. 하나님 저에게 그 마음 주시지 않으면 제가 목회를 못 하겠습니다. 하나님 저 마음을 저에게 주세요.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저에게 주셨어요. 제가 설교를 하면서 참 잘 웁니다.
저는 본래 태생 이런 사람이 아니에요. 근데 하나님이 그 마음을 주셨어요. 성도를 위해 울 수 있는 그 마음을 저에게 주셨어요. 그게 저에게 많이 힘들어요. 제가 예전에는 암 환자들만 쭉 골라서 신방을 하던 때도 있고 어려운 분들만 이렇게 쭉이 명단을 뽑아서 신방을 하던 때도 있었고, 그런데 병원 신방을 며칠을 하다 보면 제가 병이나요. 공황 증세가 오기도 하고 너무 힘들어요. 왜냐면 교인들이 힘들 아파는 보면서 이게 제 안에서 계속 쌓이는 거예요.
한번 우리 교회 의사 선생님하고 상담을 하는데 그분이 저에게 이렇게 조언을 하더라고요. 목사님 심방하고 환자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나면 그냥 그거 던져 버리세요. 목사님 마음에 이렇게 두고 있으면 그거 목사님 안 됩니다. 그 이야기 제가 그 얘기를 들으면서 그게 답인 건 알겠는데 그게 안 돼요. 그런데 그게 제 십자가 고난 같아요. 제가 오늘이 중보기도에 대한 설교를 준비하면서 그래 중보기도가 참 아름답고 좋은 것이기는 한데 쉬운 게 아니구나! 그 짐을 진다고 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구나! 그러나 우리가 서로의 짐을 지기 시작할 때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을 우리들이 믿기 때문에 마땅히 우리들이 짐을 지고 가는 거예요.
제가 참 좋아하는 찬양이 하나 있어요. 마음이 어둡고 괴로울 때, 주님 예수님을 생각해요. 머리 둘 곳조차 없으시던 혼자 기도하시던 주님 생각해요. 주님만 섬기며 따르기로 하나 세상이 주 이 모든 괴로움을 버리고 예수님처럼 기도하기를 원해요. 주님처럼 기도하기 원해요. 주님의 마음이 느껴지세요. 아 짐을 지는 것, 기도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마땅히 누군가의 짐을 담당하고 기도하는 거요.
자 오늘 말씀이 제일 중요한 부분이 될 거 같아요. 이 중보기도의 원리를 우리들이 배우는데 있어서 기억해야 될게 있다 2절 말씀 보겠습니다. ➤“2. 우리 각 사람은 자기 이웃을 기쁘게 하여 그의 유익을 구하고 그를 세워 주어야 할지니라.”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이 두 가지를 우리들이 기억해야 되는데 선을 이룬다고 하는 말이 제가 영어로 표현하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 선을 이른다고 하는 게 뭐냐면 나에게 이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선이 되는 좋은 것을 행하는 것 그게 중보 기도라는 거예요.
우리들은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할 때 우리 기도가 기도자가 상처를 받거나 문제가 생기는 것 중에 하나가 우리는 이만큼 기도를 했으니 우리들이 이만큼을 얻어야 된다고 생각할 때가 많이 있고 내가 당신을 위하여 이만큼 기도했으니 나에게 무언가 아 그 기도에 대한 [대가가 돌아왔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중보 기도는 그런 기도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냥 그 사람을 위해 기도했으면 끝, 그게 중보 기도다. 이거를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들이 중보 기도를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세상은 늘 기브 앤 테크(give-and-take)입니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 내가 이만큼 받을 권리가 있어 이것은 세상의 논리입니다 중보 기도의 논리는 그렇지 않아요. 제가 오래전에 읽었던 설의 심리학이라는 책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이 책은 나 말고 다른 사람은 아무도 안 봤으면 좋겠다. 그 책에 이 설득의 심리하게 보면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방법이 나오는데 진짜 돈 버는 방법이 거기 있어요. 야 요렇게 심리를 이용하면 돈 벌겠다. 요런 책은 나만 봐 다른 사람이 보면 안 되는 책이에요. 아마 그때 제가 보았던 거 같아요.
