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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세례18*
사도행전 11장1-16절*송태근 목사
➤“1. 유대에 있던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것을 들었더라. 2.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에 속한 자들이 그와 다투며 3. 이르되, 네가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들어가 그들과 함께 먹었도다. 하거늘 4. 베드로가 그들에게 그 일을 처음부터 되풀이해서 말하고 차근차근 풀어 설명하여 이르되, 5. 내가 욥바 시에서 기도하다가 무의식 상태에서 환상을 보았는데 마치 큰 보자기 같은 어떤 그릇 하나가 내려오되 네 귀퉁이에 의지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와 내게 이르더라. 6. 내가 그것에 주목하고 깊이 생각하며 땅에 있는 네 발 가진 짐승들과 들짐승들과 기는 것들과 공중의 날짐승들을 보니라. 7. 또 내가 들으니 한 음성이 있어 내게 이르시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거늘 8. 내가 이르되, [주]여, 그리할 수 없나이다. 어느 때라도 속되거나 부정한 것이 내 입에 들어간 적이 없었나이다. 하니라. 9. 그러나 하늘로부터 다시 음성이 있어 내게 응답하시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10. 이 일이 세 번 있은 뒤에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 올라가더라. 11. 또, 보라, 즉시로 세 사람이 내가 있던 집에 이미 이르렀는데 그들은 가이사랴에서 내게로 보낸 사람들이라. 12. 그 영께서 내게 명하사 아무것도 의심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게 하셨으므로 또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우리가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13. 그가 우리에게 자기가 자기 집에서 천사를 본 것을 알리되 그 천사가 서서 그에게 이르기를, 사람들을 욥바로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부르라. 14. 그가 네게 말씀들을 전하리니 그 말씀들로 너와 네 온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음을 알리니라. 15.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님]께서 그들 위에 임하시되 마치 처음에 우리 위에 임하신 것 같이 하시더라. 16. 그때에 내가 [주]의 말씀 곧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참으로 요한은 물로 침례를 주었으되 너희는 [성령님]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을 기억하였노라.”(행11:1-16 KJV)
오늘 주제가 성령세례입니다.
이 ‘성령세례’ 라는 주제를 지금도 한국 기독교에 굉장히 논란의 한복판에 있는 주제입니다. 크게 두 부류가 있지요. 은사주의 있어요. 오순절 계통의 쪽에서는 주로 이제 성령 세대를 어떻게 하냐면? 처음에 예수님 믿을 때는 다 믿는다. 성령의 은혜로 그리고 나서 그저 두 종류가 나누어지는데? 어떤 사람은 굉장히 액티브하게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데 어떤 사람은 뭐 예수님 믿는 건지? 하는 건지 마는 건지? 그냥 대강, 대강이요. 믿는 그룹이 있다.
그럼 어디서 차이가 나느냐? 성령세례를 받지 못해서 그런 차이가 난다. 라고 주장을 합니다. 어디서요. 이런 은사주의 계통 쪽에서 오순절 계통 쪽에서 그런데 이건 굉장히 그 신학적으로 위험의 소지가 있어요. 자칫하면 교회 안에 성도끼리의 계급이 발생할 수가 있어요. ‘성령세례’ 받은 신자, 못 받으신 자, 이것은 성경의 바른 가르침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 ‘개혁주의’ 라는 우리 입장에서는 어떻게 가르치느냐? 하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성령이 임해서 성령의 역사로 눈이 열어지고 구원을 받게 되요. 그때를 우리는 성령 세례를 받는다고 얘기합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에베소서 5장18절에 말씀처럼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이것은 평생에 걸쳐 우리 신자들이 성령세례 받은 사람들이 평생에 걸쳐 감당해야 될 순종의 삶이다 이렇게 크게 두 부류가 나눠져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사도행전에서 베드로가 언급한 이 성령 세례가 도대체 어떤 관점에서 말한 것일까? 대해서 조금 포커스를 좁혀서 여러분들과 말씀을 좀 나눌까 합니다. 오늘 내용이 뭐 그렇게 썩 쉽게 들려지는 내용은 아니기 때문에 또 점심 후라 몸도 노근 할 텐데 굉장히 좀 힘든 시간이 될 겁니다. 내용도 힘들고 시간도 힘이 들고 그럼 우리 한번 가봅시다.
