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평진전에 소개된 모장원은 본명은 모돈원이다. 삼명통회에 나온다.
모돈원 방안 경신년 졸 절인 毛惇元 榜眼 庚申年 卒 浙人[삼명통회]
戊 甲 庚 乙
辰 午 辰 酉
그런데 문제는 모돈원이 진짜 본명인데 이를 모장원이라고 번역한 실수는 그렇다치더라도
이 명조가 실제 모장원 명조가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그래서 실제 모돈원 명조는 이 명조는 입하 이틀째에 태어나 辛巳월생이다. (다음 블로그 자료를 참고)
https://blog.sina.com.cn/s/blog_63d1d9ea0102yjwr.html
따라서 모돈원의 명조는乙酉 辛巳甲午戊辰가 된다. 그러면서 말히길
자평진전에 나오는 모장원 명조는乙酉庚辰甲午戊辰는 중국역대 장원명부에는 나오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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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여부를 확인해 봅시다
중국 싸이트에서 찾은 모돈원의 신상 자료입니다 [번역이 미흡할 수 있으니 참고용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돈원의 출생일자가 두개가 나오는데 각기 다릅니다.
그렇다면 이건 모돈원의 출생일은 불확실하다는 것이 정설인 겁니다.
또한 중국인이 주장하는 모돈원이라는 신상명세에 의하면
1525년 에서 1560년 사망이라 소개합니다. 그런데 모돈원은
1559년에 등과후 조정에 진출하여 그 다음해인 1560년도에 사망했다고 한다
조정에서 근무한 기간이 1년 도 안되는 수습사원으로 수습과정에 사망한 것이다
조정에 영향을 미칠 큰 영향을 미칠 기회도 갖지 못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책을 편찬하는 등의 지금까지 인물백과에 근 500년간 출현했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백과인물에 보면 모돈원은 사망미정이라고 보는게 정설입니다.
더 오래 살아야지만 책도 쓰고 조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수가 있는 것이죠.
현재 500년을 내려오면서도 삭제되지 않고 인물백과에 등재가 될 수 있는 겁니다.
다음아래는 관련 자료입니다
1 모돈원이 모장원이고 1525년생으로 신사월주라고 주장하는 중국인의 글입니다
毛惇元(1525~1560):字裕仁,号春台,浙江余姚人。明嘉靖四年四月初五日辰时(1525.04.27.)生。嘉靖三十一年(1552)乡试中举。嘉靖三十八年(1559)己未科进士,会试第三名,殿试第二名(榜眼),授翰林院编修。嘉靖三十九年(1560)“死于任上”(《通会》载“庚申年卒”), 终于翰林编修。年仅36岁。有《殿试策》一卷。
모돈원(毛惇元, 1525~1560): 자는 위런(裕仁), 호는 춘태(春台), 저장(浙江江)성 위야오(余姚) 출신입니다. 명나라 가정 4년 4월 5일 진시(1525.04. 27) 생이다. 가정 31년(1552) 28세에 향시에 급제함. 가정 38년(1559) 35세에 과기미과 진사에 3등으로 합격하고 대전에서 치뤄진 대전시험에서 2등(방안)을 하여 한림원에 편수를 맡겼습니다. 가정 39년(1560) 36세에 "직무중에서 죽다"(통회에는 경신년졸로 기재되어 있다)고 하여 마침내 한림이 편수하였습니다. 겨우 서른여섯 살. 《전시책》이라는 권이 있습니다.
28세 향시합격하고 35세 진사합격 후 2등 방안으로 등과하여 36세에 사망하였다
2 백과
모돈원[毛惇元](1525年—?),字裕仁,号春台,浙江绍兴府 余姚县(今余姚市)人,民籍,明朝政治人物,榜眼及第。
절강성 출신으로 명나라 가정시대의 인물이다
생애[生平]
嘉靖三十一年(1552年)壬子科浙江乡试第三十七名。嘉靖三十八年(1559年)己未科会试第三名,殿试中式第一甲第二名进士授翰林院编修。卒于任上,后事不详。
가정 31년(1552년) 28세에, 임자과 절강(浙江)향(鄕)의 시험에서 37위에 올랐다. 가정 38년(1559년) 35세에 기미과시험에서 3등, 대전에서 치러진 궁궐 시험에서 중국식 갑과 2위를 차지했다. 재임중 사망하였으나 날짜는 미상이다.