데니스 레건이라고 하는 사람이 실험을 합니다. 자 그림을 좀 보여 줘 보세요. 한 그룹에 있는 사람에게는 이 대학생들을 모집해서 콜라 한 병씩을 사 가지고 오세요. 이렇게 가지고 오세요. 그랬고 한 그룹은 콜라 두 병을 가지고 오세요. 그러면서 복권을 이렇게 파는데 한 그룹은 자기만 콜라를 먹고 복권을 팔고 한 그룹은 사람들에게 콜라를 한씩 나눠 주면서 복권을 팝니다. 결과는 그냥 복권을 판 그룹보다 콜라를 주면서 복권을 판 그룹이 두 배 이상 많이 팝니다. 이게 흔히 이야기하는 호혜성의 원리라는 거예요. 누군가 이렇게 호의를 받으면 거기에 보답하려는 마음이 생긴다는 거 그 세상은 이걸 아주 교묘하게 이용합니다.
제가 이런 표현을 써서 죄송한데 진짜 나쁜 놈들이 있어요. 그놈들이 어떤 놈들이냐 men 이해하세요. 나쁜 놈들이에요 연세 많은 어르신들한테 가서 이렇게 호위를 베풀면서 아 안 사셔도 돼요. 그냥 이게 제가 호의를 베 겁니다. 하면서 물건을 파는 나쁜 놈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세상에서 누군가 여러분들에게 호위를 베풀면 뭔가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돈 벌려면 누군가에게 잘하면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세상의 원리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중보기도는 우리의 신앙은 이런 세상의 원리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요.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 내가 누군가의 짐을 지고 누군가를 위해 기도한다면 그 사람을 통하여 나에게 돌아올 어떤 것도 생각하지 말아라. 그를 위하여 기도해라. 그래서 중보 기도는 우리 인간의 이기심을 뛰어넘는 우리 인간의 본성을 뛰어넘는 교회이기 기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법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요. 우리들이 이렇게 기도하는 공동체를 이룰 때 세상이 우리를 바라보면서 그래 나도 믿음을 가져야 되겠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저런 것이구나!
중보기도 두 번째 덕을 세우라는 거 build him up in the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그 사람을 위해서 세워지고 기도하는데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어요 주 안에서 in the 주님 안에서 기도하는 것인지를 분명히 해라 제가 어제 설교를 하면서 오래전에 있었던 제가 우리 교회 청년들과 함께 저기 가평에 있는 수송학교 교 군대에 이렇게 설교를 하러 우리 청년들이 이렇게 찬양을 하러 같이 갔던 적이 있어요. 그때 우리 권사님 중에 한 분이 같이 가셨어요. 거기 아들이 그 부대로 배치를 받았다고 데 저는 그분이 누군지 기억도 안 나고 벌써 10여년 지나갔으니까 그런데 어제 설교를 마쳤는데 목사님 그때 갔던 게 저예요. 우리 아들이었어요. 이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제가 기억나는 건 그분에게 그런 얘기를 했어요. 권사님 아들이 어디에서 근무하는지 얼마나 궁금했으면 여기 따라오셨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군 생활을 하는 아들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기도를 하시겠어요. 권사님에게 제가 했던 이야기 권사님 아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우리 아들이 좋은 곳에 배치 받을 수 있도록 그렇게 기도하지 마세요. 이 말이 얼마나 어려운 이야기인지 여러분들의 자녀를 위해 기도하고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 그 사람이 좋은 곳에 그 사람에게 좋은 일이 이거 우리들의 본성이아요. 그런데 우리들이 원하는 그것들이 in the 주 안에서 올바른 것인지를 생각해 보라는 거예요. 어떻게 권사님 아들이 좋은 곳에 가면 그곳에 가야 될 누군가는 나쁜 곳에 갈 거 아니에요. 그거 주 안에서 기도하는 것일까요? 다시 말해 어려운 기도라는 거예요. 아들을 위해서 이렇게 기도하세요.
우리 아들이 어느 부대 어떤 보직에 처하든 우리 아들이 믿음 안에서 잘 견디게 하시고 그곳에서 훈련받게 하시고 하나님의 손이 떠나지 않는 아들이 되도록 아들을 위해서 그렇게 기도하세요. 그 아들이 어디에 가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아들이 주 안에서 세워지는 중요하지 않겠어요. 우리 부모들이라면 다 자녀들의 학업 직업 그런 것 위에 기도하자. 정말 우리 자녀가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 가서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라면 주 안에서 아름다운 것이라면 하나님 우리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가게 해주세요.