제가 어제 여길 길 건너 통일교회가서 복음을 전했어요. 이 소식을 어떻게 우리 교회 성도들이 알고 아주 그 붕괴를 했습니다. 어떻게 삼일교회 담임목사가 그러니 이단 취급을 하는 통일교회에 건너가서 교재 하고서 설교를 할 수가 있느냐? 해서 우리 삼일교회 이제 일부 성도들이 이제 난리가 난 거예요.
여러분 이렇게 담임목사가 통일교회 가서 설교했다는 소식의 많이들 놀라셨지요. 정말 그랬다면? 우리 교회 성도들의 반응이 어땠을까? 물론 이건 제시 예를 든 겁니다. 예를 든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성경에서 그런 유사한 일이 벌어질 겁니다. 오늘 그 내용을 사실은 베드로가 설명을 하다가 한 말이 오늘 본문이에요.
어떤 배경에서 그 말을 하게 되었나? 성경을 좀 보십시다. 11장1절을 볼까요? ➤“1 유대에 있던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것을 들었더라.” 유대라는 말은 여기 예루살렘을 얘기합니다. 이 말은 무슨 얘기하면 이방인에게 가서 복음을 전할 때, 그래서 그들이 복음을 듣게 되어 때, 이 이야기가 예루살렘 계 들린 거요. 누가? 누가 그런 짓을 했어 알아보니까? 예루살렘교회 담인 목사의 베드로가 가서 그 짓을 했대? 세상에 말도 안 돼!
2절-3절, 그 얘기입니다. ➤“2.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에 속한 자들이 그와 다투며 3. 이르되, 네가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들어가 그들과 함께 먹었도다. 하거늘” 자, “네가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들어가 그들과 함께 먹었도다.” 이방인들 얘기하는 겁니다. 집에 들어가서 함께 먹었다 먹어다 하는 것은 [식사를 왜 했냐?] 먹은 것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게 아니고 교재를 얘기한 거요.
왜 거기 가서 복음 전하고, 그 사람들을 우리가 개돼지 지금 하는 사람들인데 말이 되냐? 그래서 이제 베드로 사도가 돌아오기만을 분기탱천((憤氣撐天)하여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이걸 베드로가 알았어요. 와서 보나까 분위기가 심상찮다, 공기가 안 좋아요. 아 그래서 이들이 지금 굉장히 그 화가 나 있구나? 자! 여러분 사실은 그게 아닙니다. 지금부터 제 설명을 좀 잘 듣고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면서 4절부터 18절에 이르도록 쭉 그간에 있었던 왜 가게 되었는지? 경과를 되돌아가 설명을 해 들어가는 거예요. 이제 몇 절만 저하고 교독을 해요. 설명을 시작합니다.