3 바이두
모돈원(毛惇元, 1529~? )의 자는 위런, 호는 춘태, 절강성 위야오 출신입니다.
명 세종 가정 38년 기미과(1559) 방안출신자이다.
출생: 1529년
주요 업적 :가정 31년 1552년 전시에 2등하여 한림원에 편수를 맡겼습니다.
출생지 저장 위야오
대표 작품 《전시책》.
모돈원은 가정 31년(1552) 24세에 향시 37위, 회시 3위, 전시 2위를 차지하여 한림원에 편수를 맡겼습니다. 드디어 한림이 편수했습니다. 모돈원의 자료는 극히 적어 오늘날에도 그의 《전시책(殿詩策)》 한 권만 볼 수 있습니다. 사망일자는 미정입니다
정리합니다
2번, 1525년출생자는 1552년 28세에 향시합격하고 1559년 기미년 35세에 등과하였습니다 사망은 미정
3번,1529년 출생자는 1552년 24세 에 향시합격하고 기미년 31세에조정에 방안으로 등과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망날자는 미정
-고로 모돈원의 출생일짜는 통일된 자료가 없으므로 불확실하다고 해야 정답입니다
그런데 중국인은 이런 자료들을 취합하여
1번처럼 ,1525년 출생자로 맞추고 근황은 1529년으로 맞추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불확실한 자료를 가져와 마치 기정 사실화가 된 것처럼 부풀리고 있는 겁니다
삼명통회에 의하면
-모장원 방안 경신졸-
사망일자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출생일과 사망일을 맞추게 되면
1525년~ 1560년[경신년]이 나오게 되는 겁니다
이게 중국인이 모돈원의 근황자료라고 소개한 출생년도와 사망년도의 정체입니다
그런데
모돈원의 이력을 1529년~1560년이라고 보면
1529년 출생자는 1552년 24세 에 향시합격하고 기미년 31세에조정에 방안으로 등과한 것이고 그 다음 1560년 32세에 사망한 겁니다. 1529년도 출생자는 32세 요절명조인 겁니다. 조정 근무는 1년도 안됩니다. 이것은 만약 1525년 출생자라고 가정해도 역시 근무는 체 1년도 안됩니다. 왜 이런 경우가 발생했는가 하면 인물백과에서는 사망날짜가 미정이라고 단언했음에도 삼명통회의 동일인물로 추정이 되는 모장원의 사망날짜는 분명하게 경신년이라고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525년도 출생자를 1560년 경신년에 억지로 맞추려다 보니까 1559년 등과 후 1560년 사망이라는 수습과정중에 요절한 명조가 되어 버린겁니다. 그런데 이력을 보게 되면 대과 장원한 것도 아니고 2등 방안합격자인데 당장 수습사원이죠. 무슨 등과하자마자 수습과정중에 한림원의 편수를 맡을 수가 있겠나요. 궁궐은 하도 넓어서 1년 살이해도 궁궐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는 초보자인 겁니다
그런데 무슨 책을 저술하고 직무중 사망이라 단정할 시간여유가 있겟습니까?
그래서 결론은
삼명통회에서 언급한 모장원이 경신년 사망이라고 한다면
그 중국인이 주장하는 모돈원은 가짜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1529년생은 조정의 근무가 미처 1년도 안되는 인물입니다
1525년 출생이라 가정해도 조정 근무가 채1 년밖에 안되죠
수습사원으로 근무중 사망한 것인데 이런 인물이 무슨 유명하다고
근 500년 동안 자료로 떠 있겟습니까
그러므로 실제 모돈원은 사망일이 미정으로 나와 있는게 정설입니다. 더 오래 살았을 가능성이 높죠
책도 저술했으므로 그 책의 유명세로 보면 좀 더 오래 살았겠고
그 결과 책을 지은 저자로 유명인물로 남아 있을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삼명통회에 기록이 된 모장원의 경신년 사망에 억지로 맞추려고 하다 보니
그 중국인이 모돈원을 인공된 가공의 인물로 각색한 것으로 볼 수밖에는 없겟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