그 기도가 틀린 게 아닌데 주 안에서 내 자녀를 보면서 너무 극단적인 생각일까요? 이놈은 너무 교만해 하나님께서 한번 뜻을 꺾으면 좋겠어요. 아픔도 한번 겪어 봤으면 좋겠어요. 하나님 우리 아이 하나님 안에서 아픔을 이기게 하는 아들이 되게 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기도의 담대함과 우리 기도의 내용들이 주 안에서 기도할 때 그 내용들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지금 우리 사회에 정말 의료 대란이지 일어나고 있잖아요. 우리 교회는 이 직업군으로 보면 의사가 굉장히 많은 교회이고 또 우리 청년들 중에 인턴 레지던트들이 꽤 많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들 중에 이제 사표를 낸 아이들도 있고 그런데 모르겠는 거예요. 이거 어떻게 해야 될지 저도 정부가 잘못하는 건지? 이 의사들이 잘못하는 건지? 누가 맞는 건지? 제가 그렇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아니요?
그러나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내가 지금 주 안에서 올바른 일을 하고 있는지 주 안에서 옳은 일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용기 있게 하나님 앞에 올바른 기도를 하며 우리들이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제가 여러분들이 말씀을 나누면서 여러분들을 답답하게 할 때가 참 많죠 제가 답을 못 드리는 거예요. 여러분들 그런 거 아세요. 목회자가 여기에서 여러분들의 삶에 이렇게 하세요. 이게 답입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순간 이단 교주가 된다는 거 아세요. 목사는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목회자는 이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야기하고 하나님 안에서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 선포하는 일이고 여러분들의 삶에 여러분들이 결정해야 되는 것은 여러분들의 몫인 거예요.
영적 전쟁을 하라.
어떻게 주 안에서 하나님 안에서 기도하며 이것이 옳은 것인지? 그런 것인지? 생각하고 기도해야 우리들이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왜 이 짐을 지는 것이 어려운가? 이게 영적 전쟁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자 중요한 이야기예요. 사단이 여러분들을 공격하는 것은 절대로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절망이 절대로 못 막습니다. 왜 그건 사단의 사명이기 때문에 아무리 여러분들이 중보 기도를 하고 별 기도를 다해도 사단은 여러분들을 공격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중보기도를 통하여 우를 공할 때 그 공격을 소멸할 수 있는 거요. 중보기도의 능력이 뭔지 아세요? 영적 공격을 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영적 공격을 받았을 때 그것을 소멸하는 것이 충복 기도요.
에베소서 6장 11-17절에 유명한 말씀이 있어요. 사도 바울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11. 너희가 마귀의 간계들을 능히 대적하며 서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12. 우리는 살과 피와 맞붙어 싸우지 아니하고 정사들과 권능들과 이 세상 어둠의 치리자들과 높은 처소들에 있는 영적 사악함과 맞붙어 싸우느니라. 13. 그러므로 너희가 악한 날에 능히 버티어 내고 모든 일을 행한 뒤에 서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를 동여매고 의의 흉갑을 입으며 15. 화평의 복음을 예비한 것으로 너희 발에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취하여 그것으로 너희가 능히 그 사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끄며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라.”
사도바울이이 말씀을 썼을 때 사도 바울의 머릿속에는 뭐가 들어 있냐면 당시 로마 사람들이 전쟁할 때 입었던 갑옷 그런 것들이 머릿속에 있는 거요. 전쟁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여러분 마귀의 관계를 대적하기 위하여 전신 갑주를 입으십시오. 뭐가 전제가 돼 있어요. 마귀의 관계가 늘 있는 거예요. 우리들이 구원의 투구를 쓰고 우리들이 믿음의 방패를 들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우리들이 전신갑주를 입지 않으면 우리들이 이길 수 없는 거예요. 또한 뭐라고 이야기를 해요.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서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해 악한 자가 우리들을 향해서 화살을 쏜다는 얘기예요. 문제는 우리들이 그것을 어떻게 소멸할 것이냐에 대한 문제죠 자 조금 전에 이야기했어요.
사도 바울의 머릿속에는 당신 로마 사람들이 어떻게 전쟁 있는지 그 모습이 머릿속에 있었어요. 당시 로마 군인들은 방패를 들고 나가서 전쟁을 했는데 그 방패의 길이가 1m 20 정도 되는 굉장히 큰 방패였습니다. 더 중요한 거 그 방패를 무엇으로 만들었는가? 저게 표현이 잘될지 모르겠지만 저게 가죽으로 만듭니다. 방패를 그게 전쟁에 나갈 때 되면 사람들이 에이 이제 방패로 진을 쌓는 거요. 저 방패에 물을 먹이고 합니다. 당시에 제일 무서운 공격이 뭐였냐면 불화살 공격입니다. 불화살 쫙 불 .화살을 쏘면 여기 그 300이라는 영화에 화살이 막 나오는 장면이 있나 모르겠다. 있으면 보여주고 없으면 상상하시고 네 여기 300이 있네요. 예 자 어떤 장면 조금만 보세요.