➤“4. 베드로가 그들에게 그 일을 처음부터 되풀이해서 말하고 차근차근 풀어 설명하여 이르되, 5. 내가 욥바 시에서 기도하다가 무의식 상태에서 환상을 보았는데 마치 큰 보자기 같은 어떤 그릇 하나가 내려오되 네 귀퉁이에 의지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와 내게 이르더라. 6. 내가 그것에 주목하고 깊이 생각하며 땅에 있는 네 발 가진 짐승들과 들짐승들과 기는 것들과 공중의 날짐승들을 보니라. 7. 또 내가 들으니 한 음성이 있어 내게 이르시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거늘” 아멘
자 여기까지만 읽읍시다. 18절에 다 읽을 수 없으니까 자, 베드로가 이제 설명을 해 나가요. 여러분 오해를 풀고 제일 먼저 듣고서 화를 내십시오. 내가 고렐료의 집에 가게 된 경위는 이렇습니다. 내가 무슨 가려고 계획을 짠 것도 아니고 의도를 가진 것도 아닌데 피장이 시몬의 집에 있는데 환홀경에 환상 하나가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환상 속에서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내려주신 보자기 같은 그릇이 내려오는 데 그 안에는 각종 부정한 짐승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난 지금까지 율례를 따라 그걸 먹은 적도 없고 또 그래서 이것도 못 먹겠습니다. 하니까 강권하여 하나님이 친히 음성으로 잡아먹으라. 잡아먹으라. 잡아먹으라. 이렇게 말씀하실 때 여러 이것을 어떻게 거절 합니까? 해서 마친 이 그림이 나에게만 보여 진 게 아니고 그 고렐료 라는 사람에게도 환상 중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친히 나를 거명 하셔 피장이 시몬의 집에 감은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있는데 그를 초청 해다가 말씀을 듣도록 해라 이 환상을 보여 정말 그 집에서 사람이 나에게까지 왔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들을 따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는데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여러분! 하면서 15절 얘기하는 거예요. ➤“15.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님]께서 그들 위에 임하시되 마치 처음에 우리 위에 임하신 것 같이 하시더라.” 자 이제 앞을 보세요. 여러분 지난주 고렐료 집안의 이야기를 설명 하면서 들어가다가 사도행전 전체에 걸쳐 중요한 3대 사건이 있다 그랬어요? 기억나시지요. 서론에 말씀을 드렸어요. 첫 번째 사건 이 뭡니까?
오순절 날 마가의 집에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 성도에게 성령님이 임한 사건이에요. 자 이것은 교회 사적으로 왜 중요하다 그랬지요? 이 땅의 공식적인 교회가 출생 하면서 동시에 그 전까지는 개별적으로 성령이 역사 하셨는데 이제는 예수님의 약속처럼 내가 아버지께로 가야 보혜사 성령이 너희에게로 와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할 것이다. 이 약속이 공식화 되고 공개적으로 선포되는 순간이에요. 그래서 이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의 성령 강림은 우리 기독교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에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두 번째 중요한 사건이 뭐라 그랬어요? 절대 예수님 믿기는 가장 불가능한 임무를 하나님이 거꾸로 틀어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시고 그럼 뭐로 준비하시지요? 이방 땅의 복음을 전할 하나님의 복음의 나팔수를 다마스쿠스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셔서 사울을 엎어 버리십니다. 그리고 그를 이방을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라고 사명을 집어넣어 것이요. 이 두 번째 중요한 사건이었어요.
오늘 이 고렐료 집안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3대 사건 중에 세 번째 사건이 뭐에요. 바로 오늘 이 고렐료 집안의 역사입니다. 자 고넬료 집안은 아니 뭐 다른 집에서 성령의 역사 없었나? 다른 사람에게 성령의 역사 없었나? 이것보다 더한 역사들이 많았는데 하필 고넬료의 집안일까? 자 이게 중요합니다. 보내려는 지금 뭐에 상징적 대표의 이 이방인들을 대표하는 인물이에요. 근데 지금 이 이방이 가정의 정통 유대인 베드로가 보는 앞에서 뭐가 임하지요? 베드로의 고백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
➤15절에 “15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님]께서 그들 위에 임하시되 마치 처음에 우리 위에 임하신 것 같이 하시더라.”
이 말은 어느 사건을 염두에 둔 발언일까요? 마가의 다락방 오순절 사건이에요. 아니 놀랍게도 우리 유대 공동체를 중심으로 모여 있던 마가의 다락방에 오순절과 같은 사건이 지금 이방에 상징적인 과정이 고넬료의 집안의 그 공동체의 똑같이 임하더란 말이에요. 이 두 개의 사건은 그래서 중요한 거요. 마가의 다락방이 오순절 역사는 유대의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역사해 따르면 이 똑같은 역사가 제가 어디에도 나타나는가? 하면 이방의 대표 격인 상징을 가진 고렐료의 집안의 같은 성령님이 같은 역사를 하시는 걸 베드로가 목적을 한 그 얘기를 즉 설명을 하는 거예요.
이 사건은 우리 기독교 역사에 얼마나 중요 했던지? 하나님이 아주 확정적 싸인을 성경 속에 슬쩍 감추어 놓으셨어요. 우리 11장11절 읽겠습니다. ➤“11 또, 보라, 즉시로 세 사람이 내가 있던 집에 이미 이르렀는데 그들은 가이사랴에서 내게로 보낸 사람들이라.” 베드로가 쭉 지금 설명을 해 나가다가 마침, 마침 세 사람이 내가 무두장이 시몬은 집 앞에 서 있으니 가이샤라에서 내게로 보낸 사람이라. 자! 이 3사람? 누가 보낸 사람이요? 고렐료가 보낸 사람이에요.
역사의 증인 숫자
가이샤라에서 그런데 특이한 것은 구태여 에어 숫자를 밝힙니다. 몇 사람이요? 3사람, 이 둘은 하인 하나는 군인이요. 앞에 10장에 보면 정확히 나와 있습니다. [하인들과 함께 병사 하나를 보냈다.] 라고 되어 있어요. 3명을 보내요. 그런데 왜 숫자를 구태여 밝혔을까요?
12절 볼까요. ➤“12. 그 영께서 내게 명하사 아무것도 의심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게 하셨으므로 또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우리가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11절은 분명 3명이었는데 그 다음 절에 인원이 늘었어요. 4명으로 늘었습니까? 여섯 명의 됐어요. 나머지 셈이어서 나타난 겁니까? 여러분 10장45절을 먼저 볼까요? ➤“45. 할례자들에 속한 자들로서 믿은 자들 곧 베드로와 함께 온 자들이 이방인들 위에도 [성령님]을 선물로 부어 주시는 것으로 인해 다 놀라니”
베드로의 측근을 얘기합니다. 제자정도의 그룹을 얘기에요. 자! 이들이 베드로와 고넬료의 집까지 동행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기 보세요. 이렇게 계산을 좀 해 보십시다. 고넬료가 보낸 세 사람과 베드로의 측근 세 사람이 합해서 몇 사람이에요. 6사람이에요. 그래서 여섯 형제라고 일부러 형제라는 표현을 합니다. 지금 이 구룹은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섞여있는 그룹인데 [형제]라고 호칭을 해요. 그런데 이 6명이서 누구네 집으로? 지금 가느냐면 고넬료의 집으로 갑니다. 그러면 실질적으로 성경을 꼼꼼히 살펴보시면? 어렵지 않게 고넬료의 집에 일곱 명의 들어간 것을 알 수가 있어요. 누구까지를 포함 할까요?
12절을 보세요? ➤“12. 그 영께서 내게 명하사 아무것도 의심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게 하셨으므로 또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우리가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역사적인 증인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여기에 나는 누구에요? 물론 베드로요. 그럼 인물이 몇 명입니까? 일곱 명의 일단 공식적으로 고렐료에 집으로 초청받아 들어간 인물이 거래일 요가 먼저 보냈던 3명, 자기사람과 베드로 측근에 세 사람과 베드로와 함하니 몇명이 일곱 명입니다. 자 이 숨겨져 있는 숫자를 성경 기록자는 왜 이렇게 설명을 했을까요? 여기에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자 원래 고대 히브리규례는 율법에도 보면 일반적인 사건은 증인이 몇 명 이상이면 됩니까? 2명 이상이면 되요. 그러면 그 사건에 대한 증거가 되고 확정이 됩니다.
그런데 사안에 따라서 그것이 역사적인 사건이 건하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세계사적으로 감추어진 사건을 경우에는 반드시 일곱 명의 증인이 필요했습니다. 이건 이집트의 고대법에도 기록돼 있는 내용입니다. 7명이 필요해요. 지금 그만큼 이 고렐료의 집에 이방 땅에 유대인들과 같이 마가의 오순절 어느 다락방의 사건과 같이 똑같이 성령이 임했던 사건은 우리 선교 역사와 기독교의 역사에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 말이요. 자! 그럼 이제 알았어요. 뭐 그 정도로 중요하다. 그 말이지요. 그런데 이제 베드로가 그 얘기를 하면서 오늘 본문 16절에 이런 표현이 있어요.