그런데 저기에 불이 붙어 있어요. 저건 불이었기 때문에 빨리 꺼야 돼요. 자 자 저기에 이제 불이 있는 거예요 자 그럼이 화살이 이렇게 쫙 오면 저게 막 불 붙으면 죽는 거요. 맞으면 죽는 거요. 그래서 물을 먹인 화살을 가지고 딱 대고 있으면 화살이 이렇게 딱 꽂혔을 때 식하고 불화살이 소멸되는 거요. 사도 바울의 머릿속에는 저게 있는 거예요. 전쟁에 나가서 사단이 우리를 향하여 불화살을 쏠 때 “너희들이 믿음의 방패를 들고 불화살을 소멸 해내라” 이런 상상을 해 보세요. 지난 주 말씀과 연결되어서 사단이 저와 우리 교회와 여러분들을 흔들기 위하여 저를 공격할 때 여러분들이 믿음의 방패 들고 아까 그 진을 짜 주는 거요.
그때 사단의 불화살이 여러분들의 방패에 꽂혔을 때 정말 하고 꺼지는 거예요. 승리하는 거요. 여러분의 믿음의 공동체에서 누군가 어려움을 당할 때 그들이 시험을 당하고 있을 때 여러분들이 중보 기도의 방패를 다 틀어 주는 거예요. 그리고 불화살이 거기에 꽂힐 때 모든 그 불화살이 소멸되는 그래서 우리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거요. 이게 뭐라고요. 중보 기도라 믿음이 강한 자가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마땅히 감당하는 것이 그것이 중보 기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 제가 오늘 말씀 서두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 성도들이 상처를 받는 일들이 참 많다. 왜 그렇게 상처를 받을까? 그런데 보면 사단의 개도 있고 또 우리 신앙인들 가운데서도 왜 그런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지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요.
오늘 여러분들에게 굉장히 좋은 팁을 하나 알려 드려요 누군가 여러분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여러분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 이제 더 이상 상처를 받지 마세요. 누군가 여러분들한테 상처를 받을 때 어떻게 해요. 믿음의 방패 딱 드세요. 이걸 말로 하면 이제 그 사람이 사탄이 되니까 또 그 사람이 상탄 상처를 받을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믿음의 방패를 속으로 이렇게 딱 들면 그 불화살이 소멸 돼요. 사단은 절대로 하나님의 자녀를 죽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를 죽이는 것은 상처받은 사람에게 더 상처를 주는 그리스도인이 있을지도 몰라요. 우리들이 꼭 기억해야 돼요. 아 믿음이 강한 자는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감당하기 위해서 내가 약한 자가 되어 주는 거예요.
그 사람의 짐을 내가 능히 쳐 주는 거예요.
비난하는 것이 아니에요. 믿음의 방패를 들고 진을 짜는 거예요. 오늘이 중보 기도의 역사가 우리 만나 교회 여러분들이 이 만나교회당 위해서 신앙생활 하는 동안이 교회당 안에 저 뒤에 있는 개인 기도실, 저 사층 잠실에 있는 기도실, 1층에 있는 잠실에 있는 기도실, 1층의 어머니 기도실, 여러분들의 기도의 족적, 여러분들의 기도의 흔적, 여러분들의 눈물이 뿌려지기 시작할 때 이 교회 공동체 전체가 여러분들의 삶이 전체가 방패의 진을 만들지 않을까? 한번 상상해 보세요. 와 이게 아언 돔이야 사탄이 보니까 만나교회당은 그냥 이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방패를 들고 싹 감췄어요. 막 환청이 들려 불화살이 다 소멸되고 있어요. 놀랍지 않아요. 놀래 주세요. 놀랍지 않아요. 우리가 이런 기도의 공동체 그렇게 만들 수 있다면 오늘 누군가 힘을 얻고 믿음으로 나아가지 않겠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영상녹취 / 김은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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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행복은 남에게 나눠 줌으로써 비워지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을 나눔으로써
채워지는 신비로운 것입니다. 베푸는 만큼 행복의 양도 그만큼 많아 집니다.
오늘 하루도 주위 사람들에게 베푸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설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