➤16-17절 “16. 그때에 내가 [주]의 말씀 곧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참으로 요한은 물로 침례를 주었으되 너희는 [성령님]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을 기억하였노라. 17. 그런즉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우리에게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무엇이기에 [하나님]을 거역할 수 있었겠느냐? 하니라.”
내가 설교를 할 때, 그 이방인들에게도 우리 마가의 다락방에 임했던 유대 공동체에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은 보고 성경 한 구절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 한 마디가 생각이 났대요? 베드로가 바로 그 본문의 오늘 본문 말씀이에요. 그러면 그 본문 말씀에 근본적인 출처를 한번 들어가서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3장11-12절, 제가 읽겠습니다. ➤“11. 참으로 나는 회개에 이르도록 너희에게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능력이 더 있으시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나를 자격도 없노라.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님]으로 침례를 주시고 불로 침례를 주시리니 12. 곧 손에 키를 들고 자신의 타작마당을 철저히 정결케 하사 자신의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시되 껍질은 끌 수 없는 불로 태우시리라, 하니라.”
요한은 물로 침례를 줬어요. 그 물 침례는 유대인들을 향해서 회개를 촉구하는 관점의 초점이 있었어요. 너희들이 회개해야 된다. 그런데 이게 참 이 당시 유대인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자기들이 죄일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구원이 더 필요하다는 의미가 이 내면의 들어와 있지를 않아요. 그런데 거기다 대고 너희 죄인이야 회개해야 돼, 구원 받아야 돼, 그러니까 말이 안돼요. 그래서 광야의 외치는 소리처럼 그냥 막 말씀을 소리치고 던지고 말씀을 선포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어서 이런 얘길 해요.
내 뒤에 오시는 이는 침례요한 뒤에 6개월 뒤에 오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요. 예수님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님]으로 침례를 주시고 불로 침례를 주시리니”
성령님으로 불로 침례를 주시고 이제 이걸 일부 이제 목회자들이 잘못되게 오해를 해가지고 막 집회하다가 여러분 오늘 여러분 불세례를 맞기를 원합니다. 막 그래요. 아! 그러면 더 정신 줄 놓고 있다가 아멘! 아멘, 그래요. 이게 뭔 소리인지도 모르고 아, 그래서 우리가 그 성경의 아주 기초적인 부분이 맥락에서 반드시 읽어야 된다는 거요. 우선 여기서 성령님으로 불로 침례를 받을 것이다. 이 말이 무슨 말일까? 12절을 전체가 눈을 부릅뜨고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12. 곧 손에 키를 들고 자신의 타작마당을 철저히 정결케 하사 자신의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시되 껍질은 끌 수 없는 불로 태우시리라, 하니라.” 아멘! 자 이게 알곡이 나오고 그 반대 개념으로 뭐가 나와요? 앞에 11절에 대한 해석 이란 말이에요. 그런 쭉정이 어떻게 한 대요?
불, 불로 이건 뭐냐? 심판이지요.
이런 심판 받고 싶어요. 불은 여기서 무슨 기능으로 설명되고 있나요? [심판]란 말이에요. 성령님으로 불로 세례를 받는다는 말은? 그러면 불은 심판하면 심판의 반대 개념이여요? 구원이요. 그럼 여기서 성령 침례는 무슨 은사를 주고 권능을 얘기하는 겁니까? 구원을 얘기하는 겁니까? 구원을 얘기하는 거예요. 구원이 반대 개념이 뭐예요? 심판이지요. 그래서 성령님으로 통하여 불로 침례라는 말은 구원과 심판으로 너희가 침례를 받을 것이다. 그래서 알곡과 쭉정이 반대 개념으로 등장을 하는 거예요.
침례요한이 여기서 말하는 것이 뭐요. 예수님이 오시면 그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자는 구원을 받지만 영접하지 않고 불순종하는 자는 쭉정이가 되어서 뭐를 받는다는 얘깁니까? 심판을 받는다는 얘기예요. 믿습니까? 그 성령님의 침례를 말하는 거예요. 자 고대로 오늘 본문말씀으로 다시 가서 보세요.
➤16절 “16. 그때에 내가 [주]의 말씀 곧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참으로 요한은 물로 침례를 주었으되 너희는 [성령님]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을 기억하였노라.”
그러면 당연히 오늘 이 본문 말씀에서 말하는 성령님의 침례는 소위 은사주의자들이 말하는 무슨 은사, 권능, 역사, 신비 체험, 이런 어떤 사건 적인 것입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구원받고 거듭나는 순간을 얘기하는 겁니까? 후자의 전자요? 후자요! 지금 현장이 코렐료의 집에 성령님의 임재로 뭐가 일어난 거요. 구원의 역사가 임하는 거요. 그걸 누가 지금 보는 거예요. 베드로가 보는 거예요.
오! 우리 유대 공동체의도 임했던 그 구원의 역사가 이 이방 땅, 상징적인 존재에 고텔료의 집안에도 지금 똑같이 임하고 있구나? 이것을 사도 바울이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을 했어요. 여러분! 우리 고린도전서 12장13절을 보시겠습니다.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나 모두 한 성령에 의해 침례를 받아 한 몸 안으로 들어왔으며 모두가 마시게 되어 한 성령 안으로 들어왔느니라.”
이것은 철저하게 구원의 역사를 설명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성령님을 통한 침례는 사도행전에서 어떤 개념, 그러니까 성령 세례를 받았다. 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의 몸으로 어떻게 됐다는 얘기예요.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에요. 믿습니까? 이걸 어떤 은사를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권능을 얘기 하는 게 아니에요. 성령님에 의해서 자유자나 종이나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그리스도로 한 몸으로 편입되었다. 누구에 의해서 한 성령님에 의해서 믿습니까? 그 뜻이에요.
자 그렇다면 이제 마무리 단계에서 여러분들 마음속에 이런 질문이 있을 수가 있지요? 알았어! 그러니까 성령님의 침례가 무슨 은사나 권능 등을 얘기하는 게 아니고 자유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또 유대인이나 성령님에 붙들려 그리스도로 한 몸으로 편입되는 사건이란 얘기이다. 그럴 뭐 악을 쓰느냐? 우리 삼일교회가 관점이 많아요. 가장 중요한 강점은 이런 기회가 젊고 그 젊은 동력의 맞춰서 선교에 집중해 왔다는 겁니다.
이 문제는 주님 오시는 날까지 교회가 존재해야 될 본질이고 이후에 이유이가 때문에 계속 강조하고 확대하고 집중해야 된다고 저는 강조입니다. 또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아뿔싸 상대적으로 교회로 써 갖춰야 될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히 여겼던 게 아울러 발생해 있었어요. 우리가 그것을 그동안 못봐 온 부분이 굉장히 많습니다.
여러분 첫 장부터 얘기할 수 있어요. 교회가 뭐다 할 수 있나 잘하는 것 한두 가지만 강점을 살려서 잘하면 되지. 그것은 회사에서나 공장에서 하는 논리입니다. 교회는 회사 공장이 아니에요. 경영에 논리가 교회로 들어와서도 안돼요. 교회는 Ecolle 성경의 가치로 가정이라고 얘기합니다. 에덴동산의 가장 최초의 기관이 가정의 그 가정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런 온전하고 균형이 있는 가정은 뭘까요?
예수님과 한 몸
가족은 할아버지도 계셔야 되고 이제 막 출생을 알리는 아기 울음소리도 있어야 되고 또 젊은이들도 물론 있어야 되고 부모님들도 계셔야 됩니다. 그게 정상적인 가족의 모습이에요. 그런데 우리 삼일교회는 강점, 강점만 효율과 효과만 그냥 지금까지 집중해서 잘 해 오다 보니까 그 잘 한 것에 반해서 그 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히 되고 무시되어 지고 취급되어 지지 않은 너무나 소중한 가치들을 잃어버리고 지냈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게시판 문제와 교회학교 문제입니다. 이 청년들이 우리 아까 뉴스에서도 봤지만 은 10년 전에는 청년들이 대학생들의 거의 대부분 이었어요. 대학생들은 뭐 졸업 안하고 4 다시 1학년 4 다시 2학년 이러고 캠퍼스에 남아있나요? 졸업하고 일터에 들어가서 결혼하고 애 낳고 자꾸 이 연령 전체 층의 승단 한단 말이요. 잘 올라간다 말이요. 그 이 변해가는 연령층의 구조에 맞춰서 교회가 목양적인 돌봄의 디펜스를 해줘야 되요. 그럼 어린 아기들 문제 맞벌이 부부들의 문제 이게 현실로 밀려 올라오잖아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외에도 우리 삼일교회가 젊은이들이 많다 보니까 그 청년들에게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건지? 결혼을 어떻게 준비해야 되는 건지? 이성교제 어떻게 하는 건지? 이런 아주 디테일한 것 같지만 사소한거 하나라도 조금만 성경적 가치로 눈을 열어주고 물꼬를 터주면 한 청년의 인생이 바뀌는 문제일 수가 있어요.
그런데 이런 쪽에서 목양적 돌봄을 우리가 거의 못해 왔던 게 사실입니다. 이건 굉장히 어쩌면 선교만큼이나 소중한 가치를 놓쳐버리고 있는 경우의 수가 있어요. 우리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은 크고 보이지 않는 살기만 많은지 아십니까? 멀티 킹 여러분이 맺어 여러분들이 그냥 즐겁게 시청하는 이 삼일뉴스 난 저 친구들이 전부 교회 직원들이 줄 알았어요?
처음에 거의 토요일마다 밤을 새다시피 저 짧은 영상을 제작을 해요. 다 직장 갖고 있는 형제자매들인데 저거를 위해서 또 머리를 쓰고 또 현장에 가서 직접 그림을 따고 이게 보통 작업이 아닙니다. 우리는 보기에는 몇 분을 간단히 보지만 또 그 다음에 결혼 예비학교 이외에도 많은 보이지 않는 사역들이 있어요. 일일이 열거를 안 해서 그렇지 근데 이런 사역들이 상대적으로 교회 안에서 홀대를 받는 그 그저 그런 너희를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말아라. 이런 식의 취급을 받는 서러움을 많이들 갖고 있더라. 실질적으로 보니까 그래선 안 됩니다. 교회는 효과와 효율을 통해서 기능적으로 움직여지는 공동체 여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선교라는 것은 원칙적으로 정말 전도지 들고 나가서 전도하는 것도 섬기지 많은 더 궁극적인 본질은 그 나라의 문화권을 통해서 그 나라의 백성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소개하는 거요. 그래서 어느 한쪽에만 탕자 쪽을 두고 강조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거 열심히 해야지요. 그러나 아울러 이렇게 보이지 않는 사역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그리고 교회가 뭐 전부 다 할 수 있느냐? 물론 전부 다 할 수 없어요.
그러나 어쨌든 이렇게 변해가는 연령층과 변해가는 환경에 발 맞춰서 교회가 10년 20년 내일을 어떻게 디펜스 해주고 또 섬겨 줄 것인가? 이런 것을 차근차근 하나씩 만들어 나가야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 되는 순종이에요. 그래서 어떤 건, 중요하고 어떤 건, 덜 중요하고 절대 우리 인식 세계 속에 이런 2분 법적 구조라 가치가 형성 되어선 안 됩니다. 전부 어디서 만나야 되요. 그리스도의 몸으로 모든 사역이 만나야 됩니다. 그러려면 모든 살기 똑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크기는 다르나 가치는 동일한 가치로 서로 용납해 주고 확인해 주고 또 해주는 수용성 있어야 되요.
이것이 오늘 베드로의 인식 세계를 바꾸었던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아 이방인들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우리와 한 형제로 성령이 역사를 하시는구나! 믿습니까? 삼일교회는 선교가 중요합니다. 그것이 더 돋보이고 더 가치 있게 발전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사역도 똑같지 하나님나라 관점에서 소중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여 우리가 구체적인 생활에 현장에서 똑같은 본질을 붙잡고 더 하나님의 나라, 일꾼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영상녹취 / 김은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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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감사합니다.
💖바꿀 수 없는 어제보다 기대할 수 없는 내일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오늘이 가장 좋은 하루입니다.
평생 단 한번 오는 오늘 보람있